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쇼미더머니가 14년 동안 ‘국힙’에 끼친 영향

쇼미는 한국 힙합을 망쳤을까?
쇼미는 한국 힙합을 망쳤을까?

2026. 03. 30

“SHOW ME THE MONEY!” 영화 <제리 맥과이어> 속 이 대사는 단순한 외침을 넘어, 욕망과 성공을 향한 태도를 상징하는 문장으로 남았다. 이후 <스타크래프트>의 치트키를 거쳐 한국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 <쇼미더머니>의 이름으로 이어지며, 프로그램이 오랫동안 구축해온 서사와 세계관을 압축적으로 드러내는 표현이 되었다.

이 대사를 내건 <쇼미더머니>는 힙합 안에 존재하던 돈과 성공, 그리고 그 과정을 전면에 내세운 채 등장했다. 이는 단순한 콘셉트를 넘어, 한국 힙합이 대중적 장르로 도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프로그램은 하나의 장기 프랜차이즈로 자리 잡았다.

그런 <쇼미더머니>가 약 4년 만에 열두 번째 시즌으로 돌아왔다. 프로그램의 귀환을 둘러싸고 힙합 팬은 물론 씬 내부에서도 다양한 반응이 교차하고 있으며, TV-OTT 통합 화제성 1위를 기록하며 대중의 관심 역시 다시 모이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이 프로그램은 한국 힙합에서 무엇이 되었는가?


<쇼미더머니> 시즌1 포스터

2010년대 초반 <쇼미더머니>가 처음 등장했을 때, 한국 힙합은 온라인 커뮤니티와 공연장, 클럽을 중심으로 씬이 형성돼 있었지만, 이를 안정적으로 확장하고 지속시킬 생태계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방송과 자본이 결합한 <쇼미더머니>는 힙합을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경연 포맷과 힙합의 결합은 경쟁, 탈락, 리스펙, 디스 같은 요소를 전면에 내세우며 대중이 이해하기 쉬운 서사를 만들었다. 이는 2010년대 한국 사회를 지배하던 성공, 생존, 자기계발의 감각과 정확히 맞물렸다. 여기에 트랩을 비롯한 동시대 힙합 사운드가 전 세계 팝 시장으로 확산되던 흐름까지 겹치며, <쇼미더머니>는 단순한 유행을 넘어 시대의 정서를 반영하는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그 결과는 분명했다. 방송은 온라인과 공연장을 기반으로 움직이던 한국 힙합 씬의 래퍼들을 대중의 전면으로 끌어냈고, 힙합을 한국 대중음악의 주요 장르로 정착시켰다. CJ E&M을 중심으로 한 대기업의 투자로 힙합 레이블 산업이 본격화됐고, 래퍼라는 직업 역시 장래희망이 될 정도로 현실적인 선택지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여러 비판에도 불구하고 <쇼미더머니>가 한국 힙합의 대중화와 산업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다만 이 과정에서 중요한 왜곡도 발생했다. <쇼미더머니>는 힙합이라는 문화 전체를 보여주기보다, 그중 일부 요소, 이를테면 배틀, 디스, 분노, 성공 서사만을 떼어내 방송용으로 재조립했다. 씬과 커뮤니티 안에서 축적되던 관계와 맥락은 경쟁과 캐릭터, 갈등 구조로 압축됐고, 그 결과 힙합은 하나의 문화이자 삶의 태도라기보다 반복 가능하고 재현 가능한 특정 이미지로 소비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힙합다운 모습’은 점차 많은 이들의 머릿속에 고정관념처럼 자리 잡았고, 대중이 접하는 힙합의 상당 부분은 이 방송이 만들어낸 이미지에 가까워졌다. 다시 말해 <쇼미더머니>는 힙합을 산업으로 확장하는 동시에, 특정한 방식으로 제한하는 역할도 함께 수행했다.

아이돌 iKON의 바비가 <쇼미더머니> 시즌3에서 우승하며 프로그램은 전성기를 맞이한다.

