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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M어워즈] 두서없는 한 해였다

보내야 할 때를 아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상하고 재미있는 한 해였다. 에디터H와 머리를 맞대고 어떻게 하면 2016년을 잘 보내줬다고 소문이...
보내야 할 때를 아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상하고 재미있는 한 해였다.…

2016. 12. 29

보내야 할 때를 아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상하고 재미있는 한 해였다. 에디터H와 머리를 맞대고 어떻게 하면 2016년을 잘 보내줬다고 소문이 날까 고민하다가 연말정산 기사를 쓰기로 했다. 각자의 사진첩과 인스타를 훑기 시작했다. 어떤 것은 바로 어제 일 같고, 어떤 것은 또 너무 멀게 느껴졌다. 내 인생의 타임라인은 디에디트 이후와 이전으로 나뉘더라.

이건 아주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2016년 에디터M의 연말정산 리스트>다. 수많은 사진 중 엄지손가락이 머물던 사진을 골라 10개의 키워드를 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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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은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은 양과 다양한 종류의 술을 마신 한 해였다. 단 하나의 술을 꼽자니, 그동안 내 목과 위장을 덥혀주던 술들이 스쳐 지나간다. 모두 다 한결같이 사랑했다. 나는 박애주의자니까. 하지만, 단 하나를 꼽아야 한다면 어느 여름밤에 마셨던 블랑 1664 생맥을 고르겠다. 

미팅과 촬영, 그리고 기사 마감으로 정신없는 하루를 보낸 에디터H와 나는 터덜터덜 상수동 인근을 걷고 있었다. 때는 8월 여름, 길거리엔 곧게 뻗은 다리를 드러내고 곱게 화장한 젊은이들이 세상 행복한 얼굴로 넘실댔다. 그들의 젊음과 우리의 찌듦이 비교되면서 우울해졌다. 그때 우리 앞에 운명처럼 ‘블랑 1664 생맥 판매’라는 입간판이 나타났다. 

“이거 진짜 맛있는데, 마시고 갈까?” 우리는 술집으로 빨려 들어갔다. 블랑은 시원했고, 우리의 이야기는 뜨거웠다. 청순한 오렌지 빛에 촘촘하고 부드러운 거품, 코에서 피어나는 꽃향기 덕에 우리도 화사하게 피어났다. 결국 우리는 들큰하게 취해 가게를 나섰다. 이 맥주를 고른 이유는 맛있는 맥주 한 잔이 우리에게 가져다 줄 수 있는 행복이 얼마나 클 수 있는지 이때 다시 한 번 느꼈기 때문이다. 지금도 이 맥주를 생각하면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간다. 에디터H, 우리 그때 진짜 좋았는데 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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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정말 많은 것을 마셨다. 맛있고 좋은 술을 추천하는 것도 물론 의미가 있겠지만, 여러분의 시간과 돈을 아끼기 위해 절대 입에 대지 말아야 할 음료도 소개하련다. 산미구엘 무알콜은 최악. 표백제와 오줌을 섞은 듯한 맛과 향을 낸다. 게다가 찝찌름한 단맛까지, 워스트 오브 워스트다. 여러분 혹시 마트에서 이 맥주가 보이면 저 멀리 아주 멀리 돌아가자. 아, 무알콜 맥주 같은 건 취미가 없다고? 그래, 당신의 선택을 존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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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아일랜드 브루하우스는 척박한 역삼동에 단비 같은 존재다. 강남권에서 맛있는 맥주가 당긴다면, 1초도 망설이지 말고 이곳으로 가자. 맥주의 잉태를 보며 즐길 수 있는 메인홀과 오크통에서 농익어가는 맥주를 볼 수 있는 공간, 루프탑, 그리고 지글지글 끓는 고기향을 맡으며 맥주를 즐길 수 있는 2층까지. 3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 큰 공간은 다채롭고 재미있다. 앙칼진 맛의 사워 시스터즈와 묵직한 맛의 버번 카운티 스타우트는 꼭 드셔보시길. 이 기사를 쓰면서도 입맛을 쩝쩝. 아, 또 가야 하는데 언제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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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짜장라면 열풍을 필두로 짬뽕라면, 그리고 부대찌개라면까지 바야흐로 라면의 춘추전국 시대였다. 다 맛있지만, 내 마음속 일등은 당연 오뚜기의 아라비아따다.이거 엄청 맛있는데 왜 아무도 몰라요? 짜장라면의 면발에 스타게티와 불닭볶음면을 섞은 것 같은 맥락 없는 소스지만 맛 만큼은 기가 막히다. 매콤한 맛이 싸구려 토마토소스의 맛을 잡아주어 아주 고급스러운 인스턴트의 맛이 난다. 아직 안먹어봤다면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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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커피의 발견은 단연코 플랫화이트다. 일반 라떼보다 우유의 양을 줄인 커피를 말하는데, 그래서 더 꼬숩고 커피의 맛이 살아있다. 여기에 푹 빠져서 커피숍 메뉴에서 플랫화이트가 보이면 일단 주문부터 한다. 그런데 의외로 서울에서 정말 맛있는 플랫화이트를 맛볼 수 있는 곳은 그리 많지 않더라. 아, 나중에 기회가 되면 ‘서울에서 맛있는 플랫화이트를 맛볼 수 있는 카페’  이런 것도 소개해야겠다. 

