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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위대하던 시절의 기억, 매킨토시

안녕. 디에디트의 파고다 공원, 올드리뷰어, 리뷰계의 클래식. 여러분이 사지 않을 제품만 골라서 소개하는 객원필자 ‘기즈모’다. 왜 사지 않을 제품만 소개하냐고...
안녕. 디에디트의 파고다 공원, 올드리뷰어, 리뷰계의 클래식. 여러분이 사지 않을 제품만 골라서…

2018. 09. 09

안녕. 디에디트의 파고다 공원, 올드리뷰어, 리뷰계의 클래식. 여러분이 사지 않을 제품만 골라서 소개하는 객원필자 ‘기즈모’다. 왜 사지 않을 제품만 소개하냐고 묻지 마라. 우리도 아이돌과 사귈 가능성이 없지만 알고 싶지 않은가? 뭐 그런 게 있다. 오늘도 길고 지루한 옛날 제품 이야기를 파헤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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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할 브랜드는 매킨토시(풀네임은 McIntosh Laboratory)라는 오디오 브랜드다. 우리가 매킨토시라는 얘기를 들으면 보통 애플을 생각하기 마련인데 오디오 마니아들은 그렇지 않다. 오디오를 먼저 떠올린다. 사실 그들은 무슨 말을 해도 오디오부터 떠올리곤 한다. 월급? 오디오를 떠올린다. 보너스? 오디오를 떠올린다. 와이프? 오디오를 떠올린다. 하지만 오디오 마니아를 너무 조롱하지는 말자. 알고 보면 불쌍한 사람들이다. 욕망과 현실 앞에서 계속 좌절하는 순환적 딜레마에 빠진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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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이 플랭크 매킨토시]

어쨌든 매킨토시는 사과와는 관련이 없다. 애플 팬들은 또 애플의 짝퉁이냐고 화를 낼지 모르지만 반대다. 회사 이름은 프랭크 매킨토시(Frank McIntosh)라는 창립자 이름에서 따왔다. 매킨토시는 1949년 설립됐고 애플은 1976년 설립됐다. 원조는 매킨토시 쪽이다. 중요한 얘기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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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표시창과 그린 로고, 매킨토시의 상징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매킨토시 얘기를 해 보자. 그런데 여러분들이 전혀 관심도 없고 거의 들어보지도 못했으며 경험할 생각도 없는 제품 얘기를 하려니 몹시 어렵다.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한참을 고민했다. 내 시작은 이렇다. 아마 이 글을 보는 사람들 중에 대부분은 일평생 단 한번도 매킨토시를 구입할 가능성이 없을 것이다. 정상적이며 모범적인 삶이다. 계속 유지하길 바란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구입한 적이 없다. 아마 디에디트에게 광고의뢰도 하지 않을 거다. 디에디트 대표인 에디터 M도 좋아할 리 없다. 에디터 H는… 모르겠다. 그 사람은 이상한 걸 좋아하니까.

사실 매킨토시는 매력적인 오디오가 아니다. 비효율적이고 시대착오적이며 값이 아주 비싸다. 앰프를 주로 생산하는데 대부분 수천 만원 가격대다. 지난 번에 얘기한 라이카도 비슷하지만 라이카는 경쟁자가 드물고 결과물도 평균 이상이다. 그래서 일반인도 간혹 구입한다. 그러나 매킨토시는 그렇지 않다. 경쟁자도 많다. 오디오 업계에는 비효율적이고 시대착오적이며 값 비싼 오디오가 엄청나게 많다. 게다가 매킨토시 소리가 독보적으로 뛰어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킨토시는 70년의 역사를 써 내려왔다. 그 비결은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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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킨토시의 표준적인 디자인]

