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에디터B다. 처음에는 라멘 맛집 원고를 받으려고 했다. 라멘괴인 웅성은 지금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라멘 인플루언서이니, 한국의 라멘집을 소개하는 글을 써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원고 청탁 메일을 쓰고 연락처를 남겼다. 다음 날이 되었지만 회신은 오지 않았다. 오해는 하지 않으면 좋겠다. 섭외라는 건 원래 이렇다. 필자 섭외에 하루 만에 답장을 보내주는 경우는 드물다. 보통은 덜 바쁠 때 답장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미루다 주말에 메일을 쓰거나, 아예 잊는 경우도 많다. 웅성에게서 연락이 온 건 며칠 뒤였다. 이메일이 아니라 전화로.
“안녕하세요, 웅성입니다.”
유튜브에서 자주 듣던 그 목소리였다.
1. 라멘 오타쿠, 웅성
영상으로만 보던 인물의 목소리를 실제로 들을 때면, 연예인이든 아니든 묘한 느낌이 든다.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느낌이랄까. 8년 전 이동진 평론가를 섭외할 때도, 조승연 작가를 만났을 때도 그랬다. 웅성은 요즘 내가 보는 거의 모든 푸드 채널(육식맨, 맛수령 등)에 등장하고 있다. 실제로 들으니 낯설고 익숙했다.
원고는 아쉽게도 진행되지 않았다. 경험상 원고 청탁은 높은 확률로 회신이 없고, 그보다 약간 낮은 확률로 진행이 무산된다. 아쉽지만 익숙한 일이었다. 전업 작가가 아닌 경우에는 스케줄 문제로 어려운 경우가 많으니까. 대신 웅성은 다른 제안을 했다.
“제가 이번에 한일 교류 팝업을 하게 됐습니다. 에디터님을 초대하고 싶은데, 혹시 관심 있으실까요?”
웅성은 세 번째 한일 라멘 팝업을 준비 중이었다. 한국과 일본의 라멘집이 모여 독창적인 메뉴를 선보이는 콜라보레이션 팝업이다.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에는 기대감과 확신이 섞여 있었다. 분명 의미 있는 자리일 거라는 확신이었다. 나는 바로 확답을 하지는 않았다.
“자료 보내주시면 검토해보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이번주와 다음주 스케줄을 살펴 봤다. 이번주는 스케줄이 미쳤고, 그 다음 주는 더 미쳤다. 팝업을 방문하고 사진을 찍고 글을 쓸 시간은 없어 보였다. 그래도 궁금했다.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라오타’가 기획한 한일 라멘 팝업이라니. ‘그래, 주말에 쓰면 되겠지.’ 결국 메시지를 보냈다. “관심 있습니다. 다음 주 금요일에 뵙겠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라멘필을 한국에서 맛볼 수 있다는 점도 기대를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라멘필은 2021년 도쿄 오메시에 문을 연 라멘 전문점이다. 현재는 문을 닫았기 때문에 그 가게의 라멘을 먹는 방법은 없다. 라멘필의 셰프 와타나베 다이스케는 라멘 경력 11년차로 현재 새로운 라멘의 가능성을 찾기 위해 몇 년 동안 공부 중이며, 일본에서 가장 예약하기 어려운 라멘집 ‘이이다 쇼텐’에서 4년 반을 수련한 뒤 독립한 유일한 졸업생이기도 하다. 한국에는 한 번도 와본 적이 없었지만, 여러 번 찾아온 웅성을 보며 이번 팝업을 결심했다고 했다. 한편으로는 꽤 오랫동안 웅성을 ‘멘야준’의 오너로 착각할 정도로 말이다.

3월 27일 금요일 저녁 7시 30분, 소바하우스 멘야준에 도착했다. 외관은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가게 앞에는 캠핑 체어를 펴고 웨이팅하는 손님이 둘 있었고, ‘오늘은 대관 행사로 입장이 어렵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익숙한 장면이 펼쳐졌다. 오즈모 포켓을 들고 있는 푸드 유튜버, 노트북으로 영상을 편집하는 인스타 매거진 에디터, 그리고 소수의 연예인들. 나는 안내받은 자리에 앉아 시오라멘을 하나 주문했다. 메뉴는 쇼유와 시오, 두 가지였고 1인 1메뉴만 가능했다.


