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리뷰의 시작은 디에디트 페이스북 페이지에 달린 한 줄의 댓글이었다.
“참고로 필립스 에어프라이어는 비추입니다. 안주에 최적화되어 있기 때문에 사무실에 놓아두면 출근할 때부터 맥주를 마시고 싶거든요. 핫윙, 치킨, 치즈스틱, 피자, 삼겹살, 고등어 구이까지 다 됩니다. 심지어 겁나 맛있음. 내 보물 가전 1호.”
요즘 사무실에서 밥 해 먹기에 재미 들린 내가 토스터나 필립스 에어프라이어를 고민하고 있다고 언급했더니, 저런 댓글이 달린 것이다. 아! 그녀는 혹시 필립스에서 보낸 첩자일까. 열 리뷰보다 한 줄의 댓글이 더 강한 뽐뿌를 넣는 순간이 있다. 뭘 넣어도 맛있다는 말에 더이상 고민하지 않고 에어프라이어를 들였다.
그 뒤로 2주 동안 우리는 정말 매일 에어프라이어를 돌렸다. 이걸 돌리기 위해 출근하는 사람처럼 창의적이며, 열정적이고, 다채롭게. 그 결과 도저히 리뷰를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만큼 만족했기 때문에 디에디트가 얼마나 잘 먹고 잘사는지 보여드리고자 한다.
[살짝 스포일러…후후]
물론 내 인생의 방해꾼 에디터M은 격하게 반대했다.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로 가격이었다. 검색해보니 10만원도 안 하는 저가 제품도 많은데 왜 이렇게 비싼 걸 쓰겠다고 하는 거냐며 거품을 물었다. 둘째는 부피였다. 주방도 따로 없는 사무실에서 에어프라이어를 추가로 들여 어디에 보관할 거냐고 따지고 들더라. 셋째는 음식물 쓰레기가 생긴다는 거였다.
내 인생의 모토가 있다. 싸고 좋은 건 없다는 것. 가격 문제는 친구가 마트에서 산 8만원 짜리 에어프라이어가 구리단 얘기를 익히 들었기 때문에 반박할 수 있었다. 보관 문제와 음식물 쓰레기 문제는 적당히 해결해보자고 꼬셨다. 깨끗하게 다 먹으면 되지 않겠어? 음식을 왜 남겨?
[디에디트 냉동실 터지기 직전]
에어프라이어라는 이름 때문에 튀김 요리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사실 튀김만 할 수 있는 기기는 아니지만, 때마침 내가 튀김을 좋아한다. 마트에서 온갖 냉동식품을 사 모으기 시작했다. 맛있어 보이는 걸 하나 하나 사서 쟁여놓고 해 먹다 보니 사무실 냉동고가 가득 찼다. 조금 전에 전부 다 꺼내서 사진을 찍어보고 깜짝 놀랐다.
내가 쓰는 건 에어프라이어의 원조인 필립스 디지털 터보 에어프라이어 HD9641. 사실 1세대 모델도 사용했었는데, 그때보다 디자인이나 편리성, 성능이 모두 향상됐다.
[이건 조리 전인데 조리 후에도 비주얼은 크게 다르지 않음]
제일 처음엔 치즈스틱을 돌려보고 크게 실망했다. 이름처럼 뜨거운 공기를 이용해서 식재료를 익히기 때문에 기름에 튀긴 것처럼 노르스름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허여멀건한 상태로 남아있는 치즈스틱이 맛있을지 의심이 들었다. 덜 익은 음식처럼 보였는데 입에 넣으니 실제로 ‘바삭’ 소리가 난다. 안은 뜨겁고 촉촉하다. 치즈가 실가닥처럼 길게 늘어지는 걸 보면서 생각했다. 오지는 구나.
[식어도 바삭한 기적의 튀김]
오히려 기름기가 없기 때문에 일반 튀김보다 더 오랫동안 바삭한 상태가 유지된다. 아, 참고로 치즈스틱은 내가 여러 종류 먹어봤는데 이마트에서 파는 ‘피코크 자연치즈스틱’이 최고다. 진짜 넘사벽이다.
[한기가 느껴지는 레알 냉동 감자]
냉동식품을 익힐 땐 양에 따라서 다르지만, 180도로 세팅하고 11분~13분 정도면 조리가 완성된다. 해동 따위 필요 없다. 표면에 살얼음이 언 감자튀김을 무자비하게 쌓아서 11분만 돌려도 따끈하고 바삭하게 완성된다.
[기름없이 11분 만에 짠하고 완성된 나의 감튀, 나의 구원자]
실제로 써보면서 느낀 가장 좋은 점은 어떤 도구보다 조리 시간이 짧고, 예열이 필요 없으며, 도중에 식재료를 뒤집어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디에디트표 모듬튀김이다 정말 골고루 넣었다]
이것 저것 먹고 싶을 땐 온갖 냉동식품을 한꺼번에 넣고 조리에 들어간다. 따로 따로 익힐 필요도 없다. 소시지와 치즈스틱, 만두, 깻잎튀김, 김말이, 고구마튀김, 고추튀김을 모두 넣고 돌려보았다.
[진짜 맛있음…]
이건 180도에서 11분 돌린 결과물이다. 고온에 익다보면 식재료가 가지고 있는 기름이 배어 나오며 적당한 윤기가 돌게 된다. 소시지는 칼집을 살짝 내어 돌리면 통통하게 잘 익는다. 밥반찬으로도 꿀맛이다.
