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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치스 앤 원더스 2026을 빛낸 시계 6

올해도 철저히 주관적으로 골랐습니다
올해도 철저히 주관적으로 골랐습니다

2026. 04. 24

안녕하세요, 경증 시계 덕후(?) 이주형입니다. 매해 4월 초에는 ‘워치스 앤 원더스’가 열립니다. 다양한 시계 브랜드들이 신형 모델을 선보이는 일종의 업계인들을 위한 박람회라고 할 수 있죠. 시계 업계의 CES라고 보면 됩니다. 올해도 다양한 브랜드들이 신형 시계들을 선보였습니다. 이중 눈에 띄는 신제품들을 모아 왔습니다.


올해는 롤렉스에 중요한 해입니다. 롤렉스 오이스터 케이스가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거든요. 1926년에 처음으로 등장한 롤렉스 오이스터 케이스는 롤렉스뿐만 아니라 시계 역사에서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아직 손목시계라는 물건이 등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특히 손목에 차고 다닌다는 특성상 물이 튀거나 심하면 물에 담가지더라도 시계 무브먼트가 망가지지 않는, 방수 기능을 안정적으로 구현하는 것이 어려웠던 시절입니다. 그래서 시계 본체를 완전히 밀폐되는 케이스에 넣어서 방수를 구현하는 방식이 먼저 등장했는데, 당시에는 오토매틱 로터도 없던 시절이라 무조건 메인 스프링(태엽)을 감아줘야 했고, 그러려면 이 밀폐된 케이스에서 시계를 계속해서 꺼내야 했죠. 여러모로 매우 불편했어요.

그런데 롤렉스가 오이스터 케이스로 이 문제를 해결한 것입니다. 롤렉스는 시계 케이스의 베젤과 크라운, 그리고 케이스백을 모두 나사처럼 돌리는 방식으로 밀폐시켰고, 5년 뒤에는 여기에 로터를 통해 알아서 메인 스프링이 감기는 오토매틱 무브먼트로 웬만해서는 크라운조차 풀을 일이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오이스터 퍼페추얼의 ‘퍼페추얼 perpetual’이라는 단어가 오토매틱 무브먼트를 지칭하는 롤렉스의 용어입니다.) 이제 이 포맷은 어느 정도의 방수 성능을 갖춘 손목시계의 정석과 같은 구조로 자리하게 되었죠.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2026년, 롤렉스는 이를 기념해 오이스터 퍼페추얼 2종을 선보였습니다. 롤렉스는 다른 시계 제조사들과 다르게 과거를 돌아보거나 옛날 디자인을 복각하거나 하는 일은 잘 없지만, 이번만큼은 이를 기념하고 있었던 듯해요.

하나는 ‘주빌리’ 다이얼 레퍼런스입니다. 주빌리 다이얼은 특정 이벤트를 기념해 롤렉스가 내놓는 일종의 특별 다이얼입니다. 이번 오이스터 퍼페추얼의 주빌리 다이얼은 ROLEX라는 문자가 무려 10개의 색과 함께 다이얼에 새겨진, 어떻게 보면 롤렉스답지 않은 재밌는 요소를 볼 수 있어요. 이 10개의 색은 한 번에 한 개의 색만 인쇄해서 층층이 쌓아 올리는 구조라고 해요.

다른 하나는 오이스터 케이스 100주년 레퍼런스입니다. 스테인리스 스틸 케이스와 브레이슬릿, 그리고 18캐럿 골드 베젤이 조합된 ‘롤레조’ (투톤) 구성입니다. 여기에 슬레이트 그레이의 선레이 방식 다이얼에는 롤렉스의 상징 색과 같은 초록색을 ‘ROLEX’ 텍스트를 새겼고, 아래에 ’SWISS MADE’가 새겨졌던 자리엔 ‘100 YEARS’라는 문자가, 크라운에는 롤렉스 왕관 로고 아래에 ‘100’을 새겨 오이스터 케이스 100주년을 기념합니다.

두 종류의 레퍼런스 모두 31/36/41mm의 케이스에 오이스터 브레이슬릿을 채택하고 있으며, 파워리저브 70시간에 하루에 -2~+2초의 정확도를 가진 3230 무브먼트를 채용합니다. 가격은 주빌리 다이얼 레퍼런스가 각각 968만 원과 1,036만 원(36mm), 1,087만 원(41mm)이고 100주년 롤레조 레퍼런스가 각각 1,180만 원(31mm), 1,299만 원(36mm), 1,486만 원(41mm)입니다.


오리스 스타는 어떻게 보면 오리스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시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계의 중요성은 스위스 정부가 제정한 이상한 법과 관련이 있어요.

