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객원 에디터 조한슬이다. 인스타그램 피드에는 몇 초 단위로 새로운 카페와 빵집을 추천하는 글이 뜬다. 그것들을 보고 있으면 요즘 빵집을 고르는 기준이 대체로 ‘새로움’을 향하고 있다는 걸 절로 체감하게 된다. 에디터인 나 역시 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새로운 곳을 찾고, 아직 알려지지 않은 메뉴를 찾아다녔다. 그런데 어느 순간 좋은 빵집을 소개하기보다 남들보다 먼저 찾아내는 ‘서칭 경쟁’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작 나는 새로운 걸 찾아다니는 것보다 먹던 것을 먹고, 가던 곳을 가는 사람인데 말이다.
이렇게 빠르게 생겨났다 사라지는 것들을 보다 보니, 오히려 오래 남아 있는 것들에 눈길이 갔다. 그러면서 한 동네에서 수십 년을 버텨온 빵집을 하나둘 찾아다니는 취미가 생겼다. 이상하게 한 자리를 오래 지킨 빵집이 마을 어귀의 보호수처럼 느껴졌다. 주변 풍경도, 유행하는 빵도 수없이 바뀌었을 텐데 묵묵히 같은 자리를 지켜왔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 긴 시간을 한자리에서 보냈다는 사실만으로도 까탈스러운 내 입맛쯤은 맡겨도 될 것 같은 ‘묘한 믿음’이 생긴다. 무엇보다 그런 빵집의 매대에는 누군가 오래 좋아해 온 빵이 여전히 남아 있을 것만 같다. 그러다 올여름, 신수동에서 20년 넘게 자리를 지켜온 ‘장순민과자점’을 알게 됐다. 그리고 문득 그 막연한 믿음에 정말 근거가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어졌다. 나는 왜 오래된 동네빵집에서 묘한 안도감을 느끼는 걸까. 그 답을 찾아 장순민과자점을 다시 찾았다. 오래됨은 과연 무엇을 만들어내는가.
오래 살아남았다고 좋은 빵집일까?

사실 업력이 오래됐다는 것만으로 그곳을 좋은 빵집이라 할 수는 없다. 중요한 건 그 시간을 어떻게 쌓아왔느냐다. 나는 그걸 가늠할 때 주로 두 가지를 본다. ‘팥빵에 들어가는 팥을 직접 쑤는지’, ‘딸기잼을 직접 끓여 판매하는지’ 두 제품 모두 몹시나 노동집약적인 성격이 강하다. 그만큼 시간과 품을 들이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이런 사소한 고집에서 빵을 대하는 태도를 엿보곤 한다.

장순민과자점은 이 두 가지를 모두 갖춘 곳이다. 장순민 셰프는 30여 년 전 제과 일을 시작하며 익힌 방식 그대로 팥을 삶아 앙금과 양갱을 만들고, 직접 끓인 딸기잼은 따로 판매하거나 롤케이크에 발라 넣는다. 사서 쓰는 편이 훨씬 수월한 시대에도 장 셰프는 “기술자로서 할 줄 아니까 하지 않을 이유가 없어요”라고 말한다. 이제는 당연하지 않을 수 있는 수고를 여전히 당연한 듯 이어가는 모습에 마음이 갔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오래된 빵집을 향해 품었던 내 막연한 믿음에도 조금은 근거가 생기는 듯했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할 줄 아는 기술’은 언제부터 쌓인 걸까. 장 셰프가 처음 빵을 만들기 시작한 건 열일곱 살 때다. 대전의 ‘계룡제과’, ‘밀밭제과’, ‘신라방’을 거치며 기본기를 익혔다. “별이 떠 있을 때 출근해 달이 뜨면 퇴근했다”고 회상할 만큼 온종일 빵을 만들던 시절이었다.
이후 서울에 머물며 ‘김영모과자점’과 ‘리치몬드과자점’ 등 당시 ‘큰집’이라 불리던 1세대 제과점을 찾아다녔다. 책에서만 보던 제품을 직접 마주하면서 더 큰 곳에서 제대로 기술을 배워보고 싶다는 마음도 커졌다. 결국 김영모과자점에 다시 신입으로 들어간 그는 9년 만에 주방을 총괄하는 차장 자리까지 올랐다. 하루 많게는 16시간씩 작업하며 같은 일을 수없이 반복했다.
“빵 반죽을 100개 분할해본 사람과 1만 개 해본 사람은 속도부터 정확도까지 달라요.
같은 일을 수없이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몸에 배죠.”

장 셰프는 2005년 자신의 이름을 내건 장순민과자점을 열었다. 처음 10년은 그저 버티는 시간에 가까웠다. ‘이 길이 아니면 다른 길은 없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빵을 만들다 보니 단골이 하나둘 생겼다. 그렇게 20년 넘게 한자리를 지켜 신수동에서 가장 오래된 제과점이 된 지금, 그는 꽤나 담백하게 말한다. “지금의 장순민과자점은 제 마음에 들어요.”
장순민과자점의 20년에는 손님들의 시간도 함께 쌓여 있다. 매장을 찾은 날 오랜 단골과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장순민과자점을 언제 와도 “항상 그대로인 곳”, 오랜만에 들러 빵을 먹어도 “역시 이 맛”이라는 말이 나오는 곳이라 전했다.
역설적인 건 여기서 손님들이 말하는 ‘그대로’가 정말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라는 점이다. 장 셰프는 맛의 기본을 지키기 위해, 그 안에서 조금씩 더 맛있는 쪽으로 레시피를 바꿔 왔다. 단맛을 줄이기도 하고, 풍미를 더 깊게 하기 위해 주재료의 함량을 높이기도 했다. 치아바타에는 좋은 올리브와 올리브유를 아낌없이 넣고, 생크림은 100% 동물성만 사용한다. 눈에 띄는 변화를 만드는 대신, 손님들이 좋아해 온 맛 안에서 조금씩 나아지는 쪽을 택해온 것이다.


