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팀홀튼의 유료 광고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안녕, 객원 에디터 지정현이다. 나는 스튜디오 지브리를 좋아한다. 그들의 집요한 작업 방식을 동경한다. <바람이 분다> 속 5분 남짓한 군중 장면을 완성하는 데 1년 3개월을 쏟아부을 정도의 집념은, 웬만한 직업의식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전설적인 스튜디오 지브리가 세워지기 전, 미야자키 하야오를 비롯한 핵심 인력이 참여한 애니메이션이 있었다. 바로 <세계 명작 극장>의 <빨간 머리 앤>이다. 아마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앤의 얼굴 역시 이 애니메이션 속 모습일 것이다. 이 사실을 알고 다시 보면, ‘스튜디오 지브리’의 터치가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강남에서 그 앤을 다시 마주쳤다. 팀홀튼 선릉역점에서였다. <앤의 키친> 캠페인으로 시즌 메뉴를 선보였다는 이야기인데, 처음에는 ‘둘 다 빨간색이라는 공통점 말고 또 뭐가 있지?’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매장에 놓인 메뉴와 굿즈를 찬찬히 살펴보니, 이해가 됐다. 둘 다 캐나다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그 공통분모를 바탕으로 팀홀튼이 어떤 방식으로 앤의 세계를 풀어냈는지 궁금해졌다. 알아볼수록 팀홀튼 코리아도 만만치 않게 집요한 집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덕질’부터 시작하는 협업, 발견하는 즐거움

팀홀튼이 대한민국에 자리 잡은 지도 어느덧 2년이다. 맛은 물론 인테리어까지 중요한 국내 F&B 시장에서 2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게다가 여기는 카페 격전지인 대한민국이다. 니치한 취향의 개인 카페가 아닌 대형 프랜차이즈일수록 소비자의 기준은 더 높아진다. 그런 점에서 캐나다 출신인 팀홀튼의 분전은 눈에 띈다. 그 바탕에는 팀홀튼 코리아가 꾸준히 보여온 캐나다 헤리티지가 있다. 캐나다에서는 60년 넘게 사랑받아 온 브랜드인 만큼, 국내에서도 적지 않은 팬덤을 지닌 프랜차이즈 카페로 자리를 잡았다. 이번 <앤의 키친> 역시 그 흐름 안에 있다. 캐나다 동부 프린스에드워드아일랜드를 배경으로 한 『빨간 머리 앤』을 메인 콘셉트로 삼아, 신메뉴와 함께 앤의 이야기를 펼쳤다.
원작 IP를 바탕으로 제품을 개발할 때 중요한 건 결국 얼마나 깊이 이해했는가에 있다. 이미지만 가져오면 판매를 위한 얕은 협업으로 보이기 쉽고, 반대로 해석이 과하면 브랜드의 존재감이 흐려질 수도 있다. 좋은 협업은 원작을 존중하되, 마지막에는 브랜드가 의도한 경험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 팀홀튼 코리아 마케팅 소속 브랜드 매니지먼트팀은 먼저 『빨간 머리 앤』의 덕후가 되길 자처했다. 이번 캠페인을 준비하며 팀원 모두가 원작 소설과 애니메이션 전 회차를 살피고, 인물 간 관계와 감정의 진폭에 대해 여러 차례 이야기를 나눴다고 하니까.

이들이 원작 이해에 공을 들인 이유는 고객이 시즌 메뉴를 통해 『빨간 머리 앤』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경험하길 바랐기 때문. 실제로 모든 메뉴를 체험해 보니, 팀홀튼이 잘하는 메뉴 개발안에 앤의 서사를 세심히 반영하려 했다는 게 느껴졌다.


그 의도는 구매 시 받을 수 있는 메뉴 카드에서도 드러난다. 카드에는 영감을 받은 특정 장면과 인물 간의 관계가 함께 적혀 있다. 스토리텔링에 충실한 구성으로, 앤의 세계관을 맛과 경험으로 풀어낸 것. 덕분에 내가 고른 메뉴를 좀더 음미하고, 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 수 있다. 원작의 팬이라면 “뭘 좀 아는 사람이 만들었네” 하고 고개를 끄덕일 만하고, 앤을 처음 접한 고객이라면 작품에 대한 이해를 넓히며 메뉴를 경험하지 않을까. 적어도 후자에 속하는 나는 그랬다. 함께 주는 스티커를 조카에게 줄 때 아는 체할 수 있는 정보도 덤으로 얻었다(내 물건에 앤 스티커를 붙이기엔, 왠지 앤이 불쌍하니까).
일상을 ‘초록 지붕 집’으로 바꾸는 비주얼과 굿즈

