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얼마 전 파리에 다녀온 객원 에디터 길보경이다. 뉴스로 접해 알겠지만, 올해 초여름의 파리는 유독 뜨거웠다. 페스티벌이나 월드컵의 열기라면 반가웠겠지만, 기록적인 더위는 견디기 쉽지 않았다. 에어컨을 쉽게 찾기 어려운 도시에서 잠시 숨을 돌릴 수 있었던 곳은 아이스크림 가게였다. 매일 한 번씩 들러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달아오른 몸을 식혔다.
더위를 핑계 삼아 매일 아이스크림을 찾아다니면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파리에는 아이스크림 가게가 정말 많다는 것. 동네마다 개성 있는 작은 숍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젤라토와 소르베 전문점부터 선데 아이스크림, 요거트 아이스크림을 선보이는 곳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각 가게마다 제철 재료와 독특한 조합을 앞세운 메뉴가 있어 비교하며 찾아가는 재미가 있다.
이번 기사에서는 파리지앵과 여행자가 두루 찾는 아이스크림 가게 일곱 곳을 소개한다. 오랜 시간 사랑받아온 클래식한 숍부터 최근 주목받는 신생 브랜드까지 골고루 담았다. 파리 여행 중 가볍게 들를 수 있는 아이스크림 가게를 찾고 있다면 참고해도 좋다.
[1]
JJ Hings Ice Cream & Things
지난 6월, 기온이 한때 46도까지 치솟자 파리 시는 생마르탱 운하(Canal Saint-Martin) 일부를 시민 수영장으로 개방했다. 더위에 지친 사람들이 하나둘 물에 뛰어들며 운하는 순식간에 여름 명소가 됐다. 그 진풍경을 구경하러 갔다가 뜻밖의 수확도 얻었다. 바로 제이제이 힝스 아이스크림 앤드 싱스(JJ Hings Ice Cream & Things)다. 이곳은 메뉴판부터 범상치 않다. ‘첫 데이트(First Date)’, ‘지나치게 진지하지 않은(Deeply Unserious)’ 같은 메뉴명만 들어도 맛이 궁금해진다. 클래식한 젤라토부터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바닐라 소프트 선데, 아이스크림을 번이나 도넛과 결합한 창작 메뉴까지 선택지도 다양해 고르는 재미가 쏠쏠했다.
나의 추천은 ‘아테 펫 내티 앤 칠리 초크 칠리(Athé Pet Natty & Chilly Choc Chilli)’. 살구 소르베에 오렌지 내추럴 스파클링 와인을 가미하고, 플뢰르 드 셀 초콜릿 아이스크림에는 매콤한 딸기 소르베를 조합했다. 가장 궁금했던 건 딸기 소르베였다. 첫맛은 산뜻하고 달콤했다. 뒤이어 은근한 매운맛과 감칠맛이 맴돌았다. 짭짤한 초콜릿과도 의외로 잘 어울려 인상적이었다.
- 46 Rue Bichat, 75010 Paris
- @jjhings
[2]
Isotope
매끈한 편집숍이 즐비한 마레 지구와 유난히 잘 어울리는 아이소토프(Isotope). 팝한 컬러와 경쾌한 패턴이 시선을 끄는 이곳은 개성 있는 젤라토를 다채롭게 선보인다. 그중 인기 메뉴는 흑임자 아이스크림과 자몽 마멀레이드. 흑임자의 짙은 고소함 사이로 자몽의 쌉싸름한 산미가 파고들고, 담백한 우유 맛이 입안 가득 부드럽게 퍼진다. 진하지만 무겁지 않고, 상큼하지만 가볍지 않다.
이곳의 분위기는 동네 사랑방에 가깝다. 강아지와 산책하다 들른 사람, 아이와 함께 온 가족, 주인장과 안부를 나누는 단골 등 로컬 방문객이 대부분이다. 매장 한쪽에는 차가운 민트를 동동 띄운 허브 워터가 놓여 있었다. 어찌나 단비 같은지. 더위에 지친 손님을 챙기는 주인장의 넉넉한 환대가 느껴졌다.
