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여러분 에디터H다. 오늘은 올해 세 번째 노트북 리뷰를 준비했다. 미리 말해드리자면 이 리뷰에는 다량의 오두방정이 포함돼 있다. 왜냐고? 리뷰 제품이 너무너무너무너무 예쁘기 때문이다. 크으.
나는 본래 사람이 좀 건방지다. 어릴 때부터 “윈도우 노트북이란 도무지 예쁘지가 않앗!”하는 시건방진 소리를 하고 다녔더랬다. 선천적 앱등이의 마음을 후려치는 제품들이 나오기 시작한 건 조금 나중의 일이다. 그리고 그 최전방에 스펙터가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HP는 내게 매력적인 노트북 브랜드는 아니었다. 왜냐고? 예쁜 게 없었으니까. 친구들에게 “너 휴렛팩커드가 뭔지 아냐? 깔깔”하고 잘난 척을 할 때나 언급하던 브랜드다.
그러다 어느 날 스펙터를 봤다. 처음엔 HP의 달라진 로고에 깜짝 놀랐다. 4개의 사선 빗금 만으로 알파벳의 형태를 만드는 세련된 아이디어에 입을 떡 벌렸다. 알루미늄 유니바디가 주는 단단하고 기분 좋은 만듦새. 노트북이 아니라 쥬얼리를 만든 것 같은 섬세한 공정. 스펙터는 물론이고 엔비 시리즈가 주는 디자인의 화사함도 인상적이었다.
지금 내가 타이핑 중인 노트북은 바로 HP 스펙터 13. 특징은 예쁨. 그것도 무지무지.
스펙터의 이전 시리즈도 충분히 수려했지만, 신형은 더 예쁘다. 예쁘다는 말을 몇 번이고 해도 아깝지 않을 정도다. 사실 제품을 리뷰하기 전에 미리 일본 사이트에서 사진과 스펙을 확인했는데, 그땐 그렇게 와닿지 않았다.
정말 실물이 훨-씬 좋다. 왜냐면 실물을 볼 땐 시각적 경험과 더불어 손에 잡았을 때의 느낌까지 덧씌워지기 때문이다. 박스에서 꺼내 손에 잡는 순간 착감기는 ‘내꺼 느낌’이 있다. 하나는 소재 때문이고, 하나는 두께 때문이다.
세라믹 화이트라고 부르는 이 컬러의 질감은 아주 특별하다. 차갑고 매끈한 금속의 느낌과도 조금 다르고, 플라스틱 바디가 주는 가벼움과도 다르다. 매트한 무광 세라믹 재질이 마음에 든다. 번쩍거리는 화려함은 없지만, 뽀얗고 손에 닿는 감촉이 보드랍다. 빛을 흡수하는 은은한 광택이 고급스럽다. 사진으로 봤을 땐 그냥 ‘흰색’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이 제품은 질감이 주는 만족감이 더해져야 하기 때문에 실물로 봐야 왜 ‘세라믹 화이트’인지 실감할 수 있다.
게다가 여기에 은은한 광택의 페일 골드 컬러로 준 포인트가 너무나 절묘하다. 샛노란 골드가 아니라 은은한 페일 골드다. 컬러 잘 뽑았다.
단 하나의 고민이라면 흠집이 쉽게 날까 염려되더라. 표면을 손톱으로 벅벅 긁어봤을 때는 괜찮았다. 동전으로도 긁어봤으면 좋으련만 내가 그런 강심장은 아니다. 헤헤.
두께는 10.4mm. 정말 얇다. 심지어 터치 디스플레이를 내장한 기기인데 이 정도면 비현실적인 두께다. 무게는 1.11kg. 상당히 가벼운 편이지만 놀라울 정돈 아니다. 탁 까놓고 말해서 요즘 다른 제조사에선 15인치 급 노트북을 이보다 가볍게 만들어내는 통에 무게 경쟁을 할 심산은 아닐 것이다.
스펙터 13은 아찔하게 얇은 바디에 1.11kg의 모든 구성품을 채워 넣은 묵직함에 매력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묵직함이란 무겁다는 뜻은 아니다. 화면 크기가 비슷한 내 노트북은 이보다 260g이나 무거운걸. 내가 말하는 묵직함은 잘 만든 제품의 단단한 완성도에서 오는 그런 묵직함이다. 장난감처럼 가벼운 느낌이 아니라 고급스럽게 잘 여물었다는 느낌이다. 전면은 탄소 섬유와 CNC 알루미늄 소재로 제작됐다. 경량화에 유리할 뿐만 아니라 내구성이 뛰어난 소재다.
