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한번 다른 글에서도 말한 적 있지만, 스피커 리뷰란 정말 신나는 일이다. 원래 음악을 듣는 일이 그렇다. 좋아하는 노래를 즐기는 건 취향의 영역이고 유희의 시간이다. 음악에 대해 조예가 깊든 아니든 말이다. 우린 제품을 리뷰할 때마다 그에 어울리는 이벤트를 기획 해보곤 하는데, 스피커 리뷰는 특히 즐겁다. 음악이 필요한 장소는 실로 무궁무진 하니까.
이번에도 스피커 리뷰를 삼아 재밌는 일을 벌렸다. 이 제품은 보는 순간 “이번엔 캠핑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말을 맞아 캠핑 파티에 딱 어울리는 화려한 녀석이었다. 바로 JBL 펄스3.
에디터M이 한파가 닥쳤는데 무슨 헛소리냐며 만류했지만, 나는 귓등으로 들어 넘겼다. 바보. 캠핑은 원래 살짝 추울 때 가야 제 맛이라고. 공기가 차가울 때 모닥불을 피워 놓고 둘러앉는 그 기분이 끝내주니까.
소풍날을 맞은 어린이가 된 기분으로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짧은 일정이지만 먹을 건 일주일 먹어도 모자라지 않을 것처럼 많이 챙겨왔다. 평일 오전의 캠핑장은 우리가 첫 손님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잣나무 숲에 우리 일행만 있다고 생각하니 그렇게 신날 수가 없다.
아쉽게도 날이 좀 흐렸는데, 일기예보를 보니 오후에 비가 올지도 모른다더라. 잽싸게 타프를 치고, 의자와 테이블을 펼쳤다. 간만에 야외에 놀러 나오니 디에디트 에디터들의 손발이 기가 막히게 잘 맞는다.
한 명은 화로 위에 장작을 쌓아 불을 피우고, 한 명은 식재료를 꺼내 주방을 만든다.
나는 뭘했냐고? 스피커를 꺼내 음악 선곡을 맡았다. 펄스3는 작은 몸집에 비해 상당히 파워풀한 소리를 뽑아내는데, 그간 사무실에서만 듣느라 제대로 마음껏 볼륨을 높여본 적이 없다. 아무도 없는 숲속. 이것보다 좋은 공간이 있을까.
첫 선곡은 1998년 히트곡. 익숙한 노래가 나오자 에디터M이 자지러진다. 막내 에디터는 짐짓 당황한듯 올드한 선곡에 눈을 꿈뻑거리더라. 90년대 히트곡이 평화로운 잣나무숲에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더 출력이 좋다.
아웃도어에서 음악을 들을 땐 생각보다 변수가 많다. 단순히 바디가 가볍고 배터리가 오래간다고 좋은 스피커가 아니다. 방 안에서 스피커를 틀면, 벽에 부딪혀 소리가 힘을 받는데 탁 트인 야외에선 모든 소리가 산산이 흩어지게 된다.
펄스3는 그런 의미에서 합격인 것 같다. 막귀인 에디터M도 이거 생각보다 좋은 것 같다고 호들갑을 떤다. 최근에 여러 스피커 리뷰를 거치며, 서당개 청음을 계속했기 때문일까?
캠핑장에서 발견한 나무 밑동에 스피커를 올려두었다. 어, 이거 예상외로 멋스럽다. 원래 거기가 제자리였던 것처럼 자연스럽다.
블루투스 스피커를 사용할 땐 대부분 여러 사람과 함께인 경우가 많다. 혼자 있을 땐, 보통 헤드셋을 사용하니까. 그래서 스피커는 360도 사운드로 설계된 제품을 선호한다. 사람들이 여기 저기 둘러 앉아 있을 때, 한 방향만 보고 노래하는 스피커는 어쩐지 불공평하니까. 모두가 즐거워야 하는데 말이지.
이런 자리에선 어떤 방향에서도 고른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기가 날 안심시킨다. 스피커 주변으로 동서남북 둘러 앉은 우리 일행들이 모두 같은 음악소리에 울고 웃을 수 있도록 말이다.