팀홀튼은 캐나다에서 오랫동안 사랑받아 온 브랜드다. 캐나다 백과사전에서는 팀홀튼을 ‘캐나다의 국가 정체성’이라고 설명할 정도로, 캐나다인들에게 일상적인 존재다. 『빨간 머리 앤』 역시 시대와 국경을 넘어 사랑받아 온 이야기다. ‘빼빼 마른 빨강 머리 소녀’ 하면 많은 이들이 곧장 앤을 떠올리지 않는가. 이렇듯 캐나다를 배경에 둔 두 존재는 헤리티지와 아이콘이라는 공통점을 지니는데, <앤의 키친>은 이 공통점을 비주얼로 표현하는 데에도 신경 썼다. 바랜 듯한 애니메이션 『빨간 머리 앤』의 색감과 클래식한 타이포그래피를 키 디자인으로 삼아, 두 세계를 연결했다. 만약 팀홀튼 매장에 들어서서 키오스크 앞에 선다면, 오래된 동화 속 일러스트처럼 그려진 <앤의 키친> 메뉴들과 고풍스러운 클래식 타이포그래피가 당신을 반겨줄 것이다. 설사 <빨간 머리 앤>에 관심이 없더라도, ‘어떤 이유로 여기에 빨간 머리 앤이 있을까?’하는 호기심과 함께 숨겨진 이야기를 찾을 마음이 돋을지도 모르는 일.
브랜드팀은 고객의 경험이 카페 안에서 끝나지 않고, 일상으로 이어지길 바란 듯하다. 시즌 메뉴와 음료 구매 시 적립되는 스탬프를 모아야 받을 수 있는 굿즈도 앤의 세계를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꾸렸기 때문이다. 메뉴 5개와 음료 2개 적립 시 증정 되는 사과꽃 모양이 새겨진 에이프런은 초록 지붕 집 부엌에서 앤이 둘렀을 법한 싱그러운 디자인이다. 음료 5개를 더 마시면 티팟 세트를 받을 수 있다. 둘 중 내 눈에 띈 건 티팟이었다. 앤이 살던 시절에도 정말 이런 것을 썼을 것 같은 만듦새라, 여기에 홍차를 따라 마시면 나도 앤의 친구들 틈에 잠시 끼어든 듯한 기분이 든다. 물론 역할이 주인공은 아닐 것이다. 많아야 조금 험상궂은 조연쯤이겠지만. 스탬프 이벤트는 5월 10일까지다. 메뉴를 하나씩 천천히 맛보다 보면, 봄이 가장 짙어질 즈음에는 에이프런과 티팟을 모두 갖게 될지도 모르겠다.
에이번리의 티타임으로 바꾸는 마법, 9가지 메뉴의 스토리텔링

메뉴는 총 4종의 음료와 5종의 베이커리로 구성되어 있으며, 모든 메뉴는 앤과 주변 인물들의 감정선을 바탕에 두고 있다. 음료는 과일을 원료로 한 주스 ‘바이올렛 유즈 퀀처’, 말차 위에 솜사탕을 올린 ‘솜사탕 말차 라떼’, 가볍게 마시기 좋은 ‘라즈베리 코디얼 아이스티’, 메이플 시럽을 더한 ‘메이플 밀크티’까지 폭넓게 준비했다. 베이커리 역시 선택지가 다양하다. ‘체리 초콜릿 가나슈 케이크’는 3호 정도의 크기로 연인이나 단짝 친구와 둘이 나눠 먹기 좋고, 은은한 밀크티 풍미를 살린 ‘플로럴 밀크티 케이크’는 4인 가족이 함께 즐기기에 알맞다. 혼자 방문했다고 아쉬워할 필요도 없다.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작은 사이즈의 베이커리도 마련돼 있으니까. 녹차와 초콜릿의 균형이 돋보이는 ‘그린티 초콜릿 파운드’, 티 음료와 잘 어울리는 ‘라즈베리 잼 스콘’도 눈길을 끈다. 하트 모양에 리본 포장까지 더한 막대 초콜릿 ‘유아 스윗 롤리 초코’는 가벼운 선물로도 제격이다. 이렇듯 앤틱한 메뉴명은 ‘이게 어떤 에피소드에서 나왔을까?’ 하는, 반대로 직관적인 이름은 ‘이 장면을 어떻게 메뉴로 옮겼을까?’ 하는 호기심이 생긴다. 어느 쪽이든 쉽게 지나치기 어렵다.