장순민과자점에 처음 간다면 어떤 빵부터 골라야 할까. 먼저 이곳의 대표 메뉴인 ‘두부과자’는 반죽에 두부를 아낌없이 넣어 담백하고 고소한 맛에 은근한 단맛이 더해진다. ‘초코소라빵’은 직접 끓인 슈크림에 초콜릿을 넉넉히 넣어 크림이 꾸덕하고 밀도 있다. 조금 든든한 메뉴를 찾는다면 ‘치즈모찌 샌드위치’를 권한다. 쫀득한 샌드위치 빵 사이에 무염 모차렐라와 고다치즈, 햄과 채소 등을 푸짐하게 채웠다. “원가를 줄이기보다는 좋은 재료를 쓰는 쪽을 택해왔어요.” 세 가지 모두 그 말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는 메뉴들이다.
매대에는 요즘 좀처럼 보기 힘든 빵이 다시 올라오기도 한다. 장 셰프가 오래 빵을 만들어왔다는 걸 알고 부러 옛날 빵을 부탁하러 오는 손님도 더러 있다. 요즘 파는 곳이 없어 어머니가 먹고 싶어 하는 빵을 만들어줄 수 있느냐는 식이다. 그러면 장 셰프는 그날 만들 계획에 없던 빵도 다시 굽는다. 한 사람을 위해 만드는 김에 조금 넉넉히 만들어 매대에도 올려두는데, 그 빵을 기억하는 또 다른 손님이 나타나 반갑게 집어 들곤 한다.
물론 매대가 옛날 빵으로만 채워지는 건 아니다. 이곳에 맞겠다 싶은 유행 제품은 새롭게 더하고, 유행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정리한다. 반면 크림빵처럼 오랫동안 찾는 손님이 있는 빵은 쉽게 없애지 않는다. 나는 이 점이 좋았다. 오래된 것을 무조건 지키는 게 아니라, 여전히 찾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남겨두는 것. 어떤 빵을 오래 남겨둔다는 건 결국 누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오랫동안 지켜봐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장사는 물건을 만들어 파는 일이지만, 한자리에서 오래 이어가다 보면 그 안에는 자연스럽게 사람과의 관계도 쌓이는 모양이다.
그가 지키려는 건 빵만이 아니다. 일주일에 사나흘만 문을 여는 빵집도 낯설지 않은 요즘, 장순민과자점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일주일 내내 문을 연다. 필요할 때 찾아오면 언제든 빵을 살 수 있는 가게여야 한다는 게 장 셰프의 생각이다. 자신의 편의에 맞춰 영업일을 줄이기보다, 웬만하면 매일 같은 자리에서 손님을 맞는 쪽을 택한 것이다.

한자리에서 20년 넘게 장사를 하다 보니 손님과 함께 나이를 먹는 일도 생겼다. 오래 살아온 토박이가 많은 동네인 만큼 할머니와 부모, 자녀까지 3대가 단골인 가족이 있고, 나이가 들며 먹을 수 있는 음식이 하나둘 줄어든 뒤에도 오랫동안 먹어온 이곳의 생크림 케이크를 찾는 어르신도 있다. 매장을 함께 운영하는 장 셰프의 아내는 얼굴을 익힌 손님이라면 음료를 덜 달게 마시는지, 진하게 마시는지까지 기억해뒀다가 다음에도 그 취향에 맞춰 내어준다. 두 사람은 사소한 일이라 말하지만, 손님에게는 ‘나를 기억해주는 가게’가 되는 순간이다.
오래된 동네빵집에서 내가 느꼈던 묘한 안도감도 어쩌면 여기에서 오는지 모르겠다. 좋아하던 빵 하나가 어느 날 매대에서 사라지고, 자주 가던 빵집이 문을 닫는 일이 그리 낯설지 않은 요즘에는 더 그렇다. 나 역시 다음에 소개할 새로운 빵집을 찾아다니느라 바빴지만, 장순민과자점에서는 오래 남아 있는 것에도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걸 다시 생각하게 됐다.
처음에는 그저 오래된 빵집이라 마음이 놓이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 안도감은 20년이라는 숫자보다 그 시간을 지켜온 사람에게서 오는 것에 가까웠다. 손이 더 가는 일을 쉽게 생략하지 않고, 오래 찾는 사람이 있는 빵은 함부로 없애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이 같은 자리에서 가게를 지키고 있기에 누군가는 오랜만에 찾아와도 ‘그래, 이 맛이었지’ 싶은 빵을 다시 만날 수 있다.
오래된 동네빵집은 이미 좋아하는 것을 굳이 새로운 것으로 바꾸지 않아도 되는 작은 자유를 준다. 시간이 흐르고 유행이 바뀌어도, 좋아하던 빵을 계속 좋아할 수 있다는 것. 오랜만에 찾아가도 그 빵을 다시 만날 수 있고, 다음에도 여전히 남아 있을 거라는 믿음. 그래서 나는 요즘 오래된 빵집을 찾아다닌다.
- 서울 마포구 토정로 219 1층
- 매일 10:00 – 22:00
- @jang_patisser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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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슬
많이 먹는 것보다 제대로 먹는 사람입니다. 빵과 디저트를 맛보고 신중하게 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