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계절의 쓸쓸함을 달래줄 전시 4

안녕, 객원 에디터 김은아다. 아름다움에는 힘이 있다. 황망한 슬픔을 위로하고, 서늘해진 계절의 쓸쓸함을 달래는 힘. 그러니 우리는 아름다움이 모인 곳,...
안녕, 객원 에디터 김은아다. 아름다움에는 힘이 있다. 황망한 슬픔을 위로하고, 서늘해진 계절의…

2022. 11. 13

안녕, 객원 에디터 김은아다. 아름다움에는 힘이 있다. 황망한 슬픔을 위로하고, 서늘해진 계절의 쓸쓸함을 달래는 힘. 그러니 우리는 아름다움이 모인 곳, 미술관으로 가자.


[1]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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퀸의 전설적인 보컬 프레디 머큐리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개봉했을 때, 그런 고민을 했다. ‘퀸 노래 하나도 모르는데 보러가도 되나?’ 정작 영화관에 앉아서는 내내 정반대의 질문만을 떠올렸다. ‘나 왜 이 노래 다 알지?’

‘유럽 역사도, 중세 미술도 잘 모르겠다’ 싶은 사람이라도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전시장에 들어서면 이와 같은 기시감을 느낄 수 있다.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초상> <흰옷을 입은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를 비롯해 고개를 돌리는 곳마다 눈에 친숙한 명화들이 가득한 덕분이다. 파울 루벤스, 디에고 벨라스케스, 안토니 반 다이크 등 중세 미술계의 슈퍼스타들의 이름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img-work3-1-side [왼쪽 작품은 디에고 벨라스케스, <흰 옷을 입은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 1656년. 오른쪽 작품은 마리 루이즈 엘리자베스 비제 르브룅,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 1778년.]
1400_lub [피터르 파울 루벤스, <주피터와 머큐리를 대접하는 필레몬과 바우키스>, 1620~1625년]

이 화려한 라인업의 비결은 합스부르크 가문의 막대한 권력에 있다. 왕가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를 배출하고, 정략 결혼으로 15세기부터 600여년 간 유럽의 패권을 장악했다. 동시에 유럽 곳곳에서 국보급 예술품들을 부지런히 수집해 ‘유럽 3대 미술관’으로 꼽히는 빈미술사박물관 컬렉션을 완성했다. 이번 전시를 통해서는 회화, 공예, 갑옷, 태피스트리 등 96점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 2022.10.25 – 2023.3.1
  • 국립중앙박물관

[2]
<다니엘 뷔렌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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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을 위한 키즈카페가 있다면 이렇지 않을까? 커다란 홀 전체를 거대한 블록과 화사한 색으로 채운 첫 전시실에 들어서면 이런 생각이 든다. 다니엘 뷔렌의 의도도 다르지 않다. <어린아이의 놀이처럼>은 색이 주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어린아이의 눈으로 순수하게 색의 느낌에 집중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대형 설치 작품이다.

다니엘 뷔렌은 고정된 시각을 강요하는 미술사조의 틀을 거부하며 매우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작업을 선보인 거장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강렬한 색감의 설치 작품들을 통해 그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엿볼 수 있다. 작품들은 대부분 비비드한 컬러의 스트라이프 패턴, 거울, 어긋난 각도가 뒤섞여 묘하게 공간을 경쾌하고 변형하고 왜곡한다.

곳곳에서 거울을 사용한 덕분에, 작품을 사진으로 찍으려다 보면 필연적으로 관람자의 모습도 함께 찍힌다. 작가는 이러한 사진을 ‘포토 수브니르’라고 불렀다. 관람자가 작품을 사진에 담는 순간, 원작에 관람객의 기억이 더해져 새로운 작품이 탄생한다는 뜻이라고. 그러니까 이 전시에서의 사진 촬영은 어쩌면 거장과 합작품(?)을 만드는 예술 활동일지도 모른다.

  • 2022.7.12 – 2023.1.29
  • 대구미술관

[3]
<화중서가(畵中抒歌) : 환기의 노래, 그림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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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재산이 많다고 상상해보자. 아주아주 많이. 한 몇 백억쯤? 그러면 당신은 그림 한 점을 사기 위해 130억 원을 기꺼이 쓸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잠시만 고민해봐도, 그림을 구입한다는 건 돈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런데 글로벌세아그룹의 김웅기 회장은 그렇게 했다. 그는 2019년 11월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김환기의 <우주 Universe 05-Ⅳ-71 #200>를 8800만 홍콩달러(한화 약 132억 5000만 원)에 구입했다. 이는 한국 미술 역사상 최고가였다. 이 분의 재산이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아마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거다. 그 바탕에는 어떤 마음이 있었다. 단지 “가지고 싶다”는 욕구를 넘어서는 어떤 마음. 낙찰받은 순간, 그가 가장 먼저 한 생각은 “이 작품을 이제 해외로 내보내지 않아도 되겠구나”였다. 그러니까 그 바탕에는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이자, 한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거장의 작품을 모든 사람과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던 셈이다.

이번 전시는 많은 사람이 이 작품을 쉽고 편하게 관람하기를 바랐던 그의 소망에 따른 것이다. 그의 뜻에 공감한 12명의 컬렉터들이 김환기의 작품을 무상으로 대여해 줬다. 덕분에 254×254㎝의 대작인 <우주>를 비롯해 1950년대 달항아리, 1970년대 전면점화 등 김환기의 작품세계를 아우르는 17점을 함께 만날 수 있다. 물론 전시는 무료다.

100억 원이 넘는 금액을 지불하고 작품을 소장한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아니 그전에, 그림이 100억 원이라는 것이 마땅한가? 이렇듯 언뜻 이해되지 않는 질문이 떠오를 수도 있다. 그것조차 아주 좋은 출발이다. 물음표야말로 새로운 관계의 좋은 출발점이니까. 그리고 작품은 말없이 답해줄 것이다.

  • 2022.10.14 – 12.21
  • S2A 갤러리

[4]
<선善도 악惡도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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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울컥 화가 올라온다. 누군가들에게 찾아가 따지고 싶고, 물리적인 해를 가하고 싶다는 충동마저 든다. 한 두 사람을 향하던 분노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얼굴 없는 거대한 사람들을 향하기에 이른다. 이 괴로움을 어찌할 것인가.

때로 미술관은 이런 괴로움에 위안을 준다. 지금은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의 전시 <선善도 악惡도 아닌>이 그렇다. 전시는 선불교의 정신인 ‘불사선(不思善)’을 바탕으로 세 거장의 작품을 소개한다. 이는 대상에 선이나 악이라는 굴레를 씌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본질을 바라볼 때 번뇌와 무력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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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에 한 번에 와닿지 않는 이 고차원적인 이론은 작가들의 작품을 들여다보면 비로소 이해될 듯 하다. 작가 장욱진, 곽인식, 최상철은 소유나 집착, 지배 등의 욕망에서 벗어나 마음을 비우고, 대상의 진정한 가치를 바라보기 위해 노력했다. 캔버스 위에 물감을 묻힌 돌을 천 번 굴린 대작(곽인식), 몇 번이고 먹을 반복해 칠하며 마음을 비워내는 수행 같은 작품(곽인식)이 보여주듯이. 이렇듯 미술과 작가는 가르치지 않는다. 그저 그렇게 사는 법을 보여줄 뿐이다.

  • 2022.10.12 – 2023.1.8
  •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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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아

전시, 공연, 와인에 대한 글을 씁니다. 뉴스레터 '뉴술레터' 운영자. 뭐든 잘 타요. 계절도, 분위기도, 쏘맥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