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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을 줄 서서 산다는 의미

혹시 아이폰 1등으로 사 보셨나요? 안녕하세요, 왕년에 비행기 타고 날아가 아이폰7을 1등으로 사봤던 IT 칼럼니스트 최호섭입니다. 시칠리아로 떠난 디에디트의 한국...
혹시 아이폰 1등으로 사 보셨나요? 안녕하세요, 왕년에 비행기 타고 날아가 아이폰7을 1등으로…

2019. 10. 25

혹시 아이폰 1등으로 사 보셨나요? 안녕하세요, 왕년에 비행기 타고 날아가 아이폰7을 1등으로 사봤던 IT 칼럼니스트 최호섭입니다. 시칠리아로 떠난 디에디트의 한국 특파원(?)인 셈이죠. 아이폰11과 아이폰11 프로가 25일 국내에도 출시됐습니다. 이번에도 많은 사람들이 밤을 새워가며 줄을 서 있었고 문이 열리는 8시에는 축제 분위기가 만들어졌습니다. 어떻게 보면 예전 아이폰3GS, 4 시절에 수십차수까지 예약을 기다려가면서 구입하고 물류 대란이나, 개통이 안돼서 난리 났던 그때에 비하면 조금 분위기가 누그러진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오늘은 아이폰을 줄 서서 산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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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출시일 애플스토어 현장이 아니어도 새 아이폰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엄청나게 많습니다. 이미 해외에 나가서 직접 구입하거나 배송대행 등 여러가지 방법으로 제품을 구하신 분들이 많죠. 유튜브에도 아이폰11이나 아이폰11 프로의 리뷰라고 할 만한 콘텐츠는 다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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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정식 판매 제품도 마찬가지에요. 과거 우체국까지 쳐들어가는 물류 대란은 없고 대형 쇼핑몰에서 구입한 경우에는 이미 새벽 배송 등으로 받아보신 분들 많더라고요. 개통이 안돼서 제품만 들고 전전긍긍하던 전산 대란도 이제 완전히 옛날 이야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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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이제 새 아이폰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아주 많고, 심지어 다 편하고 빠릅니다. 굳이 1등으로 애플스토어에, 또 여러 리테일 스토어에 줄 서서 살 이유는 없는 거죠. 머릿속으로는 말입니다. 심지어 이번에는 당일 새벽에 결제하고 애플스토어에서 직접 제품을 받아갈 수 있는 픽업 서비스도 떴어요. 물량이 충분히 확보됐고, 판매도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이 됐다는 이야기입니다. 아이폰 판매량은 이전보다 훨씬 늘었지만 그에 대한 대비책도 그만큼 탄탄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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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1호 구매자는 고등학생이었습니다, 허락을 구하고 촬영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왜 여기에 서 있는 걸까요? 이번에 1호, 아 이제는 1호 구매자라고 부르기도 좀 애매하긴 하지만 애플스토어 1호 구매자는 ‘빨리 써보고 싶었다, 설레는 기분 느끼고 싶었다‘라고 말합니다. 좋아서 구입한 겁니다. 한때 이런 분들을 욕하는 시선들도 꽤 있었죠. 굳이 욕까지 할 일은 분명 아닙니다. 팬이라면 꽤 재미있는 경험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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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저도 아이폰 1호 구매자가 됐던 적이 있습니다. 아이폰7 출시때였는데 사정이 있어서 아이폰 발표 이벤트에 참석하지 못했어요. 속상하기도 했고, 제품이 어떤지 궁금하기도 해서 일본에서 출시되던 그 때 일본에 날아갔습니다. 마침 추석 연휴이기도 했고, 애플스토어에서 아이폰이 출시되는 현장을 직접 보고 싶다는 취재에 대한 욕심도 있었습니다. 그게 기사화 되면서 좀 부끄럽기도 했는데 꽤 재밌는 경험이었어요.

밤을 새지는 않았고 예약일에 바로 픽업 예약을 해서 아무 때나 가서 받으면 되게 준비를 했습니다. 전날 오사카에 도착해서 줄 서 있는 인파들을 보고, 사람들 이야기도 듣고 했는데 그냥 축제였어요. 아주 신나더라고요. 다음날 아침 일찍 스토어에 나가서 오프닝 세레모니도 봤는데 ‘아, 이래서 팬들에게 리테일 스토어가 필요하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때 제일 기억에 남는 사람들은 화려한 코스프레를 하고 ‘I love Tim Cook’이라는 문구를 들고 입구에서 신나게 놀던 분들인데 대단하다 싶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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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조금 줄을 서 있다가 직원이 와서 살 수 있는 제품과 색깔을 확인해주어서 예약했던 바우처를 보여줬더니 그냥 들어가서 받으면 된다고 해서 금세 받아서 나오긴 했습니다. 늘상 제품 구입하던 것과 프로세스는 똑같지만 아주 북적거리고 활기도 있었고, 제품 구입하는 모든 사람들이 진짜 행복하다는 얼굴 표정을 짓고 있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줄 서 있는 사람들끼리 이야기도 나누고, 서로 친해지기도 합니다. 그때 줄 서 있던 한국 사람을 봤는데 정말 그냥 꽂혀서 예약도 없이 와서 밤을 새고 있는데 제품을 못 구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하시더라고요. 그 분도 결국 제품 구해서 가셨는데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실제로 즐겁게 일어나고, 그걸 또 응원하고 부추겨주는 게 바로 이 출시 이벤트가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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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도 그렇지만 제품도 첫인상이라는 게 있습니다. 애플스토어에 줄 서서 구입하는 건 점점 더 불편하고 느린 방법이 될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구입했던 제품은 기억에도 남고 애정도 생기는 것 같아요. 특히 새 제품을 사서 뜯는 순간의 그 카타르시스를 최고로 느낄 수 있는 게 바로 이 줄 서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점차 제품들이 흔해지고 사는 물건이 많아지면서 그 설레임도 줄어드는 것 같은데 가끔씩 이런 이벤트가 제품에 대한 기억을 오래 남기게 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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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지는 않은 일입니다. 뭐 여기 줄 선다고 특별한 혜택도 없습니다. 오히려 기자들이 사진과 인터뷰로 귀찮게 하고, 심지어 그에 따르는 한심하다는 악플까지 받아야 하는 자리입니다. 애플스토어의 줄 서기는 그 자체로 즐거운 일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저는 절대 줄 서는 걸 추천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가격이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면 꼭 출시일 새벽이 아니어도 당일에 예약 정도로 해서 스토어에서 구매하는 경험을 해보는 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걸로 1년 동안 제품을 쓰는 느낌이 분명 달라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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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Author
최호섭

지하철을 오래 타면서 만지작거리기 시작한 모바일 기기들이 평생 일이 된 IT 글쟁이입니다. 모든 기술은 결국 하나로 통한다는 걸 뒤늦게 깨닫고, 공부하면서 나누는 재미로 키보드를 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