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내 이름은 처키야, 나랑 놀래?

안녕, 콘텐츠 덕후 에디터B다. 과거의 시청자는 수동적으로 TV를 볼 수밖에 없었다. TV 앞에 앉아 짜여진 편성표대로 나오는 드라마를 봐야 했으니까. 지금은...
안녕, 콘텐츠 덕후 에디터B다. 과거의 시청자는 수동적으로 TV를 볼 수밖에 없었다. TV 앞에…

2021. 12. 19

안녕, 콘텐츠 덕후 에디터B다. 과거의 시청자는 수동적으로 TV를 볼 수밖에 없었다. TV 앞에 앉아 짜여진 편성표대로 나오는 드라마를 봐야 했으니까. 지금은 다르다. 스트리밍 서비스가 많아졌고, OTT 콘텐츠는 시공간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처럼 콘텐츠를 추천해주는 사람의 역할이 점점 더 커지는 것 같다. 재미없는 한 편의 드라마는 소중한 우리의 주말을 망칠 수 있다. 그래서 영화 한 편, 드라마 한 편을 소개할 때도 막중한 책임감 같은 것이 느껴진다.

Chucky - Season 1© 2021 Universal Content Productions LLC. All Rights Reserved

오늘 내가 추천하는 콘텐츠는 미국 SYFY 채널에서 방영되었던 TV 드라마 <처키>다. 이 드라마는 미국에서는 10월에 방영되어, 현지에서 성공적인 하이틴 드라마로 리메이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chucky poster

아마 다들 처키라는 캐릭터를 잘 알고 있을 거다. 처키는 <사탄의 인형>에 등장하는 빌런으로 1988년 첫 등장했다. 처키가 등장하는 공식 영화 시리즈는 지금까지 여덟 편이 제작되었으니, 유명한 헐리우드 호러물 중에서는 가장 많은 시리즈물을 가진 작품이라고 봐도 된다. 사실 처키는 <사탄의 인형>에 나오는 캐릭터 이름인데, 멜빵 바지를 입고 식칼을 든 채 머리가 헝클어진 모습이 워낙 유명하다 보니 영화 제목을 ‘처키’라고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처키는 알아도 줄거리는 잘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오늘은 드라마를 다룰 예정이지만, 영화에 대한 언급도 하기 때문에 기본적인 영화 줄거리를 알고 있으면 읽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리고 영화라는 게 그렇다. 아무리 재밌게 봤어도 몇 번씩 돌려본 정도가 아니면 ‘그 영화가…무슨 내용이었더라…?’ 기억이 나지 않게 되는 게 당연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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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중요한 인물은 찰스 리 레이와 꼬마 앤디다. 연쇄살인범 찰스 리 레이는 죽기 직전 부두술을 써서 인형의 몸속으로 영혼을 옮기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이 부두술에는 주의할 점이 하나 있었다. 너무 오랜 시간이 경과하면 인형과 한 몸이 되면서 영원히 그 속에 살아야 한다는 것. 인형의 몸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은 단 하나, 처음으로 자신의 정체를 밝힌 상대에게로 영혼을 옮기는 것. 처키가 찰스 리 레이라는 정체를 안 사람은 처키 인형을 선물로 받은 꼬마 앤디다. 처키 시리즈는 앤디의 몸으로 영혼을 옮기고 싶은 처키와 처키 때문에 살인사건에 휘말리며 정신적 트라우마를 겪는 앤디의 대결이 주된 내용이다.

나는 <사탄의 인형> 전체 시리즈를 다 보진 않았고, 1편부터 3편까지는 재미있게 봤다. 처키가 죽였다는 앤디의 말을 어떤 어른도 믿지 않고, 앤디가 아끼는 사람들이 처키 때문에 죽으면서 인간관계가 파괴된다. 그 과정에서 트라우마를 이겨내기 위해 용기 있게 맞서는 앤디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사탄의 인형>에서 한 가지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바로 찰스 리 레이가 가장 중요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자세한 설명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1400_2021-11-24 4.11.17[죽기 직전 인형에게 영혼을 옮기는 찰스 리 레이]

처키는 인형이 된 자신을 함부로 다루었다고 망치로 죽이는 등 충동적으로 살해를 하는 사이코패스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이다(찰스 리 레이라는 이름이 희대의 살인범 이름을 조합해서 만들었다는 점에서 캐릭터 설정을 알 수 있다). 살해 동기는 우발적이어도 살인 계획은 치밀하게 짜는 걸 보면 이 사람이 도대체 어떤 어린 시절을 살았길래 이런 괴물이 된 걸까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드라마 <처키>에서는 1965년, 찰스 리 레이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자세한 내용을 말하면 스포일러가 되기 때문에, 여기까지만 말하겠다. 어린 시절, <사탄의 인형>을 재미있게 본 사람들이라면 흥미로울 거다.

1400_4.22.13[처키 역의 브래드 듀리프와 감독 톰 홀랜드]

그리고 한 가지 관전 포인트가 더 있다. 드라마 <처키>에는 영화 제작진이 다수 참여했다. 특히, 처키의 교활한 목소리와 찰스 리 레이를 연기했던 브래드 듀리프가 처키 역으로 참여한다는 점이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흥행작으로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반지의 제왕: 두 개의 탑> 등이 있지만 아무래도 가장 큰 대표작은 <사탄의 인형>. 2019년 리부트작을 제외하고는 모든 시리즈에서 처키의 목소리를 연기했기 때문에 처키 팬덤에게 그의 출연이 분명 반가울 거다.

