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배드 버니가 얼마나 대단하길래 슈퍼볼에 나오냐고

음악과 무대로 아메리카의 핵심 찌른 배드 버니
음악과 무대로 아메리카의 핵심 찌른 배드 버니

2026. 02. 12

“푸에르토리코, 미국땅이래잖아.” 넷플릭스 시리즈 <수리남>에서 전요환이 내뱉은 대사처럼, 대부분의 한국 사람에게 푸에르토리코는 낯선 이름이다. 미국령이라는 사실조차 생소하고, 어떤 땅인지, 어떤 역사를 지녔는지 선뜻 떠올리기 어렵다. 그런 푸에르토리코를 자기소개 때마다 가장 먼저 앞세우는 슈퍼스타가 있다. 바로 2026년 슈퍼볼 하프타임쇼의 헤드라이너, 배드 버니다.

슈퍼볼은 미국 미식축구 프로 리그 결승전이자 매년 전 세계 수억 명이 지켜보는 미국 최대 대중문화 이벤트다. 하프타임쇼는 마이클 잭슨 이후 ‘지금 미국을 대표하는 슈퍼스타는 누구인가’를 선언하는 무대가 됐다. 그런 자리의 중심에 푸에르토리코 출신, 스페인어로 노래하는 아티스트가 섰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사건이다. 미국의 가장 ‘미국적인 무대’에서 영어가 아닌 언어가 울려 퍼진 순간이었으니까.

제68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올해의 앨범을 수상한 배드 버니. 그 장면을 슈퍼볼 무대에서도 사용했다.

게다가 배드 버니는 이미 2026년 그래미에서 《DeBÍ TiRAR MáS FOToS》로 스페인어 앨범 최초로 ‘올해의 앨범’을 수상하며 또 한 번 벽을 넘었다. 그렇다면 질문은 자연스럽다. 배드 버니는 대체 어떤 아티스트이길래 그래미에 이어 슈퍼볼 하프타임쇼의 헤드라이너까지 차지하게 된 걸까?


푸에리토리코 국기를 든 배드 버니. 그의 음악과 예술에서 푸에르토리코는 정체성이자 뿌리다.

‘배드 버니’라는 활동명은 얼핏 귀엽다. 하지만 정작 그 이름이 태어난 순간은 전혀 귀엽지 않았다. 어린 시절 한 행사에서 억지로 토끼 의상을 입은 그는 활짝 웃기는커녕 잔뜩 찌푸린 얼굴로 있었고, 그 표정 때문에 ‘배드 버니’라는 별명을 얻었다고 한다. 모두가 기대하는 귀여움에 협조하지 않는 작은 불복종. 그 태도는 시간이 지나 음악과 커리어 전체로 확장됐다.

배드 버니의 커리어는 슈퍼마켓 캐셔로 일하던 청년이 세계적인 스타가 된 성공담으로만 정리되지 않는다. 그는 비주류로 여겨졌던 스페인어와 푸에르토리코라는 로컬 정체성을 주류 무대 한가운데로 끌어올리며, 라틴 장르 음악이 글로벌 팝 시장에서 소비되는 방식을 뒤흔든 인물이다. 그 출발점이 된 흐름이 바로 라틴 트랩이었다.

라틴 트랩은 미국 남부 힙합의 트랩 사운드에 레게톤의 뎀보우 리듬, 스페인어 랩을 결합한 장르다. 폭력과 거리 문화를 전면에 내세운 가사 때문에 한동안 라디오와 TV 같은 주류 방송 시스템에서 배제되기도 했다. 그러나 2010년대 중반 유튜브와 사운드클라우드, 스트리밍 플랫폼이 확산되며 이 장르는 푸에르토리코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말하듯 노래하는 독특한 톤과 툭툭 내뱉는 발음을 가진 배드 버니는 그 흐름을 대표하는 얼굴로 떠올랐다. 특히 2017년 ‘Despacito’ 이후 라틴 음악이 미국 시장에서 확장되던 시기, 그는 카롤 G, 카디 비, 드레이크, 제이 발빈, 로살리아 등과 협업하며 스페인어권과 영어권 리스너를 동시에 끌어안았다. 하지만 그의 강점은 단순히 운이 좋았던 것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트랩과 레게톤을 기반으로 출발했지만, 어둡고 감정적인 결을 강조한 사운드로 자신만의 색을 구축했고, 이후에는 하우스와 저지 클럽 같은 장르 요소까지 끌어오며 스펙트럼을 넓혔다. 결정적으로 그는 미국 시장에 맞추기 위해 영어로 타협하지 않았다. 스페인어와 푸에르토리코 슬랭을 고수하면서도 세계적인 팝 스타가 됐고, 글로벌 스타가 될수록 오히려 더 푸에르토리코라는 정체성을 전면에 내세웠다.


