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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런 하는 카페, % ARABICA

안녕. 나는 커피를 마시고, 글을 쓰는 심재범이다. 지난 추석 연휴, 퍼센트 아라비카(% ARABICA, 이하 ‘아라비카’) 한국 1호점이 문을 열었다. 한국인의...
안녕. 나는 커피를 마시고, 글을 쓰는 심재범이다. 지난 추석 연휴, 퍼센트 아라비카(%…

2022. 09. 19

안녕. 나는 커피를 마시고, 글을 쓰는 심재범이다. 지난 추석 연휴, 퍼센트 아라비카(% ARABICA, 이하 ‘아라비카’) 한국 1호점이 문을 열었다. 한국인의 커피와 SNS 사랑에 비하면, 인스타그램 커피 인증의 대명사 아라비카의 한국 진출은 의외로 늦은 편이다.

참고로 아라비카는 홍콩에서 시작해서 교토로 본사를 이전, 싱가포르, 마닐라, 상하이, 베를린, 런던, 뉴욕 등에서 연달아 성공한 브랜드다. 세계적인 스페셜티 커피업체들이 고전하는 한국에서 아라비카가 얼마나 성공할지 모르겠지만, 오픈 직후 엄청난 대기줄을 포함한 초반 돌풍이 무섭다. 이번에는 벼르고 별러서, 디에디트 독자들을 위해 최대한 냉정하고 꼼꼼하고 치밀하게 분석했다. 아라비카의 첫 한국 매장 리뷰가 매콤한 마라 버전일지, 달콤한 허니버터 버전일지 함께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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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비카 한국 1호점의 위치는 삼성동 코엑스 별마당 도서관 1층. 코엑스의 주차가 워낙 극악해서 가급적이면 승용차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코엑스 별마당 도서관은 9호선 직행이 정차하는 봉은사역과 2호선 삼성역에서 5분 정도 거리에 있다. 코엑스 1층으로 이동하면 찾기 쉽지만, 막바지 무더위가 만만치 않고, 설계자도 미로에 빠지기 쉬운 코엑스 지하상가에서는 별마당 도서관행 트랙길을 따라갈 것을 권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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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앞에 도착한 시간은 평일 오전 11시. 한가한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에스컬레이터 앞에 이미 대기하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나는 두 번째 방문이었는데,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틀 연속 100m 대기줄을 40분컷에 선방했다는 것. 블루보틀 사례와 비교하면, 오픈 초기 대기 인원이 비슷하고 기다리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짧았다. 대기하는 손님들에게 생수를 제공하는 등 업체 측에서도 신경을 쓴 흔적이 역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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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매장에 들어서기 직전. 당일 커피 메뉴와 MD상품에 대해서 간단히 안내를 받았다. 일찌감치 품절이 된 커피가 많아 아쉬웠지만, 사전 안내를 받은 덕택에 전체적인 주문 시간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됐다. 인기가 많아 손님들이 몰리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대기하는 손님들을 배려하고 시간을 줄이려는 아라비카의 노력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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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비카 매장이 원통형 타워 구조라 외부에서 내부가 한눈에 보였다. 전체적인 규모는 30평 내외로 되어 보인다. 테이블은 거의 없다시피하고, 간이 스툴이 조금 있었다. 매장에 들어가 커피를 주문하고, MD상품을 살펴보았다. 토트백, 배낭, 신발을 포함한 다양한 상품들이 많았다. 블루보틀 오픈 초기에는 MD상품을 사재기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어 텀블러와 같은 일부 제품들이 품절이었는데, 아라비카는 물량을 잘 조절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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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비카의 에스프레소 머신은 추출 압력과 온도 조절이 가능한 슬레이어 머신이다. 가장 대중적인 라마르조코가 스포츠세단 BMW와 같은 느낌이고, 안정적인 시네소 머신이 메르세데스 벤츠 같다면, 다이나믹한 슬레이어 머신은 스포츠카 포르쉐의 특징과 비슷하다. 아라비카의 에스프레소 머신은 내부를 노출시켜 투명한 외관의 튜닝 모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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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인더는 향미 좋은 커피에 적합한 로버그라인더에 수동식 분배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수동식 분배 방식은 바리스타의 도징(Dosing, 커피를 포터필터에 담는 과정, 에스프레소 추출에 중요한 변수가 된다) 기술을 연마하는 데 좋지만, 하루에 여러 잔의 커피를 추출하는 바리스타들에게는 매우 힘든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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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아라비카는 독특한 종류의 (냉장고를 닮은 듯한) 로스팅 머신을 사용하는데, 현장에서 생두를 로스팅해서 소비자들에게 판매한다. 아라비카의 슬레이어 머신과 토네이도 킹 로스팅 머신은 아라비카의 창업자 쇼지가 일본에서 공급하는 제품으로 이제는 아라비카의 특징이 되었다. 로스팅의 균일성과 안정적인 공급이 아쉽지만, 매장의 특징이라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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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비카에서 총 네 종류의 커피를 마셨다. 첫 번째 커피는 블렌드 에스프레소. 가장 기본이 되는 커피이다. 아라비카는 블렌드와 싱글오리진 커피의 가격이 동일하다. 가격은 5,000원. 블루보틀과 비슷한 가격이다.

