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객원 에디터 지정현이다. 나는 청바지가 많다. ‘또 청바지를 샀느냐’는 반응에 꺼드럭거리며, 패턴도 다르고, 원단 특성 때문에 색이 빠지는 모양도 다르다고 답하는 청바지 꺼드럭쟁이다. 청바지의 디테일한 매력을 제쳐두더라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입을 수 있어서 좋다. 선택지 앞에서 좀처럼 빠르게 결정하지 못하는 나에게는 더없이 잘 맞는 바지다.
청바지는 시간의 흐름에 정직하다. 비싸든 싸든 입은 시간만큼 색이 빠지고, 닳아간다. 모든 옷이 그렇지만, 청바지는 낡은 상태마저 멋이 된다. 오죽하면 물이 빠진 듯한 ‘워싱’을 내기 위해 멀쩡한 새 제품에 약품 처리를 하겠는가. 대체로 워싱 진은 공정이 더 많이 들어가니 값도 올라가지만, 사람들은 그 멋지게 해진 느낌을 위해 기꺼이 웃돈을 얹는다. ‘세월을 입는다’는 상투적인 표현을 썩 좋아하진 않으나, 청바지에게는 그만한 표현도 없다.
오래 입는 게 미덕인 바지고, 거친 노동 환경에서 작업복으로 태어난 만큼 내구성도 높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영원할 수는 없다. 입다 보면 결국 해지고 닳는다. 나에게도 그런 데님들이 있다. 밑단이 밟혀 실이 너덜거리고, 영구적인 얼룩이 져서 더러워진 것도 있다. 하지만 민감한 부위에 구멍이 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아무리 데님이라도 선뜻 입기 어려워진다. 특히 나처럼 허벅지가 두꺼운 사람은 인심 근처가 유독 빨리 해진다.
그렇게 해진 바지가 두 벌 있다. 둘 다 다리 사이(가랑이라고 해도 될까)에 치명적인 데미지를 입었다. 평소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의자에 앉으면 그날 입은 속옷 색이 훤히 비칠 정도다. 그렇다고 이걸 팔고 비슷한 바지를 새로 산다 한들, 다시 같은 시간만큼 입어야 한다. 그 시간을 들인다 해도, 내가 원하는 색감과 워싱이 다시 잡힌다는 보장도 없다. 그렇다면, 고쳐 입는 수밖에 없다. 올드카를 고쳐 타는 것처럼, 수고로운 비용을 들여서 말이다. 이건 나의 청바지 데님 수선 기록이다.
첫 번째 청바지 – 10년을 버틴 5만 원짜리 청바지

브랜드: 유니클로
상품명: 셀비지 레귤러 핏 진
제조국: 방글라데시
구매시기: 2016년
16년도에 산 유니클로 셀비지 데님은 올해로 꼭 10년을 맞았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던 학생 시절, 여기저기 무난하게 입을 셀비지 데님이 하나 필요했고, 가성비가 좋다는 이유 하나로 구입한 바지였다. 처음 이 바지를 살 때만 해도 이렇게 오래 입게 될 줄은 몰랐다. 더 비싼 청바지를 사기 전까지만 입을 대용품 정도로 여겼다. 하지만 그 이후 제법 이름난 데님을 여럿 입어봤어도, 결국 가장 자주 손이 가는 건 유니클로 데님이었다.
무척 편했다. 허구한 날 입고 세탁한 결과, 원단은 얇아졌고 웬만한 면바지보다 더 편해졌다. 이 바지를 입고 관악산을 오르기도 했고, 한여름에는 바닷가와 계곡에 그대로 들어간 적도 있다. 그런 역사가 쌓이다 보니 색도 많이 빠졌다. 허벅지는 하얗게 바랬고, 나머지 부위도 진한 인디고에서 하늘빛이 도는 색으로 변했다. 그만큼 크고 작은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뜻일 텐데, 매번 한 단 정도 접고 다닌 탓에 접힌 부분이 삭아 선명한 선도 생겼다.
