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영화평론가 김철홍이다. 2024년은 한국 게임이 세계를 휩쓴 해로 기억되지 않을까? 2년 연속 롤드컵 우승을 차지한 페이커, ‘APT’로 전 세계에 한국 술자리 게임송의 중독성을 널리 알린 로제, 마지막으로 3년 만에 새 시즌으로 돌아온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이 연말을 장식했다.
첫 시즌의 흥행으로 일종의 세계적 사회 현상을 만들어냈던 <오징어 게임>은, 시즌 2가 12월 26일 세상에 공개된 후 이틀 만에 전 세계 TV쇼 부문 1위를 차지했다.(*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 시청 시간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Flix Patrol) 기준입니다. 넷플릭스 공식 집계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습니다.)
온 세계에 다시 한번 자신의 인기를 증명해 낸 것이다. 이 소식에 그 누구보다 기뻐하고 있을 것은 넷플릭스가 분명하다. <오징어 게임>은 당시 주춤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던 넷플릭스를 일으켜준 1등 ‘프런트맨’이었으니 말이다. 이 시리즈의 성공 여부가 넷플릭스의 향후 10년을 좌지우지하고 있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받은 <오징어 게임> 시즌 2. 그 결과물은 과연 어땠을까. 일단 지금까지 나온 평가들은 꽤나 다양하게 갈리고 있는 양상이다. 누군가는 역대급 히트작의 명성을 충분히 이어갈 수 있는 수작이 나왔다고 말하고, 또 누군가는 여러 부문에서 아쉽다는 평을 남기고 있다. 개인적인 감상은 ‘불호’ 쪽에 가깝다. 시즌 1에 비해 애매한 부분이 많아졌고, 무엇보다 시즌 2에 모든 이야기를 종결시키지 못하고 다음 시즌으로 넘겨버렸다는 점이 가장 불만족스럽다. 그러나 분명 돋보이는 긍정적인 측면도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미리 결론부터 말하자면 긍정적인 요소가 부정적인 것보다 크다. 이제부터 어떤 점들이 괜찮았고 또 아쉬웠는지 상세히 얘기해 보려고 한다.
*본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 <오징어 게임>은 넷플릭스의 프론트맨 격인 작품이다. 무슨 말이냐면 이 작품은 이제 더 이상 황동혁 감독만의, 한국만의 작품이 아니게 되었다는 것이다. 황동혁 감독은 실제로 시즌 1의 성공 후 한동안은 후속 시즌을 만들 생각이 전혀 없었다고 밝혔는데, 이는 그 무엇보다 부담감 때문이었을 확률이 높다. 누구도 예상할 수 없을 만큼의 큰 사랑을 받은 작품이 시즌 1이었으니 말이다.
시즌 2를 시작하기 망설일 수밖에 없던 두 번째 이유. 아마 이 이유가 더 크리티컬했을 거라고 보는데, 그건 시즌 1이 그 자체로 완결된 서사였기 때문이다. 시즌 1은 애초 뒷이야기를 크게 염두에 두지 않고 만들어진 작품이었다(그래서 더 큰 사랑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 참가자가 서바이벌 게임에 참가한 뒤 우승하여 혼자 살아남은 결말. 이 엔딩에서부터 다음 이야기를 이어가기란 분명 매우 어려운 일이다. 차라리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해 내는 것이 더 쉽지 않았을까? 많은 유명 영화의 2편이 ‘망작’으로 전락하는 경우도 이와 비슷하다.
그러나 시즌 2는 충분히 ‘말이 되는 다음 이야기’가 맞다. 시리즈의 본질인 ‘게임’을 다시 한번 진행시키는 명분을 잘 마련했다. 물론 군데군데 허점이 많기는 하다. 메인 주인공인 성기훈을 다시 게임에 참가시키기 위해 어물쩍 넘어가는 것들이 허다하며 희생시킨 것도 있다. 가장 큰 희생양은 물론 딱지남이다. 과장 보태서 시즌 2는 배우 공유의 열연 덕분에 거의 강제로 시작된다. 이로 인해 베일에 싸인 오징어 게임 주최 측의 신비감이 대폭 사라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성기훈이 마침내 게임에 재참가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아니 이 게임을 다시 한번 관객들에게 보여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매우 크다.
