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

마더같은 브라더

얼마 전 바리스타가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바리스타 2급 자격증을 땄다. 과정은 험난했다. 5분 동안 잔을 예열하고 원두를 갈아 탬핑, 도징,...
얼마 전 바리스타가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바리스타 2급 자격증을 땄다. 과정은 험난했다.…

2017. 11. 17

얼마 전 바리스타가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바리스타 2급 자격증을 땄다. 과정은 험난했다. 5분 동안 잔을 예열하고 원두를 갈아 탬핑, 도징, 장착하여 에스프레소 4잔을 맛있게 추출하는 과정을 통과했다. 그리고 또 10분 동안 에스프레소를 추출하고, 스팀을 내려 완벽한 하트 카푸치노 4잔을 만드는 일련의 자격증 과정도 통과했다. 이 소식을 전하자 에디터 M(디에디트 대표)이 말씀하셨다.

“우리 그럼 드립 커피
매일 마실 수 있는 거야?”

매일 아침 바리스타의 커피를 꽁으로 얻을 수 있다니. 디에디트는 축복받은 게 틀림없다. 그리고 따끈따끈한 새내기 바리스타는 이렇게 대답했다.

“장비 사주시면요.
장인은 도구를 가리지 않는다지만
저는 가려요. 좋은 거로요, 대표님.”

1

장비가 도착했다. 드립 포트는 무명이지만 드리퍼는 칼리타 제품이다. 가성비를 따져 실속있는 드립세트를 주문했다. 그러자 에디터 M이 말씀하셨다.

“원두! 원두 골라와!”

2

원두가 도착했다. 또다시 가성비와 효율성을 고려해 맛있지만, 가격이 부담스럽지 않은 원두를 주문했다. 그러자 에디터 M이 또, 다시, 한 번 더 말씀하셨다.

“나 매일 다른 커피 마시고 싶어”

내가 누구인가. 나는 갓 탄생한 뉴비 바리스타다. 스페셜티 커피에 길들여진 에디터 M과 에디터 H를 위해 이미 조사를 마쳤다. 매달 알아서 색다른 커피를 골라 배송해주는 곳을 찾아왔다. 그리하야 그곳의 원두를 주문했지.

3[내 손만한 크기의 빈브라더스 샘플러]

그곳은 바로 빈브라더스. 빈브라더스는 오프라인 카페도 운영하고 있지만, 온라인으론 원두 정기 배송 서비스를 하고 있다. 친절하게도 정기 배송 시작 전에 맛보고 고를 수 있도록 샘플러를 판매하는데, 이 샘플러를 주문하면 50g씩 4종의 원두가 배송된다. 가격은 쌈빡하게 9,900원.

샘플러 원두 중 2종은 빈브라더스의 시그니처 커피인 블랙수트와 벨벳 화이트. 나머지 2종은 이맘때 가장 맛있는 원두 중 신중히 고르고 고른 원두를 보내준다. 이렇게 큐레이션 한 원두는 J.B.와 제임스의 추천으로 그들의 이름을 딴 패키지에 담겨온다. 그달에만 맛볼 수 있다고 하니 놓치면 손해 볼 것 같은 기분.

4

상냥하게도 그들이 고른 원두의 맛과 특징이 설명된 카드가 함께 배송 온다. 세상에 카드에는 대추가 있더라! 커피에서 대추 맛이? 고개가 갸우뚱. 게다가 대추 위에 누워있는 가느다란 보리가 보이시나요? 건포도 같은 대추 껍질의 달콤 씁쓸한 맛, 대추 속살의 달달한 맛, 보리의 청량 구수한 맛이 한 잔 커피에 다 담겼으리라.

일단 대추의 맛을 어서 확인해야겠다. 자, J.B.가 고르고 저 멀리 ‘코스타리카 수마바 데 루르데스’에서 날아온 이 원두를 어서 뜯어보자.

5

사실 난 대추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커피에서만큼은 호기심이 동했다. 아아,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참된 바리스타 상이다. 이런 바리스타가 많아져야 하는데 말이죠.

핸드밀을 사용해 갈았는데, 세 여자가 달라붙어 20분 넘게 씨름했다. 겨우 1인분의 원두였는데 갈아도 갈아도 끝이 없더라. 바리스타 공부할 땐 갈린 원두를 사용했기 때문에 이렇게 힘든 작업이 될 줄 몰랐다. 어쩐지 커피 선생님이 전동그라인더를 추천하더라니. 커피 한 잔을 마신다는 건, 정말 엄청난 일이다. 겨우 간 분쇄 커피를 담고 잔뜩 기대하는 H&M 앞에서 물을 따랐다.

