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T

잘 마시지도 못 하면서

그날을 기억한다. 나는 이제 갓 도시의 밤을 즐길 수 있는 법적인 나이가 되었다. 네온사인이 휘청거리고, 거리는 취한 젊은이들로 북적였다. 추운...
그날을 기억한다. 나는 이제 갓 도시의 밤을 즐길 수 있는 법적인 나이가…

2016. 11. 15

그날을 기억한다. 나는 이제 갓 도시의 밤을 즐길 수 있는 법적인 나이가 되었다. 네온사인이 휘청거리고, 거리는 취한 젊은이들로 북적였다. 추운 겨울이었지만, 계집애들은 커피색 스타킹에 미니스커트를 입고 잘도 싸돌아다녔다. 물론 나도 그 계집애 중 하나였다.

클럽은 난생처음이었다. 뭘 시켜야 하나 고민했다. 내 손엔 구겨진 ‘1 free drink’라고 적힌 종이가 들려있었다. 맥주를 시킬까도 했지만, 좀 더 특별한 것을 마시고 싶었다.

쫀 티를 내지 않으려고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다. ‘진토닉 한 잔 주세요.’ 서 너번을 소리치고 나서야 바텐더가 겨우 내 말을 들어줬다. 사실 왜 그걸 시켰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아마도 그때 봤던 드라마나 영화 속 주인공이 투명한 잔을 달그락 거리며 마신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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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받고 어정쩡하게 몸을 흔들고 있는데 네가 다가왔다. 회색 폴라티에 검은 재킷, 그리고 워싱이 과하게 들어간 청바지까지 조금 촌스러운 차림이었지만 그런대로 나쁘지 않았다. 너의 손엔 내 것과 다른 색의 술이 들려있었다. ‘뭐 마셔요?’ 용기를 내어 물었다. ‘잭콕이요.’ 훅 들어온 그의 입에서 익숙한 콜라향과 잘 마른 나무향이 났다. 그게 위스키 향이었다는 건 조금 나중에 알게 됐다. 짙은 캐러멜 색의 그 음료를 보니 내 손에 있는 투명한 술이 꼭 나처럼 약하고 심심해 보였다. 어디서 왔는지, 몇 살인지 같은 시시한 대화를 하고 나는 자리를 떴다. 시시한 밤이었다.

위스키에 콜라를 섞은 위스키 콕(잭다니엘을 섞으면 잭콕, 버번을 섞으면 버번 콕이된다)을 마실 때마다 이상하게 그때가 생각난다. 담배연기 자욱한 클럽,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그 남자. 그날은 방탕의 ‘ㅂ’근처도 가지 않았건만, 어둡고 음습한 느낌은 강하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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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절주절 말이 길었다. 오늘 리뷰할 술이 위스키 콕이라 그렇다. 다 너 때문이야.

언제나 열일하는 보해양조가 새로운 술을 선보였다. 일단 이름이 기가 막히다. ‘술탄오브콜라酒, ‘콜라의 왕’이란 뜻이다. 보해양조는 언제나 작명 센스가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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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키지는 더 기가 막히다. 새빨간 색에 아랍어처럼 꼬부라진 폰트가 멋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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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키지 디자인 덕분에 언뜻 보면 콜라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술의 부제가 19금 콜라다. 덕분에 눈치 안보고 공공장소에서 음주도 시도해볼 수 있다. 실제로 이 술을 처음 딴 순간은, 어느 주말 에디터H와 합정역 광장에서였다. 그렇다고 내가 공공장소 음주를 권장한다는 말은 아니니 오해 없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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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라에 술 탄 듯 , 물 탄 듯 첫 맛에서 술맛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맛도 색도 흐릿하다. 스코틀랜드산 위스키 원액을 첨가했다는 데 솔직히 위스키의 풍미는 거의 느낄 수 없다. 그렇다고 맛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콜라 사탕 같은 맛 위로 은은한 계피향이 느껴지는데 꼭 콜라 젤리를 녹여서 마시는 것 같다. 평소 위스키 콕을 즐겨 마시는 사람에겐 마이너스, 달달한 술을 즐기는 사람에겐 플러스 요인이 되는 지점이다.

Processed with VSCO with e1 presetProcessed with VSCO with e1 preset[촬영 중에 자꾸 술 마시는 에디터H, 결국 이날 취했다]

차갑게 해서 마시면, 톡 쏘는 맛 덕분에 콜라처럼 꿀꺽꿀꺽 마시기 좋다. 알코올 도수 5%로 높다고는 할 수 없지만, 훅 가기 좋은 맛이다. 음료수처럼 보이는 패키지와 맛 덕분에 작업주로도 손색이 없다. 단맛이 강해서 입맛을 쩝, 입안이 들큰하다.

batch_s__28975112[마지막은 나의 작품세계. 에디터H로 예술 사진 찍기, 로타처럼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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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혜민

에디터M. 칫솔부터 향수까지 매일 쓰는 물건을 가장 좋은 걸로 바꾸는 게 삶의 질을 가장 빠르게 올려줄 지름길이라 믿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