원작의 서사에 집중한 만큼, 비주얼에도 공을 들였다. 상큼한 시트러스 향의 에이드 ‘바이올렛 유즈 퀀처’는 앤이 마릴라의 아끼는 자수정 브로치를 훔쳤다는 오해를 받는 에피소드에서 나온 메뉴다. 앤이 마음을 빼앗겼던 자수정 브로치의 바이올렛을 닮은 보랏빛 색감은, 소풍에 가고 싶어 들뜬 앤의 순수한 마음을 본땄다고. 화려한 비주얼 때문에 맛이 어렵지 않을까 싶지만, 유자 맛이 풍부하게 느껴져 따듯한 봄에 어울리는 음료로, 먹기 전에 스트로우로 섞으며 색의 변화를 관찰하는 재미도 있다.

앤이 주고받은 선물에서 나온 메뉴도 있다. ‘라즈베리 코디얼 아이스티’는 단짝 친구 다이애나와의 우정을 바탕에 둔다. 달콤한 과일 음료인 산딸기 음료 대신 실수로 포도주를 내어 다이애나가 취해버리는 장면은, 두 사람의 각별한 우정과 그 또래다운 소동을 한꺼번에 보여준다. 물론 ‘라즈베리 코디얼 아이스티’에는 와인 맛도, 알코올도 없다. 과하지 않은 당도의 라즈베리 맛만 남는다. 산미는 와인의 끝맛과 비슷한데, 아마 가니쉬로 들어가 있는 오렌지 때문인 듯하다. 달다만 음료의 붉은빛을 보고 있으면, 앤이 왜 그토록 태연하게 잔을 건넸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앤의 양아버지인 매슈는 조건 없는 다정함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체리 초콜릿 가나슈 케이크’는 그가 앤에게 선물한 갈색 퍼프 소매 드레스에서 착안한 메뉴다. 또래 여자아이들처럼 퍼프 소매 드레스를 입고 싶어 하던 앤의 마음을 눈여겨본 매슈가, 수줍은 성격에도 끝내 선물을 마련하던 장면을 떠올리며 한 입 떠먹어보자. 진한 초콜릿을 좋아하는 나의 취향에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풍미였다. 앤에게 퍼프 소매 드레스도 이와 비슷했을 것이다. 입안 가득 퍼지는 달콤함처럼 마음을 가득 채우는, 행복한 선물이었으리라.

앤의 대표적인 이미지 가운데 하나인 화관 장면은, 그의 상상력과 소녀다운 감수성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런 점에서 앤이 쓴 화관을 본뜬 ‘플로럴 밀크티 케이크’는 『빨간 머리 앤』 특유의 사랑스럽고 목가적인 분위기를 품은 메뉴다. 특정 에피소드 하나를 그대로 옮겨놓았다기보다, 시즌 메뉴 전반에 흐르는 따스한 감성을 하나로 녹여낸 시그니처 상품처럼 느껴졌다. 주변에 <빨강 머리 앤>의 팬이 있다면, 나는 주저 없이 이 케이크를 선물할 것이다. 밀크티는 첫 입이 가장 맛있다. 하지만 특유의 플로럴한 향 탓에 다소 물릴 수 있다. 그럴 때 위에 얹어진 라즈베리와 블루베리를 하나씩 곁들이면 다시 한 스쿱이 당긴다. 과일과 함께 떠먹으면 한층 풍성한 맛이 느껴진다.
요즘 소비자의 관심사는 넓고도 깊다. 그래서 단순한 컬래버에는 쉽게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협업 대상에 자신들만큼 깊이 들어가 알아본 흔적, 이를테면 정성이 보이지 않으면 의도가 금세 드러난다. 팀홀튼은 『빨간 머리 앤』의 세계에 풍덩 빠졌다. 마니아와 대중 모두가 납득할 만한 깊이로, 앤의 서사를 자신들의 메뉴와 정체성 안에 녹였다. 어느 정도냐면, 소녀 감수성과는 거리가 먼 나조차도 어릴 적 옆자리 짝꿍의 필통에 붙어 있던 화관 쓴 빨강 머리 앤 스티커와 비디오 대여점에서 빌려 보던 『빨강머리 앤』의 한 장면이 떠올랐을 정도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그 집요함이 맛으로도 이어졌다는 점이다. 서사는 물론이고, 다음엔 또 어떤 맛일지 궁금해 메뉴를 한 번 더 보게 된다. 이쯤 되면 티팟까지 집에 들이게 되는 것도 시간문제일지 모른다.
About Author
지정현
브랜드와 라이프스타일을 탐구하는 에디터. 다양한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합니다. 마땅히 조명받아야 할 사람과 사물을 찾는 것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