치명적인 건 밑위 아래(역시 가랑이라고 써야 할까 고민된다)가 닳았다는 점이다. 원단이 해져 거의 시스루가 됐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건 친구와 카페에 갔을 때였다. 맞은편에 앉은 친구가 갑자기 내 속옷 색을 맞히길래, 얘가 대체 뭐 하나 싶었는데, 해진 청바지 사이로 언뜻 보였다는 것이다. 그게 작년 여름이다. 이 바지를 버리고 다른 유니클로 셀비지를 살까 고민도 했지만, 현행 제품은 만듦새가 달랐다. 결국 고쳐 입기로 결심했고, 여러 방법을 찾아본 끝에 ‘다닝’이라는 기법이 가장 적절하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새 천을 덧대는 패치워크는 착용감이 좋지 않을뿐더러,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두 번째 청바지 – 터질 게 터졌다

브랜드: 버즈릭슨
상품명: 셀비지 데님 Lot 023
제조국: 일본
구매시기: 2023년
이 바지를 샀을 때 사람들 반응은 딱 두 가지였다. ‘이 낡아 빠진 걸 왜 샀느냐’와 ‘죽인다’. 둘 다 내겐 구매 근거였다. 낡아서 다 해진 원단감과 여기저기 난 구멍이,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청바지의 모습에 가까웠다. 처음엔 분명 빤빤한 리지드 상태였을 텐데, 전 주인, 그러니까 그가 정말 최초의 주인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내 유니클로 바지만큼이나 자주 입은 덕에 편하게 입을 수 있을 만큼 잘 익어 있었다. 다른 청바지보다 조금 무겁긴 했지만, 갑옷을 두른 듯한 착용감이 마음에 들었다.
이걸 입고 대체 뭘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정강이에는 스크래치와 구멍이 나 있었고, 벨트 루프도 헐거워져 있었다. 나는 이 바지의 터프한 면모에 반해 바로 구매했다. 빈티지 청바지를 입고 ‘바지에 난 빵꾸 따위는 아무렇지 않은 남자’가 되는 기분은, 새것으로는 좀처럼 낼 수 없다. 이 바지를 입으면 나도 어쩐지 터프한 남자가 된 것 같았다. 가끔 지각할까 봐 급한 마음에 다리를 넣다가, 정강이나 밑단 근처에 난 구멍에 발가락이 끼긴 했지만.
하지만, 인심과 밑위 원단이 겹치는 두터운 부분의 실의 생각은 다른 듯했다. 최초 생산 시점부터 오늘까지 무거운 원단을 잇고 있던 봉제실은 제 소임을 다했다는 듯, ‘탁’ 하고 터져 버렸다. 정확히 내 검지손가락 하나가 들어갈 정도의 구멍이 났다. 이번에도 카페 의자에 앉으면서 이 데미지를 발견했다. ‘탁’ 하고 터지는 소리를 듣고, 내가 방귀를 뀌었나 싶었건만 오른쪽 허벅다리로 향하는 이음새가 터져 버린 거였다. 내가 가진 청바지 중 가장 터프한 녀석이 이렇게 가버리다니. 곧바로 수선할 방법을 찾았고, 유니클로와 함께 고치기로 마음먹었다.
데님 수선이 따로 존재하는 이유

데님 수선은 일반 의류와 접근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이를 전문으로 하는 수선가가 따로 존재한다. 이유는 데님 특유의 원단감과 봉제 방식의 전통성에 있다. 데님은 표면에 인디고 염료가 남고, 실 안쪽까지는 상대적으로 깊게 물들지 않는 방식으로 염색된다. 흔히 ‘페이딩’이라 부르는 변화는 이 표면의 인디고가 마찰과 착용을 거치며 벗겨지면서 나타난다. 페이딩은 원단 전체에 고르게 생기지 않는다. 자주 움직이거나 손이 닿는 부분을 중심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데님은 시간이 지날수록 부위마다 색과 질감이 달라진다. 이런 상태에서 새 천을 덧대거나, 바랜 정도를 고려하지 않은 실을 사용하면 수선한 부분만 유독 도드라져 보일 수 있다.