[이걸 안 먹고 2017년을 보내면 후회합니다]
아, 한 가지 제품을 더 추천하고 싶다. ‘올반 육즙가득 짬뽕 군만두’. 이걸 에어프라이어에 돌리면 작품이 나온다. 꼭 한번 먹어봐야 할 인생 만두다. 만두소가 가득 들어있는데 매콤한 불맛이 나는 짬뽕 소스 덕분에 느끼하지 않고 계속 들어간다. 만두피는 살짝 바삭해지고, 안은 뜨겁고 촉촉하게 찐만두처럼 익는다. 사무실에 손님들이 오면 안주로 대접하곤 했다. 다들 처음엔 냉동 만두라고 시큰둥했지만, 먹어보면 놀라는 맛이다. 세 팀의 손님에게 대접했는데 반응은 똑같더라. “이걸 진짜 에어프라이어로 했어??” 네, 그럼요.
[밑에도 닭꼬치가 가득, 진짜 어마어마하게 넣었음]
물론 튀김만 먹은 건 아니다. 고기도 많이 먹었다. 이번엔 닭다리와 핫윙, 닭꼬치를 모두 넣고 돌려보자. 불에 가열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나무 꼬치를 그대로 넣어도 무방하다. 욕심이 나서 산처럼 쌓았다. 에디터M이 너무 많이 넣어서 설익으면 어쩌냐고 묻는다.
[이마트 노브랜드 숯불양념 닭꼬치의 아름다운 자태]
이건 185도에서 12분 정도 익히면 모두 골고루 잘 익는다.
[이거 찍으려고 설거지 했습니다…]
리뷰를 하는 참에 원리에 대해서 살펴봤는데, 바스켓 아래 있는 독특한 바닥 디자인이 비밀이었다. 이 회오리 모양의 반사판이 뜨거운 공기를 더 빠르게 순환시켜서 다른 제품보다 빠르고 균일하게 식재료를 익혀준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고 회오리판을 쳐다보니 왠지 빨려 들어갈 것만 같다.
이해를 돕기 위해 사진을 찾아봤다. 저런 식으로 바닥에 뜨거운 공기가 부딪쳐서 위 아래로 회오리치면서 순식간에 음식을 구워준다. 이름도 무시무시한 ‘터보스타 에어스톰’ 기술이라더라. 최대 200도의 뜨거운 공기가 위아래로 빠르고 균일하게 순환하면서 재료를 감싸 조리하는 원리다. 이 과정에서 식재료가 가지고 있는 지방 성분을 이용해 겉은 바삭하고 안은 촉촉하게 완성된다. 역시 기술은 재밌다.
뭐, 어렵게 생각할 건 없다. 덕분에 음식을 뒤적이지 않아도 열기가 사이사이 빈틈없이 전달 된다는 게 포인트다. 10분이건 20분이건 조리하는 동안 버튼만 눌러놓고 다른 일을 하며 기다릴 수 있는 자유도가 좋다. 계속 뒤적거리고 잘 익었는지, 타는 건 아닌지 살펴보는 건 번거로우니까.
[이건 미친듯이 다 먹어서 인증샷도 없음]
냉동식품에 질려갈 때쯤엔 고기 요리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영상 리뷰를 촬영할 때 처음으로 소고기 등심 스테이크를 만들었는데, 그게 진짜 너무 맛있었다. 웰던에 가깝게 익혔는데도 질기지 않고 기름기가 빠져 담백한 맛이었다. 고기를 익힐 때 파프리카나 양파 따위를 함께 구우면 더 맛있다.
[셋이 먹기엔 조금 많아 보이지만 다 먹었음]
소고기 등심 스테이크의 성공에 힘입어 돼지 등심 스테이크에도 도전해봤다. 돼지고기는 바싹 익혀먹어야 한다는 에디터M의 말을 듣고 200도에서 15분 동안 조리하게 설정했다.
[프리셋 기능]
사실 설정은 미리 저장된 프리셋 기능을 사용해도 된다. 냉동식품이나 고기 등 식재료에 따라 다른 값이 설정돼 있다. 하지만 내가 가진 요리사로서의 감(?)을 믿기 때문에 스스로 다이얼을 돌린다.
혹시 음식이 얼마나 익었는지 궁금하다면, 잠깐 조리를 멈추고 꺼내서 확인하면 된다. 다시 집어넣고 버튼을 누르면 남은 시간 만큼 조리가 진행된다. 어디서 읽으니 저가 제품은 한번 열면 모든 설정이 초기화 된다더라. 확실히 디테일에서 차이가 있다. 나의 결정이 옳았음을 매 순간 확인하며 에디터M을 세뇌해 본다.
[사무실에서 칼질하는 여자들]
오케이! 잘 익었다. 두툼한 돈등심이 안까지 깨끗하게 잘 익었다. 푸석해보이는데 의외로 촉촉하다. 수육과 스테이크의 중간쯤 되는 식감이다.
리뷰 촬영도 하고 냉동고 정리도 할 겸, 푸짐하게 파티를 벌였다. 솔직히 저기다 햇반까지 더해서 먹었다. 우린 살이 찌고 있다. 그래도 정말 해피한 오후였다. 오늘도 한 번 더 깨닫는다. 역시 먹는 리뷰가 최고다.
필립스 에어프라이어는 꽤 비싼 기기다. 하지만 세상에 이렇게 편한 조리 도구가 또 있을까. 오븐과 전자레인지를 합쳐놓은 활용성. 설거지도 자주 할 필요 없고, 세척도 간편한 편이다. 고기를 구울 때도 냄새가 거의 나지 않는다. 사무실에서 쓰기 최상의 조건이다. 다음엔 연어 스테이크에 도전하겠다는 목표를 밝히며 오늘의 배부른 리뷰는 여기까지. 혹시 더 좋은 레시피가 있으면 댓글로 남겨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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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경화
에디터H. 10년차 테크 리뷰어. 시간이 나면 돈을 쓰거나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