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는 커피를 마시고 글을 쓰는 심재범이다. 커피 없는 삶이 불가능한 사람들도 가끔은 카페인과 이별해야 할 때가 있다. 예를 들면, 밤샘 마감 후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릴 때, 이틀째 잠을 못 자고 침대에 누워 천장을 관찰하고 있을 때, 혹은 건강검진을 앞두고 “공복 상태를 유지해주세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
최근 건강을 챙기는 트렌드와 함께 ‘카페인을 사양한다’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 시대가 됐다. 커피의 풍년과 함께 찾아온 디카페인의 시대라… 그래서 이번에는 카페인은 빼고, 맛은 꽉 채운 디카페인 커피를 정리했다. 이 글은 커피를 사랑하지만 심장이 벌컥벌컥 뛰는 당신을 위한 보고서다.
1. 커피몽타주
굿나잇 앤 굿럭
강동구 성내동에 위치한 커피몽타주는 스페셜티 커피 로스터리 중에서도 꾸준하게 실험적이고 독립적인 색채를 유지하는 곳이다. 몽타주의 대표적인 디카페인 커피는 ‘굿나잇 굿럭’ 블렌딩. 따뜻하고 느긋한 퇴근길의 인사 같은 이름이다. 몽타주의 디카페인은 콜롬비아 스페셜티 커피 생두를 천연 사탕수수 함유 물질을 이용해서 카페인을 제거한 후 로스팅한 커피이다. 디카페인 방식은 과거, 화학물질을 이용해 용매에 카페인을 녹이는 방법을 사용했지만, 스페셜티커피 산업에서는 스위스워터방식 사탕수수 추출물, 마운튼 워터 디카페인 방식과 같이 친환경이고 안전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몽타주의 디카페인 커피는 헤이즐넛의 고소함과 시나몬의 따뜻한 향미, 브라운 슈거와 같은 달콤한 마무리가 차분하게 다가온다. 필터 브루잉은 물론, 라떼로 마셔도 손색 없는 균형감을 갖췄다. 단맛이 도드라지고, 신맛은 억제되어 있어 누구나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맛이다. 밤에도 커피가 필요한 사람, 혹은 자기 전 독서와 함께 조용한 한 잔이 필요한 사람에게 가장 먼저 추천하고 싶은 디카페인이다. 가격은 200g에 1만 7,000원으로 구매는 [여기]에서 할 수 있다.
한 줄 평 | “커피를 마시고 푹 자고 싶은 사람을 위한 밤의 작별 인사.”
추천커피 | 에스프레소, 필터 모두 훌륭함.
2. UFO커피
브라질 디카페인
유에프오 커피는 이름처럼 어딘가 특이하고 괴짜 같은 감성이 담긴 로스터리로, 커피를 볶는 로스팅 장인들이 높게 평가하는 곳이다. 유에프오는 매장이 없고, 로스팅 원두를 도매와 소매로 판매하는 곳이다. 추천 커피는 브라질 디카페인이다. 일반적인 프로세싱의 디카페인 커피는 중간 지역이 비어있는 듯한 공허한 느낌을 받을 때가 많은데, 유에프오의 디카페인커피는 다른 로스터들의 밍밍하고 심심한 디카페인과 차원이 다른 밀도감을 선보인다.
브라질 세하도 지역의 커피는 원래 질감이 좋고, 로부스타를 섞지 않아도 단단한 뉘앙스의 커피인데,. 유에프오 브라질 디카페인은 땅콩버터, 다크초콜릿, 건과일 같은 진한 풍미가 입안에서 두텁게 펼쳐진다. 특히 에스프레소 추출에 최적화된 로스팅 프로파일을 갖고 있어서, 가정용 머신이나 모카포트로 마셔도 충분할만큼 탄탄한 크레마와 바디를 선보인다. 필터보다는 에스프레소와 같은 짧고 진한 추출이 잘 어울리는 편이다. 평소 스타벅스 다크 로스트 계열의 커피를 좋아한다면, 디카페인이 필요할 때 가장 완벽한 대안이다. 커피 본연의 쓴맛과 단맛을 온전히 담아낸 유에프오의 디카페인 커피는 ‘디카페인은 밍밍하다’는 편견을 산산히 깨뜨린다. 가격은 200g에 1만 6,000원이며, 구매는 [여기].
한 줄 평 | “에스프레소의 묵직함과 디카페인의 평온함이 만났다.”
추천커피 | 아이스아메리카노, 아이스카페라테
3. 피어커피
세헤라자드
한남동에서 성수를 거쳐 강남까지 확장 중인 피어커피는 그 자체로 브랜드가 되었다. 바리스타, 로스터, 디자이너가 협업하는 피어커피는 고전과 실험 사이의 아름다운 균형을 지향한다. ‘세헤라자드’는 피어커피의 대표적인 디카페인 커피다. 이름처럼 커피 한 잔 안에서 다양한 맛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라비안 나이트 속 세헤라자드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디카페인 블렌딩이다. 디카페인의 부드러운 향미와 적절한 질감이 조화롭다.