- 8 Rue Dupetit-Thouars, 75003 Paris
- @isotope_paris
[3]
Yogurt Factory
요거트 팩토리(Yogurt Factory)는 2011년 마르세유에서 시작해, 이듬해 파리에 상륙한 프로즌 요거트 브랜드다. 매장 앞을 지날 때마다 10대 혹은 20대로 추정되는 젊은이들이(?) 길게 줄을 서 있어 늘 궁금했다. 대체 뭘 먹으려고 저렇게 기다리는 걸까.
알고보니 파리의 ‘요아정’이었다. 기본은 지방 0%를 내세운 새콤하고 부드러운 요거트 아이스크림. 여기에 ‘귀여운(Le Mignon)’, ‘멋진(Le Beau)’, ‘근사한(Le Magnifique)’이라는 이름의 컵 크기를 정하고, 원하는 토핑을 고르는 식이었다. 딸기와 망고 같은 생과일부터 오레오, 킨더 부에노, 브라우니, 머랭, 각종 젤리와 캐러멜 소스까지. 선택지가 빼곡하다. 정해진 가격에 토핑을 원하는 만큼 올릴 수 있으니, 자제력은 온전히 손님의 몫.
처음엔 건강한 요거트 아이스크림을 먹는다는 마음으로 임했지만, 결국 젤리와 초콜릿을 산처럼 쌓고 말았다. 길티 플레저의 완성이다. 참고로 더 욕심내고 싶다면 요거트 아이스크림과 토핑을 가득 채운 버블 와플도 있다.
- 3 Rue Saint-Merri, 75004 Paris
- @yogurtfactory
[4]
Pozzetto
포체토(Pozzetto)의 문을 여는 순간, 차가운 공기가 온몸을 덮쳤다. 에어컨의 존재가 이보다 더 반가울 수 없었다. 땀에 절어 지나가는 이들에게 ‘바로 여깁니다!’하고 소리치고 싶었다. 이곳은 이탈리아 토리노 출신 마우라 부를란도가 2005년 문을 연 젤라토 가게다. 매일 신선한 우유와 제철 과일로 젤라토를 만든다. 20년 넘게 쌓아온 내공은 메뉴판에서도 드러난다. 맛의 가짓수가 무척 많지는 않다. 오히려 그래서 더 믿음이 갔다. 잘하는 것만 내놓는 집 같았다.
젤라토의 기본 중 기본인 딸기와 레몬 소르베를 골랐다. 한입 뜨자마자 밀도가 느껴졌다. 공기처럼 가볍게 사라지는 아이스크림이 아니라, 혀에 찰싹 붙는 꾸덕한 질감이었다. 딸기는 잘 익은 과육을 그대로 갈아 넣은 듯 달고 향긋했다. 레몬은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새콤했지만 쓴맛 없이 깔끔했다. 무엇보다 맛이 무척 진하고 선명했다. 파리에 살았다면, 이곳의 단골이 되지 않았을까.
- 39 Rue du Roi de Sicile, 75004 Paris
- @pozzettoparis
[5]
Glaces Glazed
글라세 글레이즈드(Glaces Glazed)는 좋은 음악과 독창적인 맛을 함께 내세우는 아이스크림 가게다. 창립자 앙리 기테(Henri Guittet)는 음악 축제에서 푸드 트럭을 운영하며 이름을 알렸고, 이후 파리에 정식 매장을 열었다. 메뉴 이름은 록과 팝 음악에서 따온다. 망고에 고추를 넣은 ‘펌프 업 더 볼륨(Pump Up the Volume)’, 오렌지에 캄파리와 발사믹 식초를 섞은 소르베처럼 과일에 향신료와 술을 과감하게 더한 메뉴들이 눈에 띄었다.
여름 시즌 메뉴로 선보인 망고 소르베도 재밌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망고 맛 같지만, 잘 익은 과일의 달고 진한 풍미 뒤로 고추의 은근한 매운맛이 따라온다. 알싸함이 단맛을 산뜻하게 끊어준다는 반응이 대다수. 한 스쿱으로 부족하다면 밀크셰이크를 골라보자. 원하는 아이스크림 두 가지를 우유와 함께 갈아주며, 휘핑크림도 추가할 수 있다.
