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나의 첫 메타버스 갤러리

안녕하세요, 에디터H입니다. 오늘은 얼마 전에 다녀온 전시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사실 제 일상이라는 게 생각보다 팍팍합니다. 평일엔 늘 잔업과 야근에...
안녕하세요, 에디터H입니다. 오늘은 얼마 전에 다녀온 전시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사실 제…

2021. 07. 18

안녕하세요, 에디터H입니다. 오늘은 얼마 전에 다녀온 전시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사실 제 일상이라는 게 생각보다 팍팍합니다. 평일엔 늘 잔업과 야근에 시달립니다. 가고 싶은 곳, 보고 싶은 전시가 있어도 엄두도 내지 못하죠. 팬데믹 시대의 서글픈 거리두기 때문에 사람이 많은 곳을 찾기 조심스러운 것도 있고요. 그날도 밀린 마감 때문에 밤 10시가 넘어서야 퇴근했습니다. 간신히 택시를 잡아타고 집에 도착해 샤워하고 누우니 하루가 거의 끝나가고 있더군요. 이대로 오늘 하루를 보내기는 싫었습니다. 뭔가 특별한 일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모처럼만의 문화생활을 위해 LG 시그니처 아트갤러리를 찾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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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이 다 된 시간에 갑자기 갤러리에 다녀왔다고 하니, 아닌 밤중에 홍두깨같은 소리로 들리시겠죠. 사실은 LG 시그니처 아트갤러리는 온라인 플랫폼 기반으로 존재하는 온택트 갤러리입니다. 노트북 화면을 열고 클릭 몇 번이면, 빨려들듯 다른 세상으로 이동할 수 있는 거죠. 사실은 올해 초에 ‘이 기사’에서도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당시에는 정말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가상현실 속에서 갤러리를 둘러보는 경험을 이렇게 완전하게 옮겨놓았다는 사실이 놀라웠습니다. 그리고 물리적인 제약이 없는 공간이지만, 마치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세계관과 구조가 짜여 있다는 것도 흥미로웠고요. 제가 처음으로 봤던 기획전은 고(故) 김환기 화백의 특별전 <다시 만나는 김환기의 성좌>였습니다. 작품을 하나하나 감상하며, 앞으로는 이런 공간이 새로운 시대의 미술관이자 박물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죠.

signature00001 signature00002© LG 시그니처 아트갤러리

그러니까 말하자면 저의 첫 ‘메타버스 갤러리’였던 셈이죠. 말이 나온 김에 잠시 ‘메타버스(metaverse)’라는 단어에 대해 설명해볼게요. 가공, 추상을 의미하는 ‘메타(meta)’와 현실 세계를 의미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로 일상을 넘어 가상의 공간을 매개로 한 3차원 가상세계를 가르킵니다. 그런데 여태까지 우리가 생각하던 가상 세계보다 한 단계 진화한 개념인거죠. 단순히 온라인 상에서 가상으로 존재하는 세계인 것이 아니라, 현실세계와 같은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활동이 이뤄질 수 있는 공간이거든요. 그만큼 현실 세계에서의 경험을 정교하게 옮겨놓았기 때문에 실제 세상처럼 다양한 활동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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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제트 제페토

쉬운 예를 들자면 네이버제트가 운영하는 아바타 서비스 ‘제페토’가 대표적인 메타버스 플랫폼입니다. 저 역시 제페토 캐릭터를 만든 적이 있는데 얼굴은 물론이고 헤어스타일, 옷차림, 좋아하는 브랜드까지 아이덴티티를 투영할 수 있었습니다. 제페토의 메타버스 안에서 블랙핑크의 가상 사인회가 열리기도 하고, 구찌의 제품을 구입할 수도 있고, 네이버 신규 입사자들을 위한 안내 프로그램이 진행되기도 하죠. 분명 가상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현실에서와 마찬가지로 무언가를 배울 수 있고, 만날 수 있고, 결제하고 쇼핑할 수도 있다는 얘기입니다.

메타버스의 매력은 물리적인 거리나, 공간의 한계를 넘어서 교류할 수 있다는 점이죠. 특히나 지금처럼 여행과 외출이 조심스러운 시대에는 더더욱 트렌드로 각광받을 수 밖에 없고요. 기업마다 메타버스를 기반으로 한 마케팅에 열을 올리는 것도 당연한 귀결입니다.

LGsignature00006© LG 시그니처 아트갤러리

LG 시그니처 아트갤러리 역시 메타버스 시대에 ‘온택트 갤러리’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며 성공 사례로 꼽히고 있습니다. 개관 후 6개월 동안 무려 15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방문했을 정도니까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연간 관람객 수가 142만 명 정도라는 사실과 비교해본다면 놀라운 숫자입니다. 시간과 장소의 구애를 받지 않는 온라인 플랫폼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결과고요. 그래서 저 역시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잠옷차림으로 훌쩍 방문할 수 있었겠죠.