이 지점에서 <쇼미더머니>는 단순히 힙합 씬을 비춘 프로그램이 아니라, 씬과는 다른 차원의 생태계를 만들어낸 프로그램이 된다. 기존의 힙합 씬이 공연장과 온·오프라인 커뮤니티, 뮤지션과 관계자들의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형성됐다면, <쇼미더머니> 이후의 힙합은 방송, 음원 플랫폼, 레이블, 스타 시스템까지 포함하는 산업 구조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결국 힙합이 만들어지고 소비되는 방식 자체가 바뀌었다. 과거에는 앨범과 공연, 입소문을 통해 천천히 성장했다면, 이제는 방송을 통해 단숨에 스타가 되는 구조로 전환됐다. 그리고 많은 대중이 접한 ‘힙합’은 이 새로운, <쇼미더머니>의 시스템 안에서 생산된 이미지였다.


<쇼미더머니> 시즌10에서 이찬혁의 이 가사 한 줄은 지금까지도 회자된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필연적으로 피로를 낳았다. 힙합 그 자체가 아니라, 반복적으로 재현된 힙합의 이미지가 먼저 소진되기 시작한 것이다. 2020년대에 들어 힙합은 더 이상 가장 새롭고 멋진 음악으로만 받아들여지지 않게 되었고, <쇼미더머니>가 반복해온 문법 역시 점차 힘을 잃었다.

특히 <쇼미더머니 10> 무렵부터는 “힙합은 안 멋져”라는 식의 냉소가 농담처럼 유통되기 시작했는데, 이 시기 힙합은 케이팝과 밴드 음악 안으로 흡수되며 하나의 장르라기보다 음악적 요소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이는 힙합 전체에 대한 반감이라기보다, 방송이 만들어낸 ‘힙합’의 전형에 대한 피로에 가까웠다. 다시 말해 대중이 질린 것은 힙합이 아니라, 오랫동안 <쇼미더머니>가 반복해온 방식이었다.

결국 문제는 명확했다. <쇼미더머니>는 힙합을 대중화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동시에 그 이미지를 반복하며 스스로를 소진시키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쇼미더머니 12>의 슬로건 ‘HIPHOP NEVER DIE’는 아이러니하게도, 힙합 그 자체라기보다 <쇼미더머니>가 제시해온 ‘힙합’을 되살리는 방향으로 읽히기도 한다.


<쇼미더머니> 시즌 12의 프로듀서 릴 모쉬핏의 무대

이미 힙합은 하나의 고정된 장르라기보다, 다양한 음악 안에서 변형되고 결합되는 유연한 형식으로 작동하고 있다. 그렇기에 4년 만에 돌아온 이번 시즌이 마주한 과제는 분명했다. 반복되어온 방송의 문법을 어떻게 갱신할 것인가, 그리고 방송 밖에서 이미 변화한 힙합의 흐름을 어떻게 다시 담아낼 것인가였다.

이 공백기 동안 음악 산업 환경 역시 크게 달라졌다. 코로나 이후의 시장 변화와 투자 위축은 힙합 레이블에도 영향을 미쳤고, 방송을 중심으로 형성되던 힙합 스타 시스템 역시 균열을 맞았다. 그 결과 힙합 씬은 다시 방송 밖에서 재편되기 시작했다.

한 시대를 이끈 힙합 레이블이 닫히는 과정은 분명 아쉬운 일이었지만, 그 이면에서는 개별 아티스트가 직접 주목받는 흐름이 강화됐다. 방송 서사가 아닌 음악과 작업물 자체가 중심이 되었고, 스타가 탄생하는 경로 역시 더 이상 하나로 수렴되지 않았다. 유튜브, 틱톡, 스트리밍, 커뮤니티, 라이브 콘텐츠가 새로운 무대가 되었다.

이제 <쇼미더머니>는 더 이상 절대적인 중심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이 한때 만들어낸 생태계가 달라진 이후, 그 변화된 환경 속에서 스스로의 위치를 다시 증명해야 하는 프로그램이 되었다. 이런 변화 속에서 <쇼미더머니 12>가 선택한 방향은 비교적 명확하다. 완전히 새로운 포맷을 구축하기보다, 이미 검증된 시스템을 유지한 채 일부 변주를 더하는 방식이다. 다시 말해 이번 시즌은 실험이라기보다 조정에 가깝다.