데님은 ‘리바이스’라는 뚜렷한 원류를 가진 바지이기도 하다. 오늘날 청바지의 상당수는 리바이스가 만든 구조와 사양에서 출발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들이 채택한 방식은 데님의 전통적인 미학으로 받아들여진다. 리벳과 체인 스티치가 대표적이다. 주머니 모서리에 박힌 리벳은 수납 시 하중이 집중돼 쉽게 마모되는 부분을 보강하기 위한 장치였지만, 이제는 청바지를 상징하는 디테일이 됐다. 바지 전체의 사이즈를 손봐야 하는 경우라면 리벳을 제거한 뒤 위치를 다시 잡아야 할 수도 있으니, 일반적인 바지 수선보다 손이 많이 가는 편이다.

데님에 관심이 있다면 ‘체인 스티치’라는 말을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일반적인 바지는 대개 윗실과 아랫실이 원단 안에서 맞물리는 락스티치로 마감하는 반면, 데님은 밑단처럼 접어 마감하는 부위에 실이 고리처럼 이어지는 체인 스티치를 적용하는 경우가 많다. 기술적인 관점에서만 보면 락스티치는 풀림에 강하고 범용성이 높은 봉제 방식이다. 체인 스티치는 실 끝이 제대로 마감되지 않았거나, 한 지점이 끊긴 뒤 당겨질 경우 연쇄적으로 풀릴 수 있다. 반면 락스티치는 윗실과 아랫실이 원단 안에서 맞물리므로, 일부가 끊겨도 체인 스티치처럼 길게 풀려나갈 가능성은 상대적으로 낮다. 그래서 일반적인 수선 현장에서는 락스티치가 더 보편적인 방식으로 쓰인다.
체인 스티치 – 아무 바늘로는 꿰맬 수 없는 세계

데님 제작에서 체인 스티치를 고수하는 이유는 리바이스로 대표되는 초기 청바지의 제작 방식을 계승하려는 태도와 맞닿아 있다. 다시 말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라는 방식 자체가 데님의 가치가 된 것. 또, 제작 방식의 결과물도 미학의 일부로 받아들여졌다. 대표적인 것이 밑단의 퍼커링과 로핑이다. 체인 스티치로 봉제한 밑단은 세탁과 착용을 거치며 원단과 실이 수축하고 이완되는 과정에서 특유의 주름이 생긴다. 주름을 따라, 밑단에 밧줄처럼 물결치는 페이드가 생기는데, 이를 흔히 로핑이라고 부른다. 로핑의 형태는 봉제 간격, 장력, 기계 세팅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데님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완성도를 가늠하는 요소 가운데 하나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아타리’라는 물결 무늬의 문양은 청바지 매니아들 사이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포인트다.
이처럼 데님은 표준화된 제작 방식이 존재하는 분야다. 정해진 프로세스 안에서 의도된 미감을 구현한다는 점에서는 공예품과도 비슷하다. 데님 수선사에게는 이러한 제작 방식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현장 제작자 못지않은 지식과 기술(어쩌면 그 이상이 필요할지도)이 요구된다. 실제로 적지 않은 데님 메이커나 비스포크 브랜드는 맞춤형 데님과 함께 수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기술 분야가 그러하듯, ‘고치면 장땡’이라면 굳이 데님 전문 수선을 맡길 필요는 없다. 사설 업체와 정품 A/S의 차이라고나 할까. 오리지널리티가 중요하지 않다면 보통 수선집에 맡겨도 그만이다. 다만 두꺼운 데님 원단을 정교하게 봉제하는 데에는 적지 않은 노하우가 필요하므로, 충분한 상담이 필요하다. 나도 다른 수선집에 들렀다가 몇 번 작업하기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으니까.

Tip. ‘아타리’가 도대체 뭐길래?
밑단을 접어 봉제한 뒤 세탁과 워싱을 거치면, 실과 원단이 함께 수축하며 밑단에 물결 같은 퍼커링이 생긴다. 락스티치로 마감한 밑단에도 이런 변화는 나타나지만, 체인 스티치만큼 밧줄처럼 도드라진 형태로 남지는 않는다. 체인 스티치로 작업한 밑단은 실과 원단의 수축, 봉제 장력, 기계의 피드가 맞물리며 살짝 비틀리듯 말리고, 그 굴곡을 따라 특유의 페이드가 생긴다. 데님 애호가들이 말하는 ‘로핑’은 바로 이 밑단의 울림과 마찰이 반복된 착용과 세탁을 거치며 밧줄처럼 남은 흔적을 의미한다. 그중에서도 유니온 스페셜 43200G는 밑단의 로핑을 잘 만들어내는 체인 스티치 미싱으로 유명해, 데님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밑단을 43200G로 작업했는지가 꽤 중요한 감별 포인트처럼 여겨진다.
