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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생면 파스타 만들기, 어렵지 않아요

생면 파스타 만드는 법과 토마토 파스타 레시피
생면 파스타 만드는 법과 토마토 파스타 레시피

2025. 02. 19

내 책장엔 파스타 책이 한가득 있다. 대부분 해외 서적인데, 다들 짜기라도 한 것처럼 첫 파트는 제면으로 시작한다. ‘에이 설마, 파스타 한 그릇 먹자고 면까지 만들겠어?’ 파스타 책을 모으기 시작할 때는 레시피나 플레이팅에만 관심이 있었고 제면 파트는 늘 건너뛰곤 했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만든 파스타가 항상 뭔가 아쉬웠다는 점이다. 소스가 잘못됐나 싶어 재료를 바꿔도 소용이 없었다. 뭐가 문제일까 고민하던 어느 날 우연히 펼친 파스타 책의 서문은 이렇게 시작했다.

그제야 알았다. 내가 실수하고 있었다는걸. 파스타에서 가장 중요한 건 파스타, 즉 ‘면’ 그 자체였다. 레시피에 명시된 파스타를 사용하지 않고 집에 있는 아무 파스타를 사용했으니 당연히 그 맛이 나지 않았던 거다. 각각의 소스에는 어울리는 면이 있고 그게 바로 파스타 레시피의 핵심이라는 걸 깨달은 순간이었다. 그 뒤로 각종 파스타를 모으기 시작했다. 현재 20종류 이상의 파스타가 집에 있다.

비골리

그런데도 해외 서적엔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파스타가 자주 등장한다. 예를 들어 ‘비골리(우동같이 굵은 직경의 파스타)’ 같은 걸 만들어야 하는 레시피를 보고 있으면 마치 저자가 면 뽑기를 강요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직접 만든 파스타를 팔에 걸고 활짝 웃고 있는 사진까지 보면 더더욱 그렇다. 그 웃음이 “이 레시피는 반드시 이 면으로 해야 해요! 꼭이요!”라고 속삭이는 것 같다.


마카토

그래, 나도 한번 해보자. 그렇게 파스타 제면에 발을 들였다. 제면기부터 알아봤다. 자동으로 면을 뽑아주는 고가의 기계도 있지만 기계가 다 해주면 재미가 없지. 클래식하게 손으로 돌리는 방식의 ‘마까토(Marcato) 아틀라스 150’을 선택했다. 이탈리아산 제면기라는 타이틀에 홀린 것도 한몫했다. 매끈한 메탈 바디에 손잡이를 돌리며 면을 뽑는 방식이 뭔가 이탈리아 장인의 느낌이 났다. 이 제면기만 있다면 나도 능숙하게 생면을 뽑아낼 수 있을 것 같달까. 세몰리나까지(듀럼밀을 제분한 밀가루) 구매했으니 준비는 끝났다. 온갖 파스타를 만들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첫 도전은 참담했다. 반죽이 너무 질어서 기계에 들러붙었다. 두 번째는 무슨 이유에선지 반죽이 얇게 여러 가닥으로 갈라졌다. 다음엔 반죽이 너무 딱딱해서 손잡이를 돌리다 팔이 빠질 뻔했다. 그래도 실패를 거듭하다 보니 조금씩 감이 잡혔다. 반죽이 적당히 쫄깃하면서도 탄력이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그걸 딱 잡아내고 나서야 비로소 제대로 된 생면을 뽑아낼 수 있었다.

생면으로 만든 파스타를 한 입 먹었을 때 솔직히 조금 감동했다. 부드럽고 쫀득한 면과 그 전분기를 머금은 풍부한 소스의 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이게 바로 생면의 매력이구나. 이후 가끔씩 시간이 날 때마다 생면을 만들게 됐다. 자주 하기에는 번거롭지만 직접 면을 뽑아 먹는 기쁨이 너무 커서 가끔은 그 번거로움마저도 즐길 만했다. 한동안은 금요일 저녁이면 퇴근 후 집에 와서 주말에 만들 파스타를 정하고, 한밤중에 생면을 만들었다. 주말을 위한 멋진 한 끼를 위해서 이 정도쯤이야 못 할까, 싶을 정도로 생면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

생면 파스타는 건면과는 다른 매력이 있다. 특히 생면을 사용한 토마토나 크림 파스타는 면이 소스를 속까지 품고 있는 느낌이다. 한 입 씹을 때마다 소스의 풍미가 깊게 퍼진다. 면의 두께와 길이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내가 먹고 싶은 스타일의 파스타를 내 입맛에 맞게 변형할 수 있다. 하지만 단점도 명확하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 내 입맛에 맞는 밀가루, 계란, 물의 비율을 찾는 것이 쉽지는 않다. 또한 반죽부터 제면, 숙성까지 손이 많이 간다. 적당히 얇게 밀어내는 것도 숙련이 필요한 작업이다. 처음엔 힘 조절에 실패해 면이 울퉁불퉁하거나 두께가 고르지 않아 좋지 않은 식감을 느낄 수 있다.

