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첼라

CULTURE

쇼를 키운 사브리나와 쇼를 벗은 비버, 코첼라 2026

2026 코첼라에서 팝스타는 어떻게 자기 자신을 드러냈나
2026 코첼라에서 팝스타는 어떻게 자기 자신을 드러냈나

2026. 04. 21

이맘때쯤이면 음악 팬들의 마음을 들뜨게 만들다 못해 각종 SNS를 뜨겁게 달구는 페스티벌이 하나 있다. 바로 미국 캘리포니아 인디오의 엠파이어 폴로 클럽에서 열리는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이하 코첼라)이다. 1999년 시작한 코첼라는 매년 4월 두 주말에 걸쳐 열리며, 그해 대중음악의 흐름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음악 이벤트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이 페스티벌은 록만이 아니라 힙합, 팝, 전자음악, 인디를 한데 묶는 편성, 사막이라는 장소감과 설치미술, 거대한 무대, 패션과 셀러브리티 문화까지 맞물리면서 해마다 돌아오는 거대한 시즌 이벤트가 됐다.

유튜브 라이브 스트리밍이 본격화되면서 코첼라는 더 이상 현장 관객만의 축제가 아니게 됐다. 어느 순간부터는 코첼라에 직접 가는 것보다, 주말 내내 스트리밍을 틀어놓고 올해는 누가 무대를 터뜨리는지, 깜짝 게스트로는 누가 나왔는지를 지켜보는 일이 더 익숙해졌다. 그 덕분에 매년 음악 사이트와 SNS가 코첼라로 들썩이는 풍경도 자연스러워졌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에픽하이를 시작으로 블랙핑크, 혁오를 비롯한 한국 아티스트들, 그리고 케이팝 팀들의 연이은 출연은 국내 음악 팬들에게도 이 축제를 한층 가깝게 만들었다. 

코첼라는 어느새 단순한 페스티벌을 넘어, 지금 대중음악계가 누구를 중심에 놓고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를 가장 빠르게 드러내는 무대가 됐다. 코첼라가 해마다 화제가 되는 이유도 단순히 유명한 가수가 많이 나와서가 아니다. 지금 팝 산업의 우선순위와 미래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2026년 코첼라는 꽤 상징적이었다. 전자음악과 라틴 팝, 케이팝을 비롯한 다양한 장르와 지역의 아티스트들이 한데 모인 가운데, 카롤 G가 라틴 아티스트 최초의 헤드라이너라는 상징성을 안고 무대에 올랐고, 애니마 역시 증강현실과 무대 기술을 아우른 몰입형 퍼포먼스의 현재를 보여주는 이름으로 주목받았다. 여기에 빅뱅과 태민, 하이브의 걸그룹 캣츠아이 역시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음악 팬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린 무대는 따로 있었다. 바로 사브리나 카펜터와 저스틴 비버였다. 둘 다 팝의 중심에 있는 이름이지만, 이번 코첼라에서 보여준 무대는 극명하게 달랐다. 한쪽은 보는 이의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대놓고 거대한 스케일을 자랑하는 쇼였고, 다른 한쪽은 놀라울 정도로 미니멀하다 못해 어딘가 비어 있는 듯한 무대였다. 

얼핏 보면 이 둘의 무대는 사브리나 카펜터의 맥시멀리즘과 저스틴 비버의 미니멀리즘이라는 구도로 간단히 정리될 수도 있겠다. 혹은 두 무대와 관련해 SNS를 뜨겁게 달군 음악 산업 안의 성별 논란, 다시 말해 남성은 덜 증명해도 되고, 여성은 끊임없이 자신을 입증해야 한다는 식의 이야기로 확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런 해석에도 분명 일리는 있다. 다만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이번 두 무대는 단순한 대비를 넘어 각자가 어떤 방식으로 자기 음악 커리어를 전개해왔는지, 그리고 그 바탕 위에서 지금의 자신이 팝스타라는 자리를 어떻게 다시 쓰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모습에 더 가깝다.


