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덕질이 밥 먹여줍니다, 덕후 3인 인터뷰

좋아하는 마음으로 현생을 굴리는 사람들
좋아하는 마음으로 현생을 굴리는 사람들

2026. 10. 07

안녕하세요, 에디터 수은입니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에는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최애를 보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낯선 나라로 향하거나, 애니메이션을 원어로 즐기기 위해 새로운 언어를 배우기도 합니다. 좋아하는 마음을 따라 움직이다 보면 새로운 장소에 가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몰랐던 세계를 알게 되죠.

저는 그 힘이 살아가는 데 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좋아하는 게 있으면 기다려지는 날이 생기고, 평범한 하루에도 기대할 일이 생기니까요. 때로는 오늘을 살아갈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그 순수한 열정으로 덕질도 열심히, 현생도 열심히 살아가는 ‘덕후’들이 있습니다.

이탈리아 래퍼 덕후 ‘성현’, 치이카와 덕후 ‘효빈’, 차 덕후 ‘재우’ 세 명의 덕후를 만나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어디까지 직진해 봤는지, 그들의 덕질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지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그럼, 세 사람의 인터뷰를 바로 확인해 보시죠.


이탈리아 래퍼 덕후 ‘성현’
@gnamgnamgood

성현은 이탈리아 남쪽 지중해의 작은 섬나라 몰타에서 회사에 다니며 이탈리아 래퍼 ‘빌라 뱅크스’를 덕질하고 있습니다. 처음 성현을 알게 된 건 우연히 알고리즘을 타고 보게 된 한 영상이었습니다. 풀어헤친 셔츠와 커다란 벨트를 한 이탈리아 래퍼를 무대 객석에서 찍은 영상. 한국어를 단 한 마디도 뱉지 못할 것 같은 이 래퍼가 무대 위에서 너무나 한국적인 이름인 “성현!”을 정확한 발음으로 외치고 있었죠. 저 이름의 주인공은 대체 누구일까 궁금해졌습니다.

대부분의 한국인이 이름조차 모르는 이탈리아 래퍼의 공연을 50번 간 사람(그것도 매번 비행기를 타고), 최애와 함께 여행을 다닐 정도로 친한 사람, 공연장에서 매번 이름이 불리는 사람. 게다가 성현은 얼마 전 빌라 뱅크스의 최초 영어 인터뷰를 직접 진행해 자신의 인스타그램 채널에서 독점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덕질에서 협업까지, 말 그대로 ‘성덕’의 삶을 살고 있는 성현과 시차를 극복해 화상 통화로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예전에 이탈리아어를 배우려고 이탈리아 노래를 찾아서 듣다가 알게 됐어요. 처음에는 어떻게 생긴 가수인지 찾아볼 생각까지는 안 했었어요. 그때가 2022년이었는데, 당시에 제가 다니던 회사에 짝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거든요. 어느 날 그 사람이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나랑 이날 빌라 뱅크스 콘서트 보러 갈 사람?”하고 올린 거예요. 그래서 이 콘서트를 가면 우연히 짝남을 마주쳐서 친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간 거죠. 각각 다른 도시에서 이틀 연속으로 하는 콘서트였거든요. 처음 보는 30대 한국인이 연달아 자기 공연에 오니까 눈에 띄었나 봐요. 빌라 팬층 대부분이 이탈리아 소녀 팬이거든요. 결국 짝남은 콘서트에 오지 않았지만 그 계기로 빌라가 저를 알게 됐고, 저도 계속 공연을 보러 다니게 됐어요.

제 생일이었던 2024년 11월 10일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생일 전날인 9일에 빌라 공연을 보러 갔는데, 보통 자정 넘어서 무대가 시작되거든요. 사실상 실제 공연은 10일인 거죠. 그날은 제가 관객석이 아니라 무대 위 콘솔 쪽에서 공연을 보고 있었어요. 이미 저는 백스테이지에서 생일 축하를 받은 상태라 아예 예상 못 했는데, 갑자기 빌라가 저를 무대 가운데로 부르는 거예요. 오늘 자기에게 정말 중요한 사람의 생일이라고 소개하면서 관객들과 함께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줬어요. 태어나서 그렇게 많은 사람한테 생일 축하를 받아본 적도 없고, 게다가 한국도 아닌 이탈리아에서 생전 처음 보는 이탈리아 사람들한테 이탈리아어로 축하를 받는다는 게 되게 비현실적이잖아요. 그래서 기억에 많이 남아요.