원작의 컨셉을 가져왔지만 만듦새가 좋지 않아서 오히려 소중한 추억을 망치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드라마 <처키>는 원작 제작진이 투입되었기 때문에 그런 걱정을 덜어도 좋다. 그리고 직접 시청해보니 확실히 잘 만들었다. 왜 잘 만들었다고 생각했는지, 관전 포인트는 무엇인지에 대해 말하기 전에 줄거리부터 짚고 넘어가자.

Chucky - Season 1© 2021 Universal Content Productions LLC. All Rights Reserved

<처키>의 줄거리는 이렇다. 제이크는 사고로 어머니를 잃었고, 아버지와의 관계도 좋지 않다. 예술가가 되고 싶어하지만, 아버지는 제이크를 지지해주지 않는다. 남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고 외향적이지 못한 제이크는 학교에서도 따돌림을 당하는데, 특히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친구들이 혐오하고 비아냥댄다. 어느 날, 제이크는 우연히 낡은 처키 인형을 중고로 사게 되고, 세상에 대한 원망만 가득한 제이크에게 처키가 말을 걸기 시작한다. “세상엔 죽어도 마땅한 사람들이 있어.”

Chucky - Season 1© 2021 Universal Content Productions LLC. All Rights Reserved

영화 <사탄의 인형> 속 처키는 철저히 본인의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서 살인을 저지른다. 앤디의 영혼으로 몸을 옮겨야 하는데, 다른 사람이 방해가 되어서라거나 본인을 짜증 나게 했다거나. 물론 이런 성향은 드라마 <처키>에서도 나오긴 하지만, 처키의 이번 목적은 처키의 대사 “세상엔 죽어도 마땅한 사람들이 있어” 이 한마디로 요약된다.

Chucky - Season 1© 2021 Universal Content Productions LLC. All Rights Reserved

처키의 가장 상징적인 모습은 식칼을 들고 있는 모습이다. 영화 속에서 처키는 웬만해서는 식칼을 놓는 법이 없다. 하지만 드라마에서는 자신의 식칼을 제이크에게 건네준다. 이런 행동은 단순히 무기를 건네주는 것 이상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세상엔 죽어도 마땅한 사람들이 있다”라는 처키의 가치관을 제이크에게 가르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Chucky - Season 1© 2021 Universal Content Productions LLC. All Rights Reserved

<화녀> 등을 연출한 김기영 감독은 “인간을 해부하면 검은 피가 난다. 그것이 욕망이다.”라고 말했다. 엄마를 잃은 뒤, 자신만의 깊고 어두운 방에 들어간 제이크는 그 속에서 욕망을 삼키며 살았다. 세상에 대한 분노, 자신을 괴롭히는 친구들에 대한 분노는 쌓여 갔고 그것을 예술로 승화하며 지냈다. 하지만 제이크의 작은 꿈조차 좌절되었고, 그때 처키는 제이크의 마음을 해부해 검은피가 흐르도록 만든 셈이다. 영화 속 꼬마 앤디와 처키가 서로 죽여야 하는 적대관계였다면, 제이크와 처키는 친구에 가깝게 설정되어 있다.

Chucky - Season 1© 2021 Universal Content Productions LLC. All Rights Reserved

영화에서는 개인(앤디)과 개인(처키)의 결투에 집중했다면, 드라마는 조금 더 사회적인 문제를 담고 있다는 점이 현실적이어서 애처롭다. 그래서 나는<사탄의 인형>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이 드라마를 봐도 충분히 괜찮을 것 같다. 특히 등장인물들이 스마트폰과 새로운 기술에 익숙한 중학생이라는 설정을 살려서 제이크를 괴롭히는 대사와 행동을 연출한 점이 소름 끼치는 부분이다.

Chucky - Season 1© 2021 Universal Content Productions LLC. All Rights Reserved

처키 시리즈를 본 사람들이 보면 반가워할 만한 장면들도 있다. 처키의 배터리를 확인해보는 장면이나, 제이크가 과거 신문 보도에서 앤디를 발견하는 장면이 그렇다. 물론 내용 전개를 이해하는 데에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긴 하다. 그래도 미리 알고 보면 더 재미있으니 드라마를 감상하기 전에 <사탄의 인형> 1편 정도는 감상하고 드라마를 정주행하는 걸 추천한다. 1편부터 3편까지 웨이브에서 감상할 수 있다. 로우 앵글에서 바라보는 카메라의 움직임과, 처키의 부자연스럽고 기괴한 동작이 드라마에서는 더 완성도 있게 연출되어서 꽤 섬뜩하더라. 그리고 작은 인형이기 때문에 신체 능력이 떨어지는데 그런 한계점을 극복하기 위해 작전을 짠 것들이 잘 연출되어 있다.

Chucky - Season 1© 2021 Universal Content Productions LLC. All Rights Reserved

세상을 향한 제이크의 복수를 보며 씁쓸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제이크에 몰입하게 되면 아무래도 가해자들에게 복수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지만, 그것이 살해라는 것에는 결코 동의할 수가 없으니까. 제이크가 학교 폭력을 당하지 않고, 따돌림을 당하지 않고,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부모나 친구가 있었다면 이런 비극이 생기지 않았을 텐데. 나는 아직 엔딩을 보지 못했다. 이 드라마가 어떻게 끝날까. 마지막에 가서는 제이크의 엉킨 마음이 풀어져 있기를 바랄 뿐이다. <처키>는 오직 웨이브에서만 볼 수 있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웨이브를 방문하자.

*이 글에는 웨이브의 유료광고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About Author
김석준

에디터B. 기계식 키보드와 전통주를 사랑하며, 쓸데없는 물건을 좋아한다는 오해를 자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