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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와 행복의 관계, 더 팟

뭐랄까. 발뮤다라는 브랜드는 조금 특별하다. 가전제품 브랜드지만, 갖고 있는 이미지는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에 가깝다. 단순히 전기로 구동되는 ‘기계’가 아니라 그...
뭐랄까. 발뮤다라는 브랜드는 조금 특별하다. 가전제품 브랜드지만, 갖고 있는 이미지는 라이프 스타일…

2017. 06. 19

뭐랄까. 발뮤다라는 브랜드는 조금 특별하다. 가전제품 브랜드지만, 갖고 있는 이미지는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에 가깝다. 단순히 전기로 구동되는 ‘기계’가 아니라 그 공간의 분위기를 좌우하는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기 때문. 사실 제품 라인업이 그리 많지 않은데다가, 역사가 오래된 것도 아니다. 그럼데 참 이상하지. 발뮤다라는 이름이 붙어 있으면, 무조건적인 신뢰와 호기심이 샘솟는다. 세뇌당한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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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몇 문장에서 이미 들통났겠지만, 나는 발뮤다라는 브랜드를 아주 좋아한다. 이건 내가 좋아하는 다른 브랜드인 ‘애플’을 바라볼 때와 비슷한 동경심이다. 실제로 발뮤다는 ‘가전업계의 애플’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실로 닮은 구석이 많다. 대단할 것도 없어보이는데, 실제로 써보면 대단하고. 남들이 자꾸 따라하고 싶은 디자인을 만들어낸다. 가장 큰 공통점은 ‘사용자 환경’ 자체를 디자인할 줄 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제품을 쓰는 동안, 그 순간의 경험은 브랜드가 가진 감성에 온전히 녹아든다.

재밌는 건 발뮤다의 모든 제품은 놀라울 만큼 심플하다는 사실이다. 쉽게 말하면 별 거 없다. 화려한 디자인과 디테일로 승부하는 것도 아니고, 세상이 없던 신기능을 선보이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최소한의 부품과 디자인으로 제품을 만들어낸다. 냉장고에서 그림도 그릴 수 있는 시대에 발뮤다가 선보이는 제품들은 시대착오적일 만큼 단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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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출시된 더 토스터를 보자. 이름부터 무진장 단순하다. 그냥 토스터. 디자인도 간결하다. 타이머와 온도 조절 역할을 하는 두 개의 다이얼이 기능의 전부. 그런데 가격은 간결하지 않다. 솔직히 꽤 비싸다. 어떤 사람들은 이게 평범한 토스터와 뭐가 다르냐며 거품을 문다. 그럴 수 있다. 이해한다. 하지만 써 보면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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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뮤다의 더 토스터는 심플한 디자인과는 다르게 어마어마한 개발 스토리가 숨어있다. 2,000장의 디자인 시안을 만들어 단 하나를 선택했으며, 수많은 빵을 굽고 맛보는 실험을 1,000시간 이상 진행했다. 그 결과는 엄청났다. 내가 발뮤다 토스터에 제일 먼저 구웠던게 산지 일주일된 식빵이었다. 5cc의 수분을 더해 구워낸 식빵은 사망선고를 받고 다시 살아났다. 촉촉하면서도 바삭하게. 설명해 무엇하리. 겁나게 맛있다. 무슨 빵을 구워도 갓 만든 것처럼 호사스러운 맛이 된다. 게다가 예쁘다. 무심한듯 시크한 디자인은 어떤 공간에 놔둬도 모던미가 폭발한다. 이 어메이징한 토스터를 영접한 이후로 나는 발뮤다가 하는 모든 말을 다 믿기로 했다. 그리고 더 팟이 등장했다. 발뮤다의 첫 번째 전기 주전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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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팟은 출시 전부터 써보고 싶어서 종종거리던 제품인데, 직구를 할까 고민하다 110V 제품을 쓰는 게 번거로워서 포기하고 있었다. 이제 한국에서도 판다. G마켓에서 판매를 시작하는데, 10년 째 G마켓 VIP로서 가슴 벅찬 순간이다. 오예! 리뷰하면서 이렇게 설레는 건 간만이다.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의 제품을 써볼 땐 어깨춤이 절로 나온다.

