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파타고니아로 떠나는 남자

뭐야, 이 남자 왜 이렇게 멋있어?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 우리의 서른은...
뭐야, 이 남자 왜 이렇게 멋있어?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2016. 11. 10

뭐야, 이 남자 왜 이렇게 멋있어?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 우리의 서른은 어땠을까? 모험가 남영호 대장을 알게됐다. 산악전문지 기자로 일했던 그는 서른이 되던 해에 유라시아 대륙 횡단을 떠났다. 모험가라는 칭호는 실로 근사하다. 서울의 안락한 책상에 앉아 네모 반듯한 창문 밖을 바라보는 내 삶이 시시해보일 만큼. 솔직히 말하자면 ‘사막을 인생의 지도’라고 말하는 이 남자를 질투한 것 같다. 혼자서 그 넓고 두려운 세상을 독차지하고 있는 게 샘났다. 나는 반복되는 도전 속에 에너지가 고갈돼 지친 상태였으니까.

Processed with VSCO with c8 preset

못되게 말했지만, 남영호 대장을 만날 기회가 있어 마다하지 않고 한 걸음에 달려 나갔다. 파타고니아로 떠나는 남대장과 원정대원을 위한 발대식이었다. 여러 사람이 모여 탐험가 남영호의 새로운 여정을 응원하고 있었다. 술잔이 부딪히고, 분위기는 흥겨웠다. 하지만 남대장과 오붓하게 대화할 시간은 좀처럼 얻기 힘들었다.

눈치 빠른 에디터M이 남대장에게 접근(?)해 옆구리를 찌르며 담배나 한 대 피우고 오자고 제안했다. 남대장이 미끼를 물고 우리를 따라나왔다. 겨울을 마주본 서울 날씨가 꽤 서늘했다.

Processed with VSCO with c8 preset

흡연자들에겐 내가 모르는 공감대가 있는 모양이다. 담배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오르자, 수줍던 남대장의 이야기 보따리가 풀리기 시작했다. 진솔한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다.

그가 처음 모험을 시작한 계기는 내가 생각한 것과 달랐다. 예컨대 담배처럼 어느 날 한 번 피워보니 너무 좋아서 중독된 게 아니라, 날 때부터 갖고 있었던 자질이라는 것이다. 첫 탐험 이후에 제약회사 홍보실에 다니며 직장생활을 한 적도 있지만 결국 갈증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떠났다고 했다. 역마살이라고 부르는 그것처럼, DNA에 새겨진 일을 할 뿐이라고. 너무나 멋진 얘기라 어린 계집애처럼 박수를 짝짝, 쳐댔다. 와인을 연거푸 마셔서 취기도 올라왔고.

에디터M과 남대장이 사이좋게 두 번째 담배에 불을 붙였을 때 내가 응큼한(?) 속내를 내비쳤다. 우리는 뭐든 리뷰하는 여자다. 그래서 당신의 여정도 리뷰하고 싶다.

“좋습니다”

남대장의 대답은 쿨했다. 나는 간접적으로나마 그의 파타고니아 원정에 동참하기로 했다. 남대장과 원정대. 파타고니아로 떠나는 남자들. 줄여서 귀엽게 ‘파고남‘이다.

파타고니아는 남미 최남단이다. 지구의 끝. 지상에서 가장 머나먼 곳이다. 내가 태어난 땅에서 가장 멀어지는 여행이다. 일생에 이렇게 멀고 고된 여정이 몇번이나 있을까. 남대장이 소개한 파타고니아 원정대의 일정은 우악스러울만큼 터프했다. ‘무동력 탐험’이라는 컨셉을 듣고 두 번이나 되물었다. 진심이에요? 빙하와 사막을 넘나드는 원정대 코스에도 불구하고, 모터로 구동되는 탈 것은 하나도 이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로지 사람의 힘으로만 움직인다니. 멋지고도, 두렵다. 이런 게 모험의 힘일까?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의 마음까지 설레게 한다.

