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book] 누군가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 5

베스트셀러보다 더 재미있는 책 추천 시리즈 
베스트셀러보다 더 재미있는 책 추천 시리즈 

2025. 05. 07

안녕, 난 디에디트에서 한 달에 한 번씩 책 얘기를 하고 있는 객원 에디터 기명균이다. 평일엔 회사에 도움되는 글을 쓰고, 주말엔 내가 도움받은 책에 대해 쓴다. 시간이 날 땐 뉴스레터 <퍼줄거임>을 만들어 보내기도 한다.

5월의 ‘선물의 달’인만큼 선물하고 싶은 책 5권을 골랐다. 인생의 의미를 고민하는 너에게, 관계를 두려워하는 너에게, 가보고 싶은 곳이 많은 너에게, 세상을 바꾸고 싶어하는 너에게, 자기만의 길을 찾고 있는 너에게.


[1]
<인생의 의미에 답한 100인의 편지>

“나는 길을 잃었다. 완전히.”

대학에 가면 뭐든 할 수 있고, 원하는 건 다 이룰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손에 쥔 건 졸업장과 빚뿐. 직장도 잃고 연인도 떠난 뒤, 20대 중반의 제임스 베일리는 인생의 의미를 잃어버렸다. 그때부터 편지를 썼다. 다양한 분야에서 자기만의 영역을 만들어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무작정 물었다. “귀하께서는 인생의 의미를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귀하의 삶에서 의미, 목적, 충만감을 어떻게 발견하고 계신가요?”

베일리가 첫 답장을 받기까지 몇 달이 걸렸다. “저도 인생의 의미가 뭔지 잘 모르겠어요.” 영국인 과학자 로버트 윈스턴의 답장을 읽고, 베일리는 묘한 위로를 받았다. ‘이 사람도 모르는 걸 내가 어떻게 알겠어?’ 신기하게도 그 편지를 시작으로 다양한 사람들의 짧고 긴 답장이 도착했다. 9년 동안 과학자, 작가, 참사 생존자, 활동가, 운동선수, 모험가, 예술가, 종교 지도자, 철학자, 미래학자 등으로부터 받은 편지를 책으로 묶었다.

꽤 두꺼운 책을 며칠 동안 읽으면서 나는 조금 겸손해졌다. 사소한 일에도 짜증내고 불평하던 마음들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자기 인생 전체를 돌아보고 무엇이 중요했는지에 대해 담담히 써내려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당장의 손익률’이나 ‘내일까지 해야 할 일 목록’에서 한 발 뒤로 물러설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고 있었다. 여기까진 예상한 바였다. 그런데 더 많은 사람들이 ‘타인과의 관계’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고 있었다. 의외였다. ‘돈’은 물론이고 ‘책’이나 ‘직업적 성취’를 언급하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나는 잘 살고 있는 걸까. 내 인생의 의미는 무엇일까. 좋은 질문은 항상 좀 뻔하고, 정답이 없다.

  • <인생의 의미에 답한 100인의 편지> | 제임스 베일리 | 북스톤 | 2만 4,000원

“타인이 느꼈던 방식 그대로 세상을 느껴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얼마나 헛된가.”

몇 해 전 백수린 작가의 인터뷰를 읽었다. 소설가로서 갖고 싶은 능력이 뭐냐는 물음에 그는 답했다. “밤에 숙면하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능력. 노트북을 켜면 딴짓하지 않고 바로 작업에 몰두할 수 있는 능력. 그런데 이런 것도 능력이라고 할 수 있나요?(웃음)”(《채널예스》 인터뷰 중) 그는 성실한 소설가다. 2014년 <폴링 인 폴>로 데뷔한 후, 학업과 번역 작업을 병행하면서도 10년 넘도록 꾸준히 소설을 발표해왔다. 오늘 소개할 책 <봄밤의 모든 것>은 네 번째 소설집이다.

그의 성실은 작품 안에서도 느껴진다. 소설에 기발한 설정이나 충격적인 반전 같은 건 없다. 문체가 톡톡 튀거나 특별히 대사에 유머를 담지도 않는다. 작중 인물이 겪은 일과 그 과정에서 느끼는 바를 꼼꼼히 전달한다. 덕분에 독자는 30페이지 남짓 되는 소설을 읽는 짧은 시간 동안 이야기 속으로 훅 빠져들었다 나오는 체험을 한다. 성실함은 능력이다.