이는 어느 정도 필연적인 선택이기도 하다. <쇼미더머니>는 단순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오랜 시간 축적된 IP이자, 방송사 내부에서 하나의 제작 시스템으로 작동해온 포맷이다. 제작진과 인력, 제작 방식, 그리고 ‘쇼미더머니다운 것’에 대한 대중의 기대까지 고려하면 급격한 변화는 오히려 리스크가 될 수 있다. 결국 <쇼미더머니 12>는 과거의 성공 공식을 유지한 채, 그 위에 현재를 덧붙이는 방식을 택한다.


그렇다고 해서 <쇼미더머니>가 현재의 힙합 씬에서 완전히 무의미해진 것은 아니다. 다만 이 프로그램이 지금까지 의미를 유지해온 방식은 제작진의 기획이나 포맷의 완성도에 있기보다, 그 안에 참여하는 아티스트들의 작업과 태도에 더 가까웠다. 다시 말해 <쇼미더머니>는 힙합을 만들어내는 프로그램이라기보다, 아티스트들이 만들어낸 힙합을 담아내는 그릇에 가까워졌다.

이러한 양상은 이번 시즌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프로그램의 구조와 문법이 반복되는 가운데에서도, 참가자와 프로듀서들은 매번 그 안에서 힙합이 본래 가지고 있던 태도를 끌어오려는 시도를 이어왔다. 이는 이번 시즌에서 새롭게 등장한 흐름이라기보다, <쇼미더머니> 초창기부터 반복되어온 모습이다. 소울다이브, 지조, 스윙스, 그리고 이후의 여러 참가자들까지, 프로그램은 종종 스스로 구축한 이미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힙합의 결을 드러내는 순간들을 만들어왔다.

이번 시즌에서도 확인되는 것은 기술적 완성도나 장르적 세련됨보다, 태도와 에너지, 그리고 관계성이 중요한 요소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음악은 개인의 성취를 넘어 크루와 동료, 그리고 씬과의 연결 속에서 의미를 획득하고, 이는 경쟁 중심의 구조 안에서도 완전히 통제되지 않는 균열처럼 드러난다. 참가자들은 프로그램의 문법 안에 머물면서도, 그 문법을 그대로 따르지 않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위치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흐름은 힙합이 하나의 방향으로 정리되지 않고, 다양한 층위의 감각과 태도가 공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중 하나는 과거의 감각을 되살리는 복원의 움직임이다. 한국 힙합은 짧은 시간 안에 빠르게 성장해온 만큼, 충분히 축적되지 못한 맥락과 유산 역시 존재한다. 그리고 이번 시즌의 일부 무대는 이러한 공백을 메우듯, 힙합이 원래 가지고 있던 감각과 태도를 다시 호출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이러한 복원의 움직임은 프로덕션과 사운드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릴모쉬핏의 샘플링 중심 작업은 과거의 음악을 단순히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현재의 문법 안에서 다시 구성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한국 가요와 힙합의 아카이브를 새로운 재료로 활용하며, 시간의 층위를 겹쳐내는 시도다. 반면 허키 시바세키는 날것의 질감과 미니멀한 사운드를 통해 기술적 완성도보다 바이브와 에너지에 집중하는 감각을 환기시킨다.

구체적인 무대에서도 이러한 흐름은 이어진다. 플로우식의 랩은 DMX를 연상시키는 오마주로 읽히며, ‘BOUNCE BACK’은 2000년대 칸예 웨스트의 칩멍크 소울 프로덕션을 떠올리게 한다. 트레이비의 ‘BAOW’는 블락비의 ‘닐리리 맘보’를 샘플링하며 한국과 미국 힙합의 맥락을 교차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러한 시도들은 단순한 레트로 재현이라기보다, 힙합의 계보를 현재의 문맥 안으로 다시 끌어오는 작업에 가깝다.

