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음주를 즐기다 보니 논알콜에도 깊은 관심이 생긴 객원 에디터 길보경이다. 이게 무슨 소리냐고? 술을 더 유쾌하게 즐기고 싶을 때, 논알콜 음료가 훌륭한 ‘보조’ 역할을 해준다는 말이다. 절제가 필요한 날이나 각종 모임과 행사가 몰려있는 때면 마치 구원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음식과의 페어링은 또 얼마나 재미있는지. 알코올을 뺀 음료를 새롭게 탐구하는 즐거움만으로도 금주에 큰 동기부여가 된다.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지향하다 보면 음주에 스스로 더 엄격해지기 마련인데, 그때마다 논알콜 음료가 있어서 든든하다.
최근 몇 년 사이, 논알콜·저도주를 아우르는 ‘놀로(NoLo)’와 술은 즐기되 취하지 않는다는 의미의 ‘소버 큐리어스(Sober Curious)’가 키워드로 떠올랐다.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국내 논알콜 시장도 눈에 띄게 성장 중이다. 술 없이 클럽 문화를 즐기는 ‘모닝 레이브’, 논알콜 전문 바의 열풍은 이제 낯설지 않다. 이런 흐름 속에서 등장한 반가운 존재가 바로 ‘아티스트보틀클럽’이다.
아티스트보틀클럽은 논알콜 드링크 큐레이션 스튜디오로, 세계 각지의 논알콜 제조·유통사와 협업해 맥주, 와인, 칵테일, 스피릿 등 다채로운 제품을 선별한다. 여기에 아티스트와의 컬래버레이션을 더해 논알콜 음료에 새로운 시선과 해석을 입힌다. 편의점에서 쉽게 만나는 논알콜 음료와는 결이 다르다. 소규모 양조장에서 만든 100종이 넘는 셀렉션을 갖추고, 논알콜의 세계를 가장 세련된 방식으로 펼쳐 보인다.
아티스트보틀클럽의 시작은 창립자 이재범 대표의 개인적 호기심에서 비롯됐다. 광고 회사 PD 시절, 야근이 일상인 업계에서 그는 동료들과 저녁을 먹을 때면 치킨과 함께 논알콜 맥주를 즐기곤 했다. 편의점에서 우연히 집어 든 한 병이 “이 정도면 꽤 괜찮은데?”라는 첫인상을 남겼고, 그 작은 호기심은 점점 커졌다. 국내 편의점 신제품을 찾아다니는 건 물론 아마존 직구로 해외 브랜드를 주문해 팀원들과 함께 맛을 비교하며 ‘무알콜 탐험’을 이어갔다. ‘더 맛있는 무알콜’을 향한 이재범 대표의 집요함은 결국 일본, 대만, LA까지 직접 날아가 시장 조사를 겸한 취미로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이재범 대표는 세계 각지의 논알콜 브랜드가 보여준 장인 정신에 매료됐다. 소규모 양조장이기에 브랜드 파워보다 오직 품질로 승부해야 했고, 수많은 테스트와 정성을 거쳐 완성된 한 병 한 병은 그 자체로 작품 같았다. 그는 “이 좋은 제품을 직접 보고 맛볼 공간이 필요하다”라는 생각 끝에 지난 4월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쇼룸을 열었다.
아티스트보틀클럽의 슬로건은 ‘Made by artists, for artists’. 소규모 양조장이 정성과 실험으로 완성한 한 병의 논알콜 음료처럼, 우리 각자도 삶을 빚어가는 장인이라는 믿음에서다.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를 아티스트라고 칭하는 이유다. 쇼룸 역시 아티스트의 작업실을 콘셉트로 삼았다. 베를린의 유명 편집숍 ‘부 스토어(VOO Store)’에서 영감을 받아 빈티지와 모던이 자연스레 어우러지는 공간을 완성했다.
노출 콘크리트와 나무, 금속을 조화롭게 사용한 브루탈리즘 양식이 그 핵심. 실제로 부 스토어의 카운터에 걸린 조명을 그대로 들여왔고, 비계 파이프로 만든 선반과 브루탈리즘을 모티프로 한 스피커를 배치했다. 브랜드 컬러를 반영한 소재와 질감을 세심히 조합해 거칠면서도 세련된 네오 브루탈리즘의 감각을 완성했다.