자, 일단 군더더기라곤 하나도 없는 수려한 디자인부터 훑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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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엄청나게 많은 시행 착오 끝에 만들었을 노즐의 위치와 곡선. 아름답다. 저 끝에서 갓 끓은 물이 흘러나와 향긋한 원두와 만나는 풍경을 절로 상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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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시한 엉덩이(?)에 붙은 손잡이는 그립감이 단단하고 안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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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전기 주전자가 그렇듯 복잡한 조작법은 없다. 저 레버를 가볍게 아래로 눌러주면 톡 하는 소리를 내며 주전자는 물을 끓이기 시작한다. 무겁지 않은 소리와 느낌이다. 물을 끓여!라고 명령하는 게 아니라 가만히 권유하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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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자가 작동 중일 땐 손잡이 끝 전원 램프에 불이 들어운다. 이 불빛이 아주 묘하다. 작은 네온관을 사용해 은근하게 빛을 밝힌다. 마치 촛불처럼. 진짜 따뜻한 불이 싹트고 물이 끓어오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감성적인 요소다. 이질감이 없는 램프 덕분에 전체 디자인의 느낌을 해치지 않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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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한 것처럼 발뮤다의 모든 제품이 그러하듯 단순한 디자인이다. 발뮤다 로고를 제외한다면 다른 요소는 전무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제품의 실루엣이 주는 만족감은 남다르다. 두 가지 매력 덕분이다. 하나는 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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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와 블랙 컬러는 모두 약간의 요철이 느껴지는 마감과 기가막힌 조화를 이룬다. 아오씨, 여기서 큰 문제가 있다. 화이트냐 블랙이냐. 선택하기 어렵다. 둘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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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하나는 사이즈다. 이 제품을 실제로 보면 “생각보다 작네?”라는 말이 먼저 나온다. 600ml 용량의 아담한 사이즈로 손잡이와 바디의 곡선들이 아기자기하게 이어 붙어 있다. 한 손으로 들었을 때 딱 붙는 크기다. 작아서 더 보기 좋다. 수납 공간을 많이 차지 하지 않는 것도 장점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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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제품 사이즈를 줄이기 위해 노력한 만큼, 거치부도 콤팩트하게 만들었다. 저 위에 주전자를 그대로 거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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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모델은 받침대도 화이트다. 다만 전원 코드는 어쩔 수 없이 블랙이니 완벽한 깔맞춤을 원한다면 블랙 모델을 선택하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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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마음에 들지 않는 점도 있다. 아름다운 디자인을 위해 과감하게 포기한 요소도 있는데, 겉에선 물이 얼마나 차있는지 확인할 수 없다. 용량을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눈금도 없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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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금은 뚜껑을 열어서 내부를 봐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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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커피를 내려보자. 더 팟은 오리지널 드립세트와 함께 구입할 수 있는데, 발뮤다가 하리오와 함께 만든 물건이다. 하리오 V60드립퍼와 비커, 계랑 스푼, 종이 필터가 포함돼 있다. 비커에는 발뮤다라고 써있는 디테일이 돋보인다. 드립퍼는 블랙이라 더 팟 블랙 모델과 깔맞춤이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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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드립 세트에 필요한 게 모두 들어 있으니 준비할 건 원두 뿐이다. 요즘 서울은 그야 말로 ‘커피의 도시’다. 괜찮은 로스팅 카페를 어디서든 만날 수 있다. 카페마다 시그니처 원두를 판매하고 있으니 맛보는 재미도 쏠쏠하고 말이다. 나는 합정동 앤트러사이트에서 ‘공기와 꿈’이라는 원두를 구입했다.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의 책 제목에서 따온 이름이다. 근사하다.