Processed with VSCO with c8 preset

우리는 탐험가의 가방 속이 궁금했다. 세상에서 가장 터프한 여정을 떠나는 사람은 어떤 짐을 챙길까? 장비는 어떤 걸 사용하는지도 궁금했다.

“장비를 궁금해하신다고 하니 뭔가 요란한 장비를 보여드려야 하나 생각했는데, 전 사실 그런 건 없거든요.”

남대장은 멋쩍게 웃었다. 자기가 가져간 짐은 각자 책임져야 하는 짐이기 때문에 최소한으로 가져가야 하기도 하고. 사실 2012년 말까지도 스폰서가 없었다더라. 그래서 일 년 동안 돈을 모은 후, 그걸로 대원들을 모으고 원정자금을 만드는 과정의 반복이었다. 10년된 고어텍스 재킷을 입고 다녔다는 얘기에 나와 에디터M이 경악했다. 고어텍스같은 기능성 소재는 낡으면 제기능을 하지 못한다. 방수가 되지 않을 정도로 낡은 고어텍스 재킷 위에 현지인들이 먹고 버린 양고기 기름을 바르기도 했다는 이야기는 흥미롭고도 애달펐다.

남대장은 그때를 생각하면 오늘 같은 자리가 너무 고맙고 감개무량 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런 기회 속에서도 변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소년같은 말투였다. 이번 파타고니아 캠페인을 진행하는 곳이 GS칼텍스다. 내가 남대장을 만날 기회를 준 곳이기도 했다. ‘I am Your Energy’라는 그들의 슬로건과 일생에서 가장 먼 여행을 떠나는 원정대의 여정은 퍽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마케팅은 연애랑 비슷하다. 궁합이 잘 맞아야 한다. 함께 묶이려면 맥락이 맞아야 한단 얘기다.

batch_gps_31. inmarsat IsatPhone Pro – 위성을 이용하여 지구 어디에서나 사용할 수 있는 통신장비.
2. ACR ResQLink PLB – 조난 당했을 때 위치를 SOS 신호와 함께 발신해준다.
3. DeLORME inReach Explorer, 379.95 달러 – 위성 커뮤니케이터.

최소한으로 짐을 꾸린다는 철칙은 지키되, GPS 장비는 필수다. 원정대가 이번에 가지고 가는 GPS 장비만 해도 어마어마할 것 같다. 일단 ResQLink PLB(개인위치신호발생기)를 기본으로 가져간다고. 손바닥만한 GPS 장비인데, 아웃도어 활동은 물론 오지를 다니는 탐험가나 조종사를 위한 제품이다. 이런 제품의 목적은 확실하다. 사용자의 위치를 기록하고, 구조가 필요한 상황에 전세계 네트워크를 통해 위치를 전송한다. 상상도 하기 힘들 만큼 먼 땅에서 원정대의 위치를 쏘아올려주는 작은 ‘횃불’ 같은 존재다. 제품에 따라 연합된 구조 협회가 다를 뿐만 아니라, 한 개 제품이 망가지면 구조 신호를 보낼 수 없기 때문에 반드시 두 개 이상의 GPS 구조 장비를 챙겨야 한다고. 이 여정이 얼마나 많은 위험을 감수하는지 새삼 실감했다.

Processed with VSCO with c8 preset

구조 장비와 더불어 inmarsat 위성 전화도 챙겨가더라. inmarsat은 기지국을 통해 연결하는 일반 전화와는 다르게 위성신호를 직접 받아 전화를 걸 수 있는 시스템을 말한다. 기지국이 없는 곳에서도 사용할 수 있지만, 위성에서 전파를 받는 게 만만치 않은 일이다. 우리가 보통 쓰는 스마트폰처럼 이동하면서 자유롭게 통화할 수 있는 개념은 아니다. 원정대원들의 손목에는 GPS를 지원하는 순토 트레버스가 감겨 있었다. 온몸으로 위성 신호를 쏘아올리는 느낌이다.

map
[현지 베이스 캠프에서 온 파고남의 위성전화]

실제로 이동할 때마다 위성에 자동으로 위치 신호를 보내게 된다. 우린 서울에서도 파타고니아에 있는 남자들의 위치를 볼 수 있다. 우리가 지켜보겠다고 말했더니, 그가 장난꾸러기처럼 웃으며 말했다.

