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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에디터의 장바구니 털기 8

차마 아직 구매하지 못한 것들.list
차마 아직 구매하지 못한 것들.list

2026. 03. 26

안녕, 객원 에디터 손현정이다. 나는 쇼핑의 악마와 계약한 것이 틀림없다. 보통 사람은 마음에 드는 물건이 생기면 위시리스트에 담아둔다. 나도 분명 그렇게 했던 것 같은데, 정신 차리고 보면 문자 한 통이 와 있다.

“구매하신 제품이 배송 완료되었습니다.

위시리스트라는 게 사실 나에게는 별 의미가 없다는 걸 알아버렸다. 꽂히면 위시리스트에서 고민의 시간을 거치기도 전에구매되어 버리기 때문에. 그럼에도 아주 조금 위시리스트에 남아 있는 물건들이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사지도 않으면서 계속 들여다보는 것들. 솔직히 말하자면, 그 위시리스트에는 필요한 물건은 거의 없다. 대부분은 사고 싶지만 아직까지 사지 않은 것, 혹은 비싸거나 쓸모는 없지만 괜히 사고 싶은 것들, 둘 중 하나다. 몇 번을 장바구니에 넣었다 빼고, 가격을 검색해보고 리뷰를 뒤적이다가도 결국은 다시 페이지를 닫게 되는 물건들. 말하자면 ‘사고 싶은 마음의 점수’만 남은 리스트다.

그래서 이번에는 남의 위시리스트 말고, 맨날 남한테 추천만 하던 내 위시리스트를 한번 털어보려고 한다. 사기 일보 직전인 물건들도 있으니, 현 시점을 기준으로 한 위시리스트라고 봐주면 좋겠다. 각 아이템에는 솔직한 위시 점수도 함께 매겼다. 10점 만점이고, 10점에 가까울수록 많이 사고 싶다는 뜻이다.


유니클로

요즘 퇴근 후 가장 많은 시간을 쓰는 취미는 애니 보기다. 특히 소년만화, 다크판타지, 액션 같은 장르. 사실 장르가 뭐든 일단 막 싸우면 좋아하는 것 같다. 새로운 취미에 빠진 사람답게 돈도 꽤 쓰고 있다. 피규어, 가챠, 만화책 같은 굿즈들이 하나둘 늘어가는데 이상하게 만화 그래픽 티셔츠는 아직 못 입겠다. 사회적으로 오타쿠임을 인정받는 느낌이랄까. (굳이 사회에서 인정받을 필요는 없지않나)

그런데 이 유니클로 UT 베르세르크 티셔츠는 좀 다르다. 만화 티셔츠 특유의 “나 만화 좋아합니다!” 같은 기운이 덜하다. 유치하지 않은 느낌. 원작의 거칠고 밀도 높은 작화를 그대로 살린 그래픽 덕분인지 티셔츠 자체가 멋있다. 이정도면 사실 오타쿠스럽다기보다는 그냥 그래픽 티셔츠 같지 않을까. 그래서 슬쩍 입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근데 사실은… 나는 <베르세르크>를 본 적이 없다. 링크는 여기.

  • 위시 점수 6점

쿠어

위시 점수 2점

내 위시리스트의 물건들은 대체로 두 가지로 나뉜다. 쓸모없는데 귀엽거나, 너무 비싸서 못 사거나. 이 립 케이스 키링은 전자다. 쓸모없는데 귀엽다! 나는 사실 립스틱을 자주 바르지 않는다. 수시로 꺼내 바르기도 귀찮고, 원하는 색을 제대로 내려면 공정(?)이 꽤 복잡하다. 그래서 대부분 그냥 생입술로 다니는 날이 많다. 입술이 건조하면 립밤을 바르는 정도. 그런 내가 립 케이스를 왜 사고 싶냐고 묻는다면… 글쎄, 요즘 다들 가방에 인형 키링 하나씩 달고 다니지 않나.

그 키링을 ‘인형 대신’이라고 생각하면(?) 한 번쯤 사볼 만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은은한 광택이 꽤 예쁘고, 키링 줄도 못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자꾸 눈이 가나보다.

근데 한 가지 치명적인 문제는 나는 매일 가방을 바꿔 드는 사람이고, 물건을 자주 깜빡하는 사람이라는 것. 아마 사도 며칠 뒤엔 “이거 어디 가방에 달아놨지?” 하고 찾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몇 달 뒤에 “내가 이 립스틱을 잃어버린 게 아니었다고?’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위시 점수는… 솔직하게 2점. 링크는 여기.