이제 디자인 얘기가 끝났냐고? 스펙은 언제 알려주냐고? 이렇게 예쁜데 스펙에 연연해 무엇하리!! 그래도 외모보단 실력이라고 믿는 여러분을 위해 미리 스포하자면 스펙도 괜찮다.
이제 디자인은 충분히 본 것 같다고 생각하고 측면을 봤는데 또 예쁘다. 닫힌 면의 사선 커팅이 맞물리면서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뽐낸다. 원래 저 상태로 하나의 바디인 것처럼 완전해 보인다.
자, 너무 껍데기만 본 것 같다. 이젠 뚜껑을 열어서… 다시 껍데기를 보자. 구석구석 빈틈없이 예쁘다. 왜 쓸데 없이 전원 버튼까지 고급스럽지?
흑흑. 예전에 엔비 13 리뷰할 때도 언급한 적 있지만 스피커 그릴 너무 예쁘다. 레이스를 연상케 하는 스피커 패턴이 디자인 요소로 자리잡고 있다. 뱅앤올룹슨과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상당히 인상적인 사운드를 만들어준다.
리뷰하는 내내 내 사랑 블랙 핑크의 뮤직비디오를 무한 반복하며 감상해 보았다. 사운드와 디스플레이를 테스트하기 위함이지 절대 사심이 아니다. 화면 바로 아래 자리 잡은 일자형 스피커에서 상당히 깨끗하고 선명한 사운드를 뽑아낸다. 출력 또한 좋다. 좌우 공간감이 다소 아쉽긴 했지만 외장 스피커가 없어도 충분히 멋진 사운드를 만들어 주는 기기인건 분명하다.
터치 디스플레이다 보니 오염이나 내구성에 대한 염려가 드는데, 코닝 고릴라 글래스 NBT를 적용한 디스플레이였다. 덕분에 외부 충격이나 오염에 강하다. 나는 PC 환경에서 화면 터치를 많이 사용하는 편은 아니지만, 때때로 무의식적으로 화면을 터치할 때마다 새삼 편하다고 느끼게 되더라.
이전 리뷰부터 본 분들은 알겠지만 내가 노트북 리뷰를 할 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디자인…이 아니라 키보드다. 글쟁이다 보니 하루종일 손끝으로 옹앙옹알 두드려야 하는 키보드의 궁합을 가장 중요하게 친다.
지금 현재도 이 키보드를 사용하고 있으니 실시간으로 중계해드리겠다. 타이핑을 할 때마다 손 끝에서 ‘착, 착착착!’하는 새된 소리가 나는 게 아니라 ‘둥, 둥둥둥’하는 느낌의 부드럽고 작은 소리가 난다.
타건감이 상당히 물렁한 편이다. 말랑말랑하다고 해야 할까. 최근에 이런 두께의 울트라북에서 이렇게 깊이 눌리는 키보드를 본 건 처음인 것 같다. 아무리 봐도 키보드가 눌릴 견적이 안 나오는데 굉장히 깊게 눌린다. 최근 쓰던 노트북에 비해 반응이 달라 처음엔 적응하지 못했지만, 역시 키보드는 충분히 눌리는 맛이 있어야 즐겁다.
1.3mm의 키보드 트래블 디스턴스로 깊은 눌림을 제공하는 풀 사이즈 키보드가 반갑다. 부드럽게 눌리기 때문에 소음이 아주 적은 편이다. 키보드 소음에 민감한 편이라 손맛과 소음을 모두 만족하는 이 키보드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글을 오래 쓰는 사람에게 적합한 키보드다. 혹은 PC에서 메신저를 자주 쓰는 사람이라도 마찬가지겠다. 업무시간에 키보드로 격하게 잡담을 나누는데, 감정의 곡선에 맞춰 키보드 소음이 올라간다면 곤란하겠지. 실제로는 “ㅋㅋㅋㅋㅋㅋㅋㅋㅋ완전 대박!!!”을 입력하고 있더라도, 속닥속닥 말하듯 정숙한 키보드가 필요한 법이다.
피스톤 힌지 구조라 부르는 이 접합부도 살펴보자. 디자이너 가구를 연상케 하는 아름다운 설계다. 상판과 하판을 곡선형 힌지로 연결해 공중에 떠있는 것처럼 보인다. 화면을 열고 닫을 때는 이 힌지의 움직임이 부드럽고 견고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타이핑을 다소 세게 할 때는 화면이 조금 출렁인다는 느낌이 있었다.