배드 버니는 결국 메인스트림에 진입했지만, 성공을 개인의 상승 서사로만 남기지 않았다. 라디오가 아닌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던 만큼, 그는 자신이 얻은 영향력을 주변부를 위한 통로로 돌리고자 했다. 그가 끌어올린 목소리 중에는 라틴 어반 씬에서 소외돼온 LGBTQ 공동체도 있었다.

라틴 트랩과 레게톤이 뿌리내린 라틴 어반 음악계는 오랫동안 마초이즘 문화가 강했고, 여성혐오와 동성애 혐오적 분위기로 비판받아왔다. 하지만 배드 버니는 커리어 초기부터 매니큐어와 링 귀걸이, 화려한 스타일링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며 ‘남자다움’이라는 기준을 거부했다. 이는 단순한 패션이 아니라 장르 내부의 규칙을 흔들며 배제되던 존재들을 무대 위로 끌어올리는 방식이었다.

2020년 지미 팰런의 <투나잇 쇼> 무대에서 그는 치마를 입고 등장해, 푸에르토리코에서 벌어진 트랜스젠더 여성 알렉사 네울리사 루시아노 루이스 살해 사건을 언급하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생방송으로 드러냈다. 한 달 뒤 공개한 ‘Yo Perreo Sola’ 뮤직비디오에서는 여장한 모습으로 등장하며, 레게톤이 소비해온 시선과 문법을 장르 내부에서 뒤집어 놓았다.

더 나아가 그는 미국 체제 안에서 주변부로 밀려난 푸에르토리코의 현실을 무대 위로 끌어올렸다. 푸에르토리코는 미국령이지만 대통령 선거 투표권이 없고, 경제·정치적으로도 주변화되어온 지역이다. 1898년 스페인-미국 전쟁 이후 미국이 이 섬을 점령한 뒤, 푸에르토리코는 ‘미국에 속하지만 미국과 동등하지 않은’ 애매한 지위에 묶여왔다. 미국 시민권을 가지고도 연방 정치에서 온전히 대표되지 못하는 현실은 푸에르토리코인들에게 식민지의 연장선처럼 체감될 수밖에 없었다.

배드 버니는 이 모순을 그저 배경으로 두지 않았다. 2017년 허리케인 마리아 이후 미국 정부의 미흡한 대응을 비판했고, 2019년에는 주지사 리카르도 로세요의 상스러운 텔레그램 메시지가 공개된 사건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에도 직접 앞장섰다. 2024년에는 트럼프 집회에서 푸에르토리코가 쓰레기 섬에 비유된 사건에 반응해 카말라 해리스를 지지하는 영상을 공유했다. 메인스트림 팝 스타가 될수록, 그는 오히려 더 분명하게 푸에르토리코의 편에 서는 사람이 됐다.


그 태도는 2025년 발표한 앨범 《DeBÍ TiRAR MáS FOToS》에서 더욱 선명해진다. 그는 플레나, 봄바, 살사, 히바로 같은 푸에르토리코 전통 리듬을 현대적인 팝 사운드로 엮어내며 로컬의 언어를 세계의 언어로 번역해냈다. 특히 ‘LO QUE LE PASÓ A HAWAii’에서는 식민주의와 문화적 정체성의 문제를 정면으로 꺼내 들고, 타이틀곡 ‘DtMF’에서는 사랑과 관계의 개인적 기억을 공동체의 기억과 겹쳐 되짚는다.

이 앨범의 메시지는 음악 밖에서도 확장된다. 배드 버니는 유튜브 비주얼라이저를 위해 푸에르토리코 역사서를 집필한 교수 조렐 멜렌데스-바디요에게 글을 의뢰했고, 그 글은 식민 역사와 문화뿐 아니라 뉴욕과 플로리다 등 본토로 이주해 형성된 디아스포라 문화까지 함께 조명한다. 배드 버니는 음악만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푸에르토리코를 이해하기 위한 배경 자체를 대중문화의 언어로 설계해버린 것이다.

앨범 발매 이후 산후안에서 진행된 약 30회의 공연 역시 상징적이었다. 그는 글로벌 스타가 된 뒤에도 바깥으로 확장하는 대신 고향을 다시 중심으로 세우는 방식으로 커리어를 밀어붙였다. 이 공연이 푸에르토리코 경제에 약 2억 달러 규모의 효과를 남겼다는 추산은, 그의 영향력이 문화적 차원을 넘어 현실의 구조까지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 앨범이 그래미 어워드에서 <올해의 앨범>을 수상했다는 사실은 단순한 기록 이상이다. 미국 대중음악 산업이 외부의 음악이라 여겨왔던 언어와 리듬, 그리고 식민지의 역사까지 더 이상 주변부로 밀어낼 수 없게 됐다는 선언에 가깝다. 결국 배드 버니는 성공한 ‘라틴 팝’ 스타가 아니라, ‘팝’의 중심을 다시 쓰게 만든 인물이 되었다.