쇼룸에 들어서니 선반을 가득 채운 아티스틱한 비주얼의 논알콜 음료들이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았다. 모두 맛보고 싶었지만 가장 궁금했던 몇 가지를 골라 시음했다. 한 모금 머금는 순간, 마치 내추럴 와인을 음미하듯 각 음료의 스토리가 떠올랐고 자연스럽게 음식 페어링을 상상하게 됐다. ‘논알콜은 맛없다’는 편견을 깨고자 이재범 대표가 직접 엄선한 다섯 가지 추천 리스트도 함께 받았다. 그는 “종류와 상관없이 논(무)알콜 음료를 가장 맛있게 즐기려면 반드시 차갑게, 5~10도의 온도를 유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1]
수제 맥주의 청량감과 묵직한 홉 향을 그대로
B 라거
아티스트보틀클럽이 직접 기획에 참여한 B 라거는 수제 맥주 못지않은 힙한 비주얼을 자랑한다. 일반적인 논알콜 라거에서는 느낄 수 없는 깊은 향과 풍미가 특징. 맥주 특유의 청량감과 홉의 향을 절묘하게 구현했다. 깔끔하면서도 구수한 맛이 일품이며, 한 캔당 96kcal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어 다이어터에게도 반가운 선택이 될 듯하다. 가격은 6,500원. (모든 제품은 아티스트보틀클럽 공식 홈페이지와 쇼룸에서 구매할 수 있다.)
[2]
샴페인의 세련된 사촌이랄까
캘리 골든 & 로제 스파클러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된 100% 유기농 논알콜 와인 브랜드. 골든 스파클러의 경우, 이름처럼 황금빛으로 반짝인다. 첫 모금부터 잘 익은 배와 상큼한 캘리포니아 베르주(캘리포니아에서 재배한 포도를 덜 익은 상태로 압착해 만든 산뜻하고 청량한 포도즙)가 어우러져 경쾌한 산미를 전하며, 은은한 카모마일과 타임이 깊이를 더한다. 바닐라의 부드러운 여운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다 드라이한 피니시로 마무리되는 맛이 매력적이다. 샴페인 특유의 크리스피한 기포와 부드러운 단맛이 균형을 이루어, 화이트나 로제 와인처럼 안주 없이 즐겨도 산뜻하다. 가격은 8만 9,000원.
[3]
임산부 친구와도 함께 ‘파티 분위기’를
르뱅 블랑드블랑
프랑스 남부 랑그독 지역의 100% 유기농 포도로 빚은 무알콜 와인으로, 자연 발효의 복합미를 그대로 담았다. 첫 모금에서 아카시아와 바닐라 비앙스가 어우러진 은은한 아로마가 퍼지고, 흰꽃과 구운 빵, 잘 익은 망고가 연상되는 풍부한 향이 뒤따른다. 콤부차를 닮은 상큼한 산미가 매력적이어서 튀김이나 마라탕처럼 기름진 음식과도 완벽하게 어울린다. 글라스 한 잔에 고작 23kcal, 100ml당 당분 3.8g의 가벼움까지 갖춰 마음 편히 즐길 수 있다. 건강과 맛,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이 무알콜 와인은 ‘타협 없는 즐거움’을 원하는 파티 테이블에 더없이 잘 어울린다. 산미를 선호하지 않는다면 같은 컬렉션의 ‘르뱅 피노 누아’를 추천한다. 가격은 모두 4만 5,000원.
[4]
진토닉 마니아에게 권해요
먼데이 제로 알콜 진
칵테일을 사랑하지만 알코올이 부담스러운 날, 먼데이 제로의 G 라인업을 권한다. 런던 드라이 진을 모티프로 완성한 알코올 0.01%의 논알콜 스피릿이다. 첫 향은 상쾌한 주니퍼 베리와 레몬필이 주도하며, 뒤이어 오이와 라벤더가 은은하게 번진다. 입안에서는 핑크 페퍼와 코리앤더 시드가 살짝 매콤한 뉘앙스를 더해 진의 드라이한 피니시를 완성한다. 쌉싸래하면서도 상큼한 허브 향이 긴 여운을 남기며, 알코올이 없어도 진짜 진을 마시는 듯한 묵직한 만족감을 준다. 라임을 곁들인 진 토닉 스타일로 즐기면 해산물이나 짭조름한 음식과 함께할 때 입안을 깔끔히 씻어내며 음식의 맛을 더 깊게 끌어올릴 듯. LA·샌프란시스코 스피릿 어워드 더블 골드 수상작으로 가격은 8만 9,000원.
[5]
집에서도 바처럼 세련된 한 잔
크로십 퓨어 히비스커스
바텐더 칼 브라운의 손에서 시작된 이 무알콜 리큐어는 식물성 원료를 깊이 우려내는 독창적 침용 공정을 거쳐 탄생했다. 첫 모금은 히비스커스가 전하는 화사하고 산뜻한 향으로 시작하지만, 곧 웜우드와 젠티안의 쌉싸래한 비터가 입안을 단단히 잡아준다. 뒤이어 생강과 카옌 페퍼가 은근한 매콤함을 남기며 긴 피니시를 완성한다. 비건 & 글루텐프리 인증을 받았으며, 그레이트 테이스트 어워드 2스타와 영국 The Independent가 선정한 ‘Best Non-Alcoholic Spirit for Fruity Flavours 2025’에 빛나는 이름. 드라이하고 대담한 맛 덕분에 0% 스프리츠나 무알콜 네그로니에 특히 잘 어울린다. 단 25ml만으로도 깊은 풍미가 살아나 한 병으로 약 20잔을 즐길 수 있으며, 식전주나 기름진 안주와도 훌륭히 어울린다. 가격은 5만 6,000원.
