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세로는 아름다워요

디에디트는 소비를 찬양한다. 사는 건 즐거워. 매일 무언가를 지를 때마다 나는 조금 더 행복해지지. 우리는 계산을 할 때마다, 지갑에 손을...
디에디트는 소비를 찬양한다. 사는 건 즐거워. 매일 무언가를 지를 때마다 나는 조금…

2017. 07. 31

디에디트는 소비를 찬양한다. 사는 건 즐거워. 매일 무언가를 지를 때마다 나는 조금 더 행복해지지.

우리는 계산을 할 때마다, 지갑에 손을 뻗어 카드를 꺼낸다. 엄지와 검지 사이에 끼워진 얇은 플라스틱. 내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일단 지르자. 결제는 내일의 내가 할 테니. 신용카드는 현대인의 자존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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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4학년 때 처음 신용카드를 만들었다. 당시 잡지사 인턴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손톱의 때만 한 월급만으로는 도무지 생활이 되지 않았다. 무슨 생각이었는지 은행에 가서 신용카드 발급 신청서를 작성했다. 이름, 주민번호, 소속까지 볼펜을 쥔 손이 거침없이 카드 신청서를 훑고 지나갔다. 용감한 시절이었다.

난생처음 내 이름이 적힌 신용카드를 긁던 낯선 감각은 지금도 생생하다. 내 통장엔 고작 만 원 남짓한 돈이 있었지만 괜찮았다. 나에겐 카드가 있었으니까. 화장품을 샀는데, 내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이 한 푼도 없었다(적어도 그 당시엔 정말 그렇게 느껴졌었다). 물건을 쥐고 있는 건 지금의 나였지만, 돈을 내야 하는 건 미래의 나였다. 물론 신용카드가 얼마나 무서울 수 있는지를 깨달은 건 조금 후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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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오늘 리뷰할 제품은 소비의 꽃 신용카드다. 그냥 카드가 아니고 현대카드. 그것도 세로카드. 일단 기깔나는 영상을 준비했으니까. 영상부터 보고.

현대카드가 세로카드를 내놨다. 소비의 화신이자 지름신의 열렬한 추종자인 우리가 왜 그동안 신용카드를 제대로 리뷰한 적이 없었을까?

생각해보면 신용카드는 나에 대해 가장 잘 알고 녀석이다. 내가 요즘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아마 우리 엄마 보다 더 잘 알고 있을걸? 잠깐 내 소비내역을 살펴볼까. 음… 주로 편의점을 다니거나 택시를 탔구나. 금액도 항상 비슷하다. 집에서 사무실까지, 사무실에서 집까지. 시시한 나란 사람.


“세상이 다 변하는데 왜 카드만 그대로지?”

그리고 우리 앞에 세로 카드가 나타났다. 곱게 포장된 카드 박스를 손에 쥔 채 주변을 돌아보니 온통 세로인 세상에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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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러고 보니 얼마 전 디에디트의 명함을 바꿨다. 가로에서 세로로. 막연히 그게 더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내 명함을 건넬 땐 명함을 쥔 상태로 내 이름이 보여야 하니까. 가로보다는 세로가 더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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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에게 세로로 된 세상이 있다는 걸 가장 먼저 말해준 건, 스마트폰이었다. 스마트폰 이전의 세상은 온통 가로였다. 미술 시간에 그리던 도화지도 가로, 사진도 가로. 그리고 TV와 영화 화면도 가로 가로. 2004년엔 삼성전자가 가로본능이란 휴대폰을 출시하기도 했다. 화면이 가로로 돌아가는 엄청난 기능(?)을 품고 있었다. 그래서 제품명도 가로본능. 지금 생각해보면 지나간 시대의 본능이었다.

1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난 지금, 조금만 주변을 돌아보면 도처에 세로가 넘쳐난다. 인스타그램도 페이스북도 그리고 웹툰도 스마트폰을 쥐고 엄지로 스크롤을 내리면서 세로로 세계를 확장한다.

