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릴스 대신 에세이, 주말의 허전함을 채워줄 책 5

재미와 감동이 있고, 호불호는 없습니다
재미와 감동이 있고, 호불호는 없습니다

2026. 07. 30

안녕, 여전히 주말마다 책을 읽는 에디터 수은이다. 사실 나는 새로 시작한 취미를 한 달 정도만 유지해도 ‘꾸준히 했네~’ 라고 속으로 뿌듯함을 느끼는 편이다. 뭐든지 쉽게 질리는 편이라 그 정도로 오래 해 본 취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2년 넘게 꾸준히 독서를 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기특해 스스로를 마구 쓰다듬어주고 싶을 지경이다.

최근에는 에세이에 빠졌다. 독서를 시작하고 의외로 가장 손이 안 갔던 장르가 에세이였다. 책 한 권으로 타인의 삶과 생각을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게 흥미롭지만 어려웠다. 내가 생각이 많은 사람이라 그런가. 내 생각과 작가의 생각이 머릿속에서 뒤엉켜 정리가 잘 안됐다. 그래도 뭐든지 계속하면 익숙해진다고, 에세이만 집중 공략하다 보니 그 혼돈의 매력에 빠져버렸다.

에세이를 읽는 건 친구와 대화하는 것과 비슷하다. 서로 생각이 같으면 꺅꺅거리며 함께 울고 웃을 수 있고, 서로 생각이 다르면 오히려 대화가 풍성하고 흥미진진해진다. 최근에 재밌게 읽은 단짝친구 같은 에세이 5권을 소개한다. 모두 소박하고 따뜻한 이야기들이라 편안하게 읽을 수 있을 거다.


[1]
읽다 보면 사랑하게 된다
<베를린에는 육개장이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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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에는 육개장이 없어서

이 책의 내용을 자극적인 유튜브 썸네일처럼 말해 보면 ‘베를린에서 팬티만 입고 다니는 독일인 아저씨랑 한집 살았던 썰 푼다.’ 정도 될 거다. 실제로도 그 내용이 전부다. 작가가 적성에 맞지 않는 잡지 기자 일을 그만두고 애인을 따라 독일 베를린으로 떠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집값을 아끼기 위해 쉐어하우스에 살게 되는데 그곳에서 룸메이트인 독일인 아저씨 ‘요나스’를 만난다. 건넌방과 거실을 쓰면서 계속 말을 거는 요나스, 작가의 이름인 ‘성진’을 ‘숭진’이라고 발음하는 요나스, 팬티만 입고 돌아다니는 요나스. 나와 같은 여성인 작가에게 이입해 보면 요나스라는 인간이 그렇게 짜증 날 수가 없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면 요나스가 시도 때도 없이 성진의 방문을 두드리는 것처럼 내 마음의 문을 “똑똑” 두드리며 자꾸만 안으로 들어오려고 한다. 요나스는 성진에게 자기만의 특급 레시피로 맛있는 아침밥을 차려주고, 독일의 문화를 조곤조곤 알려준다. 겨울이면 산타클로스 분장을 하고 아이들을 만나러 가는 배불뚝이 요나스, 당뇨가 심해도 디저트는 참지 못하는 요나스, 아파서 죽상이 돼도 “알레스 굿(다 괜찮아)!”을 외치는 요나스. 책의 중반쯤 되면 요나스는 작가와 나에게 애증의 친구이자 가족이 되어 있다.

요나스와 성진의 기묘한 동거 생활 기록과 함께 이 책의 묘미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에피소드가 끝날 때마다 마무리 역할로 나오는 ‘음식 레시피’. 요나스가 처음 만들어준 독일식 아침 식사, 요나스 아들 일리아스랑 같이 먹은 동베를린식 길거리 음식 ‘켓부어스트’ 등 에피소드 속에 등장하는 음식 레시피를 알려준다. 생소하지만 맛깔스러운 독일 음식을 알아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베를린에는 육개장이 없어서’. 베를린과 육개장이라는 낯선 조합만으로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스포일러가 될까 봐 자세히 말할 수 없지만, 올해 읽은 문장 중 가장 짧은 순간에 나를 울렸다. 꼭 ‘베를린에는 육개장이 없어서’라는 문장이 나오는 장면까지 읽어보길 바란다.

  • <베를린에는 육개장이 없어서> | 전성진 | 안온북스 | 1만 7,800원

[2]
매일 밤 도착하는 한 통의 편지
<일간 이슬아 수필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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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 이슬아 수필집

집에서 한참 떨어진 낯선 동네의 독립 서점에서 우연히 이 책을 만났다. 책 세 권은 포개놓은 듯한 두께와 빼곡하게 적힌 글자들. 두꺼운 책은 무조건 온라인 배송으로 구매한다는 뚜벅이의 철칙을 잊고 책을 집어 들었다. 마침 이슬아 작가의 다른 책을 재밌게 읽고 있던 터라 그녀의 대표 프로젝트인 ‘일간 이슬아’에 어떤 문장들이 담겨 있을지 궁금했다.