유니온 스페셜 – 오차가 미학이 된 기계

유니온 스페셜은 1881년 설립된 산업용 재봉기 회사다. 청바지 제작 업계에서 이 이름은 데님의 한 시절을 상징하는 장비처럼 받아들여진다. 정확히 말하면, 그들이 과거 생산했던 몇몇 미싱 기계들이 그렇다. 원래 유니온 스페셜은 산업 전반에 쓰이는 재봉기를 만들던 회사였다. 리바이스를 비롯한 여러 데님 메이커가 청바지를 대량 생산하던 시절, 두껍고 질긴 데님 원단을 빠르고 안정적으로 봉제하기 위해 유니온 스페셜의 산업용 장비를 사용했다. 제작 공정상 두꺼운 원단을 겹쳐 일정한 속도로 박아내야 했기 때문에, 유니온 스페셜의 봉제 머신 사양이 데님 생산 현장과 잘 맞았던 것이다. 그중 특정한 기계들은 데님 제작 산업에 사용되며 신화적인 존재가 됐다.
가장 대표적인 건 1939년에 등장한 유니온 스페셜 43200G다. 당시에는 봉제 과정에서 밑단이 밀려 틀어지는 현상을 문제로 여겼다고 한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유니온 스페셜이 개발한 모델이 43200G였다. 그런데 문제는, 밑단을 단단히 고정해주기는커녕 밑단을 안쪽으로 말아 접어주는 터너의 결함 때문에 오히려 더 틀어졌다. 그 결과 이 시기 생산된 리바이스 데님에는 밑단을 따라 로프처럼 꼬인 로핑과 하얗게 바랜 아타리가 생겼다. 그렇다면 이 봉제 기계와 로핑은 결국 의도치 않은 오차의 산물인 셈인데, 어떻게 데님의 미학적 지향점이 됐고 또 숭상받는 기계가 됐을까?

바로 데님 복각 문화 때문이다. 청바지의 원류는 미국이지만, 과거 제품의 복각은 예나 지금이나 일본의 지분이 높다. 소위 데님 오타쿠라 할 수 있는 마니아 층이 두텁기 때문이다. 이들은 청바지의 원류를 거슬러 올라가, 리바이스를 비롯한 빈티지 데님이 유니온 스페셜 체인 스티치 미싱으로 밑단을 작업하던 시절의 청바지에까지 이르렀다. 이후 일본에서 빈티지 데님과 복각 데님이 유행하면서, 리바이스의 오래된 데님을 원형 삼아 제작할 때도 유니온 스페셜 43200G 같은 빈티지 미싱으로 밑단을 작업하게 됐고, 이것이 빈티지 데님의 상징처럼 자리 잡게 된 것이다. 비슷한 이유로, 데님 생산 시 ‘유니온 스페셜 기계를 사용했는가’는 청바지의 본래 생산 공정을 얼마나 충실히 따랐는지 확인하는 지표가 됐다. 더 깊게 들어가면 미싱 기계의 생산 연식과 세대까지 따지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것들을 몰라도 상관은 없다. 다만 ‘데님 전문 수선집’이라면 유니온 스페셜 기계를 구비한 곳이 적지 않다. 대부분의 모델이 단종됐으니, 당연히 빈티지다. 과장된 말일지도 모르나, ‘유니온 스페셜로 수선한다’는 건 일종의 데님 전문가 자격증처럼 느껴진다. 나도 이런 데까지 알고 나자, 자연스럽게 유니온 스페셜이 있는 데님 전문 수선집에 방문해야겠다는 확신이 섰다.