더 나아가 이러한 복원은 사운드를 넘어 서사와 관계의 층위에서도 나타난다. 과거의 아티스트와 크루, 레이블이 직접적으로 호출되고, 씬 내부에서 축적된 관계와 역사들이 무대 위로 드러난다. 나우아임영과 제네더질라가 이센스와 더콰이엇을 소환하는 장면은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방송 이전부터 이어져온 힙합 씬의 시간성을 현재와 연결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물론 이러한 장면들은 종종 ‘인맥 힙합’이라는 비판으로 소비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크루와 동료 의식, 그리고 현장 중심의 문화가 자리하고 있다. 이는 <쇼미더머니>가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던 힙합의 또 다른 층위이며, 동시에 이 프로그램이 여전히 완전히 지워내지 못한 영역이기도 하다.

결국 이번 시즌에서 드러나는 ‘복원’은 프로그램이 새롭게 만들어낸 성과라기보다, 그 안에 참여한 아티스트들이 반복해서 끌어올려온 힙합의 태도가 다시 한번 표면으로 드러난 결과에 가깝다. <쇼미더머니>는 이를 온전히 설명하거나 확장하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그 흔적을 드러내는 장치로서는 여전히 기능하고 있다.


<쇼미더머니> 시리즈에서 처음으로 아프로비츠 장르로 무대를 꾸민 마브.

이러한 복원의 흐름과는 또 다른 방향에서, 힙합은 확장의 형태로도 나타난다. 다만 이 역시 <쇼미더머니>가 주도적으로 만들어낸 변화라기보다, 이미 바깥에서 진행되고 있던 흐름이 프로그램 안으로 일부 반영된 결과에 가깝다.

이번 시즌에서도 확인되는 것은 특정 장르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다양한 음악적 요소를 자유롭게 조합하는 방식이다. 아프로비츠(‘물들이자’), 브레이크비트(‘ON to the next’), 하드스타일 테크노(‘DIRT!’), 브라질리언 펑크(‘No Manners’) 등 서로 다른 리듬과 질감이 하나의 곡 안에서 자연스럽게 교차한다. 이는 힙합을 특정한 사운드로 규정하기보다, 여러 음악적 언어를 엮어내는 방식에 가깝다.

이러한 변화는 최근 음악 소비 환경의 변화와도 맞닿아 있다. 스트리밍과 숏폼 플랫폼을 중심으로 음악이 소비되면서, 장르는 더 이상 절대적인 기준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대신 곡은 분위기와 캐릭터, 순간적인 인상으로 소비되며, 래퍼 역시 특정 장르에 속한 존재라기보다 다양한 사운드를 가로지르는 플레이어로 기능한다. 힙합은 하나의 스타일이라기보다, 조합과 선택의 방식에 가까워지고 있다.

이 흐름의 중심에는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가 있다. 이들에게 힙합은 특정 지역이나 공동체에서 출발한 문화라기보다, 인터넷을 통해 학습하고 재구성한 사운드에 가깝다. 사운드클라우드, 디스코드, 틱톡과 같은 플랫폼을 중심으로 형성된 최근의 언더그라운드 씬은 물리적 공간이 아닌 디지털 환경 위에서 정체성을 구축해왔고, 그 과정에서 레이지, 저크, 디지코어와 같은 장르가 등장했다.

이러한 음악은 기존 힙합의 문법을 해체하며 전혀 다른 방식의 진정성을 만들어낸다. 과도하게 증폭된 신스, 끊기는 듯한 리듬, 왜곡된 음질, 밈적인 감각은 완성도나 정교함보다 순간적인 에너지와 공유 가능성에 더 큰 가치를 둔다. 틱톡과 같은 플랫폼을 통해 빠르게 확산되며, 얼마나 잘 만들어졌는가보다 얼마나 빠르게 소비되고 퍼지는가가 중요한 기준이 된다.