6

어수선했던 새 사무실이 고요해졌다. 모락모락 따뜻한 물이 피어오르고 드립 서버 안은 비 오는 날의 창문처럼 톡톡 물소리가 난다. 한 방울 한 방울이 모여 한 잔이 되고, 이 아이들은 선배들의 모닝커피로 호로록 사라지겠지. 열정으로 커피를 내리고 있는데, 지켜보던 에디터 H가 졸리다고 했다. 앞으로 선배들이 날 피곤하게 할 땐 커피를 내려 잠재워야겠다.

갓 내린 커피의 맛은 최고였다. 커피 맛에 존재하는 신맛, 단맛, 짠맛이 제각각 존재감을 드러내는 맛이었다. 무게감은 조금 없지만 쌉싸름하고도 단맛이 강했다. 누군진 몰라도 대추라 표현한 사람은 상을 줘야 할 지경. 장비를 정리하고 남은 커피를 다시 마셔봤더니, 한약 맛도 느껴졌다. 정말 한약과 커피 맛은 한 끗 차이 일지도 모르겠다. 커피믹스를 좋아하는 엄마에게도 커피를 내려준 적이 있는데, 한약 맛이 난다고 했으니까.

카드 속 대추 그림만 보고 허겁지겁 내렸는데 알고 보니 원두가 오지게 좋은 것이었다. 코스타리카 2016년 원두품질경연대회 1위 수상 경력의 농장 출신이었다. 어쩐지 맛있더라니. 쟁여둬야겠다는 마음에 또 사달라고 대표님을 졸랐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달이 지나면 이 아이를 만날 수 없다. 이건 언젠가는 만났던 ‘너에게 닿기를’도 아니고, 세상 모든 건 타이밍이니까.

7

디에디트에 여유를 선사한 빈브라더스에게 치얼스. 주문하면 24시간 이내에 직접 로스팅한 원두를 보내준다. 꼭 한 달에 한 번 정해진 날에 받는 게 싫다면 원두가 떨어질 때마다 받을 수도 있다. 섬세한 콩 오빠들이다. 아니, 잘 먹고 다니라고 챙겨주는 엄마 같다. 카카오톡으로 주문 및 상담을 할 수 있다. 커피에 관한 모든 질문은 로스터와 바리스타가 직접 답변해 준다고 하니 바리스타 G(나)는 참 많이 애용할 듯싶다.

앱

사실, 제가 알아서 다양한 원두를 배송해주는 서비스는 또 있다. 원두 편집숍 ‘어반팟’은 유명 로스팅 카페들의 스페셜 티 원두를 집으로 배송시켜준다. 다양한 향미가 담긴 원두를 좋아하는 사람을 위한 원두, 산미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원두 등 취향을 선택하면 알아서 골라 보내준다.

매주 원두를 받을 수 있는 곳도 있다. ‘커피 점빵’은 매주 새로운 커피를 마시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백반’이라고 부르는 배송 서비스를 한다.

어반팟

아직 26년밖에 안 살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참 좋은 세상이다. 매일 맛봐도 다 맛보지 못할 새로운 원두가 탄생하는 세상. 그리고 이들을 집에서 편하게 내려 마실 수 있는 세상. 딱히 기대 없는 세상을 살고 있다면 이번 원두는 어떤 맛일까를 기대해보는 것도 좋겠다. 이 마음으로 버티면 월요일 아침이 괜찮아지는 날이 올 수 있지 않을까? 월요일마다 새로운 원두가 나타난다면 말이다. 긴 글 끝에 내린 결론은 이거다. “회사들은 월요일마다 억장이 무너지는 직장인들을 위해 원두를 제공하라.”는 것. (보고 있나요, 디 디에디트?) 기억해요. 매주 월요일, 새로운 원두.

에디터 G, 아니 바리스타 G의 드립실력이 궁금하시다면, 아래 영상을 감상하자. 드립커피에 대한 얄팍한 팁을 얻을 수 있을 것!

 

About Author
김기은

새로운 서비스와 플랫폼을 소개하는 프리랜스 에디터. 글과 영상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