터치 패드는 쓸만했다. 나는 물리적으로 눌러서 ‘클릭’하는 동작을 많이 쓰는 편인데, 클릭이 조금 무겁다.
이렇게 얇은 바디에 이런 키보드를 탑재했다면, 배터리는 대체 어디다 넣지? 배터리 용량이 실로 염려스러웠는데 진득하니 써보니 배터리 타임은 나쁘지 않다. 1회 완충으로 스펙상 최대 11시간 30분을 사용할 수 있는 고용량 배터리다. 인텔 코어 8세대 i5-8250U를 탑재했으며, 전력 효율도 뛰어난 편.
한 가지 꿀같은 기능을 소개하자면 배터리가 전문용어로 ‘앵꼬’난 상황에서 충전을 시작하면 30분 안에 최대 50%까지 채워주는 고속 충전 기능을 갖췄다. 비상 상황에 유용하겠다.
날렵한 바디를 만지며 성능에 대한 약간의 의심(?)이 차올랐기 때문에 테스트해보기로 했다. 게임은 잘 안 하는 터라 역시 노트북을 빡세게 굴릴 땐 영상 편집 만한 게 없다. 4K로 촬영한 영상 소스를 불러와 프리미어에서 편집을 시도해보았다. 나는 파이널컷밖에 쓸 줄 모르기 때문에 요즘 프리미어 공부 중인 막내 에디터의 도움을 받았다. 에디터M의 개봉기 영상을 한참 만져보더니, 딜레이되는 느낌 없이 빠르게 반응한다고 답한다. 이거참 용한 일이다.
다만 빡센(?) 작업을 시키니 팬이 엄청나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하단에서 뜨거운 공기가 뿜어져 나온다. 책상 위에 반듯하게 올려둔 상태에선 열이 빠져나가는 구멍을 막지 않지만, 허벅지 위에 올려두고 쓰면 통풍구가 막혀 꽤 뜨거워지니 신경 쓰시길.
이 밖에도 전면 적외선 카메라를 통해 윈도우 헬로의 얼굴 인식 잠금 기능을 사용할 수 있다. 요즘 아이폰X을 사용하며 얼굴 인식에 익숙해진 참이라 설정해두고 사용했다. 패스워드를 누르고 사용하는 방식보다 훨씬 빠르게 로그인할 수 있으며, 높은 수준의 보안성을 제공한다. 항간에선 자꾸 민낯과 메이크업한 모습이 달라 카메라가 구분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떠다니던데, 확실히 말해드리자면 적외선 카메라는 우리의 메이크업 여부 따위엔 관심도 없다.
모든 단자는 후면에 숨어있다. 처음에 충전 단자가 안 보인다고 찾아 헤맨 건 부끄러우니 비밀로 하자. 슬림함을 위해 USB-A 포트나 SD 슬롯은 포기했지만 괜찮다. 내겐 이미 익숙한 일이다. 오히려 범용 충전기를 공유할 수 있는 USB-C의 전원 포트가 반갑게 느껴진다. 여기에 썬더볼트를 지원하는 2개의 USB-C 단자와 이어폰 단자까지 품고 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HP 스펙터13은 섹시했다. 아쉬운 점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지만 이 정도 비주얼이면 뭐든 용서해주고 싶을 만큼 근사했다. 무시무시한 게이밍 노트북을 찾는 게 아니라면, 일반 사용자에게 허점이 느껴질 만한 사양은 절대 아닐 거라 생각한다. 게다가 매일매일 노트북을 들고 다녀야 하는 사람이라면 닫아도 예쁘고, 열어도 예쁜 이 경험이 꽤나 충만감을 줄 게 틀림없다. 타이핑할 때의 감각이나 섬세한 스피커 그릴, 산뜻한 무게. 보내기 아쉬울 만큼 즐거운 시간이었다.
스펙터는 레퍼런스를 아주 잘 쌓아가고 있다. 전자 기기라고 해서 스펙과 퍼포먼스만 중요한 게 아니다. 질 좋은 제품을 고르는 건 당연하고, 내 취향과 아이덴티티를 표현해줄 수 있는 브랜드여야 한다는 것. 난 톰포드의 안경테를 써. 난 딥디크 향수를 좋아해. 이런 말 처럼, “나는 스펙터를 써”란 말이 브랜드가 되는 느낌. 보여주고 싶고, 자랑하고 싶은 느낌. 여러분에게도 전달이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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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경화
에디터H. 10년차 테크 리뷰어. 시간이 나면 돈을 쓰거나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