피어커피의 세헤라자드 저카페인 블렌딩 커피는 붉은 대추의 은은한 단맛이 나타나고, 중반에는 감초와 시나몬 같은 향신료 계열의 뉘앙스가 등장한다. 마지막으로 입안에 남는 자몽 껍질과 흑설탕의 흔적. 전체적으로 무게감 있는 구조와 따뜻한 풍미가 인상적이다. 가볍기보다는 진중하고, 청순하기보다는 복합적인 디카페인이다. 브루잉(필터)으로 마시면 천천히 향미가 펼쳐지고, 라떼로 마시면 향신료의 온기가 부드러운 우유와 멋지게 어우러진다. 문학적 감성을 자극하는 이름처럼, 매일 밤 마셔도 매번 다른 이야기를 들려줄 것만 같다. 가격은 200g에 2만 5,000원. 구매는 [여기].
한 줄 평 | “밤마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천일야화 같은 디카페인.”
추천커피 | 필터로 마시거나, 따듯한 카페라테.
4. 톨드어스토리
콜롬비아 나리뇨 디카페인
톨드어스토리의 김건표 씨는 커피인들이 손꼽는 대표적인 로스팅 장인이다, 대전에 위치한 톨드어스토리는 콜롬비아 나리뇨 고지대에서 재배한 생두를 사탕수수 디카페인 방식으로 처리한 후 로스팅해서 작업했다. 커피 몽타주와 비슷한 성향의 커피 생두이지만, 커피를 볶는 스타일이 다르다.
몽타주의 디카페인이 부담 없는 평안한 맛이라면, 톨드어스토리는 산미를 포함한 다양한 개성을 표현하고 있다. 첫 맛은 체리, 자몽 같은 밝고 화사한 산미가 주도하고, 오렌지필과 흑설탕의 단맛이 부드럽게 이어지며 정갈한 마무리를 남긴다. 질감이 가볍지만, 내용은 진중하다. 브루잉, 콜드브루, 아이스 아메리카노 모두 잘 어울리는 유연한 커피다. 산뜻한 디카페인을 찾는 이들에게 더할 나위 없다. 디카페인의 심심함에 지친 애호가라면 이 커피가 주는 발랄함이 오래 기억될 것이다. 가격은 200g에 1만 6,000원. 구매는 [여기]에서 할 수 있다.
한 줄 평 | “산미를 예쁘게 표현하는 디카페인 커피.”
추천커피 | 필터 혹은 콜드브루커피
5. 커피가게 동경
에티오피아 첼베사 디카페인
연희동의 로스터리 ‘커피가게 동경’은 미니멀하면서도 섬세한 접근을 추구한다. 커피를 동경한다는 의미의 이름은 커피에 대한 애정을 잘 표현하고 있다. 동경의 디카페인 원두는 에티오피아 첼베사. 커피리브레에서 수입한 생두를 기반으로 로스팅했는데, 마운튼 워터 프로세싱을 통해 향미를 섬세하게 보존하면서 커피의 카페인을 대부분 제거했다.
동경의 디카페인 커피는 자스민의 꽃향이 화사하게 피어 오르고, 복숭아와 백차 같은 고급스러운 뉘앙스가 차분하게 이어진다. 커피가 아니라 차를 마시는 듯한 청명함과 클린컵 덕택에 입안을 맑게 정돈해 주는 듯한 기분마저 든다. 꽃향의 향미를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말할 것도 없이 추천한다. 따뜻한 브루잉으로도, 상온에 가까운 아이스 드립으로도 훌륭한 결과물을 낸다. 에티오피아 커피 특유의 정취와 여백의 미가 가장 잘 살아있는 디카페인 커피이다. 아마도 올해 출시된 에티오피아 디카페인 커피 중에서 단언컨대 최고라고 생각한다. 가격은 200g에 1만 9,000원. 구매는 [여기].
한 줄 평 | “카페인을 뺀 에티오피아가 이토록 우아할 수 있다니.”
추천커피 | 아이스필터, 따듯한 필터커피
이상 한국에서 가장 맛있는 디카페인 커피들을 정리했다. 양질의 디카페인 스페셜티커피들은 일반적으로 밋밋한 디카페인과 달리 향미와 산미가 잘 표현되어서 여름철 아이스커피로 훌륭하다. 이외에도 디카페인 프로세스에 따라서 여러 의견이 있는데, 일부 프랜차이즈 매장에서 사용하는 화학적 용매 방식은 잔류 물질의 안전성 논란이 있어 스위스워터방식, 사탕수수 추출물, 멕시코 고산지대 마운튼 워터 방식이 안정적이고 맛과 향미도 훌륭하다는 걸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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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범
커피 칼럼니스트. '카페마실', '동경커피', '교토커피'를 썼습니다. 생업은 직장인입니다. 싸모님을 제일 싸랑하고 다음으로 커피를 좋아합니다. 아 참, 딸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