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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선만이 내 세상

나는 한 가지에 빠지면 주변을 못 보는 외골수다. 작년엔 애플 에어팟에 깊게 매료돼 다른 세상을 모르고 살았다. 무선은 사랑이고, 혁신이라...
나는 한 가지에 빠지면 주변을 못 보는 외골수다. 작년엔 애플 에어팟에 깊게…

2018. 02. 12

나는 한 가지에 빠지면 주변을 못 보는 외골수다. 작년엔 애플 에어팟에 깊게 매료돼 다른 세상을 모르고 살았다. 무선은 사랑이고, 혁신이라 외쳤지만 나의 무선 이어폰 레퍼런스는 에어팟이 90%를 차지할 만큼 미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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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에어팟에 대한 사랑을 어찌나 적극적으로 설파했던지, 주변에 에어팟을 구입했다는 간증이 끊이지 않고 있다. 문득 의문이 든다. 에어팟보다 좋은 건 없을까? 이게 최선인 걸까? 다른 제품을 써봐야겠다는 책임감(?)이 차올랐다. 그래서 뱅앤올룹슨 베오플레이 E8을 구입했다. 절대 디자인이 예뻐서 홀린 듯 산 게 아니다.

사기 전에 가장 고민했던 요소는 커널형이 내 귀에 잘 맞지 않는다는 사실. 예쁘기로 소문난 베오플레이 H5도 잠깐 써봤는데(그때도 디자인에 홀려서) 귀에 잘 맞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게다가 꽤 비싸다. 인터넷 최저가로 찾으면 몇만 원 떨어지긴 하지만 출시가가 무려 39만 9,000원이다. 고작(?) 21만 9,000원짜리 에어팟에 덜덜 떨던 과거가 우스워질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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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자면 베오플레이 E8은 예쁘고, 소리가 좋다. 에어팟에서 경험하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사운드를 들려준다. 일반적인 하이엔드 유선 헤드셋과 비교하자면 실망할지 모르지만, 내가 써본 완전 무선형 중에서는 군계일학이라 평가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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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아터진 내 귓구멍을 보호하기 위해 가장 작은 이어팁으로 교체하고 살짝 비틀어 돌리며 귀에 꽂아 넣었다. 다른 제품보다 작은 사이즈의 이어팁이 있어 좋았다. 에어팟 같은 오픈형 이어폰을 주로 쓰다 보니 즉각적으로 귀에 느껴지는 ‘압박’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몇 시간을 연속으로 사용해봐도 귀에 크게 무리가 가는 수준은 아니다. 나를 비롯한 주위 사람들에게도 커널형치고는 착용감이 가벼운 편이라는 평을 들었다. 물론 그래도 에어팟만큼 편하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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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곡으로 재즈를 들었는데 저음이 너무 좋다. 근데 좀 이따 케이팝을 들어보니 고음도 좋은 것이다. 에어팟에 비해 훨신 단단한 베이스가 뿜어져 나온다. 커널형의 특성상 차음성이 뛰어나기 때문에 전체적인 음질이 업그레이드되어 들리는 것도 당연한 결과다. 베이스만 강조된 게 아니라 보컬의 정교함과 또렷함도 인상적이다. 화이트노이즈가 있지만 거슬릴 정도는 아니다. 공간감이나 몰입도가 상당히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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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작 방법은 단순한 듯 복잡하다. 이어폰 양쪽의 터치패드를 통해 조작하는 방식이다. 왜 단순한 듯 복잡하다고 했냐면 조작 방법 자체는 쉽지만, 종류가 너무 많기 때문. 조작할 땐 오른쪽 터치패드를 메인이라고 생각하면 좀 더 쉽다. 터치하는 시간이나 횟수에 따라 다른 명령을 내릴 수 있다. 볼륨을 높일 땐 오른쪽 터치패드를 터치한 채로 있으면 터치한 시간만큼 서서히 볼륨이 높아진다. 당연히 볼륨을 줄일 땐 같은 방식으로 왼쪽을 터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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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과 정지는 오른쪽 패드 한 번 터치. 왼쪽을 한 번 터치하면 트랜스퍼런시 모드가 실행된다. 트랜스퍼런시 모드는 일종의 ‘주변 소리 모드’다. 안전이나 편의를 위해 주변 소음을 일부러 들려주는 기능이다. 문제는 내 목소리도 인위적을 확대해서 들려주기 때문에 이질감이 심하다는 것. 조금 헷갈려도 터치 조작을 잘 익혀두면 음성인식이나 스마트폰 조작 없이도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다. 다만 이어폰을 살짝 고쳐 쓰려고 하다가 의도치 않게 터치 패드가 인식되는 경우가 많아서 조금 신경질이 나더라. 조심조심. 살짝살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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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은 정말 예쁘다. 특히 가죽 재질의 케이스나 바디 컬러와 깔맞춤한 케이블 등의 디테일이 끝내준다. 에어팟처럼 마이크가 튀어나온 디자인이 아니기 때문에 착용했을 때 더 깔끔해 보이는 건 물론이다. 돈값을 하는 훌륭한 디자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일부 독자분들은 ‘보청기’같다고 말하시더라. 흑흑. 역시 완전 무선형 이어폰은 착용하지 않았을 때 가장 아름다운 걸까.

영상 리뷰에서도 구구절절 길게 설명했기 때문에 이쯤에서 깔끔하게 결론을 내드릴까 한다. 에어팟과 베오플레이 E8 중에 무엇이 더 좋으냐고 물으신다면 대답은 없다. 수많은 애플 기기들 사이에서 유영하듯 매끄럽게 쏘다니고 싶다면 에어팟만 한 기기는 없다. 그러나 무선의 매끄러움을 동경하면서도 에어팟이 주는 사운드 경험이 불만족스럽거나, 마이크가 톡 튀어나온 콩나물디자인이 거슬린다면 베오플레이 E8을 슬쩍 내밀어봄 직하다. 어떤 제품을 선택하든 무선은 최고다. 다시는 선이 있는 세계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About Author
하경화

에디터H. 10년차 테크 리뷰어. 시간이 나면 돈을 쓰거나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