이번 책에 실린 일곱 편도 그렇다. 딸이 자라 집을 떠난 후 의도치 않게 앵무새를 키우게 된 중년 여성을(아주 환한 날들), 학교에서 배운 지식이 늘어날수록 부모에게 느끼게 되는 “묘한 슬픔이 뒤섞인 우월감”을(빛이 다가올 때), 나이가 들면 모든 게 익숙해질 거라는 생각이 오만이었음을 깨닫는 순간을(눈이 내리네) 체험했다. 소설을 읽으며 잊고 있던 장면들이 하나둘 떠올랐고, 단단하게 굳어 있던 마음이 잠시나마 물렁해졌다.

그의 성실함은 사람을 향한다. 앞서 말한 작가 인터뷰의 마지막 질문은 “마스크를 쓰지 않고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때가 오면 뭘 가장 하고 싶어요?”였다. 코로나19가 아직 한창이던 2021년이었다. 이 성실한 작가는 짧게 답한다. “그리운 사람을 보러 가고 싶어요.”

  • <봄밤의 모든 것> |  백수린 | 문학과지성사 | 1만 7,000원

“세상의 모든 노래를 지키는, 소리 없는 오케스트라 같지 않나요.”

주말에 날씨가 좋아서 국립중앙박물관을 다녀왔다. 이촌역에서 내려 박물관까지 가는 길이 널찍하니 탁 트여 있었다. 실내에 전시된 경천사지 10층 석탑이 진짜 10층인지 헤아려보고, 반가사유상 두 점이 나란히 놓인 사유의 방에서 ‘유물멍’도 때렸다. 의외로 즐거웠다. ‘나 박물관 좋아하네?’ 하지만 모처럼 샘솟은 애정이었으나 곧 차갑게 식었다. 너무 피곤했기 때문에. ‘내가 이래서 박물관을 안 다녔지…’

박물관을 걸으며 피곤해본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한다. <지구 박물관 여행>의 가장 큰 장점은 걷지 않고도 전 세계의 다양한 박물관을 실컷 구경할 수 있다는 것이다. 피곤하지 않으니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집중력이 유지된다. 로마의 바티칸 박물관부터 파리의 케 브랑리 박물관까지 총 12곳의 풍경을 앉은 자리에서 볼 수 있다.

파리 루브르나, 빌바오 구겐하임이나 한 번쯤은 사진으로 봤을 법한 곳들인데… 뱅자맹 쇼가 그려낸 박물관 풍경은 느낌이 좀 다르다. 건물 안팎에서 걷고, 뛰고, 구경하고, 말하고, 춤추는 다양한 관람객들을 빼곡히 그려 넣은 덕분이다. 뿐만 아니라 소장품 촬영 작가, 정원사, 고서적 복원사 등 박물관에서 일하는 다양한 사람들도 빼놓지 않았다. 과거 유물이 몇천 점 있더라도 결국 박물관은 현재의 사람이 있어야 완성되는 또 하나의 예술품이라 말하는 듯하다.

유럽여행을 준비하는 친구에게 선물하기 딱 좋은 책이다. 나도 계획만 세우다 코로나19 때문에 무산된 유럽여행을 다시 꿈꾸게 됐다. 그땐 피곤함을 좀 감수해야겠지만… 여행 계획이 구체화되기 전까지는 일단 루브르 박물관을 배경으로 찍은 비욘세&제이지의 뮤직비디오 ‘Apeshit’에 만족하는 것으로.

  • <지구 박물관 여행> | 에바 벵사르/뱅자맹 쇼 | 아이스크림미디어 | 2만 2,000원

“울먹이는 스티브 잡스에게 포옹을 받았다. 그리고 그건 당신이 상상하는 것만큼이나 어색했다.”

책 제목이 좀 유치하다. 일방적으로 마크 주커버그나 일론 머스크를 숭배하는 사람이 쓴 책이라면 딱히 읽고 싶지 않은데… 영어 제목을 찾아보니 <Tech Genius Chronicle> 따위가 아니라 <Burn Book>이다. 1990년대부터 활동한 테크 저널리스트 카라 스위셔는 “공개하지 않을 전제로 사람들에 대해 솔직한 생각을 적어두는 것”이란 뜻으로 이 제목을 붙였다. 다행히 메모는 불구덩이 속에 들어가지 않고 책이 되었다.