1400_retouched_japan_-006136 [아라비카커피 교토 아라시야마점]

솔직히 고백하면, 이전까지 아라비카에 열 번 정도 (교토 히가시야마, 아라시야마, 홍콩, 마닐라, 싱가포르 등) 방문했는데, 그닥 맛있지는 않았다. 강하게 커피를 볶은 강배전 스페셜티 커피를 지향해서 쓴맛이 주도적이고 가끔씩 초콜릿과 같은 질감이 느껴지는 정도. 한국 아라비카의 커피는 이제껏 마셨던 아라비카 매장의 커피 중에서 가장 좋았다.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스페셜티 커피 성향이 아니지만, 강배전과 단맛, 밸런스, 적절한 향미까지 오랜 시간 노력한 흔적이 잘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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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커피는 아라비카의 상징, 카페라테다. 아라비카의 라테는 8온스를 추천한다. 가격은 6,000원. 아라비카는 더블샷을 기준으로 총 40mL 내외의 진득한 에스프레소와 체온에 가깝고 뜨겁지 않은 스팀밀크를 혼합해서 카페라테를 제공한다. 가장 좋아하는 밀크커피 조합 중 하나다. 기본적인 블렌딩 에스프레소와 쫀쫀하고 뜨겁지 않은 스팀밀크의 궁합이 매우 좋았다. 일본 스페셜티 커피업계에서는 도쿄의 스트리머, 오사카의 기라차, 교토의 아라비카의 카페라테를 최고로 손꼽는다. 그러고 보니 모두 라떼아트 챔피언들이다. 이들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책 <동경커피>, <교토커피>에서 자세하고 재밌게 소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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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커피는 한국인에게 인기가 많은 아이스 아메리카노. 아라비카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평균적으로 좋아하는 맛이다. 시원하면서도 산미가 없는 편. 가격은 5,500원. 촉감과 단맛이 좋은 리저브 커피의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비슷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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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은 매장의 시그니처 커피로 추천하는 교토라떼. 2021년 이후에 새롭게 시작한 커피다. 아라비카의 스패니시 라떼가 카페라테에 달콤한 연유를 많이 넣었다면, 교토라테는 카페라테에 연유가 조금 들어간 메뉴이다. 아이스 교토라테의 가격은 7,300원. 적절한 단맛과 우유의 조합이 나쁘지 않지만, 개인적으로는 조금 애매한 밸런스였다. 물론 극히 개인적인 취향일 뿐이다.이외에도 아라비카의 모든 밀크커피는 식물성 음료 오트사이드로 교체가 가능하다. 일본에서는 소이 밀크 추가도 가능하지만, 한국에서는 오트밀크만 가능하다. 그리고 아라비카의 생분해성 빨대의 사용감이 상당히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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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저트 종류는 많지 않고, 뼁오쇼콜라와 크루아상을 판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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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에 걸쳐 장시간 동안 매장을 방문 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직원들의 표정을 꼼꼼히 살펴보게 되었다.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는 직원들의 자세가 긍정적으로 느껴졌다. 특히, 바쁜 매장임에도 불구하고 커피바를 수시로 정리하면서 청결하게 유지를 하고 있었다. 일본 현지보다 더욱 청결했던 것 같다.

이외에도, 아라비카는 평균적인 스페셜티 커피 업계와 진행 방식이 다르다. 화려한 장소에 매장을 입점시키고, 여러 이슈로 화제가 되는 것을 즐긴다. 교토의 매장은 작지만 아름다우면서 대기 줄이 어마어마한 매장으로 알려졌고, 다른 국가의 매장들도 꾸준히 이슈의 중심이 되었다. 강배전과 쓴맛을 강조하고 미묘한 감칠맛과 로스팅의 단맛을 강조하는 아라비카는 스타벅스 리저브와 지향점이 유사하다. 섬세한 향미, 풍부한 맛과 밸런스를 표현하는 한국의 리브레, 프릳츠, 나무사이로, 일본의 마루야마, 영국의 스퀘어마일과 같은 업체들과 방향성이 다르지만, 장기적으로 스페셜티 커피 산업의 발전에 기여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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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아라비카 직원들의 개인차가 있고, 일부 테이블의 정리가 되지 않는 등의 디테일이 아쉬었지만, 한국의 첫 아라비카 매장은 당분간 꾸준히 화제가 될 것이라 긍정적으로 예상한다. 한국의 소비자들이 참 무서운 게, 화제가 되는 브랜드가 성장 동력을 잃는 순간을 미묘하게 포착한다는 것이다. 외국계 스페셜티 커피에 따끔한 매운맛을 선사하는 한국 소비자들에게도 인정 받는다면, 향후 더욱 크게 성장하리라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마라 맛도 허니버터 맛도 아닌 애매한 리뷰가 되었지만, 다양한 스페셜티 커피 업체들이 균형 있게 성장하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픈 초기 얼굴 핏기가 사라지도록 수고한 직원들의 노고가 잘 보상받았으면 좋겠다.

About Author
심재범

커피 칼럼니스트. '카페마실', '동경커피', '교토커피'를 썼습니다. 생업은 직장인입니다. 싸모님을 제일 싸랑하고 다음으로 커피를 좋아합니다. 아 참, 딸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