단순히 ‘온라인’에서 작품을 볼 수 있다라는 사실만으로는 주목받기 어렵습니다. 사람들이 목말라 있는 것은 그냥 디지털 파일로 저장된 작품을 넘겨 보는 게 아니라, 오프라인 전시장을 직접 둘러보며 벽 너머에 어떤 작품이 있을까 기대하고 놀라게 되는 그 감각이니까요. 그런 뜻에서 아트갤러리는 오프라인 전시관에서 느낄 수 있었던 현실감을 절묘하게 잘 옮겨두었습니다.

signature00003© LG 시그니처 아트갤러리

기획 전시관 입장하기 버튼을 누르면, 해외 어딘가 낯선 섬에 숨겨져 있는 것 같은 신비로운 갤러리에 입장하는 기분이 들죠. 어두운 복도를 따라 조명이 떨어지는 모습, 벽에 쓰여있는 한글과 영문의 설명까지 실제로 전시장에 보던 것과 흡사합니다.

대신 여기에 가상세계의 장점을 살려서 커서를 옮기는 것 만으로도 360도 화면을 회전해가며, 다양한 각도에서, 실제로 보는 것보다 더 선명하게 감상할 수 있다는 이점이 따라붙죠. 주말 전시장의 인파에 시달릴 필요도 없고, 듣기 좋은 배경음악이 잔잔하게 깔릴 뿐입니다. 물론, 이 음악 마저도 원치 않는다면 바로 끌 수 있습니다. 현실의 경험을 그대로 옮겨두었지만, 100% 내가 원하는대로 통제할 수 있다는 게 가상세계의 매력이니까요.

collage_0715_1© LG 시그니처 아트갤러리

전시관 입구에서 관객을 맞는 첫 작품은 엄익훈 작가의 ‘별을 세는 아이’입니다. 엄익훈 작가는 금속조각을 이어 붙여 빚은 추상 조각에 빛을 투과해 구상적 그림자 이미지를 배경에 그려내는 작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조형물 자체는 추상적인 형태를 띄고 있지만, 빛에 의한 그림자를 통해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이미지를 그려냅니다. 작품 앞에서 ‘클릭’ 버튼을 눌러 라이팅을 켜면, 작품의 진가가 드러납니다. 형태를 알 수 없는 추상적인 조형물에 조명을 비추는 순간, 별을 세는 아이가 뚜렷한 모습을 드러내는 거죠. 관람객이 직접 라이팅을 켜고 끄며 반전의 재미를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이 즐겁습니다. 실제로 이 공간을 둘러보시면 바로 느끼실 수 있겠지만, 작가와 관람객 사이의 인터랙션을 굉장히 신경썼더라고요.

collage_0715_2© LG 시그니처 아트갤러리

다음관으로 이동하며 감상을 이어 갑니다. 엄익훈 작가가 만들어내는 달빛의 그림자는 이어지는 2관의 ‘달빛, 고요한 아름다움’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홀 중앙에 떠오른 달 모형을 클릭하면, 세 점의 조각물은 벽면에 엄마와 아이, 강아지와 소녀, 사랑스러운 연인과 같은 구체적인 이미지로 나타납니다. 정말, 한 밤중에 조용한 방 안에서 구경하고 있노라면 현실과 동떨어지는 묘한 기분이 듭니다.

collage_0715_3© LG 시그니처 아트갤러리

‘영롱함이 맺힌 결정’을 주제로 한 3관에서는 크리스털을 활용해 회화의 영역을 확장하는 김종숙 작가의 작품을 볼 수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동양 산수의 절경에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을 수놓아 빛의 아우라를 표현해냈습니다. 정교한 김종숙 작가의 작품은 돋보기 버튼을 클릭하면 고화질의 이미지나, 영상으로도 자세히 살펴볼 수 있고, 작가의 목소리로 직접 녹음된 오디오 도슨트까지 제공합니다.

한 작품씩 확대해서 선명하게 감상하며, 작가의 목소리를 오디오처럼 듣고 있으려니 “참 낭만적이고 사치스러운 경험이네…”싶더군요. 국내외의 많은 갤러리를 가보았고, 오프라인에서의 경험도 분명 다른 매력이 있었지만, 이렇게 여유있게 공간과 작품을 독점하고 하나하나 자세히 둘러봤던 적은 없었거든요.

collage_0715_4© LG 시그니처 아트갤러리

‘하루를 일깨우는 바람’을 주제로 한 4관은 김태수 작가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김태수 작가는 바람이 불어오는 형상을 메탈의 유연한 곡선으로 표현한 작품을 통해 자연의 신비와 생명력을 완성도있게 연출해냈습니다. 벽면을 가득 채운 <Color of Wind> 라는 작품은 마우스 혹은 키보드로 이동하며 여러 각도에서 감상하길 추천 드립니다.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느낌을 주는 조각 작품은, 화면을 통한 감상임에도 불구 웅장함마저 느껴지거든요. 마치 바람이 부는 모습을 그대로 붙들어 놓은 것 같았습니다.

