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초보 시계 컬렉터 이주형입니다. 평소 시계에 관심이 있다면 결혼을 준비하며 하는 고민이 바로 예물 시계입니다. ‘이때 아니면 언제 시계에 큰 돈 써보겠어?’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왕이면 잘 알려진 브랜드의 시계를 살펴보게 되죠. 한 번의 기회니까, 더 고민이 많아지는 건 당연합니다. 저도 3년 전에 결혼할 때 비슷한 고민을 했었고요.
여러분의 고민을 조금 덜어드리고자, 이렇게 추천 가이드를 준비해 보았습니다. 이 추천을 준비하면서 고민했던 것이 바로 ‘많이 추천하는 대중적인 시계를 추천할까, 아니면 시계 컬렉터 입장에서 재밌는 시계를 추천할까’였습니다. 그래서 정답은… 둘 다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잘 알려진 다섯 브랜드에서 대중적인 선택과 재밌는 선택을 하나씩 골랐습니다. 선별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 복잡한 컴플리케이션이나 디자인 요소 없이 시·분·초침만 있는 ‘쓰리 핸더’일 것. (날짜 창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됨)
- 방수 레이팅 최소 100m 이상.
이 기준으로 고른 10가지 시계를 보겠습니다.
1. 롤렉스
예물 시계의 끝판왕은 단연 롤렉스입니다. 비록 시계 티어에서는 중간쯤이라고는 하나, 누구에게나 대표적인 시계 브랜드를 물어본다면 바로 롤렉스라고 대답할 겁니다. 그 이유는 롤렉스가 시계 산업에 미친 다양한 영향과 관련이 있고, 지금 소개하는 ‘오이스터 퍼페추얼’과도 큰 관련이 있습니다.

오이스터 퍼페추얼은 기계식 시계가 지금의 모습을 가지게 된 데 있어 가장 중요한 두 가지 부분을 상징합니다. 방수 케이스와 오토매틱 무브먼트. 사실, 이 얘기는 올해 초 기사에서 다룬 적이 있어요. 간단히 옮겨 적자면, 롤렉스는 전용 방수 케이스에 시계 본체를 넣는 방식의 방수를 자체적으로 방수할 수 있는 ‘오이스터 케이스’와 수동 와인딩 도중 방수 성능이 희생되는 일을 막기 위해 로터로 와인딩을 대신할 수 있는 ‘퍼페추얼 무브먼트’를 개발했습니다.
두 가지 혁신은 지금도 방수 성능이 100m를 넘는 거의 모든 시계에 적용될 정도로 기계식 손목 시계 역사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지금 추천한 오이스터 퍼페추얼은 이제는 기계식 손목시계의 표준이 됐지만, 100년 전 롤렉스가 선보인 이 두 가지 혁신의 정수를 보여주는 시계라 할 수 있습니다.

롤렉스에서 예물 시계로 ‘재밌는 선택’을 하자면 익스플로러 2입니다. 사실 많이 고민했습니다. 롤렉스는 각각의 라인업이 모두 상징적이니까요. 하지만 익스플로러 2는 이 중 가장 재밌는 시계라고 생각합니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탐험가를 위해 설계된 시계이면서 다른 시간대를 확인할 수 있는 GMT 무브먼트를 탑재했는데, 그 이유가 재밌거든요. 밤낮을 알기가 힘든 곳을 탐험할 때, 24시간 표시가 되는 GMT 무브먼트를 이용해 밖이 낮인지 밤인지 파악하기 쉽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물론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GMT 무브먼트의 원래 사용 케이스대로 사용하고 있긴 하지만, 그 목적에 따라 만들어진 디자인이 롤렉스 시계 중에서는 가장 개성이 많다는 생각입니다.
2. 까르띠에