믿고 맡길 수선집을 찾아서
나는 오리지널리티가 중요했다. 그렇다고 원형 그대로의 복구를 바라는 건 아니었지만, 두 가지 데님 모두 데님의 표준에 가까운 방식으로 만들어진 물건이기에, 그 기준에 가깝게 고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데님은 닳는 대로 입는 게 멋이라고 생각해온 나에게 ‘수선’은 최후의 수단이었다. 고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주변 지인들에게 추천을 받고, 인터넷에도 발품을 팔았다. 마니아가 많은 분야일수록 블로그나 카페는 유용한 정보원이 된다. 고인물들의 후기와 경험이 살아 있는 정보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찾아낸 곳은 보문동에 위치한 스티크. 업력 12년의 데님 전문 수선집으로, 수많은 헤비 데님 마니아들의 이용 후기를 보고 방문하기로 결심했다. 업장에 들어서니 데님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캐피탈, LVC, 풀카운트, 레졸루트, 올드조. 하나하나 매만지며 구경하고 싶었으나, 모두 주인이 있는 수선품들. 나의 유니클로가 주눅 들지 않을까(버즈릭슨은 괜찮다)하는 마음으로 조심스레 꺼내 수선을 요청했다. 내가 원하는 바는 간단했다. 유니클로는 해진 부분을 ‘다닝’으로 누비고, 버즈릭슨은 구멍 난 부분을 메우면서 튼튼하게 보강하는 것.

사장님은 상태를 슥 보시더니, 작업 가능하다는 말씀과 함께 대략 3주 정도 시간이 소요된다고 답하셨다. 3주가 긴 시간인지, 짧은 시간인지는 모르겠으나, 작업대 위에 수선 대기 중인 청바지들과 한켠에 쌓인 택배 상자들을 고려했을 때 3주라는 시간은 충분히 납득이 가는 대기 기간이었다. 나중에 여쭤보니, 봄철이 작업이 가장 몰릴 때라고. 추측건대 겨우내 입은 바지를 맡기거나, 봄을 맞아 옷 정리를 하며 수선할 청바지를 한꺼번에 맡기는 게 아닐까. 나만 하더라도 미루고 미루던 수선을 ‘봄이니까!’라는 이유로 결심한 거니까.
스티크
Insta : @steek.denim
Tell : 카카오채널 스티크
Time : 월~금(10:00~18:30), 토(10:00~13:00), 일요일 휴무
*방문 전, 카카오채널로 상담 및 방문 예약 필수
유니클로 셀비지 데님의 다닝 수선
유니클로는 다닝 작업으로 수선했다. 다닝은 해진 천을 메우고 보강하는 수선 방식 중 하나로, 실을 촘촘히 얹어 원단을 다시 짜 넣은 듯 보이게 하는 기술이다. 바지 착용 시 많이 닳는 밑위, 허벅지 안쪽, 무릎 등에 자주 쓰이는데, 원단이 완전히 찢어졌을 때는 물론 얇아져 터지기 직전인 상태에서 미리 보강하는 데도 효과적이다. 패치를 덧대는 방식보다 원래 바지의 형태와 착용감을 해치지 않아, 데님의 에이징을 살리면서 수선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데님 다닝은 두꺼운 원단을 안정적으로 다룰 수 있는 장비와 작업자의 숙련도가 필요하고, 작업 시간도 비교적 오래 걸리기 때문에 다닝 작업을 하는 수선집이 많지는 않다.
스티크는 빈티지 싱어의 다닝 머신을 사용하고 있다. 두꺼운 원단 수선과 다닝 작업에 특화된 기계로, 원통형 실린더가 특징이다. 이 실린더 덕분에 바지통이나 소매, 커프처럼 일반 미싱으로 다루기 어려운 튜브 형태의 부위도 작업할 수 있다. 실제 작업도 해진 부위를 실린더 위에 올린 뒤, 김밥 말듯 천을 조금씩 돌려가며 진행됐다. 우선 해진 부위 아래에 손상된 원단을 받쳐줄 보강천을 덧댄다. 그런 다음 다닝 머신의 실린더 위에 손상 부위를 올리고 기계를 작동하면, 실이 촘촘하게 박히기 시작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기존 원단의 결을 해치지 않도록 위치와 방향을 계속 조정하는 일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같은 자리에 여러 번 실을 겹쳐 박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원단의 결 방향에 맞춰 천을 돌려야 하므로 수선자의 손기술과 경험이 크게 작용해 보였다. 실제로 눈앞에서 본 손놀림도 범상치 않았다.
