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작가 봉현이다. 내가 집을 샀다. 인생 처음, 혹은 한 번뿐일지도 모를 쇼핑. 프리랜서의 불안정하고 귀여운 13년 치 수입을 깨알같이 모은, 모든 자금을 탈탈 터는 만큼 절대, 결코, 조금의 위험성도 있어서는 안 되는, 딱 한 번의 중대한 선택과 결정이었다. 부동산에 일말의 관심도 없던 내가, 고작 두 달이라는 카운트다운을 세며 해내야만 하는- 인생의 전환점이 찾아온 것이다.
서울에서 산 지 어느새 20년이 되어가지만, 세입자로 월세만 전전하며 살다 보니 무시무시한 물가와 냉정한 현실을 체감할수록 ‘내 집’을 가질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점점 줄어갔다. 로또에 당첨되거나, 책이 백만 부쯤 팔린다던가… 하는 어떤 인생 역전의 사건이 찾아온다면 가능하지-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어떤 집이 좋을까, 이 공간은 이렇게 시공하고 여기는 이렇게 꾸미고… 그렇게 현실감 없이 몇억 몇십억짜리 외국의 단독 주택 사진을 구경하며 막연하고 즐거운 상상만 했었다.
하지만 갑작스레 닥친, 실제 내 삶 속으로 훅 들어와 버린 현실은 완전히 달랐다. 인생 역전의 사건 따위 없었고, 나는 여전히 소소한 프리랜서 1인이었으며, 내 취향과 생활에 완벽하게 맞춘 첫 집이란 결코 존재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생애 최초 부동산 매매를 위한 대출과 세금, 셀프 인테리어 공사와 대대적 이사까지… 모든 게 처음 경험하는 것들이었다. 그 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고, 힘들고 답답할 때마다 지난 시절을 떠올렸다. 나의 집이었던, 하지만 결코 내 것이 아니던. 하지만 나에게 너무나 소중한 집이었던 곳에서 살아온 날들. 때로는 달콤했지만 대부분 쓰고 거칠었던 그 시간들을 보내고 나서야, 비로소 ‘진짜 내 집’에 사는 지금을 누리게 되었음을.
홍대입구 3번 출구에서 20분은 걸어야 하는 위치, 공원 끝자락의 낡고 오래된 5층짜리 작은 아파트. 빨간 벽돌 빌라 골목의 한 옥탑방에서 6년을 살다가 이사한 두 번째 연남동 집이었다. 사실 아파트라고 하기엔 너무 낡고 오래되어 많은 게 엉망이었다. 하지만 옥탑방 집주인에게 어이없는 이유로 보증금 일부를 뜯기며 지칠 대로 지친 나는 큰 기대가 없었고, 10년 넘게 집 상태를 한 번도 보러 온 적이 없다는 집주인은 도배나 수리 등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상대적으로 저렴한 월세로 계약을 해주었다.
2주 동안 직접 못질과 페인트칠을 하며 살만한 집으로 만들었다. 구석구석 살펴보면 엉망진창이었지만, 나름의 매력으로 다양한 매거진에서 인터뷰도 할 만큼 특별한 집이었다. 무엇보다 연남동 공원이 바로 앞이라는 것이 최고의 장점이었다. 창문을 열면 언제나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날이 맑을 때는 남산타워가 보일 만큼 앞뒤로 막힌 건물이 없어서 좋았다. 공원 공사를 갓 끝낸 첫해의 휑한 느낌과 달리 공원은 매년 더더욱 푸르르고 아름다워졌다. 매일매일 다른 구름과 노을을, 가을의 정취와 겨울의 함박눈을 집 창문만 열어도 한껏 누릴 수 있었다. 2년을 계약하고 들어온 그 집에서, 사계절을 무려 8번이나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을 오고 내리며 인사를 나누곤 했던 3층 어머니가, ‘이제 못 보겠네- 아쉬워서 어떡해.’라고 했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지. 영문을 모르고 되물은 나는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했다. 아파트가 곧 철거될 예정이며, 퇴거 기일이 고작 앞으로 2달 후라는 것.