까르띠에는 럭셔리 주얼리 브랜드 가운데 제대로 된 시계 헤리티지를 가진 몇 안 되는 브랜드입니다. 특히 그중 까르띠에 산토스는 최초의 현대적인 손목시계를 언급하면 빠지지 않죠. 회중시계만 있던 시절, 까르띠에의 창업자 루이 까르띠에는 비행기 조종사 아우베르투 산토스뒤몽에게 비행 중에도 쉽게 볼 수 있는 시계를 만들어달라는 의뢰를 받습니다. 오토파일럿이 없던 시절이라 조종사가 비행시간 내내 조종간을 붙잡고 있어야 해서 회중시계를 꺼내볼 수가 없었거든요. 이에 까르띠에는 ‘시계를 손목에 채우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이렇게 탄생한 것이 1904년의 첫 산토스였습니다. 시계의 이름도 시계를 의뢰한 산토스뒤몽에서 따 왔죠.
지금의 산토스 역시 그 당시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사각 케이스를 꽉 채운 다이얼 안의 큼직한 로마 숫자와 시 분침은 가독성을 높이면서도 산토스만의 독특한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더 높여줍니다. 그리고 100미터의 방수 성능으로 웬만한 상황에서 착용하기 좋습니다. 크기도 다양하게 있어서 자기 손목 둘레 사정에 맞게 선택할 수 있어요.

까르띠에에서 제가 고른 ‘재밌는 선택지’는 탱크입니다. 사실 탱크도 예물 시계로 인기가 많아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처음으로 등장한 탱크의 모습을 본 루이 까르띠에가 위에서 본 형상에서 영감받아 케이스를 디자인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역시 크기가 다양해서 커플로 시계를 맞추기도 좋죠. 제가 이미 예물 시계로 인기가 많은 탱크를 재밌는 선택지로 한 것은 바로 디자인과 방수 때문입니다. 전반적으로 매일 차는 시계라기보다는 드레스 워치에 더 가깝고, 방수 레이팅도 이를 반영하는 30m이거든요. 시계 업계에서 30m 방수는 사실상 생활 방수 수준이라, 착용한 상태로 물 속에 들어가는 것조차 힘드니까요.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탱크의 단단하면서도 미니멀한 느낌이 더 마음에 들긴 하네요.
3. 오메가
오메가에는 씨마스터와 스피드마스터, 드빌 등의 큰 카테고리가 있지만, 그 아래에도 다양한 레퍼런스가 있습니다. 이중 제가 대중적인 선택지로 고른 제품은 바로 씨마스터 아쿠아 테라 38mm입니다. 해양 시계를 표방하는 씨마스터의 서브 라인업 중 하나로, 완전한 다이버 시계인 다른 라인업과 다르게 다이빙 베젤을 빼고, 방수 레이팅을 일부 낮춰서 좀 더 드레시한 외관을 가진 것이 특징입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오늘 추천하는 대중적인 선택지 중에서 가장 깊은 150m입니다.

아쿠아 테라는 41mm와 38mm로 나뉘는데, 둘은 크기 외에 다른 무브먼트를 사용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둘 다 MRI에 들어가도 버티는 수준의 항자성을 가진 무브먼트를 사용하지만, 41mm에 들어가는 칼리버 8900은 해외를 나가거나 할 때 크라운을 1단계로 뽑았을 때 빠르게 시침 조정을 할 수 있는 ‘타임 존’ 기능이 들어가 있습니다. 하지만 41mm는 꽤 큰 편이라 좀 더 작은 38mm를 추천합니다. 아쿠아 테라는 워낙 다양한 다이얼 색과 패턴 조합으로 나오기에, 이중 마음에 드는 걸 골라보는 것도 나름의 쏠쏠한 재미입니다.
이제 좀 재밌는 선택지입니다. 물론 시계를 좋아한다면 곧바로 예상했을 스피드마스터이지만, 역시나 예상했을 문워치는 아닙니다. 제가 고른 레퍼런스는 바로 ‘퍼스트 오메가 인 스페이스’, 줄여서 ‘FOIS’입니다. 정확히는 얼마 전에 나온 2세대 레퍼런스인데요. FOIS는 스피드마스터가 정식으로 아폴로 미션에 우주비행사들이 차고 갈 손목시계로 선정되기 전인 1962년에 우주비행사 월터 시라가 궤도비행 실험을 위해 시그마 7호에 탑승했을 때 찼던 스피드마스터의 모습을 기반으로 만든 시계입니다. 이때는 장비에 대한 규정이 따로 없었고, 시라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개인 시계를 차고 우주에 다녀온 것이었어요.