  • 위시 점수 2점

yy

나는 진짜 모자가 안 어울리는 사람인 것 같다. 특히 볼캡. 챙 때문에 시야가 조금 가려지는 느낌이 있는데, 그게 괜히 불안하다. 세상의 정보가 일부 차단된 느낌이랄까. 집에 볼캡이 서너 개 있는 걸로 알고 있지만 자주 쓰는 건 고작 하나뿐인데다가, 그마저도 일 년에 한두 번 쓰려나. 

그럼에도 yy 볼캡이 눈에 밟히는 이유는 단 하나다. 물 빠진 듯 은은한 그라데이션과 옆면의 귀여운 심볼 로고. 자연스럽게 바랜 듯한 디테일이 매력적이다. 다양한 룩에 적절히 분위기를 가라앉혀 줄 것 같다. 생각해보니 2~3년 전 준지에서 나온 볼캡도 정말 사고 싶었던 적이 있다. 그때도 결국 포기했다. 쓰지도 않을 모자를 십몇만 원 주고 사는 게 너무 사치스럽게 느껴져서. 그래도 이건 10만 원 미만이다. 게다가 편집샵 쿠폰이라도 쓰면 가격이 더 내려간다. 이 정도면… 가성비 모자 아닐까?

포멀한 자켓에도 잘 어울릴 것 같고, 가끔 동네 술집 갈 때 입는 ‘꾸안꾸’ 추리닝 차림에도 괜찮을 것 같다. 살짝 페미닌한 룩에도 분위기를 차분하게 눌러줄 것 같고. 물론 현실적으로는 1년에 세 번쯤 쓰고 말겠지만. 링크는 여기.

  • 위시 점수 4점

스르비

요즘 자라 가죽 자켓이 꽤 화제다. 사람들은 “생로랑 맛 자라”, “더로우 맛 자라” 같은 표현을 쓰면서 하나둘씩 구매한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조금 혹했다. 이번 시즌 자라에 생각보다 살 만한 옷이 많아서, 자칫하면 월급을 통째로 털릴 뻔했다. 그 유혹을 버틸 수 있었던 건 아마 이 자켓 때문이 아닐까 싶다. 길거리에 널린 ‘생로랑 맛’ 가죽 자켓을 입느니 차라리 스르비의 옵스큐라 레더 자켓(Obscura Leather Jacket)을 입겠다.

자라 가죽자켓은 하이넥 여밈 단추가 약해서 오래 입으면 떨어질 것 같다는 리뷰를 본 적 있는데 스르비의 자켓은 그럴 걱정도 없다. 여유 있는 핏, 부드러운 가죽 질감, 비조 디테일까지 전체적인 무드가 꽤 완성도 높다. 흔치 않은 디자인이지만 질릴 만큼 독특한 편도 아니다. 

문제는 하나. 나는 가죽을 좋아하지만 가죽 옷을 잘 입지 않는다. 집에 있는 가죽 블레이저, 라이더 자켓, 가죽 코트… 생각해보니 요즘은 전부 거의 안 입는다. 그러니까 이 자켓도 아마 좋아만 하고 많이 입지는 않는, 옷장 프로텍터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점수는 5점. 링크는 여기.

  • 위시 점수 5점

쿠어

쿨톤 호소인으로서 브라운 색상의 옷을 입을 때마다 고민이 많다. 내게는 브라운이 잘 어울리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보통은 애쉬빛 브라운, 차콜 브라운을 고르거나, 아예 하의에만 브라운을 배치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 블레이저는 자꾸 눈에 들어온다. 넷플릭스 드라마였던가. 어딘가에서 고윤정이 비슷한 톤의 블레이저를 입은 장면이 알고리즘에 계속 뜨다 보니 괜히 예뻐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일단 내가 너무 좋아하는 쓰리 버튼 블레이저. 투버튼보다 좀 더 클래식한 무드를 주는 쓰리버튼에 스웨이드 소재감의 조합은 완벽하다. 상체가 단정하게 덮이면서도 스웨이드의 질감이 살아있어 90년대 영화 속 스타일링 같은 느낌을 준다. 여기에 너무 밝지 않은 차분한 브라운이라 “이 정도면 나도 입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착각에 빠진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나는 고윤정이 아니다. 아마 사도 몇 번 안 입고 옷장에 걸려 있을 확률이 높다. 그래서 점수는 4.5점. 링크는 여기.