1. 대기만성형 팝스타, 마침내 자기 얼굴을 갖다

사브리나 카펜터부터 보자. 그는 2014년 디즈니 채널 드라마 <Girl Meets World>로 얼굴을 알렸고, 같은 시기 음악 활동도 본격화했다. 다만 지금처럼 팝의 중심에 서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렸다. 그의 커리어는 단숨에 폭발했다기보다,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올라온 대기만성형에 더 가까웠다. 진짜 전환점은 아일랜드 레코즈 이적 이후 발표한 [emails i can’t send]부터다. 이 앨범은 사브리나 카펜터가 단순한 디즈니 출신 배우 겸 가수가 아니라, 자기만의 화법과 캐릭터를 가진 팝 아티스트라는 점을 본격적으로 각인시킨 작업이었다. 

물론 이때만 해도 지금 같은 초대형 팝스타의 위상까지 단숨에 확보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시기부터 사브리나는 조금씩 자기 색을 분명히 만들기 시작했다. 연애와 상처, 자아, 유머를 섞어내는 방식, 그리고 그 감정을 지나치게 무겁게 끌지 않고 영리하고 가볍게 다루는 태도는 이후 커리어의 중요한 밑바탕이 됐다. 여기에 올리비아 로드리고, 카밀라 카베요와의 관계를 둘러싼 대중적 화제와, 테일러 스위프트의 <The Eras Tour> 오프닝 게스트 무대가 겹치며 인지도를 넓혀가기 시작했다.

보여지는 여자에서, 직접 연출하는 팝스타로

그리고 그 흐름이 본격적으로 폭발한 결과물이 [Short n’ Sweet]였다. ‘Espresso’는 빌보드 핫100 3위까지 올랐고, 이어 나온 ‘Please Please Please’는 1위를 찍었다. 이 앨범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히트곡이 많아서만은 아니다. 음악적으로 사브리나 카펜터는 [Short n’ Sweet]에서 옛 쇼 비즈니스가 여성 스타를 만들던 방식을 2020년대 팝 문법 안으로 영리하게 다시 끌고 들어왔다. 여기에 스타 프로듀서 잭 안토토프와 함께 누디스코, 팝 록, 컨트리, 이전 시대의 R&B 같은 요소를 짧고 밀도 높은 팝 송폼 안에 압축해놓고, 금발 스타, 쇼걸, 핀업걸 같은 과거의 여성 스타 이미지를 디스코의 탄력과 Y2K 감각, 밈 친화적인 훅으로 다시 조합해낸다. 이 앨범의 사브리나는 단순한 복고풍 핀업걸이 아니라, 그 이미지가 어떻게 소비되어 왔는지를 너무 잘 아는 채 그것을 수행하는 인물에 가깝다.

그리고 1년쯤 지나 나온 [Man’s Best Friend]는 그 기세를 이어가는 동시에, 사브리나 카펜터가 이 이미지를 어디까지 밀어붙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 앨범이었다. 사운드는 [Short n’ Sweet]의 연장선에 있으면서도, 훨씬 더 과장되고 연극적이며, 자기의식과 유머를 품은 채 ‘공연되는 여성성’ 쪽으로 나아간다. 누디스코, 컨트리 팝, 글램 팝, 쇼걸식 연극성, 라이브 악기 중심의 편곡이 더 전면에 나오고, 그 덕분에 곡 자체도 한층 더 무대적이고 장면적인 인상을 남긴다. 쉽게 말하면 [Short n’ Sweet]가 영리하게 설계된 현대 팝스타 캐릭터의 앨범이었다면, [Man’s Best Friend]는 그 캐릭터를 더 과장되고 더 노골적이며 더 무대적인 방식으로 확장한 앨범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앨범이 더 흥미로운 건 비주얼과 사운드가 같은 방향을 보고 있다는 점이다. 커버 아트와 비주얼은 공개 직후부터 논쟁을 불러왔고, 이를 두고 남성 시선을 답습하는 건지, 아니면 그 시선을 일부러 과장해서 드러내는 건지 해석이 갈렸다. 그런데 음악을 같이 놓고 보면, 사브리나는 여기서 단순히 ‘보여지는 여자’의 자리에 머무르지 않는다. 오히려 그 이미지를 더 노골적으로 입으면서도, 가사와 태도에서는 남자를 조롱하고, 관계를 비틀고, 자기 욕망을 먼저 말하고, 전체 상황을 웃음거리로 만들어버린다. 그러니까 과거 쇼비즈니스가 여성에게 요구했던 예쁘고, 섹시하고, 가볍고, 남성 시선에 쉽게 포획되는 이미지를 그대로 답습하기보다, 그 자리를 자기 손으로 다시 연출하는 쪽에 더 가깝다.