이 아파트가 재건축을 시도한다는 것은 계약 때부터 알고 있었다. 색이 바래 글씨가 흐릿해진 ‘재건축 추진 위원회’ 현수막은 10년 넘게 주차장 한편에 걸려 있었고, 재개발, 재건축 시 어떤 과정과 일정을 거치는지, 세입자의 대처와 보상 등에 대해서 알고는 있었지만 오랫동안 진전이 없었다. 하지만 연남동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급속도로 진행된 것이다. 이번 계약이 끝나면 나가야 할 수도 있겠구나,라고 예상했던 2025년이지만- 그게 당장 두 달이 남았을 줄은. 나는 집주인에게 그 어떤 연락도 받은 적이 없었다.
서둘러 재건축 사무실에 찾아가 상담을 하고 나니 그제야 집주인에게 전화가 왔다. 이사비도 월세도 그 어떤 보상 한 푼 해 줄 의향이 없고, 심지어 일찍 집을 구해서 나가는 것도 불가하며 반드시 2달을 꽉 채워서 산 뒤에 나가 달라고 했다. 정중하게 조금이라도 제 상황을 이해해 주실 수 없냐고 묻자 ‘딸 같아서 잘해줬잖아요’라는 말이 돌아왔고, 나는 더 이상 그 어떤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사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진짜 집 주인은 나와 동갑이고, 나와 연락하고 계약한 이는 부모님이었다.)
19살에 혼자 서울에 올라와 고시원부터 원룸, 투룸… 다양한 집을 거쳐왔지만, 단 한 번도 집주인이 좋았던 경험이 없다. 하지만 세입자인 걸 어찌하겠는가. 을의 입장으로 늦지 않게 월세를 입금하고, 빌린 집을 잘 돌보며 계약을 지키는 것에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하지만 크고 작은 분쟁이 있을 때마다 늘 마음이 분하고 서러웠다. 이번에도 그랬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 하는 마음에 현타가 밀려왔지만- 서둘러 현실을 직시해야 했다. 당장 두 달 안에 이사를 해야 한다.
서둘러 부동산, 직거래 카페, 앱 등으로 열심히 집을 찾아보았다. 한 곳에서 8년을 살았더니 (물론 그간 월세는 매년 올랐지만) 어마어마하게 올라버린 마포구의 시세는… 그렇다면 전세? 하지만 아무리 조심하더라도 피할 수 없다는 전세사기 사례를 너무 많이 봐왔다. 부동산에서 ‘그 가격에 그 평수는 없다’는 말을 듣는 건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사실 제일 큰 문제는 ‘반려동물 금지’였다.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평화롭게 잠자고 있는 우리 고양이, 이 녀석들을 데리고 살 수 있는 집이 정말, 하나도 없었다. 예전에는 10집 중 3-4군데 정도였다면, 이제는 9집, 아니 사실상 10개의 집이 전부 금지였다. 협의의 가능성? ‘애완동물 사육 금지’라는 말에 내가 어떤 시도를 해볼 수 있겠는가.
그날도 하루 종일 집을 알아봤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고, 날짜는 계속 다가오는데… 답답한 마음에 통화했던 친구가, 결국 조심스럽게 내게 조언했다. 그날 만난 부동산 사장님과 동일한 의견이었다.
‘선택지가 많아 보이지만, 사실 선택지가 없어. 네가 포기할 수 없는 우선순위를 생각해 봐. 그렇다면 답은 단 하나뿐, 집을 사는 수밖에’
나의 주거 조건 순위를 정리해 보자면,
1. 고양이들과 살 수 있을 것(필수)
2. 살던 곳보다 좁아지진 않는 크기의 투룸에 2층 이상. (집에서 일하고, 짐이 많다.)
3. 마포 혹은 마포에서 가까운 곳
4. …
그렇다. 사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1, 2번이 해결되지 않는 이상, 아래로 이어지는 여러 조건은 사실상 의미가 없었다.
