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객원 에디터 손현정이다. 회사 재직 기간이 쌓이고 이직과 승진도 몇 번 거치다 보니 나도 모르게 달라진 게 있다. 바로 ‘출근할 때의 내 모습’이다. 처음엔 출근 자체가 벅차서 그날의 TPO만 맞춰 너무 추레해 보이지 않는 데 급급했다.
그런데 요즘은 좀 다르다. 직급이 생기고, 함께 일하는 팀원이 생기고, 클라이언트를 마주할 일이 잦아지면서 ‘어떻게 보일까?’란 생각이 자연스럽게 따라붙는다. 옷도 그렇지만, 가방이 특히 그렇다. 예전엔 로고나 유행에 더 마음이 갔다면, 이제는 쉐입과 마감, 그리고 시간이 지나도 배신하지 않을 디자인이 중요하다.
단순히 ‘든다’는 행위보다, 내 하루와 잘 어울리고 일하는 내 모습을 조용히 받쳐주는지가 더 신경 쓰인다. 하루 종일 들고 다니니 실용성은 기본, 회의실에서도 튀지 않으면서 문득 엘리베이터 앞 거울 속 내 모습이 흐뭇해지는 정도의 예쁨이 필요하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가격보다 ‘몇 년 동안 들 수 있을까’, ‘앞으로도 나랑 잘 어울릴까’를 먼저 생각한다. 단순한 소비라기보다, 일종의 커리어 투자에 가깝다. 시간이 지날수록 손에 익고 점점 더 나답게 느껴지는 그런 애착 가방 말이다.
오늘은 그런 가방들을 소개하려 한다. 미니백부터 빅 숄더백까지, 출근길과 회의실, 그리고 앞으로의 커리어 시간 속에서도 여전히 제자리를 지켜줄 만한 단단하고 매력적인 9가지 가방. 어쩌면 몇 년 뒤에도 내 옆자리에 조용히 자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1]
Polène
Cyme Mini
출근 가방을 떠올리면 자연스레 생각나는 브랜드가 있다. 요즘 가장 잘나가는 이름 중 하나, 폴렌느(Polène). 몇 년 전부터 SNS에서 조용히 입소문을 타더니, 이제는 ‘가방 좀 본다’는 사람들의 옷장에 하나쯤은 들어가 있다.
부드럽게 떨어지는 곡선 실루엣과 적당히 힘 있는 텍스처드 가죽은 폴렌느 특유의 분위기를 완성한다. 로고가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미니멀하고, 어느 옷에든 ‘툭’하고 걸쳐도 잘 어울리는 점잖은 존재감이랄까. 고급스럽고 단단한 데다 탈착 가능한 지퍼 포켓, 핸드백·토트백·숄더백 3-way 스타일링, 그리고 가볍고 넉넉한 수납까지. 매일 들고 다니기 부담 없는 실용성과 격식을 모두 갖췄다.
참고로, 폴렌느는 파리·뉴욕·도쿄에 이어 서울 가로수길에 네 번째 글로벌 매장을 오픈한 바 있다. 이미 2021년에 문을 연 곳이지만 아직 안 가본 사람이라면 꼭 한번 들러보길 추천한다.
너무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은근히 ‘센스 있어 보이는’ 가방, 몇 년 뒤에도 여전히 손이 갈 클래식한 디자인. 그게 지금 폴렌느가 사랑받는 이유다. 구매는 여기.
[2]
Vunque
헤이 더블 포켓 백팩
폴렌느처럼 단정하고 포멀한 가방도 필요하지만, 하루쯤은 힘을 뺀 캐주얼한 무드도 필요하다. 특히 장을 보러 갈 때나, 노트북을 넣어야 하는 날, 또는 출근 후 운동까지 챙겨야 하는 날엔 백팩만큼 만능인 가방도 없다.
분크(Vunque)의 ‘헤이 더블 포켓 백팩’은 스타일 걱정까지 덜어준다. 부드럽고 가벼운 나일론에 가죽 디테일을 얹어 질감과 내구성을 챙겼다. 전·후면 총 네 개의 포켓, 그리고 가방을 벗지 않고 물건을 꺼낼 수 있는 후면 지퍼. 작은 듯 보이지만 생각보다 수납력이 좋고, 옆면 가죽 고리에 키링을 달아도 귀엽다. 미니멀한 룩에 힘을 빼고 싶은 날, 이 가방 하나면 캐주얼한 밸런스를 완성할 수 있다.
하루를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에게, 백팩은 하나쯤 꼭 필요한 실용템이다. 하지만 여전히 ‘예쁜 것’이 중요하다면, 분크의 이 백팩은 좋은 해답이 되어줄 것이다. 구매는 여기.