- 54 rue des Martyrs, 75009 Paris
- @glazed_paris
[6]
Berthillon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다리를 건너면 17세기 저택과 작은 상점이 늘어선 조용한 생루이 섬에 닿게 된다. 파리의 낭만을 농축해놓은 듯한 골목을 걷다 보면 짙은 나무 간판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이 보인다. 목적지는 모두 같다. ‘파리 최고의 아이스크림 가게’로 손꼽히는 베르티용(Berthillon)이다. 베르티용의 역사는 195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레몽 베르티용과 아내 에메잔이 생루이섬의 작은 카페 호텔 ‘르 부르고뉴’를 운영하며 아이스크림을 만들기 시작했다. 지금도 가족이 대대손손 운영 중이다. 매장 뒤편 작업실에서 매일 아침 같은 조리법으로 아이스크림과 소르베를 만든다. 7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장소도 방식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베르티용의 진가는 과일 소르베에서 드러난다. 그중에서도 진한 카시스 소르베와 솔티드 캐러멜의 조합을 추천한다. 카시스가 검붉은 과즙의 새콤하고 떫은 맛을 자랑한다면, 솔티드 캐러멜은 살짝 태운 설탕의 깊은 단맛과 소금기가 매력적이다. 서로 정반대라 더 잘 어울린다. 이곳은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문을 여니, 참고할 것.
- 29–31 Rue Saint-Louis en l’Île, 75004 Paris
- @berthillon_official
[7]
Folderol
와인과 아이스크림, 이른바 ‘와아’ 조합을 파리에 유행시킨 대표 주자. 폴더롤(Folderol)은 파티시에 제시카 양(Jessica Yang)과 셰프 로버트 컴패니언(Robert Compagnon)이 2020년 문을 연 와인 바 겸 아이스크림 가게다. 붉은 외관 앞에는 늘 파리의 힙스터와 여행자가 뒤섞인 줄이 늘어선다. 안으로 들어가면 말발굽 모양의 바가 먼저 보이고, 선반에는 내추럴 와인과 금속 아이스크림 잔이 빼곡하다. 아이스크림은 매장에서 소량씩 만들며, 메뉴는 계절과 재료에 따라 수시로 달라진다.

올리브 오일과 피스타치오, 요거트처럼 담백한 맛부터 콜드브루와 시나몬 치즈케이크처럼 개성 강한 조합까지 선택의 폭이 넓다. 포카치아와 치즈, 샤퀴테리, 올리브도 준비돼 있어 식전주를 즐기러 들르기에도 좋다. 처음이라면 올리브 오일 아이스크림에 가벼운 펫낫 한 잔을 곁들여보자. 진하고 매끈한 아이스크림 뒤로 와인의 산뜻한 기포가 이어진다. 정해진 페어링은 없다. 그날 끌리는 와인과 아이스크림을 마음대로 고르면 된다. 자리가 없거나 와인까지 마실 여유가 없다면 아이스크림만 포장해도 좋다.
- 10 Rue du Grand-Prieuré, 75011 Paris
- folderol.fr
40도를 웃도는 파리의 폭염은 실제로 겪어보니 만만치 않았다. 집을 나서기도 전부터, 땀범벅이 되어 샤워를 하루에 서너 번씩 해야 했다. 2024년부터 매년 여름 파리를 찾았지만, 이렇게 진심을 다해 아이스크림 가게를 찾아다닌 건 처음이었다. 에어컨을 기대하기 어려운 도시에서 택한 나름의 아날로그 피서법이었달까.
기록적인 무더위에 대처하는 파리 사람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다. 수영 구역이 아닌 운하에 망설임 없이 풍덩 뛰어들고, 거리에서는 물뿌리개와 호스로 서로에게 물을 끼얹었다. 더위를 이기는 방법치고는 너무나 원초적이고 정직해서 피식 웃음이 났다. 낭만과는 다소 거리가 먼 풍경이었지만, 뜨거워진 도시를 다 함께 버텨내는 모습이 조금 짠하기도 했다.
다행히 내가 서울로 돌아온 직후, 파리도 평년 기온을 되찾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현지인들은 이처럼 더운 날이 길어야 며칠이라 에어컨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 여름을 겪고 나니 부디 그 ‘며칠’조차 찾아오지 않기를 바라게 됐다. 그래도 폭염 덕분에 파리의 아이스크림 지도를 제법 촘촘하게 완성했으니, 고생만 한 여행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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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보경
걷고 뛰며 바라본 세상을 글로 풀어내는 매거진 에디터. 언제나 자유롭고 여유롭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