드립퍼마다 알맞은 그라인딩 굵기가 다른데, 구입할 때 직원이 어떤 드립퍼를 쓰냐고 묻는라. 하리오 V60이라고 말하니 알아서 해주더라. 솔직히 고백하자면 핸드드립 초보인 나와 에디터M은 유튜브 영상으로 커피를 배웠다. 전문가들이 커피를 내리는 모습을 눈동냥으로 학습한 뒤 따라해봤다. 뭐 어때. 커피는 느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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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는 20g 정도 넣고 추출하면 좋다는데, 따로 측정하진 않고 계량 스푼으로 두 번 떠 넣었다. 커피 가루를 적신다는 기분으로 가볍게 주전자 주둥이를 두 바퀴 돌리면서 물을 부어준다. 이걸 뜸들이기 라고 하는데, 뜨거운 물과 원두가 만나면서 커피 향이 확 풍기기 시작한다. 아, 벌써 기분이 좋아진다. 20초쯤 기다리며 이 순간을 만끽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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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본격적인 추출이다. 가운데부터 점점 더 큰 원을 그리며 가볍게 물줄기를 돌려준다. 내가 사진을 찍고 있어서 에디터M이 커피를 내렸는데, 제법 전문가 흉내를 낸다. 가늘고 우아한 주전자 끝에서 섬세한 물줄기가 곡선을 그리며 흘러나오는 모습이 기분 좋다. M의 표현을 빌리자면 “자꾸 커피 내리고 싶어지는 감각”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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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일반 전기 주전자로도 핸드 드립은 충분히 가능하다. 다만 육중한 전자 주전자의 부피나, 뭉툭한 주둥이 디자인 때문에 이런 ‘손 맛’이 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고 전기 주전자로 끓인 물을 별도의 커피 포트로 옮겨 담아 커피를 내리는 것도 생각보다 번거로운 작업이다. 더 팟은 이런 번거로움을 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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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팟은 물을 붓고 커피가 똑똑, 떨어지길 기다리는 찰나의 기다림을 즐겁게 만들어준다. 간편하지만 정성들여 커피를 내리는 그 분위기 만큼은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이다. 우리 같은 커피 쌩초보들도 핸드드립이 얼마나 멋지고 근사한 일인지를 깨달을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커피 향이 기가 막히다. 원두가 좋은 건지, 커피를 잘 내린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비커에 200ml 정도의 커피가 추출되었다면, 드립퍼에 물이 남아있어도 그냥 제거하면 된다. 그래야 가장 맛 좋은 커피만 즐길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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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산 잔에 예쁘게 담았다. 얼른 사진을 찰칵 찍고 호로록 마셔본다. 산미가 강하고 꽃향기와 과일향기가 따라 붙는 원두다. 채 식지 않은 커피가 목구멍으로 넘어가며, 여운 진한 향이 궤적을 남긴다. 아침에 일어나 첫 커피를 마셨을 때의 감각이다. 첫 커피는 입안이 예민한 상태로 마시기 때문에 그 향과 맛을 그대로 즐길 수 있다.

내 하루를 위한 커피를 정성껏 내리고, 그걸 마시는 순간의 즐거움. 뭔가 다르다. 무심코 넘기던 일상의 순간이 휴식처럼 느껴진다. 이게 발뮤다의 제품이 가진 마법이다. 평범한 것들을 한 번 더 음미하고, 특별하게 느낄 수 있는 힘.

커피를 다 마시고 촬영을 끝낼 때가 되니 배가 고팠다. 남은 컵라면을 꺼내다 물을 부어 마셨다. 이때도 발뮤다 더 팟의 깨알 같은 디테일을 확인할 수 있다. 커피로는 세 잔, 컵라면은 두 개 정도 끓일 수 있는 물 용량이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쓰는 패턴에 맞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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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빠서, 잠 깨려고, 일 하려고… 늘 전투적으로 커피를 마시는 우리에게는 커피가 만들어지는 순간을 만끽할 수 있는 잠깐의 여유가 필요하다.

여유라곤 모르고 살던 두 여자가, 모처럼 커피 향을 음미하며 한적한 시간을 보냈다. 얼른 다른 원두를 사서 커피를 내려보고 싶다. 이 예쁜 주전자로 커피를 내리는 순간이 기다려진다. 나는 언제나 좋은 물건이 좋은 순간을 만들어준다는 사실을 믿는다. 그리고 오늘 리뷰한 발뮤다 더 팟은 내가 믿는 것들을 그대로 보여주는 물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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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에 올린 사진 보고 연락온 다정한 친구]

나의 이런 짝사랑을 발뮤다가 알아줄 지는 모르겠지만, 여러분에게도 마구 영업하고 싶다. 친절하게 구매 링크도 안내해드린다. ‘여기’를 클릭하시길.

https://www.youtube.com/watch?v=LB1O_7hYWMU

About Author
하경화

에디터H. 10년차 테크 리뷰어. 시간이 나면 돈을 쓰거나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