[3]
STAUD
Ollie Bag
가끔은 실용성보다 ‘핏’이 먼저다. 출근길부터 퇴근 후 약속까지 무난하게 이어주는 가방이 필요할 때, 나는 그냥 스타우드를 든다. 내 애착 가방 중 하나도 스타우드 제품이다. 내가 쓰는 모델은 단종됐지만, 새 컬렉션이 나올 때마다 여전히 눈이 간다. 그만큼 잘 만들고, 은근히 오래 들 수 있는 맛이 있다. 유행 타지 않는 레트로한 무드와 경쾌한 감도, 스타우드만의 정체성은 확실하다.
특히 올리 백(Ollie Bag)처럼 간결한 디자인은 어떤 룩에도 쉽게 어울린다. 단단한 카우 레더 소재에, 부드러운 곡선 쉐입. 무엇보다 어깨에 딱 걸리는 짧은 스트랩이 실루엣을 맵시 있게 잡아줘서, 룩 전체를 정리해주는 역할을 한다.
폴리시드 가죽이지만 번들거리진 않고, 매트와 글로시 사이의 미묘한 광택이 클래식한 매력을 더한다. 내부도 알차게 구성돼 있어 지퍼 포켓, 슬립 포켓으로 나눠 수납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가방은 ‘어떤 자리에 들어가도 과하지 않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가죽, 스웨이드, 파이톤 등 소재도 다양하고 컬러 스펙트럼도 꽤 넓은 편이라 하나쯤 들이면 평일에도, 주말에도, 어딘가에 갈 때마다 유용하게 손이 간다.
스타우드는 로스앤젤레스에서 시작된 브랜드지만, 뉴욕식 감도와 파리지앵 무드를 한 스푼씩 더한 느낌이랄까. 날이 흐리든, 회의가 있든, 가볍게 걸치고 나갈 수 있는 센스 있는 데일리백을 찾고 있다면, 이 브랜드는 꽤 괜찮은 후보가 될 거다. 구매는 여기.
[4]
ARKET
투인원 버킷백
가방을 고를 때 ‘실용성 vs 디자인’으로 고민한 적이 있다면, 이건 굳이 한쪽을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 아르켓(ARKET)의 투인원 버킷백은 그 둘을 균형감 있게 안고 있는 가방이다.
사실 아르켓 하면 기본 에코백이 먼저 떠오르지만, 이 가방을 보면 생각이 달라질지도 모른다. 레더 버킷백과 캔버스 버킷백을 겹쳐 사용하는 구조로, 말 그대로 두 개의 백을 한 번에 가진 느낌이다. 원하면 분리해서 따로 들 수도 있고, 겹쳐 쓰면 은근히 힘 있는 무드가 완성된다.
가죽 부분에는 드로스트링 잠금장치와 지퍼 포켓이 있어 작은 소지품 보관에도 문제없고, 외피가 되는 캔버스 백은 더블 핸들과 외부 포켓까지 갖춰 가볍게 들고 다니기에도 좋다. 실루엣도 복조리 형태에 가까워 은근히 귀엽고, 두 개의 서로 다른 소재가 만들어내는 질감 대비도 매력적이다.
출근길에도, 피크닉에도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디자인이라 활용도도 매우 높고, 가죽의 톤도 진한 브라운이라 계절을 크게 타지 않는다. 스타일링에 변화를 주고 싶을 때, 한가지로 다양한 연출이 가능한 가방을 찾는다면 이만한 선택이 없다. 아르켓 특유의 미니멀한 감성에 실용성까지 더한 투인원 버킷백, 은근히 애착템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구매는 여기.
[5]
DeMellier
The Midi New York
스타우드와 아르켓이 ‘일상 속 편안함’을 보여줬다면, 드멜리어(DeMellier)는 그 위에 ‘나만 아는 멋’을 얹는다. 그중에서도 The Midi New York은 단순한 데일리백을 넘어, 디자인과 철학이 공존하는 가방이다.
뉴욕에서 받은 영감답게, 도시 특유의 에너지와 절제된 우아함이 동시에 묻어난다. 입체적인 실루엣 덕분에 블랙 컬러임에도 밋밋하지 않고, 금장 디테일과 부드러운 곡선이 깔끔하게 균형을 맞춘다.
한눈에 봐도 정제된 느낌의 금장 디테일, 부드러운 곡선, 그리고 무엇보다 균형감 있는 크기와 형태 덕분에 출퇴근 가방은 물론, 차려입은 날에도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내부는 자석으로 여닫을 수 있게 되어 있어 간단하지만 안전하고, 바닥 양옆의 구조 덕에 물건을 넣었을 때 모양이 망가지지 않는 것도 장점. 13인치 노트북은 들어가지 않지만 일상에서 자주 드는 것들을 담기엔 더없이 충분한 사이즈다.
브랜드 전체가 여성 창립자와 여성 중심 팀으로 구성돼 있어 그런지 디테일에서 생활감이 느껴진다. 유행보다 오래 두고 쓸 수 있는 가방, 그리고 브랜드의 가치까지 챙기고 싶다면 이 선택은 꽤 설득력 있다. 구매는 여기.
