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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하는 현대인을 위해, 휴대용 키보드 4

안녕, 키보드를 좋아하는 에디터B다. 휴대용 키보드는 데스크용 키보드보다 단순하다. 대부분은 노트북에 들어가는 펜타그래프 방식이며, 가격은 기계식 키보드만큼 비싸지도 않다. 말...
안녕, 키보드를 좋아하는 에디터B다. 휴대용 키보드는 데스크용 키보드보다 단순하다. 대부분은 노트북에 들어가는…

2021. 07. 12

안녕, 키보드를 좋아하는 에디터B다. 휴대용 키보드는 데스크용 키보드보다 단순하다. 대부분은 노트북에 들어가는 펜타그래프 방식이며, 가격은 기계식 키보드만큼 비싸지도 않다. 말 그대로 ‘휴대용’이기 때문이다. 휴대성을 높인 대신 다른 능력치는 낮추었기 때문에 집에서 혹은 사무실에서 쓰는 기계식 키보드만큼 타건감이 좋기도 힘들다.

하지만 휴대용 키보드는 기록하는 현대인에게 꼭 필요한 물건. 갑작스레 카카오톡으로 말싸움을 해야 하거나, 메신저로 회의를 해야 하거나, 델타 변이 바이러스 때문에 약속을 미뤄야 할 것 같은 급박한 상황에 키보드는 훌륭한 입력 도구다. 손가락으로 서툴게 터치하는 속도가 <메밀꽃 필 무렵>에 나오는 노새라면, 블루투스 키보드는 여포가 타는 적토마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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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휴대용 키보드로 로지텍 K380을 5년 넘게 쓰고 있다. K380만 썼던 건 아니다. K480, K780을 썼고, 최근에는 리뷰를 위해 삼성 스마트 키보드 트리오 500, 로지텍 키즈투고를 써보기도 했다. 그래서 여러 블루투스 키보드에 대한 짧은 리뷰를 준비했다. 아직 블루투스 키보드를 구매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참고할 만한 제품 특징을 정리했으니 본인에게 맞는 제품을 찾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


[1]
“특별하진 않아도 말썽 없는 아이”
로지텍 K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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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완성되어 더이상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없는 물건들이 있다. 책이 대표적이다. 디자인을 바꾸고 더 좋은 종이를 쓰는 소소한 기술적 업그레이드는 있지만, 책의 형태는 수천년 전부터 완성되었다. 5년 전, K380을 썼을 때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블루투스 키보드가 연결 잘되고 타이핑만 잘되면 그만이지 뭐가 더 필요해?’ 물론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조금 더 업그레이드하면 좋겠다 싶은 부분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여전히 블로그에 일기 정도만 쓰는 사람에게 K380은 완전한 입력 도구가 아닐까. 카카오톡으로 길게 대화하거나 블로그에 장문의 글을 적는 거라면 K380 정도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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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캡은 동글동글 귀엽고, 중앙이 오목하게 들어가서 손끝을 올려두었을 때 안정적인 느낌이다. 키캡이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지 않고 약간 흔들거리는 느낌이 있지만 크게 불편하진 않다. 타건음은 조용한 편이다. 멀티페어링을 3대까지 지원하고 그 외에 특별한 기능은 없다. 특별하지 않은 것, 그게 K380의 장점이다. 3만 원대의 저렴한 가격에 네이비, 핑크, 와인 등 컬러가 다양하다는 것도 K380을 사고 싶게 만드는 포인트다. 무게는 423g으로 가벼워서 백팩에 넣고 다니기에도 부담스럽지 않다. 불편하지 않고 말썽이 없다는 건 큰 장점이다.


[2]
“시끄럽고 무거운 아이”
로지텍 K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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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380을 쓰면서 아쉬운 점이 하나 있었다. 거치할 수 있는 공간이 따로 없다는 거였다. 그래서 K480을 샀다. 오직 그 이유였다. K480은 기기를 거치할 수 있는 공간이 넓게 있다. 스마트폰부터 태블릿까지 가능하다. 아이패드 프로 12.9만 아니라면 웬만한 태블릿도 문제 없을 거다. 거치했을 때의 각도도 적당하다. 크기를 늘린 탓에 무게는 820g으로 K380 대비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이 정도의 무게에도 ‘휴대성’이 있다고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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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점은 하나 더 있다. 타건감이다. 이건 치명적이다. 만약 K380의 적당한 타건감에 거치대만 추가된 제품이라면 만족하며 썼을 텐데, 아쉽게도 K480의 타건감은 좋지 않다. 반발력이 적고 시끄러운 타건감인데(장난감 같은 느낌이다), 정말 좋게 표현하면 타자기와 비슷한 느낌이랄까. 키캡이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지 않아 달그락거리는 것도 마이너스 요소다. K380은 조용하게 타건하면 도서관에서도 쓸 수 있을 정도인데, K480을 공공장소에서 쓰는 건 위험하다. 미움받을 용기가 가득한 사람에게도 이건 추천하고 싶지 않다. 멀티페어링은 최대 3대까지 지원하고, 다이얼로 조작하는 인터페이스는 직관적이다. 가격은 3만 원대 중반.


