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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필름 X half, 디카를 필카처럼 쓰고 싶다면

필름은 비싸니까요
필름은 비싸니까요

2025. 05. 27

필름 카메라의 매력은 무엇에 있다고 생각하나요? 사진의 느낌? 그 손맛? 36장이라는 제한에서 오는 선택과 집중? 이 모든 걸 구현한 디지털카메라가 있다고 한다면 구매할 의향이 있나요?

바로 후지필름의 X half(X-HF1)입니다. ‘half(하프)’라는 이름에서 이 카메라의 기원을 어느정도 엿볼 수 있습니다. 필름에서 하프 카메라라는 것은, 35mm 필름 한 프레임을 반으로 쪼개서 한 프레임에 두 장의 사진을 담을 수 있는 카메라를 말합니다. 작년에 출시한 펜탁스 17이 바로 하프 카메라죠. 비록 촬상면이 줄어들어서 35mm 필름 한 장을 모두 쓸 때만큼의 화질은 기대하기 어렵지만, 36장짜리 필름 한 롤로 72장을 찍을 수 있다는 장점과 함께, 하프 프레임의 특성을 이용해 한 프레임에 다른 두 장의 사진을 배치하는 ‘투인원’ 구도 배치도 재밌는 부분이기도 해요.

X half는 이런 특징을 물려받았습니다. 일단 스펙을 간단히 살펴볼게요. 1,800만 화소의 타입 1 센서를 세로로 배치했어요. 하프 카메라가 필름의 배치 때문에 세로로 사진이 찍히는 걸 오마주한 것이죠. 그래서 가로로 찍으려면 카메라를 세로로 돌려야 합니다. 마침 타입 1 센서의 면적은 후지필름의 X100 시리즈나 X 미러리스 카메라들에 사용하는 APS-C 센서의 반 정도입니다. 즉, X half라는 이름의 뜻(X 시리즈의 반)과 어느 정도 일치하는 걸 볼 수 있어요. 렌즈는 35mm 풀프레임 기준 32mm의 F2.8 단렌즈로, 센서가 작다 보니 뛰어난 배경 흐림은 기대하기 어렵긴 합니다.

후면을 보면 센서처럼 디스플레이도 세로로 배치되어 있는데요, 옆에는 다른 디스플레이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후지필름의 자랑인 필름 시뮬레이션 표시창입니다. 이 디스플레이는 터치여서 스크롤하면 시뮬레이션 모드가 바뀝니다. X half에 탑재된 필름 시뮬레이션은 총 13가지로, X 시리즈 카메라보다 적긴 하지만 인기가 많은 시뮬레이션을 선별해서 넣었다 하니 부족한 게 체감될 거 같지는 않습니다.

여기까지는 그냥 기타 레트로 스타일 카메라보다 조금 더 특이한 정도였다면, X half가 다른 필름 오마주 카메라에서 한 차원 더 나아가는 부분은 바로 ‘필름 카메라 모드’입니다. 실제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는 느낌을 구현하기 위해 디지털 카메라의 편리한 부분을 모두 차단한 모드인데요. 먼저, 필름 시뮬레이션을 고른 후, 필름 롤의 장 수(36/54/72장)를 고릅니다. 이렇게 설정하면 선택한 필름 시뮬레이션으로 ‘필름’ 한 롤을 모두 끝낼 때까지 렌즈의 조리개 수치를 제외한 어떠한 설정도 바꿀 수 없습니다. 사진을 찍고 나서는 오른쪽에 있는 전진 레버를 이용해 ‘필름’을 넘겨야 다음 사진을 찍을 수 있고, 후면 디스플레이는 촬영한 필름 수와 같은 필름 카메라에서 볼 법한 표시만 뜨며, 모든 사진은 왼쪽 위에 있는 광학식 뷰파인더로만 촬영할 수 있어요. 사진을 다 찍으면 스마트폰 앱으로 사진을 전송하여 ‘현상’을 합니다.

만약에 제가 X half를 사용한다면, 거의 필름 카메라 모드로만 사용할 것 같습니다. 이 필름 카메라 모드가 X half가 존재하는 이유이기 때문이죠. 많은 레트로 스타일 카메라들이 그 외관만 가져온다면, X half는 필름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만 제외하면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는 느낌을 디지털로 구현해 냈습니다. 물론 진짜 그 손맛(?)인지는 직접 써 봐야 알겠지만요.

X half가 공개되고 나서의 반응들은 찬반이 팽팽하게 갈리고 있는 모습입니다. 제가 비록 후지필름 카메라가 없고, 앞으로도 구매할 것 같지는 않지만, 후지필름의 행보를 칭찬하고 싶은 이유입니다. 이러한 호불호는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한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이런 카메라를 내놓을 만한 곳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후지필름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오래간만에 재밌는 개념의 카메라가 나왔다는 생각입니다. 비록 850달러(약 116만 원)라는 가격은 부담스럽고, 혹자는 스마트폰보다 나은 사진이 나오기 힘들 거라고 불평하기도 하지만, X half의 요점은 절대적인 화질보다는 사진을 찍는 그 과정의 묘미입니다. 단순히 터치 스크린의 셔터 버튼만 누르면 웬만한 카메라 뺨치는 사진이 나오는 시대에, 전문가가 아닌 사진에 이제 막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특히 스마트폰으로만 사진을 찍는데 익숙한 20-30대가 사진을 찍는 그 과정에 빠져들 수 있도록 해주는 카메라가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About Author
이주형

테크에 대한 기사만 10년 넘게 쓴 글쟁이. 사실 그 외에도 관심있는 게 너무 많아서 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