[6]
Manu Atelier
르 캉봉 35
스타우드, 아르켓, 드멜리어까지 왔다면 이제 조금 더 클래식하고 우아한 무드로 넘어갈 차례. 마누 아틀리에(Manu Atelier)의 르 캉봉 35는 부드러운 스웨이드 질감과 정제된 골드 버클이 눈에 먼저 들어온다.
군더더기 없는 실루엣에 은은한 광택이 더해져 ‘과하지 않게 멋스러운’ 데일리백이 필요했던 사람이라면 꽤 만족스러울 것이다. 13인치 노트북이 들어가는 사이즈로 실용성도 충분하고, 부드러운 가죽 구조 덕분에 평소에 들고 다니는 모든 필수템을 부담 없이 담을 수 있다.
르 캉봉 35는 단순히 멋진 가방을 넘어서, 꾸밈없이 조용히 빛나는 사람의 일상에 더 잘 어울리는 가방이다. 포멀한 자리든, 캐주얼한 룩이든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고, 몇 년이 지나도 촌스럽지 않을 디자인. ‘정직한 제작 과정과 높은 품질’이라는 브랜드 철학이 제품 하나하나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지금 가지고 있는 가방들과는 또 다른 결을 찾고 있다면, 이 조용한 우아함을 꼭 한 번 경험해보길 바란다. 구매는 여기.
[7]
Moschino
Tie Me
드멜리어와 마누 아틀리에가 조용한 우아함을 이야기한다면, 모스키노(Moschino)가 가진 분위기는 한마디로 ‘위트 있는 자신감’이다. Tie Me는 그 감각을 가장 직관적으로 보여준다.
광택감 있는 페이턴트 가죽, 그리고 마치 가방을 한 번 더 감싸는 듯한 벨트 디테일이 시선을 한눈에 사로잡는다. 작은 사이즈지만 존재감만큼은 결코 작지 않고, 포멀한 룩에 포인트로 더해주면 전혀 지루하지 않은 스타일을 완성해준다. 크로스백부터 토트까지 다양한 연출이 가능해서 활동적인 날이나 모임 자리에서도 실용성을 발휘하고, 자석 여밈이나 내부 포켓 등 실용적인 요소도 빠짐없이 갖췄다.
클래식한 가방보다는 조금 더 개성을 표현하고 싶을 때 Moschino Tie Me처럼 작지만 확실한 스타일 변화를 주는 아이템이 제격이다. 가볍고, 유쾌하고, 도회적인 무드. 이런 키워드가 끌린다면 분명히 눈여겨볼 만하다. 구매는 여기.
[8]
Stella McCartney
Ryder 숄더백
모스키노가 유쾌한 위트를 담았다면, 스텔라 맥카트니는 진지하게 ‘더 나은 방식’을 고민한다. Ryder 숄더 백은 그런 철학이 가장 잘 드러나는 아이템 중 하나다.
오가닉 코튼과 리넨 혼방 캔버스를 베이스로, 포도에서 추출한 비건 가죽을 트리밍에 사용했다. 덕분에 가죽 특유의 단단함과 고급스러움을 살리면서도 동물성 소재를 전혀 쓰지 않았다. 둥근 승마 실루엣과 로고가 새겨진 브라스 패들락은 클래식한 매력을 더하고, 내추럴 톤의 바디와 블랙 디테일이 깔끔한 대비를 만든다.
핸드폰, 지갑, 일상 소지품을 담기에 충분한 사이즈지만, 무게는 가볍고 손에 쥐었을 때 안정감이 있다. 출근길 셔츠와 슬랙스에도, 주말의 원피스에도 무리 없이 어울리는 ‘계절을 타지 않는’ 디자인. 스타일과 가치관, 두 가지를 동시에 만족시키고 싶다면 이 가방이 오래 곁에 남을 것이다. 구매는 여기.
[9]
UNDERSTOOD
MATTHEW
스텔라 맥카트니가 ‘가치 있는 선택’을 말한다면, 언더스투드는 ‘함께 나이 들어가는 즐거움’을 이야기한다.
이태리산 베지터블 가죽을 식물성 오일로 무두질해 만든 이 가방은, 처음 만났을 때보다 시간이 흐른 뒤가 더 멋지다. 가죽 속 유분이 천천히 스며 나와 색이 깊어지고, 주름과 힘줄, 작은 상처들이 하나씩 자리 잡는다. 그 흔적들은 흠이 아니라, 당신과 함께한 시간의 기록이다.
황동 하드웨어는 손길을 받을수록 차분하게 변색되고, 제작 과정에서 남은 스크래치마저 빈티지한 매력으로 스민다. 400×280×130mm의 넉넉한 크기는 미팅, 출장 등 실상에 꼭 맞고, 부드럽게 떨어지는 곡선 라인은 매일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이건 단순한 가방이 아니라, 오래 곁에 두고 싶은 사람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더 정이 가는 친구가 될 것이다. 구매는 여기.
About Author
손현정
패션 관련 글을 씁니다. 좋아하는 것들 앞에서는 박찬호급 투머치토커. 장래희망은 투머치라이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