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개츠비의 술은 어떤 맛일까

나는 옷 가게 직원을 대하는 손님과 같은 마음으로 서점에 간다. 주인장이 내 옆에 붙어 일거수일투족을 함께 하려는 기미가 보이는 건...
나는 옷 가게 직원을 대하는 손님과 같은 마음으로 서점에 간다. 주인장이 내…

2017. 10. 16

나는 옷 가게 직원을 대하는 손님과 같은 마음으로 서점에 간다. 주인장이 내 옆에 붙어 일거수일투족을 함께 하려는 기미가 보이는 건 싫은데, 그렇다고 나를 본 채 만 채하는 것은 또 좀 서운하다. 적당한 타이밍에 내게 말을 건네주고 혼자 가도 부담스럽지 않은 곳, 바로 내가 찾는 공간이다. 어쩌면 나는 주인장과 소근소근 담소를 나누고 취향을 나누는 공간에 로망을 품고 있었던 모양이다. 갬성!

아무튼, 전직 서점 직원의 깐깐한 기준을 통과한 특별한 서점을 세 곳을 소개한다.


소설 술을 마실 있는 , 책바

바로 그때 톰이 얼음이 가득 차 찰랑거리는 진 리키 네 잔을
받쳐 들고 들어왔다. 개츠비는 자기 잔을 집어 들었다.
“정말 시원해 보이는데요.” 그는 눈에 띄게 긴장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우리는 게걸스럽게 단숨에 쭈욱 들이켰다.
–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개츠비>

왜, 그런 거 있잖아요. 개츠비가 게걸스럽고도 단숨에 들이켠 저 술은 어떤 맛일까 궁금해하는 거. 같은 걸 마시면서 읽으면 같이 있는 기분이 들 것 같은 거. 언젠가 그 술을 마시며 책을 읽어야지 다짐했는데. 이런 내 로망을 먼저 실현한 곳이 바로 ‘책바’다. 주인장이 혼자 오는 손님을 반긴다고 직접 언급한 만큼 혼술, 혼북 하기 좋은 최고의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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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시간에 딱 맞춰 들어섰는데 벌써 손님이 두 명이나 있었다. 으아, 제일 먼저 등장해 으스대고 싶었는데 아쉽다. 이곳에선 아무도 떠들지 않는다. 거슬리지 않게 흐르는 음악 소리는 책 읽는 속도에 리듬을 만들어 준다. 시끄러운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 소란스러운 것은 딱 하나. 이것저것 물어보고 찰칵 대며 사진 찍는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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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살 수도, 그 자리에서 읽을 수도, 심지어 빌려갈 수도 있다. 일부러 빌려가서 여길 다시 찾아올 핑계를 만들까 싶었으나, 참았다. 혹시나 제 때 반납 못해서 여길 피하게 되면 어떡해. 내 소중한 아지트가 될 곳인 걸.

술을 마시면 책을 10% 할인해준다. 원래 나는 서점에 오면 어떤 책이 있나 구경부터 하는 사람인데, 이날은 함께 들어온 손님들이 주문한 알코올 향에 홀려 벌컥 메뉴 판부터 열었다. 책에 등장하는 술  ‘책 속의 그 술’, 시 한 편 읽으면서 마실 만한 도수 높은 술 ‘시’, 그 외 ‘에세이’, ‘소설’, ‘계간지’, ‘별책 부록’ 등. 메뉴판에는 취향과 목적에 따라 골라 마실 수 있는 술이 들어 있었다. 그중 나는 개츠비의 술, 진 리키를 마셨다. 계피 맛과 알코올 향이 싸 하면서 따뜻한 차의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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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알콜이 필요한 사람에겐 알코올을 뺀 음료를, 메뉴에 없는 술을 원하는 사람에겐 새로운 술을 만들어 준다. 술은 못 마시지만 책은 좋아하는 내 동행은 알코올이 조금만 들어가 달콤한 모스코 뮬을 택했다. 그녀는 바에서 사람들이 책을 읽는 게 자연스러워 신기하다고 했다.

책바 CHAEG BAR
위치 서울 서대문구 연희맛로 24
운영 시간 월-목 : 19:00 ~ 01:30 / 금-토 : 19:00 ~ 03:00 / * 휴무 : 일


 바쁜 도시 읽는 한량이 되는 , editorial cafe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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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골목 안 비플러스에 앉아 있으면,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 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타박 받지 않던 노는 게 최고였던 그때 그 시절. 한 마디로, 한량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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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장이 자리에 없으면 “주인장 나와!!”스티커가 붙은 종을 흔들어 인기척을 낼 수 있다. 책장 아래 세워져 있는 기타는 손님을 위한 장난감이다. 주로 근처 출판사에서 퇴근하고 놀러 온 손님들이 연주하는데, 시끄럽지 않고 모두 즐겁게 노는 분위기라 괜찮다고. 기타 소리가 거슬리지 않는다는 건 고요한 오피스에 숨은 실력자들이 많다는 걸까.