[3]
“세련되고 똑똑한 아이”
삼성 스마트 키보드 트리오 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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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에서 스마트 키보드 트리오 500이라는 키보드를 출시했다. ‘스마트’라는 이름이 붙으면 어쩐지 기대가 되지 않는다. 소개팅에서 처음 만난 사람이 “안녕하세요 저는 똑똑합니다”라고 말하면 기대가 안되는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서 구매했다. 정말 그 이유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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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김새와 크기, 가격대를 보면 로지텍 K380의 자리를 위협하기 위해 출시한 제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과연 그게 가능할까? 이 조그마한 키보드에 어떤 차별성을 더 넣을 수 있을까?

보자 보자 기능을 보자. 윈도우, macOS, iOS, 안드로이드 등 운영체제를 가리지 않고 연결할 수 있다. 멀티페어링을 최대 3대까지 지원한다. 이건 K380도 마찬가지로 되는 기능이다.

가장 큰 차이점은 만듦새다. 손에 쥐어보면 견고하다는 느낌이 손바닥에 그대로 느껴진다. 타건을 했을 때도 적당한 반발력이 느껴지며 ‘키보드를 친다’라는 느낌을 준다. K380보다는 묵직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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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캡은 네모낳고, 면적이 넓어서 오타를 덜 낼 수 있을 것 같지만 딱히 효과가 있는 것 같지는 않다(내가 K380의 동그란 키캡에 익숙해서 일 수도 있다). 키캡 사이의 간격이 좁아서 오히려 불편하다는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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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오 500에만 있는 특별한 기능은 ‘앱 즐겨찾기’다. 모바일에서 앱을 화면에 띄워놓은 상태에서 주황색 키캡 중 하나를 누르면 즐겨찾기에 등록된다. 어떤 화면에서도 그 버튼을 누르면 바로 앱이 실행되는 간편한 기능이다. 태블릿에 연결해 여러 앱을 전환하며 쓴다면 꿀일 것 같다. 최대 3개까지 등록할 수 있다. 무게는 420g으로 K380과 비슷하고 가격은 4만 9,500원으로 만 원 정도 비싸다.


[4]
“조용하고 낯선 아이”
로지텍 키즈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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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은 또 로지텍이다. 옆자리의 에디터H가 “너 혹시 광고 받았어?”라고 할 것 같다. 요즘 돈이 없는 건 맞지만 광고는 받지 않았다.

로지텍 키즈투고의 장단점은 명확하다. 극단적인 휴대성을 취하고, 타건감은 포기했다. 예전에 출시되었던 LG전자의 롤러블 키보드도 그랬다. 돌돌 말아서 쓰는 방식이라 휴대성은 좋았는데, 타이핑이 불편해서 몇 번 써보고 말았다. 키즈투고도 그렇다. 180g으로 K380의 절반 정도밖에 안 되는 무게인 것까지는 좋은데, 실사용은 포기했다. 다양한 기능, 예쁜 디자인은 부수적인 요소이고, 키보드의 본질은 쾌적한 타이핑이다. 하지만 키즈투고를 쓸 때는 내가 어떤 키를 눌렀는지, 입력이 과연 되었는지 알기가 힘들었다. 이것도 익숙해지면 어느정도 해결될 수도 있지만, 허공을 두드리는 것 같은 느낌이 내겐 너무 낯설었다. ‘휴대용 키보드’에서 방점을 지나치게 ‘휴대용’에 강하게 찍은 탓에 키보드의 본질을 잃어버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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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점이 있긴 하다. 무척 조용하다는 것. 타이핑을 할 때 소리가 나지 않기 때문에 조용한 도서관에서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다. 익숙해진다면 더 없이 좋을 키보드이지만 익숙해지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서브로 하나 가지고 있기에 좋겠지만, 가격이 6만원대 후반이라 서브 키보드로 쓰기엔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회사에서 업무를 보려고 하는데 모니터가 없거나, 마우스가 없다면? 일을 시작할 수가 없다. 맷돌 손잡이가 없어서 맷돌을 돌리지 못하는 어이가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휴대용 키보드는 다르다. 필수품이 아니기 때문에 없어도 맷돌을 돌릴 수 있다(?). 단지 조금 더 쾌적한 환경에서 가능하도록 도와줄 뿐이다.

그러니 블루투스 키보드는 오래 봐도 질리지 않는 무난한 디자인 중 적당한 가격의 제품 중 하나를 골라서 오랫동안 쓰는 걸 추천한다. 그렇게 아낀 돈은 기계식 키보드를 살 때 보태어 쓰도록 하자(나처럼). 다음 키보드 기사는 청축, 흑축, 적축 키보드를 비교한 기사가 될 것 같다.

About Author
김석준

에디터B. 기계식 키보드와 전통주를 사랑하며, 쓸데없는 물건을 좋아한다는 오해를 자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