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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디 말 보다

요즘은 쉬지 않고 스마트폰 알람이 울려댄다. 일 년 중 가장 많은 연락이 오는 시즌. 한 해가 끝나고 새해가 시작되는 이맘때면,...
요즘은 쉬지 않고 스마트폰 알람이 울려댄다. 일 년 중 가장 많은 연락이…

2018. 01. 14

요즘은 쉬지 않고 스마트폰 알람이 울려댄다. 일 년 중 가장 많은 연락이 오는 시즌. 한 해가 끝나고 새해가 시작되는 이맘때면, 노란 메시지 창을 통해 수많은 덕담들이 오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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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핑계다. “언제 식사 한 번 해요.”  주워 담지 못할 약속을 던지며 스쳐 지나갔던 사람들에게 나의 마음을 전할 수 있다는 건.  사는 게 바빠서, 하루하루 버티는데 급급해서 미처 연락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넨다. 또 누가 있었더라… 주소록을 찬찬히 훑는데 눈에 밟히는 이름이 보인다. 꽤 오랫동안 연락을 하지 못 했던 그사람. 기사에서 실명을 공개할 순 없으니 편의상 A라고 부르기로 하자.

A는 평범한 사람이다. 술은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다양한 술을 찾아서 마시는 스타일은 아니다. 위스키는 어두운 지하에서나 마시는 거라고 생각하고, 요즘 유행하는 크래프트 맥주는 향이 너무 강해서 별로란다. 고깃집에서의 소주, 혹은 편의점에서 4캔에 만 원 하는 캔맥주면 세상 행복해하는 소박한 취향의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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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군가를 정말 잘 알고 있는지 모르는지는 선물을 고르는 순간에 가장 잘 드러난다. 그동안 몇 차례나 “감사해요. 다음에 밥 살게요.”란 공수표를 남발하던 지난날을 반성하며, 새해엔 좀 더 의미 있는 선물을 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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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일보다는 라거를 즐겨 마시는 그를 위한 특별한 선물. 칭따오의 2018 신년 스페셜 패키지. 설빔을 곱게 차려입은 칭따오 선물 세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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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칭따오의 맛이 달라졌냐고? 아니, 내용물은 그대로다. 하지만 이렇게나 예뻐졌는걸. 선물이란, 본디 포장이 중요한 법 아니던가. 새로운 패키지는 언제나 즐겁다. 다 마신 병을 버리기가 망설여질 법한 이 어여쁜 디자인은 내가 알던 그 칭따오가 맞나 의심스러울 정도다.

Processed with VSCO with au5 preset[예쁜 리본도 묶어줬다. 썩 잘어울리는 듯]

투명한 초록빛 병으로 익숙해져있던 우리에게 이번 칭따오의 변신은 좀 충격적이다. 깊이감이 느껴지는 감색 빛의 알루미늄 보틀이라니! 게다가 지금 이때만 만나볼 수 있는 한정판이라니 더 특별해 보이는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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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은 강아지의 해. 무술년이니까. 팡팡 터지는 불꽃을 배경으로 사랑스러운  강아지가 그려져 있다. 파랑과 레드의 조합은 자칫 촌스러워지기 쉬운데, 몸에 착 달라붙는 치파오를 입은 듯, 고혹적인 매력을 뽐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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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티지하면서도 세련된 패턴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우리나라의 민화 작가의 그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이란다. 한국 민화 디자인이 오히려 홍콩, 이스라엘, 벨기에, 호주 등  5개국으로 역수출될 예정이고. 아, 취한다 국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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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따오 2018 신년 스페셜 패키지는 473ml 용량의 알루미늄 보틀 두 병과 술의 맛을 더해줄 귀여운 잔까지 세트로 들어있다. 근처 마트나 편의점에서도 구할 수 있다고 하니, 이제 편의점 술 코너를 더 열심히 들여다볼 이유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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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선물을 하려고 준비했지만, 이렇게 섹시한 칭따오가 눈앞에 있으니 식욕이 동한다. 아, 고백하자면 난 칭따오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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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할 때 먹으려고 아껴뒀던 자몽 타르트를 냉장고에서 꺼내고 테이블 세팅을 시작한다. 그냥 칭따오라면, 이렇게 마실 생각을 하지 않았겠지만, 이 녀석은 좀 더 특별한 대접이 필요한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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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한 맛은 기름진 음식과도 또 달콤한 디저트랑도 꽤 잘 어울린다. 탄산이 강하지 않고 적당히 고소하고, 먹고 나서 뚝 떨어지는 깔끔한 맛은 어떤 메뉴와 페어링해도 자기 주장을 강하게 내세우지 않으면서 음식 본연의 맛을 받쳐주는 좋은 윙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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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음미하며 마시면 아주아주 희미한 단맛이 올라오는데 그 맛을 즐기는 편이다. 그런데 말이지 칭따오는 사실 꿀꺽꿀꺽 마셔도 충분히 맛있다. 칭따오를 최애 맥주로 꼽지 않더라도, 칭따오를 싫어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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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선물이란 이런 거다. 누구나 좋아하지만, 여기에 나만의 센스 한 꼬집을 더할 수 있는 그런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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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에게도 자기만의 A가 있을 거라 믿는다. 고마운 사람이지만, 멋쩍어서 유난스러워 보일까 봐 쉽게 마음을 전하지 못한 사람. 아 물론 그것이 자기 자신이라고 해도 난 두 팔 벌려 찬성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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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Author
이혜민

에디터M. 칫솔부터 향수까지 매일 쓰는 물건을 가장 좋은 걸로 바꾸는 게 삶의 질을 가장 빠르게 올려줄 지름길이라 믿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