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봤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예전에 극장에서 아주 묘한 애니메이션을 본 일이 있다. 제목은 ‘곰이 되고 싶어요’. 제목만 들어서는 5세 이하의 아동을 위한 애니메이션 같지만 실제 내용은 그렇지 않다.
덴마크의 애니메이션 거장이 만들었다는 이 작품은 아름답고 심오하다. 수채화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신비로운 작화와 자신의 존재를 찾아 떠나는 작은 소년. 나는 이 애니메이션에서 ‘이누이트 부족’을 처음 접했다.
그리고 다시금 이누이트 족을 만나게 됐다. 모바일 게임에서. 뒤늦게 발견한 ‘네버 얼론(Never Alone)’이라는 게임의 아름다움에 푹 취해버렸다.
나는 모바일 게임을 많이 하는 편은 아니다. 스마트폰 사용 초창기에는 집착하며 플레이하는 게임이 다수 있었지만, 나이 들며(?) 그런 여유를 잊은지 오래다. 마지막으로 즐겼던 게임은 작년 여름쯤 아이패드 프로에서 돌리던 ‘어쌔신 크리드’ 정도. 그러니까 한 마디로 나는 모바일 게임 업계의 트렌드 따윈 집어낼 수 없는 무지렁이란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소개하는 게임이 대박, 쩌는, 명작이라는 것은 확신할 수 있다. 와, 정말 너무 좋다. 미쳤다. 어째서 내 어휘력이 이렇게 미천해졌는지 모르겠지만 입에서 나오는 말 그대로 타이핑해보았다.
네버 얼론은 이누이트족의 문화를 지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이누이트는 수천 년간 수렵채집을 해오며 인간과 자연, 동물과 특별한 관계를 만들어 왔다. 이 세계에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사회를 구성할 수 있다는 존중이 이누이트 족의 기본 정신이다. 급격한 현대화와 함께 세대 간의 문화 단절을 겪던 그들은, 자신들의 문화를 알리기 위해 게임을 만들기로 한다. 상당히 화끈한 선택이다. 누구의 아이디어인지는 몰라도 전통문화를 지키기 위해서 게임이라는 신문물을 받아들였다는 것 자체가 멋지다.
솔직히 개발 취지를 들어서는 역대급 노잼 게임이 될 여지가 다분해 보인다. 원주민들의 문화와 역사를 표현하기 위한 게임이라니. 한 발 잘못 들어가면 교육용 게임처럼 되어버린다.
그런데 네버 얼론은 원주민들의 이야기를 적극 반영해 완벽한 고증에 성공했을 뿐 아니라, 아름답고, 재밌다. 계속 계속 플레이하고 싶은 중독성을 갖췄으며, 배경음악까지 완벽하다.
게임 플레이 방식은 간단하다. 장애물을 뛰어넘으며 앞으로 전진한다. 전형적인 횡스크롤 게임이다. 캐릭터는 둘이다. 누나(씨스터가 아니고 Nuna라는 이름이다)와 북극여우. 누나가 걸으면 여우가 따라온다, 여우가 앞서 걸어도 누나가 따라온다. 터치 한 번으로 두 캐릭터 사이를 자유롭게 전환할 수 있다. 처음엔 굳이 두 캐릭터를 함께 끌고 다녀야 한다는 사실이 혼란스럽다. 그런데 두 캐릭터가 협업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어떤 길은 여우만 올라갈 수 있고, 어떤 장애물은 누나만 뛰어넘을 수 있다.
한 도전 과제를 뛰어넘으면, 또 다른 과제가 나온다. 그때마다 이 위기 상황을 빠져나갈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다른 사용자들의 후기를 보면 난이도가 쉬운 편이라고 평가하던데, 게임적 상상력이 빈약한 내겐 좀 힘들었다. 처음으로 난이도 높은 장애물이 나왔을 땐, 에디터M에게 계속 외쳤다. “난 갇혔어, 난 여기서 영원히 나가지 못할거야, 내가 여우를 또 죽였어ㅠㅠ 엉엉.”
애니메이션을 보는듯한 아름다운 그래픽, 몰입도 높은 스토리, 그리고 나레이션은 이 게임의 가장 큰 매력이다. 한 스테이지(실제로 게임 안에서는 스테이지 구분이 없다)를 넘어설 때마다 자연스럽게 진행자(?)의 나레이션이 흘러나오며 스토리가 진행된다. 그러나 방심해선 안된다. 나레이션이 나오는 동안에도 점프 한 번 잘못하면 절벽에 떨어져 죽을 수 있다.
매번 장애물을 넘기 위해서는 머리를 짜내야 한다. 방향 이동과 점프, 밀기, 등 단순한 조작만 가능하기 때문에 그 안에서 퍼즐을 짜맞춰야 한다. 동화적인 스토리와 캐릭터에도 불구하고 이 게임은 꽤 냉혹하다.
[실제로 추위가 느껴질 만큼 서늘한 효과음]
매서운 바람이 불어올 때, 바람 부는 소리가 내 마음까지 서늘하게 만들 정도로 실감 난다. 이때 타이밍 좋게 몸을 웅크리지 않으면 바람에 휩쓸려 절벽에 떨어져 죽게 된다. 여우 캐릭터는 잽싸게 장애물을 피해 갔어도, 누나 캐릭터만 혼자 죽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때 여우가 낑낑거리며 울부짖는 소리가 얼마나 서러운지 안 들어본 분들은 모른다. 내가 같은 자리에서 스무 번 정도 죽는 신기록을 세우고 있으니, 에디터M이 신경질적으로 묻는다 “아니 왜 자꾸 우는 소리가 나는 거야? 뭘 얼마나 죽이는 거야?” 그러게나 말야. 난 살인마야…. (참고로 게임 고자인 에디터M은 튜토리얼도 통과하지 못했다)
나는 작은 북극여우와 소녀가 되어 북극을 헤맨다. 아름답고 재밌는 게임이다. 게임을 하다 보면 중간 중간에 잠겨있던 보너스 영상이 열린다. 이누이트 족의 문화를 담은 1분짜리 인터뷰 영상이다. 이걸 보지 않아도 게임을 플레이하는데 지장은 없지만, 정말 잘 만든 비디오다. 꼭 챙겨보시길. 한국어 번역도 아주 잘 되어 있다.
이 게임의 단점이라면 게임 중간 중간 힌트가 너무 부족해서 나처럼 맹한 사람들은 “아, 여기가 이 게임의 마지막인가보다”하고 포기하게 되는 순간이 종종 온다는 것. 조작감이 나쁘다는 평이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그리고 최적화의 문제인지 아이폰7 플러스에서 게임을 하는데 정말 역대급 발열을 경험했다. 손난로로 써도 될 정도로 폰이 달아오른다.
[꺄하하 맥버전도 있지롱!]
모바일 버전은 안드로이드와 iOS기기에서 모두 플레이할 수 있으며, 콘솔이나 맥에서도 플레이할 수 있다.
Never Alone: Ki Edition
Store – iOS / Android
Point – 진짜 북극에 있는 것 같은 몰입감
Price – 6.45달러
Size – 761MB
About Author
하경화
에디터H. 10년차 테크 리뷰어. 시간이 나면 돈을 쓰거나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