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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철인데 비뿌 향수 뭐 써?

나만 빼고 다 아는 대표 비뿌 향수 6
나만 빼고 다 아는 대표 비뿌 향수 6

2025. 06. 26

비 오는 날 뿌리는 향수, 줄여서 비뿌 향수.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도 아니고 비 오는 날씨까지 챙겨가며 향수를 뿌려야 해?’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하지만 습도는 온도만큼이나 후각에 미치는 영향이 큰 요소다. 평소에 기분 좋게 느껴졌던 향이 비 오는 날에 답답하게 받아들여지거나, 향이 잘 안 나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바로 습도 때문. 특히 요즘처럼 장마철이 길고도 긴 때에는, 비 오는 날의 습도에 맞춘 ‘비뿌 향수’ 하나쯤 마련해두면 축 처진 기분을 끌어올리는 데 큰 힘이 될 거다. 확신한다. 왜냐면 내가 바로 산 증인이거든…


[1]
딥티크 롬브르 단 로

딥디크

향덕들 사이에 가장 유명한 비뿌 향수를 딱 하나만 뽑아야 한다면 바로 롬브르 단 로가 아닐까. 비밀의 정원에서 거칠게 자라난 야생 장미 넝쿨이 떠오르는 이 향수는 짓이긴 듯 짙은 풀 내음이 더해진 것이 포인트. 쨍한 날에는 다소 뾰족할 수 있는 향이지만 비 내음과 만나면 단점은 사라지고 오히려 싱그럽고 와일드한 매력이 극대화된다. 장미 향이지만 성별 상관없이 비뿌 향수 입문템으로 편하게 추천할 수 있는 향수다.


[2]
조말론 와일드 블루벨

조말론

물먹은 듯 청초한 와일드 블루벨은 그 이미지만으로도 이미 비 오는 날에 찰떡. 첫 향에서부터 이슬에 젖은 듯 여린 꽃향기가 천천히 퍼져 나간다. 거기에 투명한 물내음이 더해지는데, 자연스레 수박이 연상되는 물내음이라 달콤함과 청량함까지 진해진다. 이 오묘한 달콤함이 전체적인 향을 감싸 주는 덕분에, 시간이 지나면서 퍼져 나가는 싱그러운 풀 내음도 부드럽게 살결에 스민다. 이 향을 뿌린 날엔 정원에 홀로 핀 청초한 들꽃이 된 기분이 든달까…? 다만 수박이 떠오르는 이 달큰한 물내음이 누군가에게는 오이를 떠올리게 할 수 있으니 특히 ‘오이싫어인간’들은 조심할 것.


[3]
이솝 테싯

이솝

이솝의 베스트셀러인 테싯은 상큼하면서도 뾰족하지 않고, 달달하면서도 유치하지 않은 시트러스로 시작한다. 그 후 자연스레 더해지는 복합적인 허브 계열의 그린 노트는 비 오는 날의 텁텁함을 시원 청량함으로 바꿔주는 키포인트. 여기에 강한 나무 냄새가 아니라 베티버처럼 쌉싸래한 우디 노트를 사용하고, 클로브의 유니크한 터치를 더해서 아로마틱 하면서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이솝만의 무드를 구현해 냈다. 잔향은 의외로 비누처럼 깨끗하게 남기 때문에, 쨍한 여름뿐 아니라 습도가 높은 날씨에도 부담 없이 쓸 수 있는 비뿌 향수로 사랑받고 있다. 


[4]
르 라보 베이19

르라보

‘베리’라는 뜻의 프랑스어인 베이. 이름만 들으면 달달한 프루티 향수일 것 같지만, 직접 만나 보면 완전히 다른 향에 놀라게 된다. 이 향수의 주인공은 오히려 파출리다. 파출리는 축축한 우디 노트와 이끼의 느낌이 느껴지는 향료인데, 내추럴한 무드가 장점이지만 존재감이 강하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베이19는 파출리 특유의 촉촉한 흙 내음, 젖은 숲이 떠오르는 향을 부드럽고 편안하게 잘 풀어냈다. 탑 노트에서 시트러스와 베리 향으로 허들을 낮추고, 잔향에는 부드러운 머스크를 깔아서 부담감을 덜었다. 덕분에 비 오는 숲속에 고요히 앉아 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 근사한 향으로 받아들여진다. 시크하면서도 자연 친화적인, 르 라보의 색을 잃지 않은 비뿌 향수다. 


[5]
에르메스 H24 에르브비브

에르메스

신선한 바질 향과 짓이긴 듯한 풀 내음으로 시작되는 향. 시원 청량하면서도 투명한 느낌이 있어 비 오는 날 더없이 잘 어울릴 것 같다. 부드러운 허브 내음과 제라늄 노트의 조합이 중성적이면서도 묘하게 고급스러움을 이끌어 낸다. 아, 역시 에르메스는 에르메스인가? 잔향으로 갈수록 메탈릭 한 엠버그리스 노트가 모습을 드러내는데 누군가에게는 서늘함을, 누군가에게는 포근한 깨끗함을 떠올리게 할 법한 모순적 매력을 품고 있다. 비뿌 향수 중 가장 어른스럽고 세련된 느낌. 3040 전문직 직장인의 비뿌 향수 같은 이미지이랄까?


[6]
메종마르지엘라 웬 더 레인 스탑스

이름대로 후드득 쏟아지던 비가 그친 후 화창해진 어느 날의 장면을 향으로 담은 듯하다. 뿌린 직후에는 산뜻하고 상큼한 시트러스 향에 살짝 톡 쏘는 핑크 페퍼가 포인트를 주고, 곧바로 그리너리한 무드가 깔리면서 촉촉한 물내음이 드러난다. ‘비가 그친 뒤’를 표현해서 그런지 아쿠아틱 한 물내음이긴 하지만 부담스럽지 않고 딱 기분 좋은 정도. 여기에 맑은 장미, 뮤게 등의 플로럴 노트가 더해지면서 예쁜 물내음으로 서서히 변해 간다. 여린 연둣빛 풀 냄새가 은은하게 쭉 유지되는 것도 좋은데, 잔향으로 가면 깨끗하고 상쾌한 바디로션 같은 느낌으로 남는 게 가장 장점이다. 

About Author
전아론

글쓰고 향 만드는 사람. 에세이스트, 프리랜서 에디터, 향수 브랜드 ahro의 조향사까지. 예술적 노가다(?)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