파스타에서 건면과 생면은 각각의 특성을 살려 사용하는 것이 좋다. 라구처럼 오랜 시간 끓여내는 무거운 소스에는 건면이 더 어울린다. 익히는 시간이 길어 소스를 천천히 흡수하기 때문이다. 반면 단시간에 조리하는 오일 베이스나 가벼운 토마토, 크림 소스 요리에는 생면이 제격이다. 생면은 조리 시간이 짧고 부드러워 가벼운 소스와 잘 어우러진다. 물론 가장 중요한 건 개인의 취향이니 이건 어디까지나 참고 사항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생면의 쫄깃함을 느낄 수 있는 콜드 파스타(파스타 샐 러드)나 가벼운 토마토 베이스의 파스타를 좋아한다. 상황에 따라 건면을 선호할 때도 있다.


생면으로 만들면 더 맛있는 파스타 레시피
올리브&케이퍼베리 토마토 소스 파파르델레

파스타

생면 파스타에 어울리는 레시피를 하나 소개한다. <선요의 일상 파스타>에서 가장 아끼는 파스타 레시피 중 하나다. 책에 실린 레시피에선 건면을 사용했지만 생면을 사용하면 120% 더 맛있는 파스타를 만들 수 있다.

재료
생면 파파르델레 80g, 면수용 소금 1큰술, 토마토 홀 150g, 양파 1개, 올리브 5알, 케이퍼베리 5알, 안초비 2마리, 이탈리안 파슬리 3줄기,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치즈, 올리브 오일 3큰술, 소금 약 간, 후추 약간

레시피
1. 끓는 물에 소금 1큰술을 넣고 생면을 삶는다. 4분 정도 삶는다.
2. 이탈리안 파슬리와 양파는 잘게 다진다.
3. 약불에 팬을 올리고 올리브 오일을 3큰술을 두르고 다진 양파를 넣는다. 양파의 수분이 날아가고 갈색빛이 돌 때까지 볶는다.
4. 안초비를 넣고 가볍게 으깨면서 양파와 섞은 후 면수를 한 국자 넣는다.
5. 토마토 홀을 넣고 주걱으로 으깨준다.
6. 토마토가 으깨지고 가장자리가 끓어오르면 면을 넣고 잘 섞는다.
7. 이탈리안 파슬리와 올리브, 케이퍼베리를 넣는다.
8. 약불로 팬에 수분이 거의 남지 않도록 졸인다.
9. 간을 본 후 소금과 후추를 추가하고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를 취향껏 뿌리고 가볍게 섞는다.
10. 그릇에 담고 남은 이탈리안 파슬리를 가니쉬로 올린다.

널찍한 파파르델레의 전분기가 소스를 흥건하지 않게 잡아주어서 깔끔한 느낌의 토마토 파스타가 완성된다. 쫄깃한 생면, 캐러멜라이징한 양파와 앤초비의 깊은 풍미, 올리브와 케이퍼베리의 산뜻함이 균형을 이룬다.

결론은 파스타에서 가장 중요한 건 언제나 ‘면’이라는 것과 파스타 제면기는 사볼 만하다는 것. 물론 제면 과정이 번거롭고 시간이 꽤 걸리긴 한다. 반죽을 하고, 밀고, 뽑고… 손이 계속 바빠야 한다. 하지만 직접 만든 생면을 한 입 먹는 순간 그 수고가 눈 녹듯이 사라진다. 소스를 깊이 머금은 부드럽고 쫄깃한 생면이 주는 행복감은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들다. 무엇보다 내 입맛에 딱 맞는 면을 창조하는 재미가 있다.

사실 파스타 레시피처럼 간단한 요리가 없다. 그런데 가끔씩은 좀 더 공들여 만든 근사한 한 끼가 먹고 싶지 않던가. 정성과 시간이 깃든 생면 파스타 한 그릇 같은. 파스타를 사랑한다면 한 번쯤 이 마법 같은 경험을 해볼 필요가 있다.

About Author
선요

파스타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파스타 책을 썼다. 내일은 무슨 파스타를 먹을지 고민하는 것이 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