그리고 드디어 카드의 방향을 바꾼 세로카드가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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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적인 얘기부터 해보자. 예전에는 마그네틱 카드를 사용했다. 자기에 사용자의 정보를 입력해두는 방식이다. 카드를 ‘긁는다’는 표현은 자기 카드에서 유래됐다. 자기에 입힌 정보를 읽어오기 위해선 입력장치를 통과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그 모습이 카드를 긁어내리는 것 같았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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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요즘 누가 긁는담. 세상 모든 카드들이 몸뚱이에 조그만 IC칩을 품기 시작했다. IC칩은 일종의 초소형 컴퓨터다. 마그네틱 테이프가 없으니 긁을 필요도 없다. 이제 계산대에서 카드를 내밀면, “앞에 꽂아주세요”라는 대답이 돌아오기 십상이다. 꽂을 땐 어떻게 꽂지? 그래. 세로로 꽂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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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까지 몰랐을 뿐, 실로 자연스러운 일이다. 모바일에 넣었을 때도 가로보다 세로가 훨씬 더 딱 맞게 들어가니까.

재미있다. 사실 카드를 가로에서 세로로 바꾸는 건, 뭐 엄청나게 대단한 일은 아니다. ‘카드의 방향을 바꾸는 게 뭐? 그게 대수야?’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시대에서 왜 그동안 그 누구도 카드의 방향을 바꾸지 않았는지 되묻고 싶어질 정도다. 세상이 세로로 바뀌면, 카드도 당연히 세로가 되어야 한다. 현대카드가 선보인 세로카드는 모든 것이 변해가는 지금 사용자의 환경을 고려해서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냈다는데 그 의의가 있다.


“카드는 내 얼굴이니까”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물건을 사고 그때마다 카드를 내민다. 그리고 내 명함보다 더 자주 누군가에게 내미는 게 바로 카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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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를 좋아하는 에디터H는 레드를, 난 M 시리즈를 선택했다. 사진에서 그 느낌이 미처 다 표현되지 않았지만, 레드 컬러는 정말 아름답다. 오렌지빛을 띄는 웜톤 레드도, 푸른빛을 띠는 쿨톤 레드도 아니다. 어떤 피부 톤에나 잘 어울릴 것 같은 완벽한 립스틱 색이랄까. 누가 딱 이 컬러로 립스틱을 출시한다면, 한순간도 고민하지 않고 당장 살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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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카드를 쓰면 저 멀리서도 한눈에 현대카드의 존재를 알아볼 수 있다. 오렌지, 민트,  블루 화이트 등. 세련되면서도 한 쪽 성별에 치우치지 않은 중성적인 컬러다.

카드의 앞면은 첫인상이자 얼굴이다. 현대카드가 세로 카드를 만들면서 바꾼 건 단순히 방향만이 아니다. 비비드 한 컬러와 카드 이름을 알파벳과 숫자만으로 단순화 시켜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강하게 주장한다. 민트 컬러의 앞면에는 ‘M or Nothing’이고 적혀있다. 이 얼마나 자신감에 찬 멘트인가. 위트도 잃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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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에서 본 카드는 눈에 완벽하게 플랫한 모습이다. 보기 싫고 시간이 지나면 칠이 벗겨지는 엠보싱을 없앴다. 덕분에 지갑이 한결 날씬해졌다. 금색으로 번쩍거리는 IC칩도 톤다운 시켜 한결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했다. 디자인은 덜어낼수록 아름다운 법. 우아한 디테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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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 번호나 유효기간 등 카드를 사용할 때 직접 필요하지 않은 정보는 모두 뒷면에 배치했다. 앞면에는 카드의 이름과 사용자의 이름처럼 정체성을 보여주는 정보만 남겼다. 누구나 당연히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한 번 더 생각하고 과감히 재배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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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궁핍할수록 돈 쓰는 일은 더욱더 아름다워져야 한다. 그리고 무언가를 살 때마다 꺼내드는 카드는 더 아름다워야 한다. 왜냐고? 카드는 내 마지막 자존심이자 나의 마지막 인상이니까. 퇴근하는 택시 안, 내일 입을 옷을 사기 위해 황급히 들었던 어느 가게에서 나의 마지막 인상은 카드는 내미는 거였다.

아름답고 똑똑한 카드였다.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워서 난데없이 자꾸만 내밀고 싶어진다는 게 문제긴 했지만. 단순히 방향만 바꾼 것으로도 나의 소비를 조금 더 특별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면 세로카드의 가치는 충분하다. 이왕 사는 인생이라면, 좀 더 멋지고 폼 나게 살고 싶다. 이러나저러나 어떻게든 지를 핑계를 찾고 있는 에디터M의 세로 카드 리뷰는 여기까지. 뿜뿜.

Photo by_장재은

About Author
이혜민

에디터M. 칫솔부터 향수까지 매일 쓰는 물건을 가장 좋은 걸로 바꾸는 게 삶의 질을 가장 빠르게 올려줄 지름길이라 믿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