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시인 황인찬입니다. 시가 유행이라는 믿을 수 없는 소문이 들리는 요즘입니다. 낭독회와 북토크 등의 자리에서는 10대 독자들의 비중이 제법 늘었으며, 항간에는 ‘포엣코어’라는, 당사자 입장에서는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은 패션 코드까지 유행하고 있다고 하니, 시의 대유행까지는 아니어도 소유행 정도는 되는 모양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바로 지금이야말로 시와 가까워질 최적기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시가 낯선 당신에게 시와 친해지는 방법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1. 왜 시를 읽어야 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실 시를 꼭 읽어야만 하는 이유 같은 것은 없습니다. 세상에는 시만큼이나 멋지고 아름다운 예술이 다수 있으며, 그 가운데 나에게 잘 맞는 것을 찾아 충분히 즐기면 족할 일이죠. 그러나 시를 즐기지 못하는 삶이라면 그 삶은 제법 섭섭하고 아쉬울 거예요.
뜬금없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저는 똠얌꿍을 아주 좋아하는데, 그 다채로운 맛과 향이 나를 새로운 우주로 연결해 주었노라고 말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입니다. 매일 같이 찾아 먹는 음식은 아니지만, 내 영혼을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음식이라고는 분명 말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똠얌꿍을 먹지 않았어도 저는 잘 살았을 겁니다. 똠얌꿍을 먹지 않고도 훌륭한 삶을 살아온 이들에 대한 예시도 굳이 덧붙일 필요는 없겠지요. 그러나 똠얌꿍을 먹지 않았다면, 똠얌꿍만이 전할 수 있는 그 맛을 놓친 채로 살아갔을 것입니다. 똠얌꿍이라는 우주를 놓치는 거지요.
시 또한 그렇습니다. 꼭 매일 같이 찾아 읽어야만 하는 것은 아닐지도 모르지만(물론 어떤 사람들은 매일 배가 터지도록 시를 읽겠지요. 그런 사람들은 종종 시인이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을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시입니다. 다른 그 무엇도 대신할 수 없는 시만의 즐거움이 분명 존재하고, 저는 시라는 우주를 모르는 채로 살아가는 일은 말 그대로 섭섭하고 아쉬운 삶이 될 수밖에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시는 가장 순수하게 언어로 작용하는 예술이고, 인간의 의식은 언어적인 것으로 구성되어 있으니까요. 그렇기에 시는 우리의 의식 가장 가까운 곳에서 폭발합니다. 한 줄의 문장이 영혼을 파괴해 버리는 것만 같은 그 짜릿함을, 저는 시인으로서 당신에게 꼭 권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똠얌꿍도.
2. 그렇다면 시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 한 편의 시 읽기

시인으로서 자주 듣게 되는 말은, ‘시는 너무 어렵다’는 이야기입니다. 김소월이나 윤동주까지는 이해해도, 현대시는 좀처럼 이해하기도, 다가가기도 어렵다는 이야기가 상당히 자주 들려오지요. 현대시는 어렵긴 합니다. 다른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이 어렵습니다.
우리는 극장에서 감독의 연출 의도와 서사적 맥락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채로도 영화를 즐기고, 고작 줄거리를 얼추 이해한 채로도 그 영화가 좋았다거나 별로였다거나 이야기합니다. 미술관에서 처음 보는 작가의 작품을 보면서는 미술사적 의의와 작업의 배경을 모르는 채로도 감동하고 즐거워하죠. 그런데 왜 시에 대해서만은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원래 예술이란 잘 모르는 채로 즐기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이해하고자 하니 어렵게 느껴질 수밖에 없지요. 예술이란 본디 간단한 이해로 환원되도록 작용하는 물건이 아니기에, 사실은 작가나 평론가 등의 전문가조차 작품의 모든 것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시를 즐기기 위해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정규 교육 과정을 통해 내면화한 빈칸 채우기 식의 독해를 버리는 일입니다. 안타깝게도 우리가 현대문학을 접하는 최초의 환경이 문제 풀이를 전제한 시 읽기였으니, 시어와 문장을 의미 단위로 이해해야 한다는 강박을 갖게 되고야 마는 것이지요.
향수의 향기를 이루는 복잡한 레이어를 파악하지 않아도 그 향을 즐길 수 있는 것처럼, 음악의 구조를 이해하기 전에 아주 짧은 한순간에 푹 빠져버리게 되는 것처럼, 시 또한 그렇게 즐기면 됩니다. 시의 한 문장, 한 장면이 우리를 놀라게 하고 가슴 뛰게 한다면, 시 한 구절에 영혼이 부서지는 느낌을 받았다면, 당신은 이미 충분히 시를 즐겼습니다.
물론 그렇게 격정적인 감흥만이 시를 즐기는 방식은 아닙니다. 시가 전하는 여러 감각적 자극을 곱씹을 수도 있지요.
누군가 문을 두드렸기에 나는 문을 열었다
문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문의 안쪽에는 나와 기원이 있었다
나는 기원을 바라보며 혹시 무언가 잘못된 것이 있는지 물었다
기원은 내게 잘못된 일은 없다고 말해주었다
그렇다면 다행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올 여름의 아름다운 일들을 생각했다
아무런 일도 생각나지 않았다
뜨거운 빛이 열린 문을 통해 들어오고 있었다
무더운 여름이었다
(황인찬, <개종>)
예시를 위해 민망하지만 졸시를 옮겨왔습니다. 이 시가 그리는 뜨거움과 서늘함이 교차하는 여름의 그늘을 비롯한 여러 이미지를 즐겨도 좋고, 시가 그리는 하나의 문장에 꽂혀 즐거움을 느껴도 좋습니다. 시의 의미를 혹시 나름의 방식으로 헤아려 봐도 좋겠지요. 왜 여름일까. 왜 저 사람의 이름은 기원일까. 왜 문일까, 등에 대해 여러 생각을 덧붙여 볼 수도 있을 겁니다. 중요한 것은 시를 읽는 방식에는 정답이 없으며 당신이 떠올린 모든 것이 그 시의 정당한 읽는 방식이라는 사실을 기억해 두는 일일입니다.
3. 시를 조금 더 깊게 즐기고 싶다면
: 한 명의 시인 읽기

