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는 커피를 마시고 글을 쓰는 심재범이다. 최근 전 세계에 말차 열풍이 심상치 않다. 뉴욕, 파리, 런던, 도쿄와 같은 대도시의 젊은이들이 말차를 소비하고, 할리우드 셀럽이나 파리의 패션 피플이 말차 음료를 마시는 모습이 소셜 미디어에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다.
잊혀져 가던 말차가 어떻게 전세계를 다시 사로 잡게 되었을까? 이번에는 말차 유행의 시발점이자 세계적인 트렌드의 도시 뉴욕의 대표적인 말차 매장을 방문했다. 뉴욕 말차 장인정신의 상징 ’12 Matcha’, 대중적 프랜차이즈 ‘Cha Cha Matcha’, 그리고 스페셜티 커피 대표 ‘La Cabra’를 통해 뉴욕, 나아가 전 세계를 휩쓰는 말차 열풍의 현장을 살펴볼 예정이다.
장인정신의 정점
12 Matcha
12 Matcha는 말차 트렌드를 이끌고 있는 카페다. 매장의 위치는 NOHO. 노호는 뉴욕 예술가의 거리로 유명한 소호의 북쪽을 뜻하는 지역으로, 상업화된 소호의 대안 공간으로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곳이다. 굳이 한국과 비교하면 연남동에 대형 프랜차이즈 매장들이 들어오면서 독립 매장들이 연희동으로 이전하는 것과 비슷하다.
12 Matcha는 노호 지역 본드 스트리트에 위치하고 있다. 이번에는 일정이 빠듯해서 이른 아침 오픈런으로 방문했다. 여름철 성수기에는 한 시간 전부터 대기가 시작되는데, 당일에는 매장 오픈 30분 전부터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방금 운동을 마친 듯한 젊은 남녀부터 다양한 인종의 관광객까지.
오래된 석조 건물을 리노베이션한 매장 내부는 시간에 따라 변하는 채광에 다양한 간접 조명으로 따듯한 느낌이 가득했다. 가장 눈에 띄는 장면은 의약품처럼 청결한 수조에 담겨진 커다란 숯. 12 Matcha는 10시간 동안 무산소로 가공한 빈초탄을 사용해 추출수의 알칼리 성분을 증가시키고, 다공질 구조의 특징으로 염소 성분을 중화한다. 이를 통해 말차 특유의 쌉싸름한 맛을 높이고 아린 듯한 산미를 제거했다. 특별한 기능만큼 강렬한 비주얼이 놀라웠다.
말차는 녹차와 달리 녹찻잎을 분쇄해서 전체를 마시기에 말차의 품질과 차를 격불(말차를 따듯한 물에 넣고, 차선을 이용해 꾸준히 저어 풍요로운 거품을 형성하고 녹차의 성분을 충분히 우려내는 과정)하는 직원들의 실력이 중요하다. 12 Matcha의 바리스타들은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정성껏 말차를 만들고 있었다. 주문시 가당과 무가당을 선택할 수 있는데 말차라테는 약간의 가당, 아이스 말차인 마차리카노는 무가당으로 주문했다.
12 Matcha의 인기 메뉴는 말차라테와 마차리카노 그리고 녹차 바스크 케이크다. 일본 우지 하토리 가문의 말차를 사용한 말차라테는 녹차 아이스크림과 같은 과도한 단맛의 베이스가 아니고, 선명한 말차와 기본적인 우유의 복합적인 단맛이 섬세하게 조화로웠다. 약간의 가당 덕택에 녹차와 우유 사이에 가교가 놓여진 느낌이었다. 말차라테가 현지인들이 좋아하는 우유와 조합이라면, 마차리카노는 풀향기 강렬한 마차를 선명하게 표현해서 한국인과 동양인들에게 편안함을 선사할 만 했다.
의외의 다크호스는 말차 바스크 케이크다. 세계 최고의 파인다이닝 덴마크의 노마 헤드 패스티리 세프 출신 프란시스코 미고야가 직접 만들어, 현지에서 화제가 되었다. 품질 좋은 말차를 아낌없이 사용하고 단맛을 과장하지 않은 세프의 내공이 절묘하게 조합되었다. 예측 가능하면서, 경험하기 힘든 맛이다.
12 Matcha는 코넬 대학을 졸업한 앨런, 180년동안 일본의 우지에서 차를 재배한 호타가문, 노마 출신의 패스트리 셰프가 협업으로 오픈한 매장이다. 12 Matcha는 현지의 뜨거운 인기에도 불구하고 뉴욕 맨하탄의 노호 매장 한 곳만 운영 중이고, 아직 매장 확장을 계획하고 있지 않다고 한다. 당일 매장에서 우연한 기회에 인터뷰를 진행한 창업자 앨런은 전 세계에서 가장 트렌디한 한국인 관광객들의 방문이 큰 도움이 되었다며, 디에디트를 통해 한국 방문객들에게 진심 어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말차계 프랜차이즈
Cha Cha Matcha
Cha Cha Matcha는 뉴욕 노호에서 시작해 맨해튼과 LA 전역으로 빠르게 퍼져나간 말차 전문 프랜차이즈다. 12 Matcha가 교토 우지 전통차와 정교한 격불, 스타 셰프 디저트로 주목받았다면, Cha Cha Matcha는 다점포 전략으로 대중 속에 말차를 심어가고 있다.