“대낮에 위성 신호가 10분 이상 움직이지 않으면 세 가지 경우 중 하납니다. 담배를 피우거나, 밥을 먹거나, 볼 일을 보거나.”

우린 또 까르르 웃었다. 일정이 꽤 길기 때문에 동결건조 식품이나 비상식량을 충분히 가져갈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반대였다. 오히려 식량으로 괜한 짐을 만들지 않겠다고 답했다. 원래 남대장은 김이나 김치처럼 한국 음식을 굳이 바리바리 챙겨가는 타입이 아니라고 한다. 되도록 현지에서 식재료를 조달해서 먹자는 주의다. 그곳에서 나는 풀, 그곳에서 자란 고기. 가장 간단하게 먹을 수 있으며, 열량을 보충할 수 있는 것을 위주로.

batch_food_121. MSR Whisperlite Universal, 139.95달러 – 아웃도어 환경에 쓰기 적합한 버너
2. MSR Dromlite Bags, 26,95달러 – 용량 별로 물을 저장할 수 있는 가방
3. KATADYN Pocket, 369.95달러 – 휴대용 정수기

간단하게 조리를 하는 일도 있기 때문에 MSR의 버너도 챙긴다고 했다. 신선한 현지식을 바로 조리해 먹는다는 얘기에 우리가 맛있겠다고 군침을 흘렸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고 하더라.

“원정에서 밥을 먹는 순간은 사실 되게 처절해요. 일상에서 허기를 느껴서 밥을 먹는 느낌이 아니에요. 활동량이 많아 하루에 최소 4,000Kcal를 섭취해야 합니다.”

짐은 최대한 미니멀하게 꾸려진다. 최소한의 옷과 비상의약품, 1-2인용 텐트, 사막의 바람을 이길 방풍고글, 사막부츠 등으로.

우리의 순진한 인터뷰이(남대장)가 에디터M의 담배 세 대를 빌려피우며 들려준 이야기는 길고도 흥미로웠다. 아주 작은 댓가로 멋진 인터뷰를 얻은 셈이다. 이날 들은 이야기는 파타고니아 현지에서 들려오는 소식과 함께 시리즈로 소개해 드리겠다.

batch1. 코오롱 스포츠 남성 고어텍스 미드컷 트레킹화 Highmax6 28만원
2. 발수 기능으로 렌즈에 물이 맺히지 않는 루디 제네틱 세일링
3. 입체적인 패턴을 적용해 활동성을 높인 남성 고어텍스 최전문형 자켓, 39만 5,000원
4. 익스플로러 플러스 텐트, 75만원
5. 레더맨 스켈레툴 RX 멀티툴, 89.85달러
6. 미녹스 BV 라인 쌍안경
7. 툴레 어드벤처 투어링 패니어, 19만 9,000원

남대장은 나와 에디터M의 사사로운 질문을 신기해하면서도 기꺼이 배낭 속을 털어서 보여줬다. 자, 사랑하는 디 에디트 독자 여러분. 파타고니아로 떠나는 모험가의 마음에 빙의해 짐꾸러미를 살펴보자. 이것이 가장 터프한 여행을 떠나는 남자의 물건이다.

Processed with VSCO with c9 preset

그리고 떠나는 남자의 모습.

About Author
하경화

에디터H. 10년차 테크 리뷰어. 시간이 나면 돈을 쓰거나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