‘사브리나우드’, 쇼를 지휘하는 사람의 무대

그리고 바로 그 지점이 그래미 무대와 코첼라의 ‘사브리나우드(Sabrinawood)’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이번 코첼라 무대는 영화 세트장 같은 공간, 장면 전환, 의상 변화, 인터루드, 셀러브리티 카메오가 결합된 대형 팝 뮤지컬처럼 보였다. 하지만 중요한 건 단순히 화려했다는 데 있지 않다. 더 중요한 건 그 화려함을 누가 통제하고 있었는가다. 고전 할리우드나 브로드웨이, 쇼걸의 전통 속에서 여성은 대개 보여지는 사람으로 존재해왔지만, 이번 무대의 사브리나는 그 자리에 서 있으면서도 동시에 전체 쇼를 지휘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Short n’ Sweet]와 [Man’s Best Friend]가 차례로 밀어온 쇼비즈니스적 상상력은 그렇게 코첼라에서 가장 큰 스케일의 형태로 완성됐다.

@sabrinacarpenter

둘째 주말 마돈나의 합류 역시 이런 해석을 더 강하게 만든다. 사브리나 카펜터는 2024 MTV 비디오 뮤직 어워즈에서 마돈나가 1991년 오스카에서 입었던 드레스를 착용했을 정도로, 이미 그의 계보를 의식적으로 참조해왔다. 그런 점에서 마돈나와 함께한 장면이 의미심장했던 이유는, 그가 1980년대 이후 여성 팝스타가 성과 종교, 퍼포먼스의 경계를 어떻게 자기 권력으로 바꿔왔는지를 상징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합동 무대는 단순한 깜짝 이벤트라기보다, 여성 팝스타가 쇼 엔터테인먼트의 문법을 자기 손으로 가져오고 다시 써 내려온 계보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하는 순간처럼 보인다. 결국 이번 코첼라에서 사브리나가 보여준 건 화려한 헤드라이너 무대라기보다, 자신이 어떤 이미지를 입고 어떻게 그 전체 쇼를 자기 손으로 굴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무대에 가까워 보였다.


2. 유튜브가 만든 스타, 자기 자신을 되찾으려는 사람

그래서 저스틴 비버의 무대는 더 강한 대비를 만들어냈다. 사브리나 카펜터가 쇼를 더 크게 만들고 더 반짝이게 밀어붙이면서 자기 주도권을 증명했다면, 저스틴 비버는 오히려 그 반대 방향으로 가며 잃어버린 자기 주도권을 되찾으려 했기 때문이다. 그는 무대를 채우기보다 비워두고, 화려한 장치보다 자기 목소리와 과거의 이미지, 그리고 지금의 상태를 전면에 내세웠다. 같은 헤드라이너 자리였지만, 한 사람은 쇼를 극대화하면서 자기 자신을 드러냈고, 다른 한 사람은 쇼를 걷어내면서 오히려 자기 상태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비버는 애초에 사브리나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팝스타가 된 인물이다. 그는 유튜브에 올린 어린 시절 노래 영상으로 스쿠터 브라운의 눈에 띄었고, 이후 어셔의 지원 속에서 데뷔와 동시에 세계적인 틴 팝 스타가 됐다. 사브리나가 긴 시간을 들여 천천히 쇼 엔터테인먼트의 중심으로 걸어 들어온 사람이라면, 비버는 거의 시작과 동시에 산업의 한가운데에 서게 된 사람에 가깝다. 대표적으로 ‘Baby’ 시절의 비버는 그야말로 당대 스타 시스템이 만들어낸 초대형 틴 팝 아이콘이었다. 동시에 그것은 너무 어린 나이부터 과도한 주목과 기대, 산업의 압력을 함께 떠안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완벽한 팝스타에서, 덜 가공된 자기 자신으로