다섯 가지 추천 음료를 맛본 뒤, 아티스트보틀클럽이 지향하는 철학이 더욱 궁금해졌다. 쇼룸 한켠에서 이재범 대표와 마주 앉아 논알콜의 가능성과 브랜드의 비전에 관해 들어보았다.
Q1. 아티스트보틀클럽이 전하고자 하는 핵심 가치는 무엇인가요?
저희가 말하고 싶은 건 “술 대신 논알콜을 마시자”가 아니에요. 저 역시 알코올과 논알콜을 상황에 맞춰 즐기거든요. 알코올을 완전히 대체하기보다는, 일상 속에서 알코올을 덜어도 충분히 즐겁다는 걸 보여주고 싶습니다. 논알콜은 그 즐거움을 확장해 주는 보완재 같은 존재죠. 커피와 음악으로 아침을 깨우는 ‘모닝 레이브’가 하나의 문화가 된 것처럼, 논알콜도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을 넓히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Q2. 아티스트보틀클럽의 논알콜 브랜드 선별 기준은?
가장 먼저 보는 건 브랜드 스토리예요. 왜 이 제품을 만들게 됐는지, 어떤 철학과 맛을 담으려 했는지가 분명해야 합니다. 대량 생산이 꼭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 단순히 시장을 노린 제품은 제외하죠. 그다음은 디자인입니다. 첫인상이 중요한 만큼, 패키지와 비주얼에서 브랜드의 개성이 느껴지는지도 살펴봅니다. 마지막으로 맛과 완성도를 직접 검증해요. 샘플을 받아 저희 팀이 시음하고, 협업하는 바리스타나 소믈리에 등 전문가들에게도 피드백을 구해 객관적인 평가를 받습니다. 이렇게 스토리·디자인·맛 세 가지를 모두 통과해야 아티스트보틀클럽의 큐레이션 라인업에 오를 수 있습니다.
Q3. 해외 논알콜 시장을 탐구했다고 들었어요. 개인적으로 최고의 논알콜 경험을 꼽는다면요?
대만 타이베이의 미슐랭 레스토랑 카토(Kato)에서 즐긴 논알콜 페어링 코스. 모든 코스마다 서로 다른 논알콜 음료가 짝을 이뤘죠. 티부터 와인, 칵테일까지 메뉴마다 완벽한 밸런스로 페어링돼 감탄을 금치 못했어요. 한국에 가져오고 싶은 마음에 사진을 잔뜩 찍어 왔지만, 조사해 보니 수입이 어려운 제품이 많아 아쉬웠을 정도예요.
Q4. 국내의 논알콜 시장은 아직 미미한 편입니다. 그런 점에서 어려움은 없나요?
가장 큰 장벽은 식약처의 수입 규제예요. 해외 논알콜 브랜드를 들여오려면 원료부터 꼼꼼히 검토해야 하는데, 국내에 전례가 없는 성분은 아무리 안전하고 유기농이라도 허가가 나지 않습니다. 실제로 제가 직접 수입 절차를 공부해 진행했지만, 많은 브랜드가 사용하는 보태니컬·허브 계열 원료가 ‘기능성’으로 분류돼 통관이 어려웠어요. 결국 현재 국내에서 판매되는 논알콜 음료들은 이 까다로운 규제를 모두 통과한 제품들입니다. 이런 환경이 시장 성장 속도를 더디게 하지만, 그만큼 엄선된 제품만 소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책임감도 함께 느끼고 있습니다.
Q5. 아티스트보틀클럽의 향후 계획과 이루고 싶은 목표는 무엇인가요?
논알콜 음악 페스티벌을 열고 싶습니다. 패션이나 오브제 브랜드 등 콘셉트가 뚜렷한 곳과 협업해 논알콜 레이브를 기획하고, 언젠가는 제가 좋아하는 DJ 페기 구와 함께 이벤트를 만들 수 있다면 정말 즐거울 것 같아요. 궁극적으로는 논알콜을 즐기는 문화와 건강한 라이프스타일을 더 많은 사람에게 경험하게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아티스트보틀클럽(Artist Bottle Club)
주소 | 서울시 마포구 성미산로22길 18 A동 1층
영업시간 | 매일 11:00 – 20:00
문의 | 0507-1393-5639
www.artistbottleclub.com, @artistbottle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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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보경
걷고 뛰며 바라본 세상을 글로 풀어내는 매거진 에디터. 언제나 자유롭고 여유롭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