이번 시즌에서 트레이비, 제프리 화이트, 메이슨 홈 등의 무대에서 포착되는 레이지나 저크의 흔적은 이러한 흐름과 맞닿아 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단순한 장르 차용이 아니라, 힙합이 어디로 이동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신호라는 점이다. 즉 <쇼미더머니 12>는 여전히 과거의 문법 위에 서 있으면서도, 동시에 그 바깥에서 형성된 새로운 감각을 부분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확장은 장르를 넘어 정체성과 서사의 방식에서도 나타난다. 정준혁과 밀리 같은 참가자들을 통해 드러나듯, 힙합은 더 이상 특정 지역이나 언어, 커뮤니티에 묶인 장르라기보다 각자의 상황과 배경을 드러내는 글로벌한 표현 방식으로 기능한다. 특히 밀리의 무대는 퍼포먼스와 연출을 적극적으로 결합하며, 힙합을 음악을 넘어 하나의 종합적인 엔터테인먼트로 확장시키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처럼 이번 시즌에서 드러나는 확장은 하나의 방향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과거를 복원하려는 움직임과, 새로운 감각으로 확장하려는 흐름은 동시에 존재하며 서로 교차한다. 그리고 <쇼미더머니 12>는 이 두 흐름을 만들어내기보다, 그 일부를 뒤늦게 포착하고 병치하는 위치에 놓여 있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이러한 두 방향을 담아내기에는, <쇼미더머니>의 시스템이 여전히 과거의 문법에 머물러 있다는 점에서 발생한다. 앞서 살펴봤듯 이번 시즌의 힙합은 과거를 복원하려는 흐름과, 미래를 향해 확장되는 흐름이 동시에 존재한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와 달리, <쇼미더머니>의 시스템은 여전히 과거의 문법 위에 머물러 있으며, 그 움직임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

<쇼미더머니>를 규정해온 핵심 구조, 목걸이를 주는 1차 예선, 불구덩이에 빠지는 2차 미션, 음원 미션, 디스 배틀은 이번 시즌에서도 거의 그대로 유지된다. 한때는 이 구조 자체가 새로움이자 프로그램의 아이덴티티였지만, 이제는 반복된 공식이 되었다. 변화는 일부 디테일에 머물고, 전체 구조는 과거의 성공 방식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특히 1차 예선에서 이러한 한계가 반복해서 드러난다. 대규모 참가자, 체육관 오디션, 자극적인 캐릭터 중심의 편집은 여전히 방송 초반의 흡입력을 담당하는 장치다. 그러나 지금의 미디어 환경에서 이러한 방식은 더 이상 독점적인 매력을 갖기 어렵다. 어그로와 밈은 이미 유튜브와 SNS에서 일상적으로 소비되고 있으며, 시청자는 그것을 방송을 통해 다시 확인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그 결과 이 장면들은 흥미보다 피로를 유도하고, 프로그램을 ‘힙합을 보여주는 방송’이 아니라 ‘힙합을 소재로 한 예능’으로 보이게 만든다.

이러한 한계는 이후 미션 구조에서도 반복된다. 송캠프 미션은 본래 협업과 분업을 통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창작 방식이지만, 프로그램 안에서는 경쟁과 갈등을 강화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그 과정에서 창작 과정은 축소되고, 결과만 전면에 배치된다. 음원 미션 역시 짧은 제작 기간과 흥행 압박 속에서 화제성 중심의 선택이 반복되며, 음악은 하나의 완결된 결과물이 아니라 장면의 집합처럼 소비된다.

흥미로운 것은, 오히려 이러한 시스템 바깥의 형식이 더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는 점이다. OTT를 통해 공개된 <야차의 세계>는 랩과 개인의 서사에 집중하며 불필요한 장치를 덜어낸 방식으로 호평을 받았다. 이는 역설적으로, 확장된 힙합의 외피를 따라가기보다 랩과 태도, 그리고 개인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방식이 더 유효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균열은 때로 논란의 형태로 드러난다. <쇼미더머니 12> 속 저스디스와 비와이의 피처링처럼 정치/사회적 메시지가 가사에 등장하는 사례가 그렇다. 힙합이 다양한 소재를 통해 개인의 사상과 신념을 드러내는 표현 방식이라는 점에서 이러한 시도 자체는 낯설거나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러한 발화가 경연 프로그램의 맥락, 방송이 조명한 모습과 만들어낸 서사 안에서 얼마나 유기적으로 작동하는지는 별개의 문제로 남는다.