2인석에 앉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합석을 하게 됐다. 맞은편에는 유튜버 카라미가 앉아 있었다. 라멘 오타쿠로 불리지만, 그보다 훨씬 넓은 영역을 깊게 파는 크리에이터다. 라멘이 나오기 전, 행사를 기획한 웅성과 멘야준의 셰프 전기준, 그리고 와타나베 다이스케가 직접 메뉴를 소개했다. 정확한 설명을 위해 전기준 셰프의 말을 그대로 옮긴다.
“시오라멘은 저희가 쓰고 있는 돼지랑 토종닭으로 베이스 육수를 만들었어요. 그리고 저희가 라멘을 만들기 전에 보쌈을 먹으러 갔는데,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어서 한국에 있는 삼겹살로 보쌈을 해봤습니다. 차슈를 만드는 방법과 일반적으로 수육 만드는 방법이 비슷하더라고요. 그걸 착안해서 준비를 해드렸고요. 천일염이랑 게랑드 소금을 블렌딩해서 만들었습니다.”
“쇼유라멘은 베이스 육수는 시오라멘과 같고, 조금 더 단단하게 하기 위해서 등뼈를 조금 더 많이 넣었어요. 조금 더 묵직한 육수를 준비해드렸습니다. 땅두릅을 올렸는데, 그냥 올리지 않고 덴푸라 느낌으로 튀겨서 올렸고, 그 외에는 세발나물, 비장탄에 구운 목살, 등심, 앞다리가 있습니다. 또, 일본 라멘에는 기본적으로 멘마가 많이 들어가는데 멘마 대신에 한국 식재료인 고사리를 이찌방다시에 담가서 맛을 냈습니다. 간장 맛만 나는 게 아니라 고추도 들어가서 미세하게 매운맛이 납니다. 거의 4일 동안 잠을 잘 못 자고 계속 준비했어요. 한 그릇이지만 정말 시간을 많이 들여서 정성껏 준비했으니 잘 즐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 순간, 내가 왜 이 팝업을 취재하고 싶었는지 분명해졌다. 나는 이런 장면을 좋아한다. 서울 연남동의 작은 라멘집에 라멘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서울에서 라멘을 만드는 사람, 도쿄에서 라멘을 만드는 사람, 그리고 그 둘을 연결한 기획자. 하나의 취향을 깊게 파고든 사람들이 만든 자리였다.
2. 전기준과 와타나베 다이스케
전기준 셰프는 신주쿠에 있는 멘야쇼에서 2년 조금 안 되는 기간을 근무했다. 한국에 돌아와 1호점 멘야준을 2021년 1월에 오픈했다. 라멘필 또한 비슷한 시기에 오픈했고 오픈과 동시에 큰 주목을 받은 곳이라 셰프는 오래전부터 라멘필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셰프는 이번 라멘을 준비하기 위해 어느 한 나라의 특징을 살리 보다는 함께 만들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냉이, 두릅, 새우젓갈 같은 한국적인 식재료를 사용하며 특색을 줬다.
와타나베 다이스케는 2021년 도쿄도 오메시에 오픈했던 라멘 전문점 라멘필의 셰프였다. 고등학교 졸업 후 미국에 갔는데, 생활이 만족스러웠지만 단 하지 ‘라멘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다시 일본으로 돌아왔다. 처음에는 아르바이트로 시작했던 라멘에 대한 열정이 점점 커져 이이다 쇼텐에서 수행을 선택했고, 그것이 라멘필로 이어진 것이다. 셰프는 이번 팝업을 준비하며 한국 라멘의 수준에 굉장히 놀랐다고 한다. 한국의 식재료를 사용하여 최대한 라멘필의 맛을 구현하는 게 목표였는데, 한국의 발효 식품을 이용해 만들었고, 앞으로도 일본인의 시선으로 본 한국의 조리법과 한국인의 시선으로 본 일본의 조리법을 고민하면 서로의 장점을 살릴 수 있을 것 같다고도 말했다.
한일교류라멘 팝업은 짧은 기간 이루어진 작은 팝업이었지만, 기획자 웅성, 셰프 전기준, 와타나메 다이스케 3명의 라오타가 만든 의미있는 행사다. 내가 이 곳에 꼭 다녀오고 싶었던 이유도 나를 끄는 에너지가 있었기 때문이아닐까. 가끔 혼자 미식 투어를 하다 보면 셰프와 교감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일부러 멋을 부리려는 말은 아니다. 대량으로 만들기 쉽고, 더 효율적인 선택도 있을 텐데 굳이 어려운 길을 택한 사람들. 그들이 만든 음식을 설명하고, 그걸 눈앞에서 즐기며 먹는 순간. 그때 나는 별 이유 없이 웃게 된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정도의.