‘도파민’인 것 같아요. 사실 빌라를 좋아하는 마음만 가지고는 이렇게까지 하기 힘들거든요. 집, 회사, 집, 회사를 반복하는 직장 생활을 하다 보니까 도파민이 필요하더라고요. 저에게 도파민은 공연을 보러 다니는 과정 자체인 것 같아요. 공연을 보기 위해서 평생 가 볼 일 없던 이탈리아 소도시에 가고, 여행하면서 현지인들과 이탈리아어로 대화도 해요. 또, 공연장이 시내에서 떨어진 외곽일 때는 밤에 차가 끊겨서 히치하이크도 하거든요. 작년에는 공연 보러 간 소도시의 마켓에 갔다가 모르는 사람이 자기 도시를 구경시켜 준다면서 저를 여기저기 데리고 다녔던 적도 있어요. 클럽에 갔다가 18살한테 번호를 따인 적도 있고요. 그냥 해프닝이지만 재밌잖아요. 그래서 다음에는 또 어떤 일이 생길까 기대가 돼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커졌어요. ‘나는 진짜 한다면 하는 사람이구나. 의지만 있다면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걸 해낼 수 있는 사람이구나.’ 덕질을 통해서 나 자신에게 증명한 것 같아요. 제 안의 초인적인 힘을 발견했달까요? 야간 근무를 마치자마자 공항 가서 비행기 타고, 24시간 동안 깨어 있다가 다시 돌아와서 멀쩡히 출근하고. 제가 이렇게 3년 동안 덕질하면서 회사에 병가를 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이탈리아어도 문법이 너무 어려워서 절대 못 배우겠다고 생각했는데, 덕질을 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하고 있더라고요. 제가 올린 덕질 릴스도 반응이 되게 좋고요. 그러면서 자신에 대한 확신이 생긴 것 같아요.

덕질의 끝은 ‘자기 계발’이다. 어릴 때 연예인 덕질을 하는 저를 보면서 부모님이 하시던 단골 멘트가 있어요. “연예인이 밥 먹여 주냐?” 그때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그럼 덕질도 나에게 이득이 되게 생산적으로 하면 되는 거 아니야?’ 학창 시절에도 직접 굿즈를 만들거나 팬들끼리 모여서 하는 조공 이벤트에 많이 참여했거든요. 그걸 포트폴리오로 만들어서 대학 입시에 사용했어요. 실제로 붙은 학교도 있고요. 지금 빌라 덕질의 사이드 퀘스트는 ‘이탈리아 소도시 100개 가기’예요. 여행하면서 현지인들과 친해지고, 이탈리아어도 배우고, 콘텐츠를 만들어서 소개하고 싶어요. 좋아하는 마음을 동력 삼아서 새로운 능력과 경험을 쌓는 것. 그게 제가 덕질을 하는 방식인 것 같아요.


치이카와 덕후 ‘효빈’
@hyo.gul

효빈은 자칭 타칭 ‘치이카와 강의 1타 강사’입니다. 인스타그램에서 ‘효굴’이라는 활동명으로 <치이카와> 덕질 영상을 제작해 업로드하고 있는데요. 특히 에피소드에 얽힌 비하인드나 세계관을 설명해 주는 릴스가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는 <먼작귀(먼가 작고 귀여운 녀석)>라고 불리는 일본 만화 <치이카와>는 이름처럼 작고 귀여운 동물 캐릭터입니다. 남성보다 여성 팬의 비율이 월등히 높은데요. 그래서 방 안이 온통 치이카와로 도배된 30대 남성 효빈이 어떤 사람인지 더 궁금했습니다. 권력 넘치는 치이카와 굿즈 풀착장으로 디에디트 사무실을 찾은 효빈에게 치이카와 입덕 계기부터 앞으로의 목표까지 궁금한 것들을 모두 물어봤습니다.

