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여기가 진짜 아웃도어

어쩌면 한 사람이 살아가는데 쓸 수 있는 에너지는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닐까? 요즘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혹시 내 에너지는...
어쩌면 한 사람이 살아가는데 쓸 수 있는 에너지는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닐까?…

2016. 12. 15

어쩌면 한 사람이 살아가는데 쓸 수 있는 에너지는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닐까?

요즘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혹시 내 에너지는 이십 대에 모두 소모해버린 것이 아닐까 덜컥 겁이 났다. 누가 인생을 초콜릿 상자에 비유했던데, 내 인생에 허락된 에너지를 야금야금 다 먹어치워 버린 게 아닐까 무섭다.

인생에 리셋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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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일이 시시하게 느껴지던 나에게 요즘 한 줄기 불씨를 던지는 남자들이 있다. 내가 서있는 서울 땅을 그대로 뚫고 내려가면 있는 그곳 파타고니아. 지구 반대편을 오직 사람의 힘으로 건너고 있는 남자들. 파타고니아로 떠난 남자들, 줄여서 파고남이다.

사실 나는 인생의 의미를 꼭 어디론가 떠나야만 찾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아니다. 아웃도어형 인간도 아니고, 캠핑이나 여행보다는 뜨끈한 전기장판에 몸을 지지며 영화나 책을 보는 것이 더 행복하다.

그런데 요즘은 자꾸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진다. 어딜 보든 시야가 턱 막히는 이곳 말고, 사방이 뻥뚫린 곳으로. 괜히 비행기 티켓을 검색하고, 사지도 않을 장비들을 장바구니에 담아본다. 아웃도어는 일단 ‘장비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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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릇처럼 엄지손가락을 움직여 훑는 뉴스피드는 못나고 이상한 한국 이야기로 가득하다. 하지만, 가끔 전해지는 그들의 보석 같은 이야기는 내 삭막한 일상에 조금씩 스며들기 시작했다. 와, 세상에 저렇게 멋진 곳도 있구나. 서울에서 부산까지 5번 넘게 왕복해야만 하는 3,000km. 이 멀고 먼 길을 네 남자가 동력 없이 사람의 힘으로만 건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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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일부터 시작된 이 여정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이상하게 힘이 난다. 저렇게 드넓은 자연속에 점보다 작은 사람이 있는 사진은 그리고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을 파고남을 상상하다 보면 내 고민과 번뇌가 조금은 작아지는 느낌. 

이 기사가 나가는 시점에 탐험은 벌써 45일째에 접어들었다. 벌써 2,000km 가까이 이동한 이 남자들의 이야기. 산을 오르고, 강을 건너고, 사막을 헤쳐나가다가 잠시 짐을 풀고 하늘을 바라보는 이 남자들의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그곳 파타고니아에서는 무슨 일들이 벌어졌나요? 그리고 거기에 가려면 뭐가 필요한 거죠?


오르고: 도무요산 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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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봉우리가 바로 우리가 정복해야 할 곳이다!’ 도무요를 가리키고 있는 남영호 대장]

이번 파타고니아 탐험에서 가장 높은 산. 도무요(Domuyo)는 파타고니아의 지붕이라고 불린다. 해발 4,000m부터 설벽이 4,500m부터는 얼음과 바위가 뒤엉켜 있는 이 산은 인간에게 쉽게 곁을 내주지 않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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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1일 오전 10시 55분 파타고니아 최고봉 도무요(4,709m) 정상 등정]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센 바람과 얼음, 바위와 싸워 정상에 오른다. 하늘 가장 가까이에 서서 모든 사물을 내려다보는 기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산을 오르는 이유는 아마 이 기분 때문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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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시간 동안 1,700m를 오르고 또 오른 박대훈 대원의 발]

차가운 바람과 강력한 바람을 견디기 위해서는 고어텍스 재킷이 필수다. 급격히 고도가 높아지면, 몸이 견디지 못하고 고산병이 올 수 있다. 실제로 남영호 대장은 4,200m 지점에서 고소증세가 너무 심하게 와서 아쉽게도 도무요 등정을 포기해야 했다. 앞으로 갈길이 먼 탐험을 위해 무리 하지 않기 위한 결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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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계: 순토 트레버스 알파, 75만원
2. 신발: 코오롱 스포츠 남성 고어텍스 미드컷 트레킹화 Highmax6, 29만원
3. 재킷: 코오롱 스포츠 동절 남성 익스페디션 HERO 고어재킷, 65만원

건너고: 네우켄 강 팩래프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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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우켄(Neuquen)강이다. 남미대륙의 지붕이라고 불리는 안데스 산맥에서 흘러 내려온 물은 도무요 화산으로 흘러들어 굽이치는 협곡을 만든다. 200km의 강을 오직 두 개의 노에 의지해 건너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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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물살에 떠밀려 쉽게 앞으로 나아가는 경우도 있지만 가끔은 거꾸로 부는 바람과 물살을 헤치고 두 팔이 떨어져나갈 때까지 노를 저어야 할 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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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뗏목이 아니라 작고 가벼워서 짐을 싸기 편리하도록 한 팩래프트(Packraft), 고무나 비닐 소재의 보트에 바람을 불어 넣으면 든든한 운송수단이 된다.

