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을지로, 어디까지 가봤니

안녕. 디에디트의 글쓰는 노예 김작가다. 지난번 을지로의 밤과 낮 기사 이후 또 을지로에 다녀왔다. 요즘 모든 만남을 을지로에서 갖고 있지만...
안녕. 디에디트의 글쓰는 노예 김작가다. 지난번 을지로의 밤과 낮 기사 이후 또…

2019. 03. 14

안녕. 디에디트의 글쓰는 노예 김작가다. 지난번 을지로의 밤과 낮 기사 이후 또 을지로에 다녀왔다. 요즘 모든 만남을 을지로에서 갖고 있지만 그렇다고 사랑에 빠졌다고 말하기엔 부족하다. 아직은 썸일 뿐. 아, 그리고 한 가지 A/S 할 것이 있는데, 지난번에 소개했을 때는 내가 미처 몰랐던 것이 있다. 금요일 밤처럼 사람이 붐비는 시간에는 빈자리를 찾기가 정말 힘들다는 것. 특히, 을지로의 가게들은 테이블 수가 적은 곳이 많아서 4명 이상의 단체 손님이라면 반드시 미리 전화해보고 가자. 가게들도 다 높은 층수에 있으니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그리고 노포 중에는 네이버 지도에는 영업시간인데 셔터를 내린 곳도 있으니까 반드시 전화를 해보자.


전주집

bcut_El1

고백하건대 처음에는 전주집 옆에 있는 우화식당을 가려고 했다. 코다리조림과 소고기전에 낮술을 한잔하려고 했지만 애석하게 문을 닫았더라(역시 미리 전화를 해보자). 두 번째 후보였던 전주집에 갔다. 여기를 가고 싶었던 이유는 단 하나! 냉삼겹살을 먹기 위해서였다.

bcut_El3

냉삼은 작년부터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을지로, 필름카메라, LP 같은 레트로의 유행과 관련이 있다. 냉삼은 돼지고기 유통과 보관 기술이 좋지 않았던 과거에 많이 소비되다가 생삼겹살에 그 주도권을 빼앗긴 지 오래된 장르. 그러다가 작년부터 뜻밖에 유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bcut_El2

개인적으로 얇게 썬 고기를 좋아한다. 차돌박이나 대패삼겹살 같은 것들. 혼자만 주인공인 척 존재감을 자랑하는 다른 고기들과는 달리 얇은 고기들은 다른 반찬들과 어색함 없이 어울린다. 보기에도 조화롭고 맛도 그렇다. 냉삼의 불판 위에서 콩나물 자리, 김치 자리가 따로 없다. 같이 섞어 먹는 그 맛을 안다면 생삼과 냉삼은 아예 장르가 다른 음식이라는 걸 알지 않을까.

bcut_El2-2bcut_El3-2

전주집은 합정동의 행진이나 역삼동의 랭돈 같은 곳과는 달리 30년 이상 영업해오고 있는 노포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공간이 조금 비좁아서 화장실을 자주 가야 하는 사람이라면 자리 선정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 나 하나 화장실 가자고 생면부지의 모르는 사람들이 줄줄이 일어나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마지막에 입가심을 위해 볶음밥을 먹을 거라면 고기는 조금 남겨 놓자. 볶음밥에 고기가 있는 것과 없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더라.

  • 서울 중구 충무로11길 18-8
  • 평일 09:00 – 22:00 / 일요일 휴무

After Jerk Off

bcut_El4bcut_El5

동남아의 어딘가가 아닐까 싶은 흰색 문은 다른 을지로의 카페들과는 달랐다. 스피크 이지바(Speak-easy bar) 컨셉의 다른 곳과는 달리 대문부터 힘을 잔뜩 주고 있었다.

bcut_El6-2

문을 열자마자 반기는 건 콧등을 강하게 때리는 향이다. 층마다 인센스 향이 가득 퍼져있고 불상이 군데군데 놓여 있었다. 최근 영화 <사바하>를 봤던 터라 움찔움찔했다.

bcut_El4-2

이 카페가 다른 점이 또 하나 있다. 을지로의 많은 카페들이 큰 건물의 작은 방 하나를 겨우 차지하고 있는 반면, 여기는 1층부터 4층까지 모두 쓰고 있다는 것. AJO라는 스튜디오에서 만드는 옷을 팔고 있었고, 카페 이름은 After Jerk Off. 그러니까 모두 AJO. 대체 jerk off라는 뜻이 무엇인가 궁금해져서 찾아보니…아..그렇구나…

정 궁금한 사람들을 위해 친절하게 네이버 사전 검색 결과를 첨부한다. 미치도록 궁금하다면 클릭.

bcut_El7-2bcut_El6

카페에도 인센스를 피워 놓았다. 이런 향을 좋아해서 집에서도 가끔 피우는데 호불호는 갈릴 것 같았다. 그만큼 취향이 확실한 공간처럼 보였다. 곳곳이 독특한 사진을 남길 수 있는 스팟처럼 보였지만 가장 눈길을 끌었던 건 하얀 잉어들이었다. 버터플라이 코이(Butterfly Koi)라는 어종의 잉어라고 한다. 내가 종종 가는 홍제천의 잉어들은 이렇게 생기지 않았는데, 하얀 지느러미로 유유히 헤엄치는 자태가 정말 나비처럼 보였다. 음료는 저크커피를 시켰는데 기본으로 곶감을 주더라.