어느 정도 보강이 끝나면, 에이징된 색감에 맞추기 위해 실을 바꿔 작업을 이어간다. 스티크에서는 주변 색과 최대한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도록 여러 색의 실을 나눠 사용한다고 한다. 사장님은 “수고스러운 과정이지만, 데님마다 색이 바랜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최대한 맞추려고 노력하고 있어요”라고 덧붙였다. 다닝 머신 옆에는 여러 톤의 인디고 실이 놓여 있었다. 그렇게 여러 차례 작업이 이어지자, 어느새 한쪽 해진 부위가 감쪽같이 메워져 있었다. 다닝 특유의 실선도 희미했고, 색 역시 주변과 크게 어긋나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색이 맞춰질 줄은 몰랐어요!” 나도 모르게 카메라를 내려두고 감탄했다. 가랑이 부분은 원래도 눈에 잘 띄지 않는 부위라 어느 정도 이질감은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결과물은 예상보다 훨씬 정교했다.
- 다닝 수선 비용 | 4만 5,000원
버즈릭슨 셀비지 데님의 인심 보강 수선
유니클로는 다닝 작업만으로 수선이 가능했지만, 버즈릭슨은 인심, 그러니까 안쪽 솔기의 실밥이 터져서 일부를 뜯어야 했다. 밑위는 움직임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부위이자, 양쪽 다리와 허리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는 부분이다. 그만큼 하중이 집중되기 때문에 특히 튼튼하게 봉제된다. 하지만 아무리 견고하게 만들어졌더라도, 두꺼운 원단이 겹치는 부분의 바텍이나 양쪽 다리가 만나는 교차 지점의 체인 스티치는 시간이 지나며 풀릴 수 있다. 특히 체인 스티치는 한 번 실이 풀리기 시작하면 연쇄적으로 스르륵 빠져나갈 수 있기 때문에, 제때 다시 봉제해주는 작업이 필요하다.
먼저 기존에 작업돼 있던 실을 모두 풀어내고, 오른쪽 다리로 이어지는 이음새를 해체한다. 그다음 해당 부위를 다시 체인 스티치로 봉제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지점은 양쪽 다리와 밑위가 만나는 인심 중심부에 있었다. 앞서 말한 것처럼, 하체의 움직임과 하중이 집중되는 부위인 만큼, 양쪽 다리 원단이 맞물리는 지점을 바텍으로 한 번 더 단단히 보강해야 하기 때문이다.

스티크는 밑단 체인 스티치 작업에 사용하는 유니온 스페셜 43200G를 비롯해, 빈티지 데님 수선에 필요한 여러 미싱 기계를 갖추고 있다. 버즈릭슨의 인심 보강 작업에는 유니온 스페셜 35800이 사용된다고 했다. 두 장의 원단을 맞물리게 접은 뒤 감싸듯 박는 더블 랩 심, 즉 쌈솔 작업에 필요한 기계라고. 청바지를 만들 때도 힘을 많이 받는 인심, 백 요크, 백 라이즈 등에 두 줄의 체인 스티치를 넣을 때 쓰인다고 한다. 이렇게 해당 부위를 일정한 간격으로 단단하게 겹쳐 박아주면 보강 작업이 마무리된다.
- 인심 해체 및 보강 | 8만 원
인터뷰 | 스티크가 말하는 데님 수선
데님 수선은 사용하는 기계부터 작업자의 숙련도까지 고려할 지점이 많다. 나처럼 데미지 입은 컨디션을 수선하는 경우를 제외한다면, 가장 많은 작업은 데님 기장 수선일 것이다. 스티크에서도 기장 작업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작업자 입장에서 기장 수선을 비롯한 여러 작업을 진행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지점은 무엇일까. 한창 다닝 작업을 하고 계시던 사장님 두 분을 붙잡고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스티크
전진오, 전진홍
Q. 작업이 많이 밀렸다고 하셨는데요. 이맘때가 제일 바쁠 시즌인가봐요.
봄이나 가을이 시즌이긴 해요. 여행 가기 전에 수선을 맡기시는 분들도 계시고, 새로 구입한 데님의 기장을 맞추러 오시는 분들도 계시죠. 사실 겨울에는 한가해서 걱정이었는데, 요즘에는 정신없이 작업만 하고 있어요.