  • 위시 점수 4.5점

파르피

나는 뾰족구두를 사랑한다. 발이 조금 고생하더라도 내가 원하는 무드의 룩을 완성할 수 있다면 기꺼이 희생할 수 있다. 이 슬링백은 딱 그런 신발이다. 튀지 않는 블랙 호피 패턴에 길고 날렵한 앞코, 그리고 더블 스트랩. 나 같은 사람을 꾀어내기에 디테일이 꽤 영리하다. 다리를 꼬고 앉았을 때 와이드 팬츠 사이로 슬쩍 드러날 호피 패턴을 상상해 본다. 늘 먹던 걸로 주세요 하던 지루하고 반복되는 내 옷차림에 주방장이 슬쩍 얹어준 비밀 소스 같은 킥이 될 것 같다. 이쯤되면 “이걸 안 살 이유가 뭐가 있지?” 라고 물을 수도 있겠다. 

있다. 굽이 5cm다. 높다면 높고 낮다면 낮은 애매한 높이인데, 문제는 높이가 아니라 굽의 형태다. 발목 안정성이 형편없는 나는 이렇게 얇고 긴 굽이면 10분만 걸어도 발이 흔들린다. 그래서 슬링백을 제대로 신고 외출한 기억이 거의 없다. 아마 사면 신발장 앞에서 슬퍼하는 시간이 길어지겠지. 오늘은 발목 안 아프게 해주세요, 오늘은 진짜 이걸 신어야 룩이 사는데… 하면서도 결국 플랫이나 굽이 두꺼운 구두를 신고 나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 아닌가. 망할 걸 알면서도 다시 도전하게 된다. 슬링백을 또 사게 된다면 아마 이 신발일 것이다. 링크는 여기.

  • 위시 점수 7점

위시 점수 9점

나는 프레데릭 말을 좋아한다. 룸 스프레이, 섬유 향수, 캔들, 향수… 집에 있는 향 관련 제품의 절반은 이 브랜드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한 가지 향을 꼽으라면 단연 프레데릭 말의 프로미스. 프로미스가 특별한 이유는 청사과 향을 지루하지 않게 만들 수 있다는 것 때문이다. 차갑고 상큼한 청사과 느낌으로 시작했다가 스모키하고 건조한 나무 향, 그리고 묵직한 장미가 이어진다. 가볍지 않으면서도 날카롭지 않은 향. 그리고 무엇보다 지속력이 미쳤다. 한 번 뿌리면 하루 종일, 어떤 날은 다음날 아침까지 은은하게 남는다. 이름도 좋다. Promise. 조용하지만 강하게 남는 약속 같은 향. 그런데 왜 아직 안 샀냐고 묻는다면 이건 나름의 이유가 있다. 내 마지막 향수는 프로미스라는 속박을 걸어두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또 다른 향수가 사고 싶어질 수도 있으니 최대한 미루는 중이다. 링크는 여기

  • 위시 점수 9점

신세계 백화점이었나. 지나가다 마네킹이 입은 이 준지 트랙 셋업을 보고 잠깐 멈춰 섰다. ‘와, 이렇게까지 예쁠 수 있나’ 트랙 셋업인데 너무 힙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추레하지도 않다. 잠깐 이런 생각도 했다. 이 정도면 출근룩으로도 되지 않을까(안 된다). 원래도 좋아하는 브랜드지만 가격대가 있다 보니, 이렇게까지 구매욕을 끌어올리는 룩은 사실 많지 않았다. 늘 “월 천 벌면 저런 옷들만 사 입어야지” 같은 생각만 하고 지나치는 정도였으니까.

이 옷은 상의만, 혹은 하의만 사서는 의미가 없다. 따로 입어도 멋있기야 하겠지만 반드시 셋업으로 입어야만 완성되는 무드가 있다. 문제는 가격이다. 모두 사면 100만 원이 훌쩍 넘는다. 1년에 열 번 입을까 말까 한 옷에 이 돈을 쓰기는 쉽지 않다. 아니 사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그래서 결국 매장을 지나치면서 “나는 1년 중 360일을 포멀한 옷만 입는 사람이니까.” 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물론 자주 입는다 해도 비싼 건 사실이니까 꽤 괜찮은 핑계였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위시 점수는 8.5점. 하지만 구매 가능성은… 1점 정도. 상의는 여기, 하의는 여기.

  • 위시 점수 8.5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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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현정

패션 관련 글을 씁니다. 좋아하는 것들 앞에서는 박찬호급 투머치토커. 장래희망은 투머치라이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