bcut_El7[편집자주: 김작가가 워낙 사진을 잘 찍어서 소금은 보이지 않는다 ^^
하지만 카메라가 망가져서 폰으로 찍었으니 그 노력은 갸륵하다]

버터가 ‘폭’ 들어간 곶감이 특이하긴 했지만 먹으면 ‘우와, 버터와 곶감은 환상의 짝꿍이군’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곶감보다 좋았던 건 소금! 저크커피가 담긴 머그 입구에 소금을 조금씩 묻혀놓았는데 처음 먹어보는 맛이었다. 물어보니 말돈 소금이라고 한다. 영국 블랙워터강 하구에 있는 말돈 마을에서 생산되는 소금인데 셰프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은 고급 소금이라고. 소금만 먹어도 맛있더라. 나도 모르게 내적 탄성을 질렀다. (한 박자 쉬고) 그래, 이 맛이야.

  • 서울 중구 수표로 42-21 4층
  • 평일 11:30 – 24:00 / 월요일 휴무

망우삼림

bcut_El8

을지로에서 온종일 놀 생각이라면 필름카메라를 하나 사서 노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필름의 옛스러운 색감과 을지로의 정돈되지 않은 풍경이 참 어울리니까. 만약 필름카메라가 없다면 에디터H가 소개한 일회용 카메라도 좋고, 이참에 한번 사보고 싶다면 내가 일 년째 단골로 다니고 있는 세기사(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로13길 24)라는 곳도 추천하고 싶다. 중고로운 평화나라보다는 가격이 조금 비쌀 수 있겠지만 직접 만져보고도 구입할 수 있고, A/S도 확실히 해주니까. 그리고 다 찍은 필름은 여기서 현상하면 된다. 바로 망우삼림. 여기는 필름도 현상하고 사진도 찍어주는 스튜디오다.

bcut_El9-2bcut_El9

이날 오후 5시쯤에 방문했는데 사람들이 붐비더라.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은 없었고 대부분이 필름을 맡기기 위해 방문한 사람들이었다. 이 사진관이 유명해진 건 아마 인테리어 때문이지 않을까. 사진관의 주인인 윤병주 포토그래퍼가 홍콩 영화 마니아라서 내부를 홍콩 느낌이 물씬 나는 공간으로 꾸며놓았다. 청록색의 커튼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하나 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참고로 망우삼림은 실제 대만에 있는 섬인데 근심을 잊게 해주는 숲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 서울 중구 을지로 108 3층
  • 평일 10:00 – 20:00 / 토요일 13:00 – 20:00 / 일요일 13:00 – 18:00 / 수요일 휴무

끽비어컴퍼니

bcut_El10

끽비어컴퍼니는 을지로3가역에서는 조금 떨어져 있는 세운상가에 있다. 네이버 지도에는 층수가 따로 표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일단 1층에서 헤맬 수도 있는데, 끽비어컴퍼니는 3층에 있으니 방황하지 말고 곧장 계단을 올라가도록 하자. 간판도 작아서 쉽게 지나칠 법도 한데, 그 유명한 호랑이커피가 바로 옆에 있으니 호랑이커피를 생각하며 잘 찾아보면 된다. 끽비어컴퍼니는 이렇게 누차 안내를 할 정도로 작고 눈에 띄지 않는 맥줏집이고, 가게 분위기도 조용하다. 단체 손님을 받기엔 테이블이 크지 않기 때문에 커플 단위의 손님이 많이 오는 것 같았다.

bcut_El11

조용하다는 것만이 끽비어컴퍼니의 매력은 아니다. 먹을 걸 파는 곳은 분위기는 둘째고 맛있는 걸 팔아야 하는 것이 첫번째 절대원칙이 아닐까. 그리고 끽비어컴퍼니의 맥주는 맛있다. 깜이라는 이름의 직접 양조한 흑맥주를 팔기도 했는데 알고 보니 이곳, 카브루와 안동브루어리의 양조사 출신이 공동창업한 곳이라고 하더라. 병맥주 없이 드래프트만을 판매하는 방식도 믿음직해 보였다.

bcut_El11-3

내가 갔을 때는 서울집시의 복분자IPA, 핸드앤몰트의 나이트스팅고 등 11개의 주종을 판매하고 있었다. 리스트는 일주일마다 바뀌며 인스타그램을 통해 매일 공지 한다고 하니 방문하기 전에 알아보고 가자. 이국적이고, 홍콩 같고, 대만 같은 이 세상 힙이 아닌 곳들을 갔다 왔기 때문일까. 끽비어컴퍼니는 그냥 서울다워서 좋았다. 날씨가 좋을 땐 가게 밖에서 서울특별시를 내다보며 맥주 마시기 좋을 것 같았다.

  • 서울 중구 을지로 157 3층
  • 평일 17:00 – 23:00 / 금요일 17:00 – 23:00 / 토요일 15:00 – 23:00 / 일요일 휴무

bcut_El12-2

About Author
김석준

에디터B. 기계식 키보드와 전통주를 사랑하며, 쓸데없는 물건을 좋아한다는 오해를 자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