LED 없이 사탕수수 밭에서 등장하는 배드 버니

이번 슈퍼볼 하프타임쇼는 배드 버니가 걸어온 커리어와 태도를 13분으로 압축한 시청각 자료에 가까웠다. 그는 화려한 LED나 미래적인 무대 대신 사탕수수 밭에서 등장했는데, 이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푸에르토리코가 오랫동안 식민 경제 속에서 생산지로 소비되어온 역사를 상징한다.

이어지는 거리 풍경 속 도미노 게임을 즐기는 노인, 네일을 받는 여인의 모습은 푸에르토리코 서민들의 일상을 무대 위로 끌어올린다. 특히 카트에 진열된 시럽 병에 꽂힌 여러 나라의 국기는 ‘Tití Me Preguntó’ 속 여인들의 이름과 국적을 연상시키며, 푸에르토리코의 삶이 이주와 디아스포라의 역사 위에 놓여 있음을 암시한다.

무대 초반에 ‘라 카시타’가 중요하게 등장한다.

그가 커리어 내내 반복해온 더 글로벌해지는 대신 더 로컬해지는 태도를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준 장치는 산후안 레지던시에서도 등장했던 ‘라 카시타(La Casita)’였다. 20세기 푸에르토리코 서민 주택을 닮은 이 작은 집은, 성공과 명성이 커질수록 오히려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배드 버니의 선언처럼 무대 위에 놓였다.

이날 카시타 주변에는 카디 비와 카롤 G, 페드로 파스칼, 제시카 알바, 로날드 아쿠냐 주니어 같은 인물들이 모여 춤을 췄고, 무대는 푸에르토리코 하우스 파티 ‘파티 데 마르케시나’ 같은 분위기로 변했다. 이는 단순한 카메오 퍼레이드가 아니라, 푸에르토리코라는 로컬 공간이 세계의 인물들을 불러 모으는 중심지로 기능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레이디 가가와 리키 마틴의 등장은 이 메시지를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레이디 가가는 LGBTQ와 대중음악의 결합을 상징하는 인물이며, 라틴 어반 씬의 남성성을 재정의해온 배드 버니의 커리어와 맞닿아 있다. 특히 가가가 ‘Die With a Smile’을 살사 버전으로 소화하는 장면은, 미국 팝이 배드 버니의 리듬 위에서 재배치되는 순간이었다.

또한 ‘LO QUE LE PASÓ A HAWAii’를 함께 부른 리키 마틴은 1990년대 말 라틴 크로스오버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배드 버니는 그를 무대에 올려, 라틴 음악이 미국에 맞춰 들어가던 시대에서 미국이 라틴 음악을 중심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시대로 넘어왔음을 선언한 셈이었다.

아메리카 대륙의 국가를 하나씩 외치는 장면.

피날레는 그 모든 메시지를 한 번에 응축한다. 수많은 댄서들이 아메리카 대륙의 국기를 들고 쏟아져 나오고, 배드 버니는 “God bless América!”를 외친 뒤 칠레부터 캐나다까지 아메리카 대륙의 국가들을 하나씩 열거한다.

그리고 공연 내내 들고 있던 미식축구공을 카메라에 내밀어 “Together we are America”라는 문구를 보여주며 “seguimos aquí(우리는 여전히 여기 있다)”라고 외친다. 이 순간 그가 말하는 ‘아메리카’는 미국이라는 국가가 아니라, 라틴과 카리브, 이민과 디아스포라까지 포함한 거대한 대륙의 개념이었다.

결국 이 무대는 단순한 하프타임쇼가 아니라 정치적 선언이었다. 푸에르토리코와 라틴 공동체를 주변부로 밀어내온 미국 사회를 향해, 미국은 결코 혼자 완성된 나라가 아니며 라틴과 카리브 공동체 없이는 지금의 미국도 존재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그는 미국의 심장부에서 되돌려준 것이다.

마지막 전광판에 뜬 “혐오보다 사랑이 강하다”는 문구는 이 13분을 관통하는 핵심이었다. 배드 버니는 푸에르토리코를 장식처럼 들고 온 스타가 아니라, 라틴의 언어로 미국을 다시 설명하며 ‘아메리카’를 재정의한 인물로 남았다. 그리고 그가 외친 마지막 한마디는 결국 이 모든 장면의 결론이었다. “seguimos aquí.”

About Author
최승인

음악을 듣고, 쓰고, 떠드는 일을 한다.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으로도 활동하며, 넋매거진을 운영 중이다. 힙합과 R&B부터 재즈, 인디, 팝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신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