아무튼, 이태원 챔프 커피의 플랫 화이트는 정말 아름다운 맛이다. 라떼를 5배 정도 농축한 맛이랄까? 특히 투명한 플라스틱 컵에 담아주는데 컵을 따라 흐르는 커피와 우유의 마블링은… 엉엉 너무 아름답다. 입을 크게 벌려서 커피와 우유는 쭈욱 같이 들이키면, 우유의 꼬수운 맛과 커피의 쓴맛 단맛이 혀위에서 넘실넘실 춤을 추지. 난 너를 너무 사랑해. 

아, 챔프커피의 플랫화이트는 ‘챔프커피’라고 주문해야하고 아이스만 있으니 참고하시길. 사실 플랫화이트의 진가는 아이스를 마셔야 알 수 있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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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과 나이는 정직했다. 2016년 앞자리가 3으로 바뀌니 자주 아팠다. 일년에 한 번 걸리던 감기는 달에 한 번으로 바뀌고, 한 번 걸린 감기는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끈덕지게 들러붙었다. 병원갈 시간도 없어서 끙끙 앓기만 했던 내게 테라플루 나이트는 할렐루야! 의사도 약사도 필요 없는 최고의 셀프 감기 치료제다. 

 뜨거운 물에 테라플루 한 봉지를 털어 넣으면, 레몬맛이 나는 따듯한 차가 된다. 이걸 호로록 마시면 게임에서 레벨업을 하듯 온몸에서 불꽃처럼 열이 오른다. 그리고 누가 뒤에서 플러그를 뽑은 것처럼 잠에 빠져든다. 깊이 아주 깊이… 그리고 눈을 뜨면 아침. 감기는 안녕. 이것만 있으면 감기는 두렵지 않아! 사실 지금도 심한 감기에 걸렸는데 이 기사만 마무리하고 사러 테라플루 사러 나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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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VSCO. 솔직히 아직 이 앱의 정확한 발음법을 몰라 ‘브스코’라고 내 마음대로 부르는 것만 빼면, 우리의 관계는 정말 완벽하다. 내가 VSCO 유료 필터에 들인 돈만해도…  

나의 모든 사진은 브스코를 통해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하지 않고 세련된 색감을 자랑하는 필터들, 채도, 온도, 선명도 등 세밀하게 조절할 수 있는 사진 보정 기능까지. 나에게 필요한 건 모두 가지고 있다. 이건 디에디트의 영업비밀인데… 디에디트의 거의 모든 사진은 VSCO로 보정한다. 라이트룸? 좋은 건 알지만(게다가 정액제로 쓰고 있지만), 난 이게 더 편하지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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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냉은 언제나 옳다. 어디 평냉이 가장 맛있는가에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평냉집은 내가 있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게 장땡이라고 믿는다. 냉면이 땡기는 날 사람들이 길게 줄을 늘어서기 전에 아무렇게나 입고 한 그릇 후다닥 해치우고 나올 수 있어야 하니까. 그래서 올해의 평냉은 우리집 근처의 을밀대. 너무 진하지도 그렇다고 너무 밍밍하지도 않은 균형감있는 육수와 적당한 굵기의 면발은 언제먹어도 맛있다. 아, 냉면을 주문할 땐 얼음을 빼달라고 하자. 그래야 먹을 수록 국물이 밍밍해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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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지루해지면 아이폰 케이스를 산다. 하루 종일 연인처럼 붙어있는 너인데, 새로운 옷을 입히면 새롭고 기분이 조크든요. 올해의 아이폰 껍데기는 위글위글 맥주 케이스에게 영광이 돌아갔다. 실로 크고 아름다운 껍데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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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아주 잘 쓰고 있는 제품. 올 한 해 꽤 많은 블루투스 스피커를 써봤는데, 지금 내 머리맡을 지키고 있는 건 이 녀석이다. 아침엔 알람으로, 저녁엔 내 아이패드와 물려 스피커로, 가끔 라디오로도 쓴다. 가격 착하고 음질 나쁘지 않고 여러모로 쓸모 많은 녀석. ‘잘생기고 돈도 많으면서 나만 바라보는 그런 남자’를 찾는 데는 실패했지만, 괜찮다. 나에겐 가격이 적당하고 예쁘고, 음질도 괜찮은 블루투스 스피커가 있으니까. 근데, 이렇게 쓰고 보니 좀 슬프네.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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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민

에디터M. 칫솔부터 향수까지 매일 쓰는 물건을 가장 좋은 걸로 바꾸는 게 삶의 질을 가장 빠르게 올려줄 지름길이라 믿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