1934년에 스위스 정부는 허락 없이 새로운 시계 기술을 개발할 수 없다는 법이 제정됩니다. 이른바 ‘1934년의 시계 규정 (Uhrenstaut)’이라 불리는 이 법은 5년 전에 벌어진 미국발 대공황의 여파로 스위스의 시계 업계가 파탄이 난 상태에서, 이미 더 높은 수준의 시계 무브먼트 기술을 가지고 있던 럭셔리 제조사들이 새로운 경쟁 업체를 막기 위해 스위스 정부에 로비한 것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런 법을 허용한다는 게 미친 소리 같지만, 이미 대공황으로 인해 아수라장이 된 시계 업계를 어떻게든 살려 보려는 정부 입장에서도 시계 업체들이 쓸데없는 경쟁에 휘말려 망하기라도 하면 문제가 될 것이라는 판단이 있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이 법으로 인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지도 못한다는 것이었어요. 1934년 법 제정 당시 기준으로 이미 상용화가 된 기술만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었으니까요. 거기에, 어차피 기술 개발을 하려면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했으니, 필요성을 못 느끼고 산업 전반의 기술 발전도 지지부진하게 되었죠. (혹자는 이후 쿼츠 파동 때 스위스 시계 산업이 큰 타격을 받게 된 근원이 바로 이 시계 규정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법이 제정됐을 당시 창업한 지 30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신생 기업인 오리스는 판매량 확대를 위해 저렴한 방식의 무브먼트를 사용했고, 그렇게 그 무브먼트 기술만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심지어 더 나은 무브먼트 기술을 가진 다른 업체의 무브먼트를 사 올 수도 없었어요.

1934년의 시계 규정을 철폐한 후의 기념 사진. 왼쪽에서 네 번째가 롤프 포르트만 박사 (현 오리스 명예 회장)

오리스는 결국 회사의 생존을 위해 1956년부터 이 법을 철폐하기 위한 운동을 벌이기로 합니다. 변호사인 롤프 포르트만 박사를 고용해 1934년의 시계 규정을 철폐하기 위해 기나긴 로비 캠페인을 개시했습니다. 이 캠페인은 무려 10년이나 지속되었고, 결국 1966년이 되어서야 법은 없어집니다. 오리스는 이를 기념해 그간 사용하지 못하고 있던 새로운 기술을 활용해 시계를 내놓는데, 이것이 바로 오리스 스타였어요. (포르트만 박사는 지금도 오리스의 ‘명예 회장’직을 맡고 있습니다.)

1967년에 처음으로 선보인 오리스 스타.

오리스의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이 사건에서 60년이 흐른 지금, 오리스가 이 스타를 복각했습니다. 새로운 ‘오리스 스타 에디션’의 케이스는 당시의 크기를 충실히 재현한 35mm이고, 은색의 다이얼이나 전반적인 생김새 모두 당시의 디자인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1960년대의 오리스 스타가 새것인 상태로 60년을 잠들고 있었다가 지금 나왔다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예요.

물론 60년이 흐른 만큼 새로운 게 없지는 않습니다. 야광 인덱스는 슈퍼 루미노바를 사용했고, 무브먼트는 셀리타 SW200-1 기반의 오리스 733을 사용합니다. 그간 시간이 흐른만큼 전반적인 만듦새도 훨씬 좋아졌겠죠. 오리스 스타 에디션의 가격은 340만 원으로, 5월 중 발매 예정입니다.


보통 ‘우주로 간 시계’라고 한다면 뭐가 떠오르나요? 아마 대표적으로 오메가 스피드마스터가 생각날 겁니다. 그 외에도 우주로 간 시계는 다양한데, 이렇게 우주로 간 시계의 대체적인 특징이라고 한다면 바로 애초에 우주로 간다고 생각하지 않고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스피드마스터만 봐도 그렇습니다. 애초에 스피드마스터는 레이싱 크로노그래프로 출시된 시계였거든요. 그런데 아폴로 프로그램을 준비하면서 나사가 우주에 나가도 살아남을 수 있는 시계를 다양하게 테스트해 본 결과 오메가 스피드마스터가 선택되었고, 그렇게 아폴로 우주비행사들은 스피드마스터를 차고 올라간 것이었죠. 이렇게 ‘우연찮게’ 역사를 만든 시계들은 그만큼 더 강력한 스토리를 만들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우주를 위해 만든 시계는 어떨까요? IWC의 파일럿 벤처러 버티컬 드라이브 (이하 벤처러)가 그러한 시계입니다. 벤처러는 민간 우주 정거장을 제작하고 운영하는 ‘배스트(Vast)’와 함께 개발했고, 배스트의 우주항행 적합 인증도 받은 시계입니다.