치이카와

치이카와를 처음 좋아하게 된 건 우연히 본 릴스 때문이었는데요. 이걸 이야기하려면 제가 인스타그램 덕질 계정을 운영하게 된 계기부터 설명해야 할 것 같아요. 저는 원래 쭉 오타쿠였어요. 그래서 여자친구한테 애니메이션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여자친구는 그냥 일반인이라 절 받아주는 게 힘들었나 봐요.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자기한테 하지 말고 인스타그램에 올려서 같은 걸 좋아하는 사람들과 나눠 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덕질 계정을 운영하게 됐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릴스를 많이 보게 되더라고요. 그 전에는 릴스를 거의 안 봤는데, 콘텐츠 제작에 참고할 목적으로 릴스를 보기 시작하면서 치이카와 영상까지 봐 버린 거죠. 처음에는 캐릭터가 귀엽다 정도로 생각했는데, 스토리와 세계관을 알게 되면서 완전히 빠져버렸어요. 치이카와가 마냥 귀엽기만 한 게 아니라 감동적인 에피소드가 많거든요. 굿즈도 하나씩 모으다 보니 이렇게 됐네요.

저는 척추 신경외과 응급실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어요. 3교대 근무라서 데이(낮), 이브닝(저녁), 나이트(밤) 이렇게 매일 일하는 시간이 다른데요. 오늘처럼 나이트 근무일 때는 아침과 낮 시간이 비어요. 보통 이때 덕질도 하고, 콘텐츠도 많이 찍어요. 어떤 릴스를 만들면 좋을지 아이디어도 고민하고요. 일이랑 덕질이 서로의 돌파구가 되어주는 것 같아요. 일하는 게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 덕질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반대로 덕질을 하면서 현타가 올 때는 응급실에서 일하면서 느끼는 뿌듯함이나 소소한 즐거움으로 다시 에너지를 얻어요.

치이카와가 아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잖아요. 제가 더 열심히 해서 나중에 보육원 아이들에게 치이카와 인형을 선물해 준다거나, 치이카와 옷을 입고 나타나서 아이들을 즐겁게 해 주는 그런 일을 꼭 해 보고 싶어요.

덕질의 끝은 ‘이어짐’이다. 덕후들은 다른 사람들한테 자꾸 자기가 좋아하는 걸 보여주면서 전파하려고 하잖아요. ‘이거 진짜 재밌고 좋은데 모르고 살면 진짜 손해야’ 이런 마음이 저절로 드니까요. 저도 콘텐츠를 올리면서 덕질을 전파하고 있고요. 제 콘텐츠를 보고 입덕하게 된 분들이 저의 덕후 영혼 한 조각을 나눠 가진 거라고 생각해요. 나의 덕질이 누군가의 덕질을 자극시키고, 계속 이어져서 결국 영원히 끝나지 않는 거죠.


차 덕후 ‘재우’
@wodnrla

재우는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서울 마포구의 ‘비원’이라는 찻집에서 일하며 꾸준히 차를 공부하고 있는 차 덕후입니다. 인스타그램에서 ‘woo’라는 활동명으로 차를 우리고 마시는 일인칭 브이로그 영상을 업로드하고 있는데요. 차 혹은 다도라고 하면 흔히 떠올리는 조용하고 정적인 분위기와 달리, 재우의 영상은 활기차고 통통 튑니다. 차를 우리기 전에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리듬 타는 게 루틴이고, 다기를 휙휙 던지며 장난을 치다가 가끔은 깨버리는 실수도 하죠. ‘찍먹다회’라는 다회를 직접 운영하면서 차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만나 함께 차를 즐기기도 합니다. 현재 재우가 일하고 있는 찻집을 방문해 함께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차

제대로 된 차를 처음 마셔본 건 21살 때였어요. 그 전까지는 티백이나 옥수수수염차 이런 것만 있는 줄 알았는데, 차를 좋아하는 친구가 여러 가지 전통차를 소개해 줬어요. 그때 처음 마신 차가 지금 마시고 있는 ‘백호은침’이에요. 쓰거나 떫지 않아서 직관적으로 맛있죠. 그래서 차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생기게 됐어요. 차를 직접 내리게 된 건 ‘아도’라는 찻집을 다니면서부터인데요. 여기도 차를 소개해 줬던 그 친구가 알려준 곳인데, 분위기가 제 취향에 맞아서 자주 가게 됐어요. 그러다 제가 군대를 전역할 때쯤 아르바이트생을 뽑길래 바로 지원해서 일하게 됐습니다. 손님들에게 차를 알려줘야 하는 입장이라 혼자서 공부를 많이 하게 됐고, 더 깊게 빠진 것 같아요.