Q. ‘데님 수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기장 수선’과 ‘체인 스티치’입니다. 수요가 많은 작업인 만큼, 특히 신경 쓰시는 부분이 있을까요?
고객분들이 원하는 방향에 맞게 작업하는 게 가장 중요해요. 아무래도 리바이스를 원류로 하는 데님이 많다 보니, 밑단 체인 스티치 간격을 리바이스 기준에 맞춰 1cm 정도로 작업해왔는데요. 최근에는 풀카운트 제품 의뢰도 많아져서, 더 좁은 폭으로도 작업해드릴 수 있도록 유니온 스페셜을 한 대 더 세팅하고 있습니다.
Q. 기장 수선을 하면 기존 밑단의 퍼커링이 사라질 수밖에 없잖아요. 수선 후에는 퍼커링이 자연스럽게 생기도록 별도의 워싱 작업을 하시나요? 기존 밑단을 살려 이어 붙이면 퍼커링을 유지하기 좋지 않을까 싶어서요.
뭐… 그러면 작업자 입장에서 수월하긴 한데요(웃음). 밑단을 이어 붙이면 아무래도 어색해요. 기존 원단의 에이징이나 색감, 결이 새로 맞춘 기장과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거든요. 저희가 생각하는 ‘고쳐 입는다’라는 개념은 본판의 만듦새와 경년 변화를 해치지 않는 데에서 출발해요. 그래서 밑단을 자르고 체인 스티치 작업을 한 다음, 워싱 작업을 진행합니다. 그 편이 고객분들의 만족도도 높고요. (실제 작업한 밑단을 보여주며) 약품 처리로 자연스럽게 아타리가 잡히도록 추가 작업도 해요.
Q. 아까 다닝 작업을 하실 때 여러 색의 실을 사용하시더라고요.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자연스럽게 메워져서 놀랐습니다.
그냥 메우면 아무래도 어색해요. 최대한 워싱감을 살려서 비슷한 색감이 나도록 여러 색의 실을 쓰고 있습니다. 다닝 작업 외에도 수선할 때는 본래 닳은 부분들을 살려서 작업하려고 해요. 고객분이 패치워크처럼 수선 흔적이 남는 방식이나, 터프하게 고친 느낌을 원하시는 경우가 아니라면 되도록 수선 부위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합니다. 중요한 건 본래 원단의 두께와 최대한 비슷하게 맞추는 거예요. 밑위나 인심 근처가 두꺼워지면 입었을 때 불편하고, 계속 쓸리기 때문에 오래 입기 어렵거든요. 그래서 최대한 얇게 작업하고 있습니다.
Q. 그렇다면 수선할 때 특별히 유의하시는 부분이 있을까요?
수선은 결국 고치는 일이잖아요. 처음 상태로 완전히 되돌리는 건 불가능해요. 수선 문의를 받으면 작업자 입장에서는 결과물이 어느 정도 예상됩니다. 그런데 간혹 결과물을 받아보시고, 기대한 만큼 복원이 안 돼서 아쉬워하시는 손님도 계세요. 공장 생산 당시 쓰인 실이나 컬러를 그대로 맞춰달라는 요청도 있고요. 그런데 기계 세팅값이나 재료 수급 문제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려운 지점이 있거든요. 그래서 작업 전에 어느 정도까지 수선이 가능한지, 고객님께서 납득하실 수 있도록 충분히 설명하려고 합니다.
Q. 다양한 수선 작업을 해오셨을 텐데, 그중에서도 특히 까다로운 작업이 있을까요?
주머니 수선이나 교체 작업이 어렵습니다. (의외라는 듯 놀란 나에게 작업물을 보여주며) 그냥 뜯고 봉제한 다음 다시 달면 될 것 같잖아요. 그런데 실제로는 바지를 거의 해체해야 해요. 허리선 안쪽으로 말려 들어가 작업된 경우라면 리벳도 다 빼야 하고, 요크도 뜯어내야 하죠. 비용도 높고 작업 시간도 오래 걸리기 때문에, 주머니는 가능하면 부분 수선으로 해결하는 게 제일 낫습니다.