딱 보면 뭔가 특이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기계식 시계이지만 크라운이 없습니다. 물론 시계 자체가 오토매틱 무브먼트여서 중력이 있다면 알아서 메인 스프링을 감을 수 있지만, 무중력 상태에서는 우주복을 입었을 때도 쉽게 감을 수 있게 하기 위해 크라운 대신 베젤을 이용합니다. 베젤을 돌려주면 메인 스프링이 감기는 것이죠.

벤처러는 기본적으로 여행자 GMT 시계로, 네 번째 GMT 핸즈를 집 시간대로 둔 채로 시침을 빠르게 옮겨서 현재 있는 곳의 시간 설정을 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인 GMT 시계라면 이 모든 조작을 크라운으로 하겠지만, 벤처러에서는 왼쪽에 있는 두 개의 버튼과 베젤의 조합으로 모든 조작이 가능합니다. 시간 설정 역시 베젤로 할 수 있죠.

케이스는 44.3mm로 꽤 큰 편이긴 하지만, 곧바로 아래로 떨어지는 스트랩 구조라 조금 얇은 손목이라도 착용이 그렇게 어렵진 않을 거 같습니다. 케이스는 세라믹으로 만들었고, 베젤과 케이스백은 세라늄과 티타늄을 섞은 IWC의 독자 소재인 ‘세라타늄’으로 만들었습니다.

벤처러는 내년에 있을 배스트의 첫 우주정거장인 헤이븐-1을 발사하는 미션에 참가하는 우주비행사의 손목에 착용될 예정입니다. 벤처러의 가격은 4,100만 원입니다.


파텍 필립의 노틸러스가 올해로 출시 50주년을 맞습니다. 전설적인 시계 디자이너 제랄드 젠타가 설계한 노틸러스는 시계 디자인에서 제타의 대표적인 업적이라 할 수 있는 일체형 브레이슬릿 스포츠 시계 3대장(다른 둘은 오데마 피게 로열오크와 IWC 인제니어) 중 하나로, 어떻게 보면 선구자 격인 시계이기도 합니다. 3대장 중에서는 가장 구하기 힘든 시계로 많은 시계 마니아가 마지막 꿈의 시계로 꼽기도 합니다.

이 50주년을 기념해 다양한 노틸러스 레퍼런스들이 선을 보였지만, 제 눈길을 끈 것은 바로 노틸러스 탁상시계였습니다. 화이트 골드로 만든 50.56mm 케이스에 노틸러스의 다이얼을 그대로 재현했습니다. 위 서브 다이얼에는 파워 리저브 인디케이터, 그리고 아래에는 초침과 날짜 침이 함께 배치되었어요. 무브먼트는 칼리트라바 5328G-001에 쓰였던 31-505 8J PS IRM Cl J 칼리버를 사용합니다. 8일의 파워 리저브를 갖고 있어서 한 번 감으면 1주일 정도 다시 감을 필요 없이 쓸 수 있어요. 탁상시계의 종결자가 될 노틸러스 탁상시계의 가격은 4억 8,080만 원입니다.


올해는 튜더가 창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입니다. 롤렉스의 창업자 한스 빌스도르프가 롤렉스보다 좀 더 합리적인 시계 브랜드를 고심하다 1926년에 창립한 튜더는 100년이 지난 지금 롤렉스보다 합리적이면서도, 좀 더 빈티지한 맛을 느낄 수 있는 프리미엄 브랜드로 자리잡았어요.

튜더의 100주년을 기념해 다시 출시하는 모나크 역시 좋은 예입니다. 모나크는 2000년대 출시했던 시계 라인업에서 이름만 빌려오고 디자인은 완전히 새로 만든 시계인데, 딱 봐도 빈티지한 맛이 가득합니다. 케이스와 브레이슬릿은 마치 일체형인 것처럼 연결되어 있고, 전반적으로 각진 케이스와 윗부분의 숫자를 로마식 표기로 대체한 캘리포니아식 숫자 배치, 그리고 파피루스의 질감을 표현했다는 다이얼 모두 2026년의 시계라고 믿기 힘든 모습을 보여줍니다. 39mm의 현대적인 크기는 조금 예외겠지만요.

하지만, 안을 뜯어보면 2026년의 시계인 게 확연해집니다. 15,000가우스의 항자성까지 테스트하는 마스터 크로노미터 인증을 받은 65시간 파워리저브의 MT5652-2U 인하우스 무브먼트를 장착했거든요. 거기에 100m 방수까지 갖춰 생긴 건 빈티지여도 일상 착용에 큰 무리가 없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튜더 모나크의 가격은 812만 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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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형

테크에 대한 기사만 10년 넘게 쓴 글쟁이. 사실 그 외에도 관심있는 게 너무 많아서 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