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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랑, 내 마음이 넘쳤다

하늘 아래 같은 술은 없다. 지난번엔 세상에서 가장 맛있었던 맥주가 오늘은 밍밍해져서 영 시원찮은 맛을 내곤 한다. 세상의 모든 일이...
하늘 아래 같은 술은 없다. 지난번엔 세상에서 가장 맛있었던 맥주가 오늘은 밍밍해져서…

2017. 0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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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아래 같은 술은 없다. 지난번엔 세상에서 가장 맛있었던 맥주가 오늘은 밍밍해져서 영 시원찮은 맛을 내곤 한다. 세상의 모든 일이 그러하듯, 수많은 작은 우연들이 사슬처럼 엮여 결과를 낸다. 아주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저쪽 바다 건너에선 태풍이 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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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술의 경우 더 하다. 때때로 술 본연의 맛보다 언제, 어디서, 누구랑 어떻게 마셨는지가 술의 맛에 더 큰 영향을 끼친다. 달콤한 공기에서 마신 술은 더 달콤한 법. 그동안 리뷰를 하면서 꽤 많은 술들이 내 세치 혀를 스쳐 지나갔지만, 지금 마시고 있는 이 술이 지난번에 마시던 그 맛과 다른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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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도 술맛을 가장 크게 좌우하는 건, 바로 잔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 술을 위해 최적화된 부대에 담아야 한다. 같은 술도 어떻게(혹은 어떤 잔에 따르느냐에 따라) 그 풍미는 전혀 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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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점에서 캔맥주는 조금 아쉽다. 휴대하기 좋고 버리기도 쉽지만, 술 본연이 가지고 있는 풍미와 향은 차갑고 딱딱한 입구에서 상당 부분 잃어버리고 만다. 혹시 넘어져도 많이 흐르지 말라고 고안된 좁은 입구. 이 입구는 너무 좁아서 술의 향이 코에 닿기도 전에, 쇠의 아릿한 향기부터 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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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기네스 기사가 나가고 난 뒤, 기네스에서 특별한 잔을 보내왔다. 기네스 잔에 아주 특별한 문구가 새겨진 전용 잔이다. 여기엔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다.

“인생의 완벽한 순간에는
두 가지가 있어야 한다.
책과 맥주”

맞다. 때때로 가장 좋은 안주는 책이다. 김영하 작가가 특별히 기네스를 위해 적어 내려간 이 글귀가 바쁜 일상에 쫓겨 버석거리던 나의 마음을 ‘찰랑’하고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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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잔도 얻었겠다, 조금 촌스럽지만 집에 있는 김영하 작가의 책을 챙겨왔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와 <오빠가 돌아왔다> 그의 소설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두 권이다. 최근 ‘알쓸신잡’으로 더욱더 유명해졌지만, 사실 김영하는 내가 아주 오래전부터 좋아해오던 작가 중 하나다.

시대의 이야기꾼 김영하.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공감할만한 이야기를 별다른 과장 없이 덤덤하게 그려낸다. 읽기 시작하면 쉽게 놓기 힘든 흡입력 있는 그의 소설도 물론 좋아하지만, 내가 김영하를 사랑하는 진짜 이유는 바로 목소리다. 낮고 어눌한 울림의 소리.

아직 내가 ASMR의 세계에 발을 들이기 전,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김영하의 팟캐스트, ‘책읽는 시간’을 들었다. 그는 좋아하는 책을 골라 조근조근 읊어주곤 했다. 아쉽게도 지금은 그게 어떤 책이었는지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니 사실 내용 같은 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목 울대를 비껴 낮게 울리는 그의 목소리는 듣는 순간 명치가 간지러우면서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한동안 나에게 그의 목소리는 세상 무엇보다 강력한 수면 유도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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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다시 리뷰로 돌아와 볼까. 내 오랜 로망 중 하나는 볕 좋은 어느 날. 아무 이유 없이 문득 길가 벤치에 주저앉아 몇 시간이고 책을 읽는 그런 ‘잉여로움’이다. 더운 여름 날, 적당하게 데워진 나무의자에 앉아 손에 종이의 사각거림을 느끼며 책장을 넘기는 나. 아! 물론 여기에 맥주까지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

Processed with VSCO with fp8 preset[이런 순간에 빠질 수 없는 인증샷 타임]

한낮 공원에 앉아 책을 펴고 맥주를 따르고 있으니 지나가던 사람들이 나를 흘끔거리기 시작한다. 평일 대낮에 낮맥과 독서라니 이 얼마나 사치스러운 경험인가. 물론 이럴 땐 인증샷도 빼놓을 수 없다. 해시태그 #북스타그램 #땡땡이 #낮술 #김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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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도 맥주도
깊을 때가 좋다”

또 다른 잔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다시 봐도 어여쁜 잔이다. 허리가 잘록 들어간 잔은 기네스의 심볼인 하프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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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잔이 좋은 이유는 퍼펙트 파인트를 완벽하게 완성하기 위한 일종의 가이드 라인이 되어준다는 거다. 잔의 하프 로고까지 기네스를 따른 후, 잠시 휘몰아치는 서징을 즐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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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목소리의 힘은 이리도 강렬하다. 김영하의 책을 읽으면 이제 자연스럽게 김영하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재생된다. 그리고 생각한다. 그의 목소리와 기네스는 참 잘 어울린다고. 어쩌면, 김영하 작가와 맥주 한 잔 해보고 싶다는 내 검은 마음 때문일 수도 있고. 하지만 또 그럼 뭐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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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맥주 리뷰를 가장한, 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 김영하와 책, 그리고 나의 로망까지 주절주절 많이도 떠들었다. 행복하다. 왜냐면 내 로망을 이루었으니까. 이 근사하고 특별한 잔이 나에게 알려준 건, 일상의 사소하지만 반짝이는 경험들이 모여 나를 조금씩 더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 김영하 작가의 특별한 문구가 더해진 기네스 전용잔은 9월부터 대형마트에서 기네스 패키지와 함께 판매될 예정이라고 한다. 디에디트 독자 여러분들 모두가 기네스의 맛을 더 특별하게 만들어 줄이 반짝이는 감성을 꽉 붙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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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Author
이혜민

에디터M. 칫솔부터 향수까지 매일 쓰는 물건을 가장 좋은 걸로 바꾸는 게 삶의 질을 가장 빠르게 올려줄 지름길이라 믿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