나는 매킨토시의 지속성이 디자인에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품질에 크게 흠잡을 곳이 없으면 디자인을 살피게 된다. 매킨토시는 다른 앰프와는 다른 디자인을 선보였고 이게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매킨토시의 디자인 아이덴티티는 파란 표시창이다. ‘블루 아이즈’ 또는 ‘매킨토시 블루’라는 이 표시창은 비행기와 비행기 활주로에서 영감을 받은 공학적 디자인이다. 음악이 연주되는 동안 아날로그 바늘이 움직이며 시각적인 즐거움을 준다. 특히 불이 모두 꺼진 방안에서 음악을 감상할 때면 블루 아이즈의 영롱한 불빛과 음악에 따라 움직이는 레벨 미터 덕분에 외롭지가 않다. 대부분의 오디오 마니아들은 외롭기 때문에 이런 외로움을 달래주는 매킨토시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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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날로그 바늘은 닥치는 대로 움직이는 게 아니다. 바늘이 가리키는 수치는 출력 파워(W)인데 출력 전압(E)에 출력 전류(I)를 곱한 값으로 E x I=W를 계산해 순간적으로 표시한다. 사용자가 이 수식을 이해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그런데, 이런 기계적 메커니즘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묘한 카타르시스를 준다. 기계식 시계 중에는 일부러 투명창을 뚫어 무브먼트의 작동을 보여주는 시계가 있다. 톱니바퀴가 맞물려 정확히 움직일 때 느껴지는 카타르시스가 있기 때문이다. 이건 전자칩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감성이다. 매킨토시는 천편일률적인 직사각형 디자인의 앰프에 블루 아이즈와 레벨 미터를 박아 넘으면서 생명력을 불어 넣었다. 그래서 아이콘이 되었고 오디오 마니아들의 꿈이 됐다. 값은 악몽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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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킨토시 홈페이지에는 매킨토시 시계도 판다. 왼쪽 창은 시간, 오른쪽 창은 분을 가리킨다. 가격은 1,800달러다!]

매킨토시 디자인은 매킨토시의 지속성에 큰 도움을 줬지만 근본적으로 매킨토시는 앰프 메이커다. 오디오적 장점이 없었다면 버티지 못했을 거다. 매킨토시는 미국이 가장 번영하고 풍요로울 때 나온 제품이다. 상업성을 생각하지 않고 소리에만 집중하다 보니 최고의 앰프라는 찬사를 받았다. 그래서 한때 앰프는 매킨토시, 스피커는 ‘JBL’을 최고로 쳤다. 모두 미국회사고 미국이 위대했던 시절에 만들어졌다. 그래서 수천 만원을 들여 매킨토시 앰프에 JBL 스피커를 조합해서 음악을 듣는 분들이 많았다. 아이러니한 것은 두 제품의 상성이 매우 좋지 않아 이상한 소리가 났다. 그러니 오디오 마니아들을 놀리지 말라고 했다. 불쌍하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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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28,800와트 출력의 매킨토시 앰프가 쓰였던 ‘그레이트풀 데드’라이브, 사진=매킨토시 홈페이지]

1960~80년 당시 미국은 무제한적인 물량과 무제한적인 에너지, 무제한적인 가격, 무제한적인 몸무게… 등 상상력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 우주에 로켓을 쏘아 올리기도 했고 버스만큼 긴 자동차를 만들었으며 사방팔방 전쟁을 하며 팍스 아메리카(Pax Americana-미국 주도의 질서)를 외치던 시기였다. 트럼프가 당선될 당시 슬로건이었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는 바로 이 시기의 미국을 가리킨다. 죄책감을 갖지 않고 공산품을 만들던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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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무슨 짓을 해도 넘어가던 시기. 매킨토시 역시 가격이나 전력 소비 등은 생각하지 않고 모든 물량을 투입해 최고의 소리를 쫓았다. 그 결과 대륙을 가로지르는 듯한 광활하고 시원시원한 ‘매킨토시 사운드’를 완성했다. 매킨토시는 오디오 마니아들의 꿈이 됐고 미국의 힘을 세계에 보여줬다. 집안만 담당한 게 아니다. 매킨토시는 음악 사상 최대의 야외 이벤트인 ‘우드스탁 페스티벌(1969)’의 앰프 시스템을 담당했고 1974년 ‘그레이트풀 데드’의 라이브 공연에는 28,800와트의 엄청난 앰프 출력을 지원하며 미국의 무지막지함을 세계에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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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Intosh AP1 Audio Player 앱을 설치하면 공짜로 매킨토시 감성을 경험할 수 있다. iOS만 제공한다. 안드로이드는 없다]