이런 비버의 커리어를 단지 틴 팝 스타의 역사로만 보기엔 부족한 면이 있다. 유튜브 시절 불렀던 곡들만 봐도 그는 애초에 2000년대 R&B에 대한 감각이 있었고, [Believe]와 [Journals]를 거치며 점점 팝 아이돌에서 보다 짙은 R&B 지향을 가진 아티스트로 이동해갔다. [Believe]가 팝, EDM, R&B 사이의 균형을 잡으며 성숙해지는 과도기의 앨범이었다면, [Journals]는 형식상 컴필레이션에 가까웠지만 내용적으로는 훨씬 더 사적이고 어둡고, 감정의 결이 진한 작업이었다. 그리고 뒤이어 나온 [Purpose]는 틴 팝 아이돌 시절 그를 향해 쏟아졌던 편견과 반감을 넘어, 많은 이들이 다시금 그의 음악을 인정하게 만든 강력한 팝 앨범이었다. 이후에도 그는 EDM, 라틴 팝, 아프로비츠, 피처링 신을 가로지르며 당대의 뜨거운 장르와 꾸준히 접속했고, 그 과정에서 늘 메인스트림 한복판의 자리를 지켜왔다. 이처럼 비버는 한편으로는 스타 시스템의 총아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꾸준히 흑인음악과 동시대 장르 감각을 자기 식으로 끌어안아온 인물이었다.

물론, 모두가 알다시피 저스틴 비버의 커리어가 늘 밝기만 했던 건 아니다. 비버는 너무 어린 나이부터 산업의 압력과 과잉 노출을 겪어왔고, 그 과정에서 건강 문제와 긴 소모의 시간을 거쳤다. 투어 중단과 공백, 커리어를 둘러싼 여러 변화 역시 그런 흐름 안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최근의 비버를 볼 때는, 한때 세계가 만들어낸 초대형 팝스타가 이제는 쇼 엔터테인먼트가 만든 그 스타 이미지에서 얼마나 멀어지고 싶은가, 혹은 어디까지 자기 자신을 되찾고 자기 주도권을 회복하려 하는가를 함께 보게 된다.

이런 배경 위에서 나온 앨범이 바로 [SWAG]와 [SWAG II]였다. 지금 비버의 음악은 예전처럼 광택 나는 메인스트림 팝스타 사운드라기보다, 디종과 맥기, 카터 랭 계열의 더 헐거운 얼터너티브 R&B와 베드룸 팝 질감 쪽으로 기울어 있다. 기타는 흐릿하고, 드럼은 지나치게 정교하지 않으며, 보컬은 사운드를 지배하지 않고 스며든다. 그렇기에 앨범은 어떤 면에서는 미완성처럼 들리고, 심지어 데모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바로 그 미완성성과 날것의 친밀함이 지금 비버가 보여주려는 상태와 더 가까워 보인다. 예전의 비버가 ‘얼마나 완벽한 팝스타인가’를 증명하는 사람이었다면, 최근의 비버는 ‘나는 지금 이런 상태다’를 덜 가공된 채 내보내는 사람에 더 가깝다.

쇼를 비워내고, 과거와 현재를 한 무대에 올리다

이 흐름을 알고 보면 비버의 이전 무대들도 이번 코첼라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특히 2026 그래미에서 보여준 ‘Yukon’ 무대가 그랬다. 거의 속옷만 걸친 채, 기타와 최소한의 장비만 둔 그 무대는 단순히 화제성을 노린 노출이라기보다, 쇼 비즈니스 세계가 덧씌운 팝스타의 외피를 걷어내고 거의 벌거벗은 상태의 자기 자신만 남기려는 제스처처럼 보였다. 한때는 세계가 원하는 방식으로 가장 완벽하게 포장된 스타였던 사람이, 이제는 오히려 그 포장을 벗겨내는 방식으로 자기 현재를 설명하려는 것. 그런 의미에서 그래미의 ‘Yukon’은 [SWAG] 시기의 비버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먼저 보여준 무대였고, 코첼라는 그 방향을 훨씬 더 큰 자리에서 밀어붙인 결과처럼 보인다.