고양이를 받아주는 집주인이 없다면, 내가 집주인이 되는 수밖에 없다. ‘내가 어떻게 집을 사, 몇억이 없는데…’라고 되뇌었지만 정말로 선택지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어쩔 수 없이 처음으로 부동산 앱에서 ‘매매’를 클릭했다. 그러자 완전히 새로운 방향성이 펼쳐졌다.
생각 외로 가능성이 있었다. 뉴스에서만 보던 6억에서 10억 몇십억… 그런 매물이 아닌 2-4억 대의 집도 있었다. 대단지 아파트가 아닌 나 홀로 아파트도 있고, 아파트가 아닌 빌라도 있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내 조건으로(생애 최초, 나이, 소득 등) 혜택과 대출이 꽤 많이 나왔다. 누군가 ‘여기 다 은행 거고, 내 건 화장실 정도야’ 했던 말이 이해가 됐다. 매달 카드값 미루지 않고 정직하게 저축만 해왔던 세상 물정 반도 모르는 나지만, 하나하나 차분히 공부해 보니-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1번, 내가 집주인이 되면 고양이들은 해결된다. 2번은 충분히 가능할 듯하고… 다만 3번이 무리였다. 마용성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땅값이 확 올라버린 마포가 아닌 다른 지역을 찾아야 했다. 그래도 너무 멀어지지는 않았으면 좋겠고, 최근 지인들이 많이들 이사했다고 들어왔던 곳. 은평구였다. 서울 전 지역에서 은평구로 범위를 좁혀 집중적으로 찾아보기 시작했다. 이제 그다음, 나의 4번째 조건을 우선으로 두고.
순서로는 4번째 이지만 사실상 내 마음이 가장 원하는 조건. 나무와 하늘, 자연이 가까이 보일 것. 건물에 둘러싸이지 않은, 잠옷 바람으로도 편하게 돌아다닐 수 있는, 집에서 종일 일해도 피폐해지지 않을, 연남 아파트처럼 사계절의 바람이 불어오는- 역세권보다는 숲세권이었으면 했다. 그만큼 교통이 조금 불편한 것은 감안할 수 있었다. 출근하지 않고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는 홈 워커 프리랜서이기에, 오히려 복작복작한 핫플레이스 같은 곳이 아닌 조용하고 차분한 동네에서도 살아보고 싶다 생각했다.
그렇게 2주간 20군데에 달하는 집을 구경했다. ‘임장’이라는 것을 해보며 세입자가 아닌 매수인 입장이 되니 고민해야 할 것들이 더 많았다. 누수는 없는지, 층간 소음은 어떤지, 주위 시설은 어떤지… 아파트를 알아보려니 사실상 최저 금액대의 매물을 찾는 상황이라 투자 목적이 아닌 실거주 중심의 요건에 집중했다. 지금의 나에게는 그게 최선이자 최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부동산 사장님의 추천으로 찾아간 옆 동네에서 운명처럼 그 집을 만났다. 복도로 들어서는 순간-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초여름의 푸른색과 바람 따라 흔들리는 숲, 은은한 풀 내음까지. 나도 모르게 감탄이 새어 나왔다. 앞으로는 작은 동산 너머 서울 시내의 전경이, 그 뒤로는 북한산 능선이 펼쳐졌다. 뒤로는 서울 끝자락 산길을 따라 숲의 얼굴이 선명하게 가까웠다. 그야말로 숲 사이에 위치한 오래된 복도식 아파트는 유년 시절 살았던 부산의 집이 떠올랐고, 그중에서도 복도 맨 끝집이라는 것도 마음에 쏙 들었다. 아파트가 지어질 때 어머니와 같이 들어와 이 집에서 두 명의 아이를 낳고, 지금까지 쭈욱 살았다는 5인 가족의 보금자리. 애정으로 채우고 화목하게 살며 두 번의 리모델링까지 해서 샷시와 난방 배관까지 몇 년 되지 않아 깔끔하고 따뜻한 집이었다. 두 번째 방문하면서 준비해 간 카스테라 케이크에 곁들일 매실차도 나누어 주시며, 어느덧 성인이 된 따님과 90살이 넘었지만 정정한 할머니도 다정히 맞아주었다. ‘이 집이 공기가 좋아서 내가 이렇게 건강해, 여기 살면 잘 살 거야.’라며 내 손을 꼭 잡고 쓰다듬어 주신 할머니의 미소는 한 달 후 떠나는 날까지 쭈욱 따사로웠다.