Q. 듣고 보니 주머니를 잘 간수해야겠네요. 그렇다면 데님을 오래 입기 위해 평소에 어떻게 관리하면 좋을까요?
세탁이요.
Q. 어라, 리바이스 CEO는 본인은 청바지를 세탁하지 않는다고 말했잖아요.
그분은 청바지가 많으니까요(웃음). 데님이 아무리 오염에 강하다고 해도 결국 원단이에요. (실을 늘어트린다) 오래 입다 보면 실과 실 사이가 이렇게 벌어지는데요. 여기에 오염물이 침투하면 원단이 삭아요. 그러면서 해지고, 찢어지기 쉬워지는 거죠. 세탁을 하면 원단이 다시 수축하고, 오염물도 씻겨 나가니까 더 오래 입을 수 있어요.
Q. 흠… 그렇다면 세탁하면서 색이 변하는 건 어느 정도 감수해야겠네요.
데님 원단은 세탁하고 입는 과정에서 페이딩이 생기고, 염료가 빠지는 게 매력인 원단이에요. 색이 빠지고 워싱감이 생기는 건 자연스러운 변화죠.
Q. 마지막으로 체인 스티치나 데님 수선 외에도 스티크에서 제공하는 서비스가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데님 제품 제작과 관련된 대부분의 수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요. 택 버튼과 리벳 교체 같은 부속품 수선도 진행하고요. 허리나 엉덩이, 전체 사이즈 줄임부터 봉제 디테일 변경과 커스텀까지, 사이즈를 늘리는 작업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수선이 가능합니다.
난 어디서나 편하게 입을 수 있는 데님이 좋다. 한국 사회도 유교적인 관습에서 살짝 벗어나고 있는지, 직장과 면접처럼 공식적인 자리에서도 청바지가 조금씩 용인되고 있다. 청바지 단벌 신사인 나에게는 정말 감사한 현상이다. ‘저번이랑 똑같은 바지네’라고 말하는 사람에겐 무엇이 다른지 신나게 떠들 수 있고, 그 사람은 아닐 수도 있지만, ‘색이 멋지게 빠졌다’라는 반응에는 내심 뿌듯해할 수 있다. 데님은 그 자체로 효율적이고, 나의 허영심을 뽐내기에도 효율적인 바지다.
이번 수선을 통해 새삼 깨달은 바가 있다면, 내가 데님을 좋아하는 이유가 범용성에서 비롯한 ‘효율’뿐 아니라, 정성적이고도 정량적인 ‘비효율’에도 있다는 점이다. 유니온 스페셜로 봉제해야 하고, 밑단 간격은 1cm를 유지해야 하며, 특정 연도에 생산된 모델의 디테일을 살려야 하는 청바지의 세계가 재밌다. 구시대의 사양을 그대로 구현하기 위해 단종된 기계로 작업해야 하는 것. 올해 초 관람했던 <국보>에서 주인공이 온몸을 꺾으며 정확한 자세를 취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어떤 예술은 특정한 형태를 그대로 구현하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울 수 있다. 데님도 그렇다.
봄이 찾아왔다. 당신의 데님을 뽐내기 적절한 계절이다. 여름이 오기 전 부지런히 입어야 한다. 옷장에 묵혀둔 오래된 데님, 새로 장만했으나 기장이 길어 고민인 데님이 있다면 이번 기회에 수선을 맡겨보자. 데님을 온전히 당신만의 것으로 만드는 건 에이징뿐 아니라, 고쳐 입는 수고스러움에도 있으니까. 참고로 유니클로 데님의 발매가는 대략 5만 원 정도였다. 수선비는 4만 5,000원. 누군가에겐 비합리적 소비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새 데님을 사는 대신 이 바지와 조금 더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그러니 나에게는 5,000원 정도 저렴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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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현
브랜드와 라이프스타일을 탐구하는 에디터. 다양한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합니다. 마땅히 조명받아야 할 사람과 사물을 찾는 것을 좋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