이번에 찾은 곳은 노호 1호점. 12 Matcha와 멀지 않은 거리다. 현재는 매디슨 스퀘어, 노마드, 모이니한까지 매장을 확장했다. 영업시간은 아침 8시부터. 10시 30분에 문을 여는 12 Matcha보다 훨씬 일찍 시작하는데 12 Matcha가 운동 후 항산화 음료를 찾는 로컬·관광객을 겨냥했다면, Cha Cha Matcha는 출근길 카페인을 찾는 일반 직장인들에게 어필하는 셈이다.
이른 아침, 매장 앞은 유치원 버스를 기다리는 부모들로 붐볐다. 내부는 초록, 연두, 무지갯빛이 뒤섞인 화려한 인테리어. 로고 티셔츠와 각종 MD 상품으로 가득 차 있어 들어서는 순간 ‘브랜드 공간’임을 직감하게 된다.
대표 메뉴는 드래프트 말차라테. 미리 가공한 말차에 질소를 주입해 맥주처럼 부드러운 거품을 입혔다. 적당한 단맛이 더해져 한 모금에 에너지가 차오른다. 12 Matcha처럼 바리스타가 정성껏 격불하는 과정은 없지만, 빠르게 음료를 받아 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전반적인 분위기는 러블리하고, 무엇보다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딱 좋은 톤 앤 무드를 가졌다. 말차를 어렵고 전문적인 세계에서 꺼내와, 현지인들에게 가볍고 친근한 이미지로 전환한 것. 덕분에 Cha Cha Matcha는 맨해튼 곳곳으로 확장 중이고, 마차카페 마이코 같은 프랜차이즈와 함께 뉴욕 말차 트렌드를 이끌고 있다.
스페셜티커피의 말차
La Cabra
뉴욕 말차 여행의 마무리로, 뉴욕 스페셜티 커피 산업에서 ‘젠 스타일’의 최전선에 서 있는 La Cabra를 찾았다. La Cabra는 덴마크에서 시작한 라이트 로스팅 커피 브랜드로, 최근 뉴욕 바워리와 브루클린에 로스팅 매장과 카페를 새로 열었다.
La Cabra 바워리 매장은 노호와 소호 사이에 있다. 바워리 지역은 뉴욕의 오래된 먹방의 진원지로 근처에는 뉴욕을 대표하는 미식 노포들이 위치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파스트라미 샌드위치를 맛볼 수 있는 카츠 델리(Katz’s Deli), 베이글과 연어 샌드위치 러스앤도터스(Russ & Daughters), 최근 서울에서까지 화제가 된 기사식당까지. 커피 한 잔 전후로 함께 경험하면 더할 나위 없는 동네다.
La Cabra는 이른 아침부터 만석이었다. 실험적인 아트워크가 벽을 채우고, 바리스타들의 손길은 섬세하다. 단언컨대 뉴욕에서 가장 뜨거운 스페셜티 커피 매장 중 하나이지만, 최근에는 현지의 젊은 세대들에게 새로운 말차라테 명소로 알려지고 있다.
인상 깊었던 부분은 La Cabra의 말차 잔이었다. 손잡이가 없는 도톰한 도기잔으로. 잔의 완성도가 높지는 않지만, 일본 다도에서 선호하는 조선 시대 막사발을 연상시킨다. 임진왜란 당시 한국의 도공을 납치한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다도 선생이자 일본 다도의 원조로 손꼽히는 센노 리큐는 조선의 막사발에서 겸손과 겸양의 미덕을 발견했다. 이후 일본의 다도에서 금박의 화려한 다완이 사라지고, 조선의 막사발이 일본 다도 최고의 미덕인 와비사비 문화를 상징하게 되었다.
12 Matcha가 과학적 접근, Cha Cha Matcha가 트렌디함을 무기로 한다면, La Cabra의 말차 자체로 가장 인상적이었다. 추천 메뉴는 따뜻한 말차라테. 아이스가 인기인 다른 매장들과 달리, La Cabra는 따뜻한 온도에서 말차 본연의 깊은 맛을 드러냈다.
왜 말차일까?
트렌드의 상징과 같은 도시 뉴욕을 관통하는 말차 열풍은 건강, 비주얼, 대체 카페인, 문화적 스토리 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
찻잎을 갈아 통째로 마시는 말차는 항산화 성분이 풍부해 ‘마시는 슈퍼푸드’로 불린다. 요가, 필라테스, 러닝 같은 웰니스 트렌드가 도시를 점령하듯, 커피 대신 말차를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 테아닌 성분은 안정적인 각성을 돕고, 카페인은 커피보다 완만하게 흡수돼 부드럽게 오래 간다.
커피로 흉내 낼 수 없는 선명한 초록빛도 비주얼이 중요한 요즘 트렌드에 맞았다. 인스타그램과 틱톡 시대에 말차는 그 자체로 완벽한 콘텐츠가 됐다. 과도한 커피 소비에 지친 사람들에게는 쌉싸름한 풍미가 새로운 자극이 된다.
마지막으로 찻잎을 찌고 말려 곱게 갈아낸 뒤 대나무 차선으로 거품을 내는 일련의 과정 자체가 스토리 텔링이 되어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에서는 바리스타 챔피언이 운영하는 티브커피 하우스, 국내 최고의 스페셜티 로스터리 커피 리브레가 발 빠르게 말차 음료를 선보이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유행에 민감한 한국에도 머지 않아 초록빛 말차 열풍이 찾아 오지 않을까?
About Author
심재범
커피 칼럼니스트. '카페마실', '동경커피', '교토커피'를 썼습니다. 생업은 직장인입니다. 싸모님을 제일 싸랑하고 다음으로 커피를 좋아합니다. 아 참, 딸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