뭐든지 앱으로 할 수 있는 세상이라는데, 연애도 앱으로 할 수 있을지는 몰랐다. 틴더나 아만다 같은 소개팅 앱을 말하는 건 아니다. 좀 더 플라토닉한 버추얼 로맨스를 즐기고 왔다.
혹시 모뉴먼트 밸리라는 아름다운 모바일 게임을 기억하시는지. 3D와 2D를 귀신처럼 오고 가는 착시 퍼즐 게임은 그림처럼 아름답고 근사했다. 오로지 비주얼로만 이루어지는 스토리텔링이 얼마나 견고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예이기도 했다. 구구절절한 대화나 설명도 거의 없고, 오로지 환상적인 일러스트 만으로 사용자를 설득했다. 당시 게임이라곤 담쌓고 있던 내 친구들조차 즐겁게 플레이했을 만큼 접근성이 훌륭한 작품이었음은 물론이다.
이 모뉴먼트 밸리의 개발을 이끌었던 ‘켄 웡’이 새로운 게임 ‘플로렌스’를 출시했다. 평범한 연인이 겪는 사랑의 과정을 표현한 인터랙티브 게임이다. 날짜도 기가 막히게 2월 14일에 출시했다. 나는 초콜릿 대신 2.99달러에 플로렌스를 구입했다. 이게 더 달콤할 거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엄청나게 감성적이다. 머리로 하는 게임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게임이랄까? 게임 플레이 과정에서의 ‘자극’이나 ‘탐구’를 즐기는 유저라면 실망할 가능성이 크다. 이 게임에서 구현된 인터랙티브 요소들도 굉장히 잔잔하다. 퍼즐이나 퀴즈 등을 자주 등장시키지만 모뉴먼트 밸리의 그것만큼 고민이 필요하지 않다. 냉정한 시선으로 본다면 오히려 ‘성가신 조작’에 가깝다. 미취학 아동 수준의 퍼즐을 대 여섯 번이나 연달아 맞춰야 하고, 화면의 모든 요소를 터치하거나 기기를 흔들어 활성화해야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다. 이 번거로움에 짜증이 났다면 당신은 이 게임과 맞지 않는 사람이거나 지금 여유가 없다는 뜻이다. “뭐야 이 구린 게임은!”이라고 욕하지 말고 여유 있을 때 다시 플레이해보자.
[눈금을 움직여서 화면 초점을 맞춰야 다음 장면으로 넘어간다]
오히려 잘 만든 콘텐츠 한 편을 감상한다고 생각하는 쪽이 맞다. 이 게임에서 등장하는 수많은 인터랙티브 UI는 게임적인 재미를 위한 것이 아니라 스토리텔링의 완성을 위한 것이다. 집요하게 우리의 터치를 유도해서 이 연애에 동참하는 듯한 몰입감을 주는 것이다. “왜 이렇게 귀찮게 굴어!”라고 삐딱하게 생각하면 한없이 지루해지고, 늦은 새벽 감성 충만할 때 BGM을 들으며 플레이하면 제법 마음이 말랑해진다.
개인적으로 감탄했던 요소가 있는데. 이들이 막 데이트를 시작했을 때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퍼즐게임이 생성된다. 퍼즐을 다 맞추면 두 사람의 대화도 척척 진행되는 그런 느낌이랄까.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일반적인 게임은 회를 거듭할수록 난이도를 높이는 것이 당연한데, 이 퍼즐 게임은 점점 쉬워진다. 처음엔 10조각, 그 다음엔 6조각, 그리고 2조각. 점점 대화를 나누기가 편해지고 가까워지는 두 사람의 관계를 표현한 것이다. 이런 것들에 감동받을 수 있다면 당신은 플로렌스 타입이다.
[음식을 하나 하나 터치하면 두 사람이 식사를 한다]
말풍선에는 실제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가 표시되지 않는다. 그냥 상상할 뿐이다. 데이트 초반엔 이런 대화를 했지. 함께 마트에 간다면 이런 대화를 하겠지. 상상력을 제한하지 않는 게 이 게임의 특징이다. 두 사람이 언쟁을 시작할 때도 마찬가지다. 화해하는 장면도 현실적이다.
[하루 일과가 반복되지만, 장면이 달라지면서 관계가 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게임의 스토리는 단조롭고 현실적이다. 장엄한 세계관이 깔려있는 것도 아니고, 눈물 쏙 뽑는 드라마가 있는 것도 아니다. 정말 누구나 겪어봤을 평범한 연애다.
플레이타임이 길지는 않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게임이다. 누군가는 잔잔하다고 생각하고, 누군가는 지루하다고 생각할 것이 틀림없다. 여유있는 날 기분 좋게 플레이해보시기를 권한다. 특히 연애 세포가 죽어가는 사람에게 추천. 이건 정말 연애하는 기분이 드니까. 혹시 연애 경험이 없는 분이라도 마찬가지로 추천한다. 현실의 연애와 이별도 이것과 비슷하니 미리 가상체험으로 공부해두자.
Florence
Store – iOS
Point – 꼭 음악을 함께 들으시길
Price – 2.99달러
Size – 1GB
About Author
하경화
에디터H. 10년차 테크 리뷰어. 시간이 나면 돈을 쓰거나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