각 작가와 콜라보레이션 작품은 LG 시그니처의 세탁기, 냉장고, 에어컨, TV와 작품의 본질과도 연결되는데요. 센스있게 ‘김태수 작가의 작품과 닮은 LG 시그니처관 에어컨 Zone 보기’ 라고 영상을 연결해 두었더군요. 전시의 흐름을 해치지 않으면서, LG전자가 이 공간을 통해 전달하려고 하는 초프리미엄 가전과 예술의 가치를 잘 접목시켜 둔거죠.

collage_0715_6© LG 시그니처 아트갤러리

마지막관은 황선태 작가의 ‘볕이 머무르는 시간’입니다. 황선태 작가는 유리 소재를 이용해 일상의 특정 순간과 사물 자체를 포착해 최소한의 선으로 표현하고, 빛을 통해 새로운 시간과 공간을 펼쳐내는 작업을 선보입니다. 개인적으로 모든 전시가 좋았지만, 저는 황선태 작가의 ‘빛이 드는 공간’ 작품이 가장 흥미로웠습니다. OLED 빛을 이용해서 창밖에서 들어오는 햇빛과 공간의 느낌을 표현한다는 아이디어가 좋았거든요.

collage_0715_5© LG 시그니처 아트갤러리

유리 대신 투명한 에폭시를 구워 형태를 만든 뒤에, 그 안에 OLED를 넣어 햇빛을 표현했다고 합니다. 버튼을 누르면 롤러블 형태로 숨어있던 LG 시그니처 올레드 TV가 작품을 완성하는 연출까지, 아주 훌륭한 마무리였습니다. 여러분도 꼭 시간을 내서 감상해보셨으면 좋겠어요. 정말 아름답거든요.

signature00006© LG 시그니처 아트갤러리

이번 기획 전시는 LG 시그니처 아트갤러리에서 열리는 세 번째 전시입니다. 제가 처음 방문했던 김환기 특별전 <다시 만나는 김환기의 성좌>로 시작해, <별 많은 밤 지구를 걷다>라는 타이틀로 국내 현대 미술가 5인의 작품을 전시했었고요. 이번 전시는 ‘영원한 현재’라는 타이틀로 엄익훈, 김종숙, 김태수, 황선태 네 작가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자연 속에서 인간이 마주하고 연대하는 가장 아름답고 가치있는 순간을 주제로 했다고 해요. 제가 작가의 의도를 모두 이해한 건 아니겠지만, 확실한건 코로나 블루로 지친 일상 속에서 잔잔한 감동과 위로가 되었다는 겁니다.

collage_0715_7© LG 시그니처 아트갤러리

디렉팅 자체도 너무 좋았던 게 조각의 회화적 일루전, 오브제로 표현한 회화, 입체 조형, 빛의 회화 인터랙티브 아트 등 볼거리가 아주 다양했습니다. 관람객의 시점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들도 많았죠. 직접 라이팅을 켜서 작품을 완성해보기도 하고, 영상을 보기도 하고, 오디오 도슨트를 듣기도 하고, 봤던 작품을 되돌아가서 한 번 더 보기도 하고, 확대해서 보기도 하고… 360도로 화면을 회전시키며, 각도에 따라 어떻게 달리보이는지 확인해보기도 했습니다. 저는 정말 재밌었습니다. 이런 전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쭉 이어지는 4개의 전시를 전혀 지루하지 않게 감상할 수 있을 만큼요.

detail_r05_01© LG 시그니처 아트갤러리

가장 좋은 건 이 경험을 독자분들과 바로 나눌 수 있다는 거예요. 전시 장소나 시간을 알려드릴 필요도 없고. 여러분이 어디에 사는지도 중요하지 않죠. 그냥 짧은 ‘이 링크’ 하나를 클릭하는 것 만으로도 멀고 먼 어느 섬에 위치한 갤러리로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거니까요. 아, 방문하신다면 기획전시관 외 시그니처관에서 만나볼 수 있는 냉장고, 세탁기, TV, 에어컨 가전의 예술적 퍼포먼스도 놓치지 말고 감상해보시길 바랍니다. 저는 LG 전자의 이런 시도에 정말 감탄과 박수를 보냅니다. 그리고 이 가상세계에서 만나게 될 다음 전시가 무척 기대되네요. 시대가 바뀌고, 가치가 바뀌고, 많은 게 바뀌어 가고 있는 중에 이렇게 좋은 것도 있어서 다행입니다.

<영원한 현재 : One Fine Day> 殿
– 전시기간: 2021년 6월 24일 ~ 9월 24일
– 참여작가: 엄익훈, 김종숙, 김태수, 황선태
– 전시관: https://www.lgsignatureartgallery.com/

* 이 글은 LG전자로부터 취재비를 지원받아 작성됐습니다.

About Author
하경화

에디터H. 10년차 테크 리뷰어. 시간이 나면 돈을 쓰거나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