판매할 수 있는 새 책 보다 많은 사람이 편히 볼 수 있게 헌책을 더 구비하신다고 한다. 헌책 중엔 자연스레 절판된 책이 있는데 이건 아무에게도 안 판다. 많이들 절판본을 사러 방문하는데 절대 안파신댔다. 한국 잡지의 근간이 되는 <뿌리 깊은 나무>, 천재 뮤지션 커트코베인의 <커트코베인 평전> 등이 있다고 말씀해 주셨으나, 샹그리아 한잔에 눈이 침침해진 나는 이들을 책장에서 찾지 못했다. 맨 정신으로 꼭 다시 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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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이 추천해주신 샹그리아는 딱 마지막 잔이었다. 배와 레몬 슬라이스를 넣어 상큼하고 시원한 맛의 샹그리아.

혼자 오기 좋은 공간임을 입증하기라도 하는지 한 명 한 명씩 들어와 자리를 차지했다. 소근소근 사람들의 대화 속에 여유가 흐른다. 함께 간 친구는 책과 핫플레이스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인데, 이 사람이 추천해주는 것은 늘 좋다. 그런 사람에게 소감을 물었더니 내일도 다시 오겠다는 답을 들었다. 사람들의 대화 소리, 음식 만드는 소리, 은은한 조명. 모두 다 좋다고.

에디토리얼 카페 비플러스 editorial cafe B+
위치 서울 마포구 양화로 12길 16-12
운영 시간 월-금 : 11:00 ~ 01:00 / 토 : 12:00 ~ 01:00 / 일 : 12:00 ~ 23:00


향기 파는 책방, PRESCENT.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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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곳에 위치한 프레센트.14는 책과 함께 향기를 판다. 입구 앞 진열장에는 책을 향기로 표현한 디퓨져들이 가득하다. 라일락과 상큼한 과일 향을 조합한 <어린 왕자> 향, 따뜻하고 맑은 느낌을 낸 <냉정과 열정 사이>의 향은 집에 데려가고 싶었을 정도다. 사실 다양한 향기들이 섞여 답답할까 봐 걱정했는데, 우려와는 달리 조화로운 향이 머무는 공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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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선 책과 관련된 #태그 만 보고 골라야 하는 블라인드 북을 판매한다. 어떤 기준으로 책을 고른 걸까? 나는 쪼르르 질문을 던졌다. 주인장은 제목이 매력 없어서, 표지가 예쁘지 않아서 선택 받지 못한 책을 숨겨두었다고 했다. 음, 맞지. 화려한 표지에 손이 갈 때가 많으니까. 취지에 동조해 눈을 감고 아무거나 집어 봤다. 내가 집은 블라인드 북의 태그는 #위로에세이 #영혼의양식 #상처많은나무가 #아름다운무늬를남긴다 #시작할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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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동행 없이 혼자 갔다. 나는 나와의 데이트를 자주 즐기는 편인데, 혼자 여도 눈치 보이지 않는 공간을 좋아한다. 예를 들면 아무도 나를 신경 쓰지 않는, 영화가 시작돼 캄캄한 영화관 같은 곳. 내 블라인드 책은 비밀이다. 힌트를 준다면, “사람은 때때로 홀로 있을 줄 알아야 한다” 껍질을 까고 발견한 이 종이 속 세계의 목차다. 혼자 있어 이 책을 발견한 나에게 아주 딱.

향기 파는 책방 PRESCENT.14
위치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 5가 92
운영 시간 화-목 : 11:00 ~ 22:00 / 금-일 : 11:00~20:00 * 휴무 : 월


이곳들은 모두 내 아지트 삼고 싶은 곳이다. 왜 아직 아지트가 아니냐 면 아직 주인들과 친해지지 못했다. 무릇 아지트라면 내가 문을 열어 딸랑- 소리가 울리면, 주인장이 왔냐며 눈으로 인사 해주는 곳이어야 한다. 그러려면 아직 멀었다. 다음 번엔 혼자 방문해야지. 가자! 눈도장 찍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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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은

새로운 서비스와 플랫폼을 소개하는 프리랜스 에디터. 글과 영상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