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이거 살까?”
물건을 산다고 했을 때 좀처럼 반대하는 일이 없는 에디터H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일회용 그릇을 리뷰하겠다고?
일회용 그릇의 존재 목적은 편리함이다. 종이 혹은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지며 싸고 가벼워서 한 번 쓰고 버려지기 위해 태어났다. 하지만, 오늘 소개할 일회용 그릇 ‘와사라(wasara)’는 일회용 접시의 모든 가치와 정면으로 대립한다. 장담하건대 와사라는 이 세상에서 가장 우아하고 기품 있는 일회용 접시다.
일단 가격부터 사악하다. 큰 그릇은 6개 들어 있는 세트에 1만 3,000원대. 작은 접시는 12개 들어있는데 9,900원이니 개당 1,000원에서 2,000원 사이인 셈.
언뜻보면 잘 구운 도자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오돌토돌한 질감, 견고해 보이는 두께, 자세히 보면 사람의 손자국이 난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표면까지. 정갈하고 아름답다.
와사라는 종이가 아니다. 갈대와 대나무, 그리고 사탕수수를 짜고 난 찌꺼기를 이용한 펄프로 만들어졌다. 비닐 코팅을 하지 않아 와인을 마시면 흰 그릇에 붉은 자국이 남기도 하지만 그것대로 멋스럽다고 하면 내가 좀 과한 걸까? 뜨거운 음식과 차가운 음식 모두를 담을 수 있으며, 10시간 정도는 무엇을 담아도 끄떡없다.
고운 선은 자세히 보아야 더 아름답다. 일본에서 만들어진 와사라는 조금씩 정갈하게 음식을 담아내는 가이세키 요리 방식을 일회용 접시에 담아냈다. 일본사람들의 선에 대한 미학과 그리고 생활 방식을 그래도 녹여내 만들어진 접시라니. 고작 일회용 접시에도 미학이 들어갈 수 있다는 걸 난 와사라를 보고나서 이해했다.
모든 그릇은 손에 들었을 때 편리하도록 디자인되어있다. 그릇 아래 부분을 좁게 만든 것도, 접시의 한 귀퉁이가 살짝 휘고 접힌 것 모두 그릇을 한 손으로 쉽게 들고 먹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네모난 긴 사각 접시에 3분 만에 완성된 편의점 만두를 올렸다. 하찮은 것도 고급스럽게 만들어주는 감성이 있다. 난 고작 인스턴트 맥앤치즈와 전자레인지표 만두를 담아냈지만, 편의점에서 산 싸구려 음식도 여기에 담으면 정찬처럼 보일 수 있다.
누구가는 혀를 끌끌 차며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어차피 한 번 쓰고 버릴 일회용 접시를 꼭 그렇게 비싼 돈을 주고 사야 하느냐고. 하지만 살다 보면 일회용 그릇에도 품격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간편하지만 흔한 싸구려 접시보단 좀 더 특별하게 차려내고 싶은 그런 때가 있지 않나.
아니 그렇지 않다고 해도 상관없다. 누군가 그랬다. 가장 자주 쓰는 것을 가장 좋은 것으로 사야 한다고. 그것이 삶의 질을 높이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고. 매일매일 바쁘다는 핑계로 햇반과 라면으로 끼니를 떼우는 우리의 일상이 이 그릇으로 조금 더 우아해질 수 있다면 난 그걸로 만족한다.
에디터M의 쓸데없는 지름리스트는 여기까지. 앞으로도 꾸준히< M의 취향>이라는 탈을 쓰고 날 행복하게 만들어줄 작고 쓸모없는 물건들을 질러볼 생각이다. 자 그럼 다음엔 또 어떤 것을 사볼까?
About Author
이혜민
에디터M. 칫솔부터 향수까지 매일 쓰는 물건을 가장 좋은 걸로 바꾸는 게 삶의 질을 가장 빠르게 올려줄 지름길이라 믿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