사실 차는 정해진 길이 있는 게 아니라 많이 마셔보고 다양한 방식으로 차를 내려보면서 자기만의 기준을 세우는 게 공부인 것 같아요. 어떤 기물을 사용해야 하고, 물은 어떻게 붓고, 출수는 언제 하는지 같은 선택지에서 본인만의 정답을 찾는 과정인 거죠. 저는 그렇게 실전 감각을 익히면서 기본적인 지식은 책으로 공부하고 있어요. 처음에 샀던 책은 <茶쟁이 진제형의 중국차 공부>인데요. 유명한 산지의 차, 물의 종류가 차의 맛에 미치는 영향 같은 간략한 정보는 그걸로 공부했어요.

자격증은 국제일본차협회에서 진행하는 기본 클래스를 수강하고 취득했어요. 지금은 계획이 달라졌지만, 원래 대학을 졸업하고 일본으로 워킹홀리데이를 가려고 했거든요. 그때 현지 찻집에서 일하고 싶어서 취득한 자격증이에요. 최근에는 저보다 먼저 차를 시작한 분들을 직접 만나 뵙고, 어떤 방식으로 차를 익히고 계신지를 여쭤보면서 배우고 있습니다.

경영학과예요. 근데 학교를 잘 다니지 않아서… 전공 지식은 0에 가깝습니다. 저는 차에 빠지기 전까지는 진로에 대해 아예 갈피를 못 잡고 있었어요. 가장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싶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좋아하는 게 없고, 그렇다고 특별히 잘하는 것도 없었어요. 그러다가 차를 알게 된 거죠. 차는 제가 좋아하는 요소를 다 갖춘 것 같아요. 어렸을 때 잠깐 가졌던 꿈이 ‘곤충학자’랑 ‘요리사’였는데요. 곤충학자가 되고 싶었던 건 자연을 좋아해서였어요. 사육장을 자연처럼 꾸밀 수 있다는 게 흥미로웠거든요. 또, 제가 사람들에게 대접하는 것도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직접 만든 요리를 사람들에게 대접하는 요리사가 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자연과 가깝다는 것과 사람들에게 대접하는 것. 생각해 보니까 차는 이 두 가지를 다 갖고 있더라고요. 아직 진로를 완벽하게 정하지는 못 했지만 찻집에서 일도 계속하고, 다회도 함께 운영하는 팀을 결성해서 더 적극적으로 활동하려고 해요.

성격이 많이 바뀌었어요. 저는 MBTI 검사를 하면 I가 90% 이상 나오는 사람이에요. 말할 때 긴장해서 항상 목소리가 떨리고요. 그래서 처음 찻집에서 근무할 때 스몰토크가 가장 스트레스였어요. 근데 이렇게 계속 스몰토크를 무서워하면 차까지 싫어질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마인드를 바꾸자, 내가 알고 있는 차에 대한 정보를 손님들에게 전달하는 거라고 생각하자, 라는 마음으로 차 공부를 더 열심히 했어요. 차에 대해 알려드리면서 점점 스몰토크 자체에도 자신감이 생긴 것 같아요. 이제는 일 외적으로도 스몰토크를 잘 하게 됐고, 사람들과 만나는 일에도 별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요. 차를 마시면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니까 대인 관계도 좋아지고, 성격도 밝아졌어요.

덕질의 끝은 ‘성장’이다. 더 이상 좋아하지 않게 되더라도 덕질을 하면서 쌓아온 경험과 지식은 그대로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무언가를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경험하면 분명히 성장하거든요. 내가 정말 좋아했던 건데 어떤 이유로 인해 싫어진 거라면, 그 이유를 발견하게 된 거니까요. 나중에 새로운 일에 도전할 때도 도움이 되고, 싫어하는 요소를 뺀 새로운 무언가를 좋아하게 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죠. 그래서 덕질의 끝이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저는 그게 성장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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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은

에디터 수은. 애매한 취향은 축복입니다. 뭐든지 좋아할 수 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