가계약을 하고, 대출을 신청하고, 은행을 방문하고, 통장을 개설해서 수십 장의 서류에 서명을 하고 확정일자를 받고, 법무사를 구하고 잔금 날이 오고… 평생 처음 이체해 보는 큰 금액의 전 재산을 지불하기 직전에는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걱정과 설렘이 공존하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돈을 냈더니 ‘잘 사세요~’하고 한 가족이 자신들의 거주지를 내어주고 훌 쩍 떠났다. 집을 샀다니. 이제 여기가 우리 집이라니!
다만 기쁨만 누릴 틈 없이,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었다. 등기를 치기도 전에 철거 직전의 아파트에서 무조건 나와야 했기에 대부분의 짐을 창고에 넣어두고 인테리어 공사까지 해야 했다. 예산이 없으니 업체 없이 셀프로 진행했고, 자재들을 사러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주민분들께 양해를 구하고 공사 업자분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에어컨 없는 폭염 한가운데 매일매일 새벽부터 밤까지 집 수리에 매달렸다. 임시 거주지는 햇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 1층 집이었는데, 나 없이 하루를 보낸 고양이들은 땀에 찌들어 지쳐 돌아온 나에게 밤마다 투정을 부렸다. 그럴 때마다 ‘조금만 기다려, 이전보다 더 좋은 집에서 숲 보면서 살게 해줄게. 분명 행복할 거야.’라며 고양이들을 달랬다.
어느덧, 이 집에 산 지 5개월이 되었다. 너무 많은 일이 있었기에 못다 한 이야기가 많고, 사실 나는 아직도 여기가 진짜 ‘내 집’이라는 것이 낯설다. 처음 한두 달 동안은 에어비앤비에 살고 있는 기분이었다. 언젠가는 체크아웃을 하고 다시 연남동에 있는 작은 집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았다. 연남 아파트의 침실에 누워 천장을 바라볼 때마다 생각했었다. 다음에는 집 모서리의 모양이 사각형인 집에 살고 싶다고. 페인트가 아닌 따뜻한 벽지와 갈라 지지 않는 마룻바닥인 집에서 살고 싶다고. 나보다 더 빨리 새로운 집에 적응한 고양이들이 널찍한 거실에서 뛰어다니고 베란다에서 새소리를 듣다 잠드는 모습을 볼 때마다 행복하다. 가끔 8년 전 무지개다리를 건넌 나의 첫 고양이를 떠올린다. 연남 아파트의 창가에서 바람을 쐬며 나를 바라보던 여백이. 너도 이곳을 정말 좋아할 텐데.

정신없이 바쁘고 파란만장했던 여름을 지나, 양쪽 문을 활짝 열어두면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집 전체를 관통하는 선선한 가을을, 첫눈과 함께 찾아온 뽀얀 뒷산의 풍경을 매일매일 볼 수 있는 환경을 한껏 누리며 ‘숲속 우리 집’에 살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청소기를 밀고 커피를 내려 토스트와 사과로 첫 식사를 한다. 예전 집에서도 똑같이 살아왔었다. 인생이 여전히 제자리걸음인 것 같고, 해결할 수 없을 것만 같은 큰 난관이 찾아왔다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커다란 용기를 내게 했고 상상만 해 왔던 도전과 실천이 삶의 해상도를 바꿔 놓았다.

내가 살고 싶은 집의 풍경은 어땠을까. 적어도 지금은 더 이상 상상하지 않는다. 지금의 내가 원하는 일상은 바로 오늘, 이곳에 이미 있기에.
About Author
봉현
14년차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 & 에세이스트. '단정한 반복이 나를 살릴거야', '그럼에도, 나는 아주 예쁘게 웃었다', '여백이' 등 책을 출간했고 수십 권의 책 표지 그림을 그렸다. 광고, 잡지, 기업 등과 자유롭고 다양한 방식으로 일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