예술에 정답은 없지만, 예술을 더욱 깊게 즐기는 법은 있습니다. 약간의 공부가 필요하다는 이야깁니다. 시를 더욱 잘 읽고 싶다면, 한 명의 시인을 따라 읽는 일이 유용합니다. 시작은 어떤 시여도 좋습니다. 여러 시인의 작품을 모은 엔솔러지여도 괜찮고, 누군가가 추천한 시집을 찾아봐도 좋습니다. 서점과 도서관에서 우연히 마주친 시라면 가장 좋지요.
그렇게 읽어본 시 가운데, 마음에 들어오는 시를 한 편 찾아보는 겁니다. 이해가 잘되는 시보다 이해가 되지 않는데도 어째서인지 마음에 남는 시가 더욱 적절합니다. 그 의미를 쉽게 언어화하기 어려운데도 시의 문장들이 마음에 남는다면, 그 시인은 나와 잘 맞는 시인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시를 쓴 시인의 시집을 한 권 읽다 보면, 그 시집에 대한 몇 가지 키워드가 내 안에 생겨납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이 시인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군, 이라거나 쓸쓸한 이미지가 많이 등장하는군, 이라는 식으로요. 이어 해당 시인의 다른 시집을 찾아 읽어보는 겁니다. 그렇다면 같은 시인이 쓴 시인데도 다른 점이 발견됩니다. 쓸쓸함을 그리는 방식이 조금 변했다거나, 쓸쓸함과 더불어 자조적인 말하기가 늘어났다거나 하는 식으로요. 그런 차이를 조금씩 알아차리다 보면, 해당 시인에 대한 나름의 이해가 생겨나지요.
그 뒤에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내 마음에 드는 또 다른 시인을 찾아 읽는 겁니다. 그 과정을 몇 번 거친다면, 이제는 각 시인과 시인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알아차릴 수도 있겠습니다. 몇 명인가의 시인들을 이해하게 되면, 시라는 양식 자체에 대한 이해가 생겨납니다. 시인들이란 어떤 식으로 말하는 존재인지, 그리고 나는 그 가운데 어떤 유형의 시인을 좋아하는지 알게 되는 거죠.
이해란 차이를 알아차리고, 그 차이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거든요. 이 과정을 통해 최애 시인을 한 명 댈 수 있고, 또한 어떤 시인은 어떠한 이유로 내 취향에 맞지 않는다거나 하는 말을 할 수 있게 된다면, 축하합니다. 당신 또한 이미 시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4. 마지막으로 시를 사랑하는 당신에게
: 한 편의 시를 써보기

시 읽기에 능숙해지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시를 써보는 것입니다. 앞서 시 읽기에는 정답이 없다고 말씀드렸지요. 시를 읽는 각자의 방식과 해석에는 맞고 틀리고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시를 읽는 모두가 새로운 방식으로 시를 읽어낼 수 있기에, 기실 그것은 각자가 시를 새로 써내는 일과 다름없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시를 읽는 일은 시를 다시 쓰는 일이라고요. 시를 쓸 줄 안다면 시를 읽는 일이 훨씬 용이해진다는 이야기지요. 다행스럽게도 시를 쓰는 데는 많은 수고와 비용이 요구되지 않습니다. 내 마음에 남은 장면 하나와 잠시 글을 쓸 수 있는 약간의 시간이면 충분합니다.
시를 쓰는 방식 또한 시 읽기와 마찬가지로 정답이 없습니다. 내가 시를 이해한 방식으로 나만의 시를 써보시길 바랍니다. 내가 나의 시를 능숙하게 써낼 수 있다면, 타인의 시 또한 나만의 방식으로 자유롭게 새로 쓸 수 있습니다. 그때 정말로 우리는 시를 제대로 마주할 수 있게 됩니다.
어쩌면 당신은 시를 잘 읽기 위해 시를 쓰는 것이 어딘가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인가를 정말 사랑한다면, 그것을 멀리서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는 일로 그칠 수는 없습니다. 당신이 시를 정말 사랑하게 된다면, 시에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지게 될 겁니다. 삶의 어느 한순간에 시 한 구절이 떠오르고, 일상의 심상한 장면으로부터 기묘한 시적 순간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지요. 당신이 시를 사랑하게 된다면, 분명 그렇게 될 겁니다. 시와 더불어 살아갈 것입니다. 시란 원래 그렇게 우리의 안 깊숙한 곳에 들어앉고야 마는, 어쩔 수 없는 친구니까요.
About Author
황인찬
시인. 덕질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내가 사랑하는 것에 대해 영업을 하고 싶어지듯이, 시를 너무 사랑해서 시 영업을 하고 있습니다. 전국민 시인화 계획을 도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