라멘의 맛을 자세히 설명하고 싶지만, 나는 라오타가 아니다. 그러니 자세한 표현은 어렵다. 두 가지 메뉴 모두 좋았다. 쇼유라멘은 직접 주문하지 못해 앞에 앉은 카라미의 라멘을 한두 입 정도 맛본 게 전부였지만, 인상은 시오라멘보다 더 강했다. 라멘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다. 쇼유라고 해서 간장 맛만 나는 것도 아니고, 시오라고 해서 소금 맛만 나는 것도 아니다. 이 시오라멘은 균형이 특히 좋았다. 소금을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그것이 이 라멘의 전부가 되지 않도록 조율한 느낌이랄까. 균형이 좋았다고 하면 보통 ‘에이 그럼 평범한 거네’라고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음식에서 균형을 맞춘다는 건 높은 집중력, 집요함, 내공과 시간이 필요하다. 절대로 쉬운 게 아니다. 토종닭 육수의 개성도 분명하게 살아 있었다. 반면 쇼유라멘은 점잖게 화려했다. 더 강렬하지만, 동시에 레이어가 복잡했다. 하나씩 해체해서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땅두릅이 올라간 쇼유라멘을 좀 더 빼앗아 먹고 싶었지만 간신히 참았다.



식사를 마친 손님들은 각자의 포토타임을 가진 뒤 하나둘 자리를 떠났다. 다음 손님들이 입장하기까지 약 10분 정도의 여유가 생겼고, 짧은 인터뷰를 진행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장소는 제면실 바로 옆 2인석.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라멘에 미쳐 사는 남자 한성웅, 웅성이라고 합니다. 본업은 정보 보안 전문가, 화이트해커로 활동하고 있고요. 라멘이 너무 좋아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언제부터 라멘을 좋아했어요?
19살 때부터니까 거의 15년은 된 것 같습니다.
처음 먹은 라멘이 무엇이었는지 기억나요?
돈코츠 라멘이었어요. 그때는 돈코츠 라멘 붐이 있어서 자연스럽게 그걸 따라갔습니다.
많은 음식 중에서 라멘을 이렇게까지 좋아하게 된 이유는 뭘까요?
라멘은 종류가 정말 다양하고, 근본이 없다는 게 매력입니다. 사장님이 ‘라멘’이라고 하면 그게 라멘이 되는 세계거든요. 창의적이고 바운더리가 넓으면서도 비교적 접근하기 쉬운 미식이기도 하고요.
단순히 좋아하는 것을 넘어 어떻게 팝업까지 기획하게 됐어요? 시작이 궁금합니다.
첫 번째 팝업은 제가 오히려 플러팅을 당했습니다. 라멘 티셔츠 입고 영상이나 사진도 많이 찍고 라멘 먹으러 자주 오니까 라멘집 사장님이 저를 궁금해하시더라고요. 다음 날 일정을 물어보고 또 라멘을 먹으러 간다고 하니 자기도 따라다니고 싶다고. 그렇게 대화를 나누다가 한국에서 라멘을 해보자는 얘기가 나왔고, 그게 실제로 이어졌습니다.
라멘을 잘 모르는 사람이 라멘 한 번 먹어볼까 싶다면 어떻게 시작하는 게 좋을까요?
제 채널이나 인스타그램에 오랫동안 쌓아둔 추천 리스트가 있습니다. 시오로 시작했다면 그 다음엔 쇼유 그리고 그 다음엔 미소, 이렇게 다양한 메뉴를 각각 경험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앞으로의 계획은요? 직접 라멘집을 차릴 생각은 없나요?
라멘집을 직접 차릴 생각은 없고, 이런 시도를 계속 이어가고 싶습니다. 한국적인 색을 가진 라멘을 더 많이 소개하고, 새로운 재료도 계속 제안해보고 싶어요.

인터뷰를 마치고 가게를 나왔을 때, 여전히 두 명의 손님이 캠핑 체어에 앉아 있었다. 토요일 오전 10시 입장을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이었다. 시계를 보니 금요일 밤 9시. 그 풍경을 보며 와타나베 다이스케의 말이 떠올랐다. “팝업을 통해 라멘에는 국경이 없다는 것을 느껴주셨으면 합니다.”
About Author
김석준
에디터B. 쓸데없는 물건을 좋아한다는 오해를 자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