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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없이 투명한 코로나

잠시 밤술로 한눈을 팔았다. 하지만 이젠 나의 본업으로 돌아와 다시 흥청망청 낮술을 마셔야 할때다. 여름은 아직 끝난 게 아니고, 해는...
잠시 밤술로 한눈을 팔았다. 하지만 이젠 나의 본업으로 돌아와 다시 흥청망청 낮술을…

2016. 08. 19

잠시 밤술로 한눈을 팔았다. 하지만 이젠 나의 본업으로 돌아와 다시 흥청망청 낮술을 마셔야 할때다. 여름은 아직 끝난 게 아니고, 해는 충분히 길며, 난 직장이 없으니까.

“근데 서울 너, 요즘 너무 질척대더라,
우리 좀 시간을 가졌으면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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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땐(물론 나는 아직도 어리다) 여행은 무조건 도시로 가는 게 좋았다. 밤이면 젊은 남녀들이 방탕해지기 위해 눈을 빛내는 곳에 가는 것이 나의 젊음을 증명하는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떠날 수만 있다면 한적한 바닷가로 가고 싶다. ‘쿨적쿨적’ 밀고 들어오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맥주 한 모금에 소설 한 문장, 이거면 더는 아무 것도 바랄게 없다. 아, 이때 내 손엔 코로나가 들려있었으면 좋겠다. 투명한 맥주병에 라임을 꽂은 코로나는 해변과 참 잘어울리는 술이니까.

batch_3[아직 떠나지 못한 당신, 이태원 프리덤 세계로 초대합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올여름은 틀린 것 같다. 어차피 더울 거, 이 뜨거운 태양과 맞짱을 뜨기 위해 이태원의 루프탑바를 찾았다. 모아니면 도. 내가 원래 좀 뜨겁다. 이날도 죽을 것 같이 더웠다. 근데 요즘 안 더운 날이 있긴 했던가? 헥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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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찾은 곳은 쓰리섹션(3Section)이다. 작년 7월에 오픈한 뜨끈뜨끈한 곳으로 이태원과 경리단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목좋은 언덕에 있다. 땡볕 아래 등산을 했더니 도착 당시엔 조금 화가 나긴 했지만, 탁 트인 뷰를 보니 화는 눈 녹듯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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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말하기 전에 안주부터 공개하는 것, 그것이 바로 진정한 애주가의 길. 오늘의 안주는 진미튀김이다. 뭐냐고? 나도 처음엔 이게 뭔가 싶었다. 근데 이거 꽤 근사한 맥주 안주다. 진미채에 도톰한 튀김옷을 입혀서 튀겨냈는데 간이 세지 않고 삼삼한 것이 코로나와 참 잘 어울리더라.

“한여름 바다를 보며 마시고 싶은 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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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하면 떠오르는 것이 몇 가지 있다. 타코, 데킬라 그리고 코로나. 그래. 이렇게 더운 날엔 들큰하거나 씁쓸한 맛보다는 청량하고 깔끔한 맛이 더 잘 어울린다.

batch_7batch_8-1[코로나 마시쪙. 안주도 마시쪙]

코로나의 가장 큰 특징은 역시 투명한 유리병이다. 속에 어떤 것을 품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의뭉스러운 다른 맥주와는 달리 코로나는 한없이 투명한 유리 병안에 담겨있다. 노오란 맥주가 그대로 내비치는 시스루의 병은 우리의 침샘을 자극한다.

“목이 길어 슬픈 짐승이여”

batch_9batch_10[캬! 맥주 맛 조타. 코로나와 달리 내 목은 안 길다]

말이 나온김에 코로나의 병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 코로나 보틀의 목은 다른 맥주의 그것에 비해 유난히 길다. 그리고 그 긴목의 끝엔 응당 라임이 꽂혀있다(사실 우리나라에선 레몬인 경우가 더 많지만). 가녀린 보틀 끝에 입을 갖다 대면, 먼저 라임의 상큼한 맛과 향이 우리의 혀를 반기며 깨끗한 코로나의 맛을 한 단계 더 높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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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병과 청량한 맛, 거기에 라임까지 더해져 걸리는 것 하나 없이 꿀꺽꿀꺽 물처럼 가볍게 마실 수 있는 맥주다. 1925년, 열정의 나라 멕시코에서 탄생한 맥주답게 누가 뭐래도 여름 해변과 가장 잘 어울린다.

요 한 달 집요하게 우리를 괴롭히던 더위가 끝나가고 있다. 밤이되면 살갗에 닿는 바람의 기온이 조금 낮아졌다. 아직 여름을 충분히 즐기지 못한 자와 떠나가는 여름을 아쉬워 하는 자들이여, 아직 늦지 않았다. 이번 주말 서둘러 이태원 쓰리섹션으로 가서 코로나를 마시자.

About Author
이혜민

에디터M. 칫솔부터 향수까지 매일 쓰는 물건을 가장 좋은 걸로 바꾸는 게 삶의 질을 가장 빠르게 올려줄 지름길이라 믿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