‘일간 이슬아’는 메일링 서비스계의 전설로 불리는 프로젝트다. 2018년 이슬아 작가는 한 달 치 구독료 1만 원을 받고 구독자들에게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직접 쓴 수필 한 편을 메일로 보냈다. 한 달에 스무 편, 한 편에 500원인 셈이다.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6개월간 진행되었고, 그렇게 쌓인 약 백 편을 엮은 책이 바로 <일간 이슬아 수필집>이다.

6개월 동안 매일 한 편의 수필을 공개했다는 건, 매일 한 편을 썼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몇 달, 길게는 몇 년 동안 고민하고 다듬어 완성하는 다른 책들과는 결이 좀 다르다. 이야기가 방금 건네 받은 듯 생생하게 살아 있다. 부모님인 ‘웅이’와 ‘복희’에 대해, 당시 만나던 남자 친구에 대해, 입대를 조금이라도 늦추기 위해 떠난 친구와의 급작스러운 해외여행에 대해 말한다. 마치 친구와 캄캄한 새벽, 편의점 앞 ‘드르륵 칵 의자’에 앉아 나눌 법한 내용들이다.

이 책을 자기 전에 한 편씩 읽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 고양이에게 “오늘은 뭐 하고 놀았어?”라고 묻는 마음으로 밤마다 책을 펼쳤다. 고양이와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대답이 돌아온다는 거다. 2018년을 살아가는 이슬아 작가가 어떤 하루를 보내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다면 <일간 이슬아 수필집>을 펼쳐 보면 된다.

  • <일간 이슬아 수필집> | 이슬아 | 헤엄 | 1만 7,000원

[3]
스마트폰 없이 저 먼 시칠리아로
<오래 준비해온 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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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준비해온 대답

지금 당장 길에서 아무나 붙잡고 알고 있는 ‘여행 에세이’를 하나 말해보라고 하면, 많은 사람이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를 떠올릴 것이다. 김영하 작가는 <살인자의 기억법>, <검은 꽃> 등 유명한 소설을 쓴 소설가이면서 60만 부 이상 판매된 여행 에세이를 쓴 작가이기도 하다. 그는 단순히 여행지에서 겪은 경험을 나열하는 대신, 자신의 시선에서 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을 기록한다. 그래서 그의 여행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삶에 대한 이야기로 향한다. 여행 역시 삶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많은 독자가 김영하 작가의 여행 에세이에 공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존재니까.

<오래 준비해온 대답>은 김영하 작가가 아내와 함께 떠난 이탈리아 시칠리아 여행을 기록한 에세이다. 2009년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라는 제목으로 처음 출간했고, 2020년 기존 원고에 한 꼭지를 더해 <오래 준비해온 대답>이라는 새로운 제목으로 개정판을 냈다.

이 책이 출간된 해는 국내에 아이폰이 처음 출시되던 때라고 한다. 다시 말해 이 여행은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의 여행이다. 실제로 작가는 현지에 도착한 뒤 그날 밤 묵을 호텔을 공중전화로 예약했고, 렌터카 조수석에 앉은 아내는 종이 지도를 보며 길을 찾았다. 지금 당장 스마트폰 없이 시칠리아로 떠난다고 상상해 보면 막막하면서도 묘한 해방감이 밀려온다. 절대 길을 잃지 않도록 효율적인 동선을 짜주는 챗GPT도, 인스타그램 실시간 업로드에 대한 압박도 없는 여행. 나는 늘 이런 여행을 꿈꿨고, 이 책을 읽으며 스마트폰 없이 저 먼 시칠리아로 떠날 수 있었다.

  • <오래 준비해온 대답> | 김영하 | 복복서가 | 1만 7,500원

[4]
길고양이 같은 당신에게
<고독한 밤에 호루라기를 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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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밤에 호루라기를 불어라

‘고독한 밤에 시끄럽게 호루라기를 왜 불지?’ 책 제목을 보자마자 머릿속에 1차원적인 질문이 떠올라 괜히 머쓱해졌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제목 아래에 설명이 담긴 짧은 산문 한 편이 자리하고 있다.

내용은 이렇다. 길고양이의 수명과 생존율은 여러 이유로 매우 짧고 희박하다고 한다. 작가는 문득 어느 거리 어느 골목에서도 길고양이 사체를 목격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코끼리가 죽을 때가 되면 조용히 동일한 은폐된 장소에 가서 죽는다는 이야기처럼 길고양이에게도 비밀스러운 공동 무덤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작가는 한겨울 혹한의 깊은 밤길을 혼자 걷다가 불현듯 죽을힘을 다해 작은 호루라기를 불어 버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고 한다. 그러면 인간들은 모르는 어딘가에서 하얀 사체로 얼어붙어 가고 있는, 자신의 생에서 가장 약한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아 홀로 고요히 잠들어 가고 있는 길고양이들이 전부 화들짝 깨어나 다시 움직이게 될 것만 같다고.