FOIS는 이런 역사적 의미 외에도 문워치와 비교해 하나의 중요한 차이점이 있는데, 케이스 직경이 39mm로, 문워치의 42mm보다 살짝 더 작다는 점이에요. 태양빛의 반사로 인해 가독성을 해치면 안 된다는 나사의 요구사항에 맞춰 광택 표면을 없애고 다이얼도 무광으로 피니시한 문워치와 다르게 일부 폴리싱 처리된 스틸 케이스와 브레이슬릿, 그리고 그레이블루 다이얼 덕분에 문워치보다는 더 화려한 인상입니다. 거기에 다이얼 텍스트는 1960년대 당시 오메가와 스피드마스터의 폰트로 빈티지 느낌을 더 살렸습니다. 사용하는 무브먼트는 아쿠아 테라와 동일한 항자성을 가진 수동 크로노그래프 무브먼트 칼리버 3861로, 문워치와 같습니다.
4. IWC
IWC의 역사는 파일럿 시계의 역사와 함께합니다.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과 독일 양쪽에 모두 시계를 군납한 경험이 있고, 지금의 파일럿 시계 역시 이 헤리티지를 물려받았죠.

이중 Mark XX는 이 헤리티지의 직계 후손입니다. 다이얼과 시 분침은 군용 시계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인 높은 가독성을 보여주고, 40mm의 적당한 크기 덕분에 데일리로 착용하기에도 부담 없습니다. 또, Mark 시리즈 최초로 자체 개발 무브먼트를 탑재했습니다.

IWC의 다른 중요한 라인업은 바로 크로노그래프입니다. 특히 파일럿 시계를 기반으로 한 크로노그래프가 인기가 많고, 실제 미 해병대의 정예 비행 학교인 탑건 스쿨(네, 영화의 그 탑건입니다)에서 근무하는 군인들과 교육생들에게 특별 시계를 판매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중 제가 추천하고 싶은 제품은 바로 ‘어린 왕자’ 에디션입니다. 모두가 아는 생텍쥐페리의 그 소설입니다. 실제로 소설가이면서 파일럿이기도 했던 생텍쥐페리의 사후 설립된 재단과의 협업으로 20년 가까이 특별 에디션을 만들고 있는데요. 이번 어린 왕자 에디션은 파일럿 워치 크로노그래프 41mm를 기반으로 하며, 깊은 파란색 다이얼에 화이트 세라믹 케이스를 조합했습니다. 실제로 차 본 적이 있는데, 41mm의 크기와 15.5mm에 달하는 두께가 제법 묵직하긴 하지만 실제로 찼을 때는 생각보다 심하게 두껍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어요. 그리고 새하얀 세라믹 케이스와 푸른 다이얼의 조합이 실물로 보니 더 이쁘더라고요.
5. 태그호이어