모두가 알고 있듯 <오징어 게임> 시리즈의 궁극적인 재미는 게임에 있다. 모로 가도 게임으로만 가면 되는 것이다. ‘오징어 게임’이 한국 사회의 무한 경쟁 시스템에 대한 비유임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게임 속 참가자들의 모습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 또한 이미 다른 많은 작품들을 통해 수차례 이야기된 바 있는 것이 사실이다. 더 솔직히 말해 오징어 게임에 참가하는 인물들의 서사도 딱히 중요한 게 아니다. 그래서 설정이 붕괴되고 허점이 많아도, 아니 설사 주인공이 성기훈이 아니더라도. 게임의 내용만 재밌으면 <오징어 게임>은 계속해서 <오징어 게임>일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시즌 2는 초반부만 어찌저찌 잘 넘어간 다음 본격적인 게임으로 들어가면, 다시 본연의 매력을 선보인다. 시그니처 게임인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로 익숙한 긴장감을 준 다음 그 뒤로 새 게임인 ‘5인 6각 근대 5종 경기’와 ‘짝짓기 게임’이 이어진다. 두 게임 모두 우리에겐 다소 유치한 게임으로 느껴지지만, 그 외 수많은 외국 시청자들에겐 충분히 어필될 만한 요소를 갖추고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론 시즌 1의 달고나를 만드는 설탕 뽑기 게임이나 구슬치기보다는 훨씬 볼만하다고 느꼈다.
끝난 게임을 다시 시작했다는 것, 그리고 그 게임이 재밌었다는 것, 그래서 이 거대 시리즈를 다시 움직이게 만들었다는 것은 분명 콘텐츠로서 높게 평가하는 부분이지만, 그 외 부분은 아쉬운 점들 투성이다. 대표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조롱 섞인 비난이 향하는 곳은 경찰 황준호의 해상 수색 장면들과 과장스러운 래퍼 캐릭터의 활용이다. 두 부분 모두 극의 전개를 위해 필요한 것임은 이해 가지만, 극의 본질인 게임의 몰입도를 심각하게 해친다.
지나치게 반복되는 O/X 찬반 투표는 어떤가. 왜 굳이 시즌 1과 다르게 O/X 투표 결과를 가슴팍에 붙이게 하는지 납득할 수 없다. 후반부 급작스럽게 전개되는 총격전 역시 마찬가지다. 참가자들이 전문 진행 요원들을 압도하는 월등한 사격 실력을 갖추고 있다니. 이와 같은 시즌을 길게 늘어뜨려 보려는 욕망이 시리즈 곳곳에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다.
이렇듯 <오징어 게임> 시즌 2는 각 잡고 진지하게 비판하기 민망할 정도의 완성도를 가지고 있다. 이건 사실 시즌 1도 마찬가지였다. 따져볼수록 아귀가 들어맞지 않는 부분이 생각나고, 계속해서 비슷한 다른 서바이벌 게임 작품들이 떠오른다. 그런데 또 다음 화를 이어서 보게 된다. 마치 엉성하고 간단하지만 한번 시작하게 되면 동네 아이들과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이어갔던 그때 그 게임들처럼.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가, 딱지치기가, 오징어 게임이 다른 게임들에 비해 정교하지 않고 단순하게 느껴질 수는 있다. 그렇지만 재밌다. 한 판 더 하고 싶다. 그것만큼은 절대 부정할 수 없다.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월드 클래스 <오징어 게임>은 그래서 지금 이 시간에도 끊임없이 많은 사람들에 의해 재생되고 있다. 그리고 그 흐름은 꽤나 오래 지속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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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홍
제25회 씨네21 영화평론상에서 최우수상 수상. 영화 글과 평론을 쓰고 있다.