packraft

1. 팩래프트: KOKOLELLI RENEGADE , 875달러
2.드라이 슈트: SiX LEVEL EMPEROR, 837.93달러
3. 구명조끼: SALUS TORRENT, 31만 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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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하기 전 장비부터 챙긴다. 방수를 위해 드라이 슈트를 입고 팩래프트에 바람을 채운다. 워터레포츠 활동 시 착용하는 패들링 구명조끼도 챙긴다. 가슴 위치에 부착된 포켓이 노를 젓느라 바쁜 두 손의 움직임을 방해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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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물고: 자연과 함께하는 캠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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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오르고 강을 건넌 파고남들은 잠시 머물며 광활한 자연을 차분하게 즐기는 시간을 가졌다. 다양한 야생동물들이 친구가 된다. 양떼에 길이 막혀도, 아침마다 말떼들이 풀뜯는 소리에 잠을 깨도 그들은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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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오면, 모닥불을 피고 네남자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아마 서울에 두고온 사랑하는 사람들과 가족, 그리고 자신의 꿈을 나누었을 거다. 내 주변의 모든 것들이 눈을 감고 잠든 밤 어둠이 낮게 깔리고 나면 그제서야 정말 중요한 상념과 감각이 되살아 난다.

tent

1. 텐트: 코오롱 스포츠 익스플로러 플러스 텐트, 75만원
2. 재킷: 코오롱 스포츠 남성 고어텍스 최전문형 재킷, 39만 5,000원
3. 버너: MSR Whisperlite Universal, 139.95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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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리를 위해 MSR의 버너도 챙겼다. 휘발유 버너가 고산에서는 유용하지만, 편하게 쓰기 위해서는 가스 버너를 더 선호한다고 한다. MSR의 이 버너는 가스를 구하기 힘들면, 등유, 휘발유 등 가리지 않기 때문에 편리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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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은 현지에서 자라고 난것을 재료로 한다. 한국에서 햇반이나 간단한 동결건조 식품을 챙겨 갈 수도 있지만, 것보다는 그땅에서 자란 것들을 먹는것이 맞다는 게 남대장의 철학이다. 그런데 이 남자 전갈도 잡아먹더라. 술잔도 나눈다. 내일도 또 길을 나서야하니 과음은 금물이다.


달리고: 사막에서의 마운틴 바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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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타고니아 사막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큰 사막이다. 자갈과 모래는 물론, 눈과 빙하가 있는 곳이기 하다. 마운틴 바이크로 산악과 자갈 투성이의 사막을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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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타고니아의 카우보이 가우초(gaucho)도 만난다. 남미에 살며 유목생활을 하는 그들은 파고남들과 금세 친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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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타고니아의 매력은 전세계의 풍광을 모두 모아둔 것 같은 다양함에 있다. 자갈과 모래 사막이 나오다가도 바다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호수를 따라 달려야 한다. 설산에서 녹아내린 물이 호수가 되고 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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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운틴 바이크는 남영호 대장이 가장 좋아하는 액티비티다. 짐 없이 가벼운 상태에서 언덕을 내려오면 시속 70km까지 나온다. 물론 체감하는 속도는 훨씬 빠르게 느껴질거다. 남대장은 언던이나 바위에 부딪힐때마다 엉덩이가 들썩들썩 튀어오른다고 개구장이 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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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센 바람을 피하는 남대장과 박대훈 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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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이크: 엘파마 P875 270만원
2. 바이크 랙: 툴레 투어 랙, 15만 9,000원
3. 패니어 백: 툴레 어드벤처 투어링 패니어, 19만 9,000원
4. 선글라스: 루디 자이온 세일링, 49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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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크 랙과 함께 걸 수 있는 패니어 백도 준비하자. 가볍고 내구성이 뛰어난 방수백은 많은 짐을 실어도 안정감을 유지한다.


또 다시 건너고: 그들의 모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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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끝난게 아니다. 아직 씨카약이 남았다. 남대장이 가장 기대를 많이 하고 있는 여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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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약: TRAK SEEKER ST16

씨카약(Seakayak)은 바다에서 타는 카약을 말한다. 나무 꼬챙이처럼 보이는 이 가냘픈 조각을 타고 마젤란 해협을 건너야 하는 험난한 여정이다. 안전성과 속도는 반비례한다. 씨카약은 직진성이 좋은 대신 쉽게 뒤집어 질 염려가 있다. 파도가 1m보다 높게 치면 타지 않아야 한다. 게다가 마젤란 해협은 매우 거친 바닷길이다. 마젤란이 인도로 가는 항로를 찾다 이곳의 파도에 갇혀 36일 만에 겨우 빠져나왔던  곳이 아니던가. 놀랍게도 남대장은 이번 모험에서 이 여정을 가장 기대하고 있었다.

해외에서도 전례가 거의 없는 탐험입니다. 사람들이 미친짓이라고 손가락질 하지만, 난 스릴이 좋아요. 행운이 따라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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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하지만 아름다운 곳, 가슴에 뜨거운 것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모습을 훔쳐보는 건 지루한 나의 일상에 뜨거운 에너지가 된다. 비록 나는 빌딩 숲속에서 딱딱한 키보드는 두드리는 게 전부지만 그들은 응원한다. 나의 이글이 그들에게도 에너지가 됐으면 좋겠다. 당신들은 나의 에너지니까. 

About Author
이혜민

에디터M. 칫솔부터 향수까지 매일 쓰는 물건을 가장 좋은 걸로 바꾸는 게 삶의 질을 가장 빠르게 올려줄 지름길이라 믿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