제목 그대로, 이 책의 첫 번째 매력은 솔직함이다. 지금은 위인이 되어버린 테크 기업의 거물들이 저자와 사적으로 나눈 대화를 엿볼 수 있다. 일론 머스크가 2022년 10월 저자에게 보낸 메일 제목은 “당신은 재수없는 인간이야”였다. 마크 주커버그가 저자를 만나자마자 처음 건넨 말은 정반대였다. “당신이 나를 재수없는 인간이라 생각한다고 들었어요.”

이 책의 두 번째 매력은 자기가 몸담은 분야에 대한 저자의 애정이다. 아무도 디지털 전환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던 1990년대 초반부터 저자는 인터넷에 미래가 있다고 믿었다. TV 황금시간대, CD플레이어, 친구 집 전화번호가 중요했던 90년대 이후로 대체 어떤 일들이 벌어진 건지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이 그중 중요하고 재밌는 이야기만 쏙쏙 빼서 전해준다. 그리고 말한다. “나는 여전히 기술을 사랑하고, 기술로 살아 숨쉰다.”

테크 저널리스트 아니랄까봐, 저자는 책을 어떻게 마무리할지 챗GPT에게 물어본다. 하지만 너무 온건하고 명랑한 답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결국 챗GPT를 치워버리고, “작고 약간 고장난 뇌”를 이용해 다음 문장으로 책을 끝낸다. “당신이 잠시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르고 디바이스들을 더 자주 내려놓기를 바란다. 그리고 물론 항상 시선을 들어라.”

  • <테크 천재들의 연대기> | 카라 스위셔 | 글항아리 | 2만 2,000원

“다가가서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었지만, 빛줄기 같은 그 가느다란 거미줄은 사진에 담기지 않았다.”

건축 회사로 이직한 ‘하타’는 주말마다 산악회에 나간다. 사내 인간관계에 소홀하면 직장 내 입지도 흔들릴 거라 여기기 때문이다. 하타의 눈에 선배 ‘메가’는 좀 별나 보인다. 승진에는 관심이 없는지, 항상 정시 퇴근이고 회식에도 참석하지 않는다. 주말 등산은 당연히 불참. 그런데 하타는 우연히 메가의 취미를 알게 된다. 보통 등산로가 아니라, 덤불을 헤치고 급경사를 오르내리며 산길을 개척하는 ‘베리에이션 루트’다.

산악회다 뭐다 화기애애했던 것도 잠시, 회사 상황은 급격히 어려워진다. 구조조정 소문까지 나돌 만큼 분위기가 뒤숭숭해지자, 쫓겨나다시피 이전 회사를 떠났던 하타는 다시 불안해진다. 긴장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던 그는 어느 날 베테랑 메가의 도움을 받아 골치 아픈 문제를 해결한다. 고마운 마음이 앞서서였을까. 하타는 메가에게 충동적으로 말한다. “저도 베리 그거 같이 하면 안돼요?”

이 소설의 저자는 직장인이다. 건축 회사를 다니며 쓴 <베리에이션 루트>로 아쿠타가와상을 받았다. 직장과 소설을 병행하는 건 분명 어려운 일이겠으나, 직장에서의 경험이 소설에는 플러스로 작용했다. 회사를 다니면서 한 번쯤 던져봤을 법한 질문들이 얇은 책 안에 그득 담겼다. 회사생활에서 관계의 중요성은 얼마나 되는가. 시류를 따를 것인가 내 길을 고수할 것인가. 내 길을 고수하기 위해 포기해야 할 것들은 무엇인가. 소설이 답을 주진 않는다. 애초에 답이 있는 질문들도 아니고.

이야기는 단순하다. 심오하거나 복잡한 문장도 거의 없다. 읽기 쉬운 작품으로 “인간이란 무엇인가? 왜 사는가?” 같은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다는 게 작가의 포부이자 지향점이다. ‘읽기 쉬운 글’을 쓴다는 건, 정말 어려운 동시에 정말 대단한 일이다. 이름을 기억해야 할 작가가 또 늘었다.

  • <베리에이션 루트> | 마쓰나가 K. 산조 | 은행나무 | 1만 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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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명균

매달 다섯 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기이할 기, 밝을 명, 고를 균, 이름처럼만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