현재 F1의 공식 파트너이기도 한 태그호이어는 레이싱 헤리티지에 걸맞게 크로노그래프를 주력으로 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정한 기준에 맞는 시계가 태그호이어에도 있으니, 바로 까레라입니다. 가장 기본적인 라인으로, 36/39/41mm의 다양한 크기와 심플하지만, 고급스러운 외형을 가지고 있어요. 다이얼 색도 다양해서 입맛에 맞게 고를 수 있죠.
하지만 위에서 말한 대로 태그호이어의 전문 분야는 크로노그래프이죠. 만약에 태그호이어에서 크로노그래프를 구매한다면 가장 추천할 수 있는 제품군은 바로 모나코입니다. 1969년에 처음 등장한 모나코는 모터레이싱과 깊게 연관된 태그호이어의 역사에서 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시계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실제 레이싱이 아닌, 1970년 영화인 <르망> 덕분이에요. 르망 24시간 레이스에 출전하는 레이서 역의 스티브 맥퀸이 찬 시계가 바로 모나코였거든요. 당시 소품팀에서 유일하게 촬영 도중 파손될 것에 대비한 예비 소품이 있었던 시계여서였다는 약간 허무(?)한 이유이긴 했지만, 어찌 됐든 영화 자체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어도 모나코를 차고 있는 맥퀸의 모습 자체는 많은 자동차 및 시계 마니아들의 뇌리에 각인되었죠. 그리고 그 오랜 역사 동안 모습이 크게 바뀌지 않고 옛날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 역시 모나코의 헤리티지에 기여하는 부분이겠죠.
그렇다면 이 추천을 하는 사람의 예물 시계는?
그럼, 번외편으로, 저는 어떤 시계를 예물로 들였을까 궁금한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희는 따로 예물은 교환하지 않았지만, 저는 아내가 프러포즈에 대한 답례로 신혼여행 때 선물한 시계를 예물 시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시계는 바로 오리스의 빅 크라운 포인터 데이트 칼리버 473입니다.

오리스의 빅 크라운 포인터 데이트는 오리스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라인업입니다. 1938년에 처음으로 등장한 이후, 한 번도 단종된 적 없이 지금까지 계속 유지되어 왔죠. 포인터 데이트의 핵심은 바로 날짜를 창 대신 핸즈로 표시한다는 것입니다. 분 표시 바깥쪽에 날짜가 한 바퀴 그려져 있고 이를 날짜침이 가리키면서 날짜를 표기합니다. 여기에 티파니 블루에 가까운 다이얼에 스위스에서 개체 수 조절을 위해 엄격한 규제 아래 사냥당하는 사슴의 가죽으로 만든 스트랩을 조합합니다. 뭔가 안 어울릴 것 같은 조합이지만 생각보다 매우 잘 어울려요. (최근에는 브레이슬릿 옵션도 추가되었습니다.)
이 시계에 탑재된 무브먼트인 칼리버 473은 오리스의 자체 개발 무브먼트입니다. 최대 120시간의 파워 리저브를 가진 수동 무브먼트로, 항자성도 가지고 있어 요즘같이 어디에든 자석이 있는 환경에다 최적이죠. 케이스 백은 사파이어 글라스로 무브먼트 뒤에 달린 파워 리저브 표시를 통해 앞으로 시계가 몇 시간 정도 더 갈 수 있을지도 확인할 수도 있어요. 흡사 스마트워치에서 남은 배터리를 표시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죠.

아내는 바쁘게 결혼 준비를 하던 어느 날, 같이 백화점을 돌아다니다가 오리스 부티크에서 이 시계를 바라보던 저를 보고 기억해 뒀다가 저 몰래 구매했습니다. 결국 이 시계는 아주 소중한 시계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시계 컬렉션의 특성상 많은 시계가 들어오고 떠나지만, 이 시계만큼은 평생 가지고 있지 않을까 싶네요.
이렇게 유명 브랜드의 예물 시계 추천과 실제 제 예물 시계까지 살펴보았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결국 여러분의 선택입니다. 물론 아무래도 큰돈을 쓰다 보니 모두가 고르는 대중적인 걸 고르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이고, 저도 그래서 대중적인 선택지를 추천해 드리긴 했지만, 시계는 특히 액세서리를 많이 안 차는 남성에게는 자신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분야(?) 중 하나입니다. 물론 제 추천을 참고하는 것도 좋지만, 많은 분에게 한 번뿐인 기회, 자신의 마음에 드는 시계에 투자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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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형
테크에 대한 기사만 10년 넘게 쓴 글쟁이. 사실 그 외에도 관심있는 게 너무 많아서 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