이 제품의 진면목은 전원을 켜야 발휘된다. 제일 처음 박스에서 꺼내 전원버튼을 누르고선 깜짝 놀랐다. 철컥, 위잉. 전원이 들어오는 효과음이 상당히 쿨하다. 뭐랄까, 슈퍼카에 시동을 걸면 이런 소리가 나지 않을까? 물론 실제로 슈퍼카에 시동 따위 걸어본 적 없지만 기분이 그렇다는 거다. 난 당장이라도 달릴 준비가 됐다는 듯 절묘한 소리를 내더니, 온몸에서 빛을 뿜어내기 시작한다.
난 사실 JBL홈페이지에 있는 공식 사진을 보곤 콘서트장에서 흔들법한 야광봉 같은 빛이 나오는 줄 알았다.
JBL 펄스3의 실물은 사진보다 훨씬 영롱하고, 아름답다. 그리고 사진 속의 멈춰있는 이미지 보다는 실제로 빛이 일렁일렁 움직이는 모습을 봐야 한다. 노랗게, 빨갛게 시시각각 다른 색으로 빛나는 조명 덕분에 따뜻하고 근사한 파티 분위기가 연출된다.
애피타이저(?)로 스파게티 한 그릇을 후르륵 비웠다. 다들 야생 서바이벌이라도 찍으러 온 것처럼 전투적인 자세로 먹기 시작한다. 그래, 역시 캠핑은 먹방이지.
음주를 시작하며 선곡을 싹 바꿨다. 막내 에디터가 노래 좀 바꾸자며 볼멘소리를 한다. 역시 98년도 히트곡 선곡은 92년생과 함께 듣기엔 무리였던 것 같다. 초딩 시절을 추억하던 80년대생들은 힘없이 막내에게 선곡권을 넘겼다.
캠핑장에 도착한 후로 정말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음악을 들었다. 90년대 가요로 시작해 어쿠스틱, 댄스, 힙합, 일렉트로닉, 재즈. 온갖 장르를 잡식성으로 즐기는 디에디트 여자들의 취향을 뽐내면서 말이다. 다행히 모든 장르에서 고르게 좋은 소리를 들려주더라.
난 저음이 지나치게 강조되거나, 무겁게 들리는 사운드를 좋아하지 않는다. 되도록 명료하고 깨끗하게 소리를 뽑아내는 스피커가 좋다. 펄스3의 소리는 기대 이상이다. 듣는 순간 깜짝 놀랄 만큼 카리스마 있는 사운드는 아니지만, 기복이 없다. 고음도 깔끔하고, 야외에서도 풍성한 소리를 만든다. 특히 베이스가 빵빵하다. 위아래로 울림을 보여줘, 베이스 사운드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두번째 메뉴로 돌입하자. 이번엔 스테이크. 등심과 안심을 고루 사왔다. 우린 소중하니까. 갖은 허브와 향신료를 뿌려 충분히 마리네이드한 고기님을 굽기 시작한다. 목표는 미디움. 타이밍에 신중해야 한다.
내가 스테이크에 미쳐있는 동안, 손 빠른 에디터M이 토마토 카프레제를 뚝딱 만들어왔다. 훌륭한 안주다. 와인을 미처 준비하지 못한게 아쉬워진다. 아쉬운 마음에 맥주를 벌컥. 이때부터 선곡 분위기도 한 번 더 바뀌었다. 어쿠스틱 명곡으로 자연 친화적인 필링(?)을 살려보자면서. 갑자기 분위기가 고즈넉해진다. 취기도 오르고, 배도 부르고. 참 좋았다.
너무 우리의 먹부림만 보여드린 것 같으니 잠시, 펄스3의 조명 효과로 고개를 돌려보자. 사실 이 제품이 매력적인 이유는 사운드나 휴대성도 있지만, 시각적인 만족도가 크다.
음악의 분위기에 따라 이 라이트쇼가 계속 바뀌는데, 마치 불빛이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가끔 사무실에서도 일하다 멍하니 바라보게 된다. 마치 모닥불처럼. 겨울이라 쌀쌀한 날씨였는데도 진짜 모닥불과 쉼없이 피어오르는 조명 덕분에 분위기만은 따뜻했다.