그럼에도 이러한 장면들은 힙합이 서로 다른 의견이 충돌하는 현 시대의 분위기를 반영하고, 드러내는 언어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이러한 사례들은 <쇼미더머니>의 한계를 드러내는 동시에, 그 안에서 완전히 통제되지 않는 힙합의 성질 역시 보여준다. 프로그램은 일정한 구조와 서사를 유지하려 하지만, 그 안에 참여하는 아티스트들의 표현은 때때로 그 틀을 벗어나며 새로운 맥락을 만들어내려 한다.

이러한 구조는 프로그램의 본질적인 한계를 드러낸다. 이미 스타는 방송 밖에서도 만들어지고 있고, 음악 역시 다양한 플랫폼에서 소비되는 시대다. 그럼에도 <쇼미더머니>는 여전히 중앙집중적인 방식으로 참가자를 선별하고 경쟁시키며 서사를 구축한다. 특히 글로벌 사전투표와 같은 장치는 이러한 문제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충분한 맥락 없이 외부 변수로 결과에 개입하는 방식은 공정성의 문제를 넘어, 프로그램이 어떤 기준으로 작동하는지에 대한 혼란을 남긴다.

결국 <쇼미더머니 12>가 드러내는 것은 하나의 아이러니다. 힙합은 점점 더 분산되고, 탈중심화되며, 다양한 방향으로 확장되고 있다. 그러나 프로그램은 여전히 중앙집중적인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씬은 변화했지만, 시스템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이번 시즌의 문제는 단순한 완성도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의 환경에서 이 시스템이 여전히 유효한가라는 질문으로 수렴된다.


그렇다면 지금의 <쇼미더머니>는 무엇인가? 이 프로그램은 더 이상 힙합 씬을 대표하는 중심도, 새로운 스타를 만들어내는 유일한 통로도 아니다. 한때 <쇼미더머니>는 힙합을 대중화하고 산업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그 과정에서 구축된 시스템은 이제 시대의 변화와 완전히 보조를 맞추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쇼미더머니>가 완전히 무의미해진 것은 아니다. 이 프로그램은 여전히 힙합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부분적으로 포착하는 장치로 기능하며,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흐름들을 하나의 화면 위에 병치한다. 과거를 복원하려는 움직임과, 새로운 감각으로 확장하려는 시도는 이 안에서 충돌하고 교차한다.

다만 중요한 것은, 이제 힙합의 방향을 결정하는 주체가 <쇼미더머니>가 아니라는 점이다. 힙합은 이미 방송의 바깥에서 더 빠르게 움직이고 있고, 더 다양한 경로를 통해 생성되고 소비되고 있다. <쇼미더머니>는 더 이상 ‘힙합’을 만들어내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이미 바깥에서 만들어진 힙합을 뒤늦게 따라가며 담아내는 그릇에 가까워졌다.

이 지점에서 <쇼미더머니 12>는 하나의 결론이 아니라 질문에 가깝다. 이 시스템은 여전히 유효한가. 그리고 힙합은 더 이상 이 시스템을 필요로 하는가. 어쩌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프로그램이 아니라, 이미 그 바깥에서 만들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힙합은 여전히 살아 있고, 계속해서 변형되며 확장되고 있다. 다만 그 중심이 더 이상 방송 안에 있지 않을 뿐이다. 그렇기에 지금 필요한 것은 힙합을 하나의 틀 안에 가두려는 시도가 아니라, 서로 다른 움직임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존재하면서도 맞물릴 수 있는 조건을 남겨두는 일이다.

어쩌면 중요한 것은 누가 중심이 되는가가 아니라, 서로 다른 위치에 있는 흐름들이 어떻게 맞물리며 작동하는가에 가깝다. <제리 맥과이어>의 대사 “You complete me.”처럼, 씬과 시스템, 개인과 방송은 각기 불완전한 상태로 존재하지만, 그 긴장 속에서 서로를 보완하며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다.

About Author
최승인

음악을 듣고, 쓰고, 떠드는 일을 한다.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으로도 활동하며, 넋매거진을 운영 중이다. 힙합과 R&B부터 재즈, 인디, 팝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신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