책의 제목이자 수록된 산문 중 하나인 ‘고독한 밤에 호루라기를 불어라’는 작가가 이 책을 통해 건네고 싶은 마음이다. 세상에 지쳐 조용히 사라지려는 길고양이 같은 존재들과 그런 순간을 지나온 자신에게 보내는 슬프고도 기쁜 사랑. 일종의 자기 고백이자 독자에게 건네는 삶의 이야기인 이 책은 어머니의 죽음과 반려견 ‘토토’의 죽음에 대한 기록으로 시작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에 대한 고찰이 빼곡한 책장을 넘길수록 오히려 삶이 얼마나 찬란한지 생각하게 됐다. 상처를 안고도 꿋꿋이 살아가는 사람의 인생은 그 자체로 빛나기 때문이다. 

작가는 말한다. 사랑에 대해 질문한다는 것은 인생과 죽음에 대해 질문하는 것이라고. 그러니 사랑에 대해, 인생과 죽음에 대해 계속 질문하며 살아가라고. 우울과 고독 속에서 삶의 방향을 잃어버린 청춘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같은 시간을 지나온 인생 선배의 다정하고 단단한 위로가 되어줄 것이다.

  • <고독한 밤에 호루라기를 불어라> | 이응준 | 민음사 | 1만 8,000원

[5]
내향인으로 살아남는 법
<내밀 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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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점심 이탈자, 숨고 싶지만 돈은 벌어야겠고, 수치심을 위한 장소. 이 문구들을 읽고 왠지 내 이야기 같아 마음 한구석이 꿈틀했다면 당신은 ‘내향인’일 가능성이 높다. 책의 저자인 김지선 작가는 자신을 ‘은둔과 거리를 사랑하는 내향인’이라고 소개하며 같은 내향인이라면 깊이 공감할 만한 순간들을 기록했다. 회사에서 점심시간만 되면 홀연히 사라지는 사람들, 아무도 나를 모르고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달고 사는 사람들, 사소한 일에도 얼굴을 붉히며 쉽게 부끄러움을 느끼는 사람들. ‘팀 내향인’의 리더를 자처하는 나는 읽는 내내 “아니 이거 내 이야기잖아?”를 외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마음속으로만.

작가는 프롤로그에서 제목 속 낯선 단어 ‘내밀’에 대해 먼저 이야기한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내밀은 ‘어떤 일이 겉으로 드러나지 아니함. 또는 그런 일.’을 뜻한다. 흔히 ‘내밀한’이라는 형용사로 사용되는 이 단어에는 두 가지 쓰임새가 있다. 하나는 나의 마음, 시간, 이야기 등 내가 가진 것을 수식할 때다. ‘내밀한 마음’, ‘내밀한 시간’처럼 나와 타인 사이의 거리를 넓히고 오직 나만 알고 있는 것을 표현한다. 반면 관계성을 품은 단어를 수식할 때는 ‘내밀한 대화’, ‘내밀한 사이’처럼 오히려 나와 타인의 거리를 좁히는 말이 된다. 작가는 이렇게 내밀함이 만들어내는 멀고도 가까운 거리를 사랑한다고 말하며 내밀하게 살아가는 내향인의 삶에 대한 찬사인 <내밀 예찬>을 펴냈다.

자신을 숨기기보다 드러내는 것이 자연스러운 시대. 내향인들은 ‘내밀한’의 두 가지 쓰임새처럼 멀고도 가까운 사람으로 여겨진다. 이들은 속마음이나 생각을 다 말하지 않으며, 때로는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를 거부한다. 그러나 혼자, 혹은 각별한 사이의 사람들과 같이 있을 때 이들은 누구보다 깊고 풍부한 내면을 보여준다. 쉽게 말하지 않는 만큼 오래 생각하고,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 만큼 깊게 관계 맺는다. <내밀 예찬>은 그런 내향인의 삶을 ‘내밀’이라는 모순적인 단어로 풀어내며 있는 그대로 예찬한다. 내향인에게는 ‘이렇게 살아도 괜찮다’는 따뜻한 위로를, 외향인에게는 나와 가까운 누군가를 이해하는 새로운 관점을 건네는 책이 될 거다.

  • <내밀 예찬> | 김지선 | 한겨레출판 | 1만 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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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은

에디터 수은. 애매한 취향은 축복입니다. 뭐든지 좋아할 수 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