실제로 이 스피커의 라이트쇼엔 7가지 테마가 있는데, 각각 다른 스타일로 조명을 만들어준다. 제품 뒷면에 있는 버튼을 누르면 쉽게 테마를 바꿀 수 있다. 각각 패턴이 완전 달라서, 보는 즐거움도 다르다. 어떤 건 눈을 현혹하는 효과로 화려한 파티분위기를 내준다. 웨이브나, 제트, 레인보우 모드도 좋지만 캠핑장에선 파이어 모드를 많이 썼다.
이게 정말 타닥, 타닥 소리를 타들어가는 불꽃처럼 보인다. 불의 움직임이나 색감이 진짜 불꽃을 그럴싸하게 재현해낸다. 언뜻 보면 등불을 켜놓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말이다. 날이 조금 어두워졌을 땐, 올드팝을 들으며 모닥불 옆에서 펄스3 파이어 모드의 매력을 한껏 만끽했다. 날씨가 추웠는데, 이 조명만으로도 불을 두 개 지펴놓은 것 마냥 분위기가 훈훈해지는 걸 느꼈다. 겨울에 잘 어울리는 제품이다.
조명도 생각보다 밝아서, 아주 어두워졌을 땐 이것만으로도 주변이 밝아지더라. 캠핑장의 밤에 이렇게 잘 어울리는 스피커가 있을까?
오후엔 일기예보대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급하게 모든 세간살이를 타프 밑으로 피신시켰다. 비는 30분쯤 오다가 그쳤지만, 몇 가지 식재료가 비에 홀딱 젖어서 속상했다. 그래도 스피커는 멀쩡하다. 가벼운 비가 내리거나 일시적으로 물이 묻는 정도의 환경에선 거뜬히 견디는 IPX7 등급의 방수 기능을 갖췄다. 빗물이 맺혔길래 슥슥 닦아내고 계속 음악을 들었다. IPX7 방수 기능은 1m 깊이의 수중에서 제품을 30분까지 보호할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방수 기능은 사용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니 유의하시길.
아웃도어 기기라면 언제 비가 내릴지 모르고, 전기가 없는 상황에서 견뎌야 하는 법. 12시간을 꼬박 버티는 배터리도 인상적이었다. 완충해서 들고 왔더니 밤 늦게까지 듣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그러고보니 막내 에디터가 자기 몸집만한 기타를 들고 왔는데, 여태 전세계의 노래를 듣느라 주목하지 못했다. 사실 초보라 연주할 수 있는 건 수수한 봄노래였지만, 스피커로 노래를 틀어놓고, 막내의 연주를 한 겨울에 들어보았다. 계절을 역주행하긴 했지만 나름 운치있다. 무조건 박수!
음악과 풍류가 있어 즐거운 캠핑이었다. 더 추워지기 전에 다녀오길 잘했어. 그치?
지금도 에디터M과 나란히 사무실 책상에 앉아 야근을 하며 펄스3로 음악을 듣고 있다. 오늘 밤의 선곡은 캐롤 명곡이다. 키보드를 쳐야 하는데 자꾸만 어깨가 들썩거린다. 흥겨워서. 라이트쇼 테마도 어울리는 걸로 맞춰 두니, 이건 야근이 아니라 파티가 따로 없다.
아웃도어에서도 좋았지만, 실내에서 침착하게 들어보니 더 좋다. 공간이 가득 차는 느낌. 이 제품은 정말 완벽한 파티 스피커다. 핑계삼아 맥주도 한 캔 꺼내 왔다. 아니, 사실은 두 캔. 상황에 딱 맞는 제품을 만난다는 건 이렇게 재미있는 일이다. 조만간 친구들과 계획한 크리스마스 파티에도 얘를 꺼내 놔야지. 평범한 장소에서도 분위기가 핫하게 달아오를게 분명하다. 연말 파티를 앞두고 이 제품을 만난 건 운명이 아닐까. 친구들이 다 좋아하겠지. 이제 파티 준비하러 가야 하니 오늘 리뷰는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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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경화
에디터H. 10년차 테크 리뷰어. 시간이 나면 돈을 쓰거나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