(다행히) 미국의 위대한 시대가 끝나며 매킨토시의 시대도 끝이 난다. 1990년에는 일본 회사에게 피인수 되며 매킨토시 사운드를 잃었다는 비난에 시달렸다. 매킨토시의 미국 라이벌인 ‘마란츠’라는 앰프 회사도 일본에 피인수 됐다. 끝까지 버티던 JBL은 지난해 삼성전자가 인수했다. 공룡의 시대는 끝이 났고 시대에 맞춰 마란츠와 JBL은 작은 소품만 내놓는 회사로 변모했다. 그런데 매킨토시는 여전히 죄책감도 없이 블루 아이즈를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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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앰프가 세상을 지배하는 이 때에도 무식하게 트랜스에 구리 코일을 잔뜩 감은 진공관 앰프와 커다랗고 무거운 트랜지스터 앰프를 제작한다. 인공지능 데이터를 모으기 위한 경품으로 AI스피커를 지급하는 지금 시대에도 변함없이 수천만 원짜리 오디오를 만든다. 디자인은 죄다 비슷해서 50년 전 제품과 최근 제품이 거의 차이가 없다. 사실 매킨토시는 시대에 적응한 적이 없다. 자신이 잘 하는 것과 아름다운 디자인을 찾은 후에 70년간 비슷한 제품을 질리지도 않고 계속 만들어 왔다. 아무리 세상이 변하고 취향이 변해도 내 취향을 이해해줄 한 명만 걸려라 라고 외치는 듯한 우직함. 미국이라는 거대한 시장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나올 수 없었고 유지될 수 없었던, 인류 최고의 풍요로운 시대와 죄책감이 없던 시대의 결과물이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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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드 머스탱, 할리데이비슨 에디션]

어떤 제품은 내가 소유하거나 소유하고 싶지 않아도 계속 보고 싶은 게 있다. 예를 들어 포드 머스탱이나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 같은 거다. 포드 머스탱이나 할리데이비슨 역시 가장 좋은 자동차나 오토바이가 아니다. 기술적으로 뛰어나지도 않고 시대 착오적이기도 하다. 머스탱은 배기량에 비해 실망스러운 출력을 가지고 있고 할리데이비슨은 모는 내내 벌을 서야 한다. 그러나 이들은 어느 시대를 대표하는 상징성이 있다. 환경이나 효율 따위는 무시하고 풍요와 낭만을 위해 아낌없이 물량을 투입하던 시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시절의 자유로움이다. 매킨토시도 이런 ‘길티플레저’ 브랜드다. 풍요의 시대에 만든 무지막지한 앰프, 유치하도록 파란 표시창, 선 굵고 투박한 디자인. 할리데이비슨에서 내린 털보가 휘발유 냄새 나는 지포라이터로 말보로에 불을 붙인 후에 켤 것만 같은 오디오가 매킨토시다. 전혀 힙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들만큼은 그 모습으로 그 시대를 기억하게 해줬으면 하는 낭만 같은 거다. 그래서 매킨토시는 비록 살 수는 없어도, 사지 못해 안달이 나지는 않아도, 그래도 계속 보고 싶은 그런 이상한 브랜드다.


“올드 리뷰어가 준비한 뽀-나스 코너”
-현대에도 매킨토시를 경험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5개의 제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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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cIntosh AP1 Audio Player – 매킨토시의 뮤직 앱으로 블루 아이즈의 레벨 미터를 보며 음악을 즐길 수 있다. 아이폰 용은 블루 아이즈가 1개, 아이패드용은 2개다. 안드로이드는 지원하지 않는다. 공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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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cIntosh Music Stream – 매킨토시가 제공하는 라디오. 폭넓은 시대의 폭넓은 팝송을 24시간 방송한다. 블루 아이즈 인터페이스를 제공하며 다행히 안드로이드 버전도 있다. 공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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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킨토시 RS100 블랙 블루투스 스피커 – CD음질 재생이 가능한 무선 스피커다. 블루투스가 아닌 와이파이 연결이라 앱을 통해서 연결해야 한다. 1개만 사도 되지만 2개를 사면 스테레오로 들을 수 있고 매킨토시도 고마워 한다. 100만 원대 중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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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킨토시 MHA100 – 헤드폰 전용 앰프, 32비트 192Khz의 디코딩으로 원음에 가까운 음질을 즐길 수 있다. 헤드폰이나 소스기기는 따로 사야 한다. 가격은 600만 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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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킨토시 MA252 – 올해 출시한 신상이다. 소리가 굉장히 좋아 ‘뉴매킨토시 사운드’라는 칭호를 얻었다. 인티 앰프이기 때문에 스피커나 소스기기는 따로 사야 한다. 블루 아이즈는 없으나 진공관 앰프의 녹색 불빛이 환상적이다. 가격은 600만 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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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즈모

유튜브 '기즈모' 운영자. 오디오 애호가이자 테크 리뷰어. 15년간 리뷰를 하다보니 리뷰를 싫어하는 성격이 됐다. 빛, 물을 싫어하고 12시 이후에 음식을 주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