그래서 이번 코첼라에서 비버가 보여준 미니멀한 무대도 뜬금없지 않고, 오히려 그 의도가 뚜렷해 보인다. 그는 거대한 세트나 대형 안무, 연출 대신 신곡과 적은 장치, 그리고 회고적인 영상 장치로 무대를 채웠다. 특히 유튜브 영상을 띄워 어린 시절의 자기 자신과 현재의 자신을 한 무대 위에 포개는 방식은, 단순히 향수를 자극하는 연출이라기보다 유튜브가 만든 스타가 자기의 원본 파일을 다시 호출하는 장면처럼 보였다. 마치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나와 어떻게 공존하고, 어떻게 서로를 보완하는지를 보여주듯이 말이다. 이 때문에 어떤 사람에게는 진솔했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지나치게 헐거워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최근의 음악과 그래미 무대까지 함께 놓고 보면, 비버의 코첼라 무대 속 미니멀리즘은 갑자기 튀어나온 선택이 아니라 꽤 오랫동안 예고되어 온 흐름처럼 보인다.

2주차 무대는 그 흐름을 더 분명하게 드러냈다. 1주차가 [SWAG]와 [SWAG II] 중심의 현재형 비버를 보여주는 무대였다면, 2주차는 거기에 더해 비버의 커리어 전체를 다시 편집해 보여주는 무대에 가까웠다. 빌리 아일리시, 빅 션, 시저, 디종 같은 얼굴들이 등장한 건 단순히 유명 게스트를 더 얹은 것이 아니라, 비버가 지나온 각 시기의 결을 한 무대 위에 다시 배열하는 일이었다. 빌리 아일리시의 깜짝 등장은 ‘One Less Lonely Girl’ 같은 초기 스타 서사를 다시 호출하며, 유튜브 시대에 탄생한 아이돌 비버의 이미지와 현재를 겹쳐 보이게 했다. 빅 션은 ‘As Long As You Love Me’ 시절, 그러니까 틴 팝 아이돌이던 비버가 더 어둡고 성숙한 팝/R&B 무드로 넘어가던 시기를 떠올리게 하고, 시저는 지금의 더 유연하고 감정 중심적인 R&B 감각을 환기한다. 디종은 말할 것도 없이 [SWAG]의 헐거운 멋을 상징하는 현재의 얼굴이다. 그러니까 2주차의 비버는 자기 커리어 전체를 다시 배열해 보여주는 사람처럼 보였다.


누가 이겼느냐보다, 누가 어떻게 자신을 남겼는가

코첼라

이번 코첼라에서 비버의 무대를 읽을 때 중요한 건, 단순히 무대가 비어 있었다는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그 비어 있음이 무엇을 드러내고 있었는가를 봐야 한다. 사브리나가 쇼 엔터테인먼트의 문법을 끝까지 수행하면서 그 안의 권력을 자기 손에 쥐는 방향으로 갔다면, 비버는 그 문법에서 일부러 한 발 비껴나며 스타 이전과 이후의 자기 자신을 포개는 방향으로 갔다. 어쩌면 그것은 산업 속에서 잃어버린 자기 주도권을 되찾으려는 몸짓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브리나가 쇼를 더 크게 만들어 자기를 증명했다면, 비버는 쇼를 걷어내며 지금의 자기를 설명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코첼라는 누가 이기고 누가 졌는지를 가르는 자리가 아니라, 팝스타가 자기 이야기를 무대 위에 남기는 두 방식이 정면으로 부딪친 자리처럼 보였다. 한쪽은 과잉을 통해 자신을 드러냈고, 다른 한쪽은 비어 있음과 취약함을 통해 자신을 남겼다. 바로 그 차이 때문에, 이 두 무대는 앞으로 꽤 오래 회자될 것 같다.

About Author
최승인

음악을 듣고, 쓰고, 떠드는 일을 한다.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으로도 활동하며, 넋매거진을